지난달 대전에 '방사선 백색비상'... 아셨나요?

[取중眞담] 한국정부 원전 자신감이 '교만'으로 느껴지는 까닭

등록 2011.03.18 18:07수정 2011.03.19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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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를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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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 대덕 연구단지에 위치한 한국원자력연구소와 한전원자력연료(주) ⓒ 심규상


개인적으로 원자력발전소에 대한 관심이 많은 편이다. 관련 도서를 신간까지 찾아 읽고 강좌 등을 찾아다니기도 했다. 지금도 일본의 원전사고 뉴스를 빠트리지 않고 챙기려고 일본 언론까지 뒤져보고 있다.

관심을 갖게 된 배경에 대전의 대덕연구단지에 한국원자력연구소가 있는 현실도 한몫했다.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소에는 원자로가 가동 중이다. 다목적연구용 원자로 '하나로'(열 출력 30MW, 연간 5000시간 운행)가 그것이다. 이곳에는 또 원자력발전소연료가공시설, 동위원소 폐기물폐기시설 등이 운영 중이다.

고리·영광·울진·월성 등 대형 원전 부근에 사는 사람들이 들으면 작은 연구용 원자로와 폐기물처리시설을 가지고 웬 호들갑이냐고 하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대단위 아파트가 둘러싸인 인구밀집지역에 있는데다 잊을 만하면 한 번씩 사고가 나기 때문이다.

지난 2월 20일에도 난데없이 '방사선 백색비상'(백색-청색-적색으로 3단계) 경보가 발령됐다. 하나로 원자로 수조 아래 잠겨 있던 실리콘 반도체 생산용 회전 알루미늄통의 고정부위가 마모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원자로 주변 50m 이내 방사선 준위가 시간당 1밀리시버트(mSv/h)를 초과했기 때문이다(하나로 원자로는 일 원전사고가 발생한 이후인 지난 15일부터 재가동 중이다).

대전 연구용 원자로... 시민단체 집계 사고만 10건

1995년 가동을 시작한 하나로 원자로에 지역시민사회단체가 자체 집계한 최근까지의 사고는 10건이다.  2004년에는 보수공사 중 중수가 누출됐고, 2005년에는 방사성 요오드가 검출됐다. 2006년에는 실험실에 화재가 발생했고, 같은 해 작업 중 부주의로 연구원 2명이 피폭됐다. 2007년에는 보관하던 우라늄을 잃어버리는 황당한 일이 있었고, 이때부터 올 1월까지 연구소 내에서 4차례의 화재가 발생했다.

하지만 기자의 지난 2004년 보도내용에 따르더라도 1995년부터 10년 동안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가 불시 정지한 횟수만 131회에 이르고 있다. 내용을 보면 운전원 실수(39건), 계통상 문제(74건), 작업자 실수(5건), 운전미숙(2건)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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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원자력연구소 내 연구용원자로인 하나로 전경. ⓒ 한국원자력연구소

이쯤 되면 대전시민들이 우려감을 갖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원자력연구소의 대응은 한결같았다. '대전시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면서도 '주민 피폭선량은 부지당 기준치보다 낮아 주변 환경과 주민영향이 크지 않다'는 답변이다.

어느 해인가는 시민단체가 '안전망 구축'을 요구하자 "연구소에서 근무하는 사람도 목숨은 하나뿐"이라며 "오로지 국가원자력기술자립이라는 사명감 하나로 일하는 연구원을 격려해도 부족한데 범죄자로 취급하는 사회풍토가 안타까울 뿐"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당시 원자력연구소 소장은 언론 기고를 통해 "연구원들이 이상이 없고 안전하다는 데도 외부에서 위험하다고 과대포장을 하여 난리를 피우는 것은 무슨 저의가 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고 공격하기도 했다.

