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생명의 계절에 '낙화'를 읊는 심사

오늘의 주먹은 내일 손을 활짝 펴기 위한 필요 동작일 뿐

등록 2011.03.21 14:45수정 2011.03.21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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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새봄이다. 꽃샘잎샘추위가 또 한바탕 기승을 부렸지만, 봄은 봄이다. 오후 걷기운동을 하다보면 논둑길 밭둑길이며 냇가에서 맡는 흙냄새 물 냄새와 풀 빛깔이 다르다. 나무들마다 새 움을 트기 위한 은밀한 작업이 한창이다.

 

걷기운동을 하며 묵주기도를 하는 중에 박목월의 '산도화'를 읊기도 하고, 이형기의 '낙화'와 조지훈의 '낙화'를 읊어보기도 한다. 새 움이 트고 망울들이 맺히기 시작하는 시기에 낙화를 생각하는 것도 조금은 묘미일 법하다. 때로는 역설의 묘미도 느끼고 누릴 줄 아는 것이 우리 인간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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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 걷는 길 우리 집에서 4Km쯤 떨어진 '장명수'라는 이름의 바다를 가려면 거치는 태안읍 남산리 '소캣말' 길의 요즘 풍경이다. ⓒ 지요하

▲ 즐겨 걷는 길 우리 집에서 4Km쯤 떨어진 '장명수'라는 이름의 바다를 가려면 거치는 태안읍 남산리 '소캣말' 길의 요즘 풍경이다. ⓒ 지요하

바람결 속에서 봄을 느끼기 때문인가, 요즘은 걷기운동 중에 세상 떠난 이들을 많이 떠올리며 묵주기도를 한다. 봄에 더욱 인생무상을 절절히 체감하는 습성 때문인가, 아니면 세상 떠난 이들과 함께 했던 지난날들이 그립기 때문인가….

 

세상 떠난 이들을 떠올리는 것은 필경 나의 '내일'도 생각하는 일이다. 내 주위에서 요 근래에 세상 떠난 이들이 많아진 사실은, 세월이 덧없이 흘러 나도 어느 사이 영마루에 다다르고 있음을 말해주는 것이기도 할 터이다.

 

이런저런 인연의 가닥들을 나누어 쥐고 살았던 이들이 요 근래에 여럿 세상을 하직했다. 여러 해 전에 당질과 가운데 제수씨가 요절을 하고, 장모님과 숙부님과 숙모님이 차례로 세상을 뜨시더니, 이태 전에는 사촌 형님 한 분이, 또 지난해에는 사촌 자형 한 분이 이승을 떠나셨고, 올해 들어서는 사촌 큰형님과 사촌 자형 한 분이 연이어 고인이 되셨다.

 

먼 길 문상을 가기도 하고, 또 장례를 주관하거나 관여하기도 하면서 인생은 어쩔 수 없이 헤어짐의 연속이라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헤어짐의 연속 속에서 마침내는 나도 종지부를 찍게 될 터이고….

 

일찍부터 수많은 죽음과 주검을 접했다. 고1 시절부터 시신을 만지고(염습), 상여를 메어 버릇했다. 군대 시절에는 베트남 전장에서 떼죽음을 목격하기도 했다. 한 번은 작전을 마치고 영내로 귀환했을 때 이동외과병원 영안실을 꽉 채우고도 너른 마당을 길게 차지하고 누운 수많은 시신들을 보았다. 하얀 시트 끝에서 바람에 나풀거리는 머리칼들을 보는 순간 정신이 혼미해지는 상황에서 돌연 "기상! 기사앙!"하고 외쳤던 기억도 가지고 있다.

   

지금이야 모든 시신 처리를 장례예식장에서 다 하지만, 장례예식장이 보편화되지 않았던 시절, 사신을 참 많이도 만졌다. 성당 신자 중에 상이 났다하면 남자 시신이든 여자 시신이든 전담 팀이 염습을 도맡아야 했다. 내 손으로 염을 한 시신이 100구도 넘을 것 같다.

 

청소년 시절부터 오랜 세월 숱한 시신들을 접하고 만지다 보니, 더욱 확실한 질감 속에서 죽음에 대해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은연중 죽음과 관련하는 이런저런 사유들이 차곡차곡 내 심저에 쌓이고, 제법 옹골찬 생각의 숲이 생겨나지 않았나 싶다.