도시 속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 2만 드럼...'사용 후 핵연료' 3.86톤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에는  2009년 12월 말 현재, 하나로를 비롯 동위원소생산시설, 핵주기시설의 운영과정에서 발생한 폐기물 등 자체 원자력 관련시설에서 나온 중·저준위 방사성 폐기물(작업복과 장갑, 부품, 폐필터) 1만4132드럼(200리터 드럼 기준)이 저장돼 있다. 원자력연구원 외에도 인근에 있는 한국원자력연료㈜에서 6833드럼을 별도 보관중이다. 약 2만 드럼에 이르는 양이 방사능 농도가 옅다는 이유로 대도시 인구밀집지역에 저장되어 있는 것이다.

원자력에너지를 이용하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생기는 방사성 폐기물은 영구적으로 인간생활권으로부터 격리 처분되어야 한다. 외국의 경우 해저 동굴 또는 동굴 처분방식을 채택, 운영하고 있는 곳이 많다.

이와는 별도로 대전 한국원자력연구원 부지에는 하나로 원자로 등에서 발생한 '사용 후 핵연료' 3.86톤(2009년 12월 말 현재)을 저장중이다.  

2001년 새우와 해파리 유입으로 울진 원자력 원자로가 5차례나 멈춘 바 있다. 2003년에는 태풍 매미의 영향으로 원자로 5기가 한꺼번에 멈추는 사건도 있었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의 자체 통계에 따르더라도 지난 2009년까지 10년 동안에만 원자력 원자로가 멈춘 사례만 140회에 이른다. 상대적으로 사건발생이 적었다는 지난 2009년에도 고리·영광·울진·월성 원전 등에서 모두 7건의 원자로 정지사건이 있었다.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를 접한 독일은 지난 1980년 이전에 건설된 원자로 7기의 가동을 잠정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벨기에는 원자로 안전성을 정밀 진단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는 원전 추가 건설이나 가동시한 연장 등의 논의를 중단하기로 했다. 낡은 원전 10개에 대한 교체를 추진해 온 영국 정부도 재검토를 고려하고 있다. 다른 나라로부터 수십 기의 원전을 수주한 러시아 역시 총체적인 점검에 돌입했다.

일본의 에다노 유키오 관방장관도 18일 오전 기자회견에서 자민당 총재의 '원자력 정책 추진은 곤란하다'는 의견에 동조하며 '원전증설 정책의 전환(탈 원전)을 검토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했다.

태풍 '매미'에도 원자로 올스톱... 강진에는 끄떡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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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과학국제안보연구소 (ISIS)가 14일 촬영해 공개한 후쿠시마 제1원전 위성사진 ⓒ ISIS


국내 전력의 약 40%를 원자력으로 충당하는 한국은 오히려 원전 앞에 '녹색' 마크를 붙여 2016년까지 8기 원자로를 추가 건설할 예정이다. 하지만 일본 원전사고 후에도 '우리나라에서는 30년 동안 단 한 건의 원전 사고가 없다'며 UAE가 한국과 원전계약을 체결한 것은 '30여 년의 원전 운영능력과 안정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라고 자랑하고 있다. 태풍 매미로 무더기 가동 중단된 사례를 까맣게 잊은 듯 '한국 원자로는 진도 6.5에도 견딜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고 있다.

대전시도 지난달 방사선 누출로 백색경보까지 발령된 현실에도 "하나로 원자로는 일본의 원자력발전소와 달리 대형 수조에 담겨져 있어 방사선 누출 우려가 없고 비상시에도 비상냉각수를 공급할 수 있도록 안전장치가 구비되어 있다"며 정부를 대신해 안전성을 강조하기 바쁘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본 대지진과 원전사고를 보고 대자연의 힘 앞에 보다 겸손해져야 한다며 지난 삶을 반추하고 있다. 반면 한국 정부는 오늘(18일)에서야 가동 중인 모든 원전에 대한 긴급안전 점검 후 정밀진단이 필요한 원전에 대해서는 가동중단 조치를 검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한국정부의 앞선 '호언장담'이 자신감과 자만을 넘어 '교만'으로 느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일본 대지진 #원자력연구소 #후쿠시마 #원전 #하나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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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보천리 (牛步千里). 소걸음으로 천리를 가듯 천천히, 우직하게 가려고 합니다. 말은 느리지만 취재는 빠른 충청도가 생활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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