 

<2>

 

숨이 멎는 순간도 여러 번 보았고, 운명 직전의 특이한 형태와 유별한 주검도 많이 접해 보았다. 죽음 자리에 함께 하거나 주검들을 만질 때마다 나의 '그날'을 생각하곤 했다. 나는 어떤 모습으로 '죽음의 강'을 건너게 될지, 또 어떤 주검으로 남게 될지를 생각해보는 것은 나름대로 '대비'를 하는 것이기도 할 터였다.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지만, 사람은 누구나 죽을 때는 손을 펴고 죽는다. 주먹을 쥐고 죽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주먹을 쥐고 죽는다 하더라도 숨이 멎는 순간에는 손이 펴지게 되어 있다. 태어날 때는 주먹을 쥐지만 죽을 때 손을 편다는 것은 만고불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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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구, 장기, 시신 기증등록증들 1990년대 중반(내 나이 40대 중반 시절)에 마련한 세 가지 등록증을 지갑에 넣고 늘 품 안에 지니고 다닌다. 유사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실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지요하

▲ 안구, 장기, 시신 기증등록증들 1990년대 중반(내 나이 40대 중반 시절)에 마련한 세 가지 등록증을 지갑에 넣고 늘 품 안에 지니고 다닌다. 유사시 최대한 빠른 시간 안에 '실행'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 지요하

죽는 순간에는 손이 펴지게 마련이지만, 자신의 손을 의식하여 최대한 펴고 죽으려는 마음도 인간에게는 필요하다. 죽음 자리에서도 자신의 손을 의식한다는 것, 의식적으로 손을 펴고 죽는다는 것은 필경 행복한 죽음일 터이다.

 

그런 죽음을 위해서는 생전에 손을 펴는 연습을 많이 해야 한다. 주먹을 쥐기보다는 손을 펴는 것이 버릇 들어야 한다. 또 그 버릇이 삶 전반에 고루 미쳐야 한다.

 

사람이 주먹을 쥐면 손끝이 자신만을 향하지만, 손을 활짝 펴면 손끝이 밖과 앞과 하늘을 향하게 된다. 사람은 기도를 할 때 손을 펴고 합장을 한다. 어떤 종교든 합장은 믿음과 기원의 가장 확실한 표징이다.

 

종교가 있건 없건 합장의 의미를 헤아리고 사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종교를 가졌건 갖지 않았건 평생 주먹을 쥐고 살기보다는 손을 펴고 사는 것이 죽음 자리에서도 쉽게 손을 펼 수 있고, 죽음의 강을 무난히 건널 수 있는 길임을 깨달아야 한다.

 

소리(小利)에 집착한 나머지 주먹을 쥘 줄만 알았지 펼 줄을 몰라 죽는 순간까지 손을 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그리하여 '욕심'이라는 유산이 이승의 자식들에게 대물림되는 현상도 우리 주변에는 흔하다. 물질의 유산과 함께 욕심의 유산, 분쟁의 유산도 남게 되는 것이다.

 

그런 현상을 체감하며 장례를 치르게 되는 경우도 있다. 불행한 일이다. 망자에 대한 존경심은 조금도 자리하지 않고 안타까움과 연민만을 가득 안고 장례를 치른다는 것은 또 다른 슬픔을 겪는 일이다.

 

욕심의 유산, 분쟁의 유산이 이런저런 형태로 작용하는 현상 가운데서 치려지는 장례. 그로 인해 망자의 영혼은 더욱 저승에서 질곡 속에 처하게 되리라는 생각은 참으로 마음을 아프게 한다. 

 

<3>

 

최근 또 한 번의 장례를 치르는 과정에서 유족들 중 한 사람에게 위에 적은 이야기를 소개할 기회가 있었다. "사람은 죽을 때 손을 펴고 죽게 마련이지만 의식적으로 손을 펴는 것도 중요하다. 죽을 때 손을 잘 펴기 위해서는 생전에 '연습'을 해두는 것도 필요하다"는 이야기 끝에 나는 어떤 식으로 어떤 내용의 연습을 하고 있는지, 겸연쩍은 가운데서도 용기를 내어 고백을 했다.

 

나는 평생 동안 한 평의 땅도 가져보지 않았다. 땅에 대한 관심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땅을 소유하려는 마음을 아예 갖지 않았다. 땅을 가져본 경험이 한 번도 없는 나를 측은하게 여긴 한 친구로부터 권유를 받았을 때 내가 땅을 가지는 만큼 하늘나라에 들어가기는 어려우리라는 생각으로 사양을 한 경험은 있다.

 

다른 것은 다(?) 가지더라도 자연의 일부인 땅만큼은 하느님의 것으로 남겨두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다. 자연을 사람이 금을 그리고 나누어서 소유한다는 것은 옳지 않다는 생각이었다. 평생 동안 한 평의 땅도 가져보지 못한 선친이 사후에는 이승의 땅을 두어 평 차지하고 누워 계시지만 나는 그마저도 갖지 말자는 생각을 했다.

 

그리하여 1995년 시신 기증을 했다. 아내도 적극 찬동하여 그 일에 동참했다. 93년에 안구 기증을 하고, 95년에는 장기 기증을 한데 이어 시신 기증까지 한 것이다. 안구와 장기 기증은 본인 의사만으로 쉽게 등록을 할 수 있었지만 시신은 사정이 달랐다. 모친과 형제들의 동의가 필요했다.

 

두 동생이야 별 이의가 없었지만 노친은 이해를 하지 못해 여러 날 애써 설득을 해야 했다. 그때 어렵사리 동의서에 도장을 찍으신 노친은 지금도 불만을 표하신다. 안구와 장기면 됐지 왜 시신까지 통째로 기증을 하느냐는 말씀이다.         

 

늦게 혼인하여 자식들을 낳아 기르면서 물질가치보다 정신가치가 더 중요함을 가르치곤 했다. 물질적인 유산보다 정신적인 유산을 물려주려 했고, 이 세상 삶은 한 순간의 순례임을 가르쳤고, 하느님 신앙 안에서 착하고 바르고 의롭게 살기를 바라며 기도했다.

 

자식들에게 '합장'의 의미를 가르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주먹을 쥐기보다 손을 펴는 것이 더 가치 있는 일이며, 때로는 주먹을 쥐게 되더라도 쥐는 것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손을 펼 줄 알아야 함을 강조하는 것도 아비의 정당한 몫이지 쉽다.

 

어언 60고개를 넘어선 지금, 지난 세월을 돌아보면 모든 게 순식간인 것 같고, 인생은 '찰나'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꽃망울이 낙화가 되는 것은 정말 찰나이다. 그 찰나를 위해서 내 몫의 삶을 감당하느라 참 무던히도 노고했고, 수많은 크고 작은 고난들도 이리저리 감내해 왔다.

 

어려운 생활 가운데서도 주먹을 쥐기보다는 손을 펴는 쪽으로, 줄기차게 하늘 우러르며 살아왔음을 다행으로 여긴다. 나이 먹은 지금은 더더욱 주먹 쥘 일이 없다. 가진 것도 없고 이룬 것도 없으니 그저 빈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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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 쥐고 구호 외치기 60고개를 넘긴 나이에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리미사'를 지내며 구호를 외친다. 지난 7일 저녁의 모습이다. ⓒ 지요하

▲ 주먹 쥐고 구호 외치기 60고개를 넘긴 나이에 매주 월요일 저녁에는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거리미사'를 지내며 구호를 외친다. 지난 7일 저녁의 모습이다. ⓒ 지요하

하지만 문득 재미있는 생각을 하나 해 본다. 요즘 내가 반복적으로 주먹을 쥐는 일이 한 가지 있다. 힘껏 주먹을 쥐고 높이 쳐들며 목청껏 구호를 외치기도 한다. 매주 월요일 저녁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하는 일이다. 천주교 '월요전국사제시국기도회' 덕분이다. '거리미사'에 참례할 때마다, 미사 끝 무렵에 사제들과 신자들 모두 다 함께 세 가지 구호를 외친다.

 

4대강 댐 헐어내서 모든 강에 생명을!

남북화해 되살려서 온 누리에 평화를!

민주정부 수립해서 만민에게 인권을!

 

60평생을 살아오는 동안 의로운 일들에 주먹을 쥐어본 경험은 여러 번이지만, 이번이 가장 절절하고 피 끓는 심정인 것 같다. 또 이번이 마지막으로 주먹을 쥐는 일일 것 같다. 그렇다. 나는 지금 이 나이에 매주 월요일 저녁마다 서울 여의도에 가서 주먹을 쥐고 있다. 주먹을 쳐들고 내지르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하지만 내가 오늘 주먹을 쥐는 것은, 손을 활짝 펴기 위한 동작이다. 또 최후의 순간에 손을 제대로 잘 펴기 위해서다. 오늘의 주먹은 내일의 활짝 편 손, 그리고 죽는 순간에 손을 제대로 잘 펴기 위한 연습임을 굳게 믿는다.

2011.03.21 14:45 ⓒ 2011 OhmyNews
#봄 마중 #낙화 #주먹과 합장 #여의도 거리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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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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