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에 쫙 달라붙는 바지, 누군가 봤더니...

[양양 여행 5] 구룡령에서 사이클 타는 처자들도 보고, 제철 지난 송이도 먹고

등록 2011.03.24 11:50수정 2011.03.24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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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도로 ⓒ 유혜준


구룡령 정상에서 갈천 마을로 내려가는 2차선 포장도로는 줄곧 내리막길이다. 그건 힘들이지 않고 쉽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사도 생각보다 완만하다. 길은 구불거리면서 산허리를 감돌며 이어진다. 가파른 산을 깎아 길을 내느라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런 길을 걸으면 꼭 그런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도로는 대부분 군인들이 길을 냈다, 고 남편이 한 마디 한다.

이 도로, 자동차의 통행이 무척이나 드물다. 이따금 잊힐 만하면 차량 한 대가 양양 방향에서 올라오거나 홍천 방향에서 내려간다. 길옆으로 눈은 잔뜩 쌓여 있고, 칼바람이 불지만 햇볕은 따뜻했다.


눈 덮인 산이 앞을 가로막듯이 펼쳐져 있다. 참 이상도 하지. 눈이 덮인 산에 앙상하게 가지만 남은 나무들이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걸 보면 가슴이 설렌다. 심장 박동도 빨라지고, 더불어 호흡도 가빠진다. 마치 사랑에 빠진 것처럼. 걸음을 멈추고 먼 산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참 좋다, 는 감탄사는 입안으로 삼켰다. 감탄을 남발하는 건 식상하지.

굽이치는 고갯길을 천천히 내려가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무리지어 나타나 내 시야를 가로막는다. 어머나, 하면서 놀랐다. 몸에 쫙 달라붙는 운동복을 차려입은 처자들이다. 죄다 사이클을 타고 있고, 그 뒤에 승합차 한 대가 바싹 붙어 따라오고 있다. 사이클 선수들이 훈련 중인가 보다. 앳된 얼굴로 보아 고등학생인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다. 구룡령 정상까지 사이클을 타고 오르려면 엄청나게 힘이 들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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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클 타는 처자들 ⓒ 유혜준


자전거를 타 봤기 때문에 자전거 타고 조금이라도 경사가 있는 길을 올라가기가 얼마나 힘든 지 잘 안다. 힘이 딸려서 끝내 자전거에서 내려 자전거를 질질 끌고 올라가곤 했다. 워낙 운동신경이 젬병인지라 자전거는 몇 번 타지 않고 관뒀다. 역시 나는 걷는 게 체질이야, 하면서. 덕분에 넘어지고 엎어진 흉터만 무릎에 남았고, 자전거에는 먼지만 뽀얗게 쌓였다.

오르막길만 이어지는 구룡령 도로를 사이클을 타고 올라가는 처자들의 얼굴에는 힘든 기색이 역력하다. 슬그머니 사진기를 들어 셔터를 눌렀다. 그들 입장에서는 배낭을 멘 채 걸어가는 우리가 신기해 뵀을지도 모르겠다. 정상까지 올라갔는지 아니면 홍천까지 넘어갔다 오는 건지 모르지만 나중에 사이클을 타고 내려오는 이들과 다시 마주쳤다. 순식간에 우리를 지나쳐 가서 말 한 마디 섞지 못했다.

한 시간 넘게 걸었더니 집 한 채가 나타난다.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잘 지은 산장 같은데, 텅 비었다. 뭐 하던 집인지 호기심이 발동, 가까이 갔다. 아주 오래 비워둔 집인 듯 유리를 통해 들여다본 실내는 휑뎅그렁했다. 먼지도 쌓여 있어 귀신이라도 튀어나올 것 같은 음산한 분위기마저 난다. 휴게소 용도로 지어진 집이었을까? 2차선 국도 옆에 살림집이 들어섰을 리는 만무일 테고. 궁금했지만 물어볼 사람이 없으니,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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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집. ⓒ 유혜준


사람의 온기가 사라진 집은 금세 쇠락하기 마련. 이 집도 그런가 보다. 닫힌 문 앞에 주저앉아 해바라기를 하면서 커피를 마셨다. 걷다가 이렇게 앉아서 여유를 부릴 때, 무한한 행복을 느낀다. 행복은 순간순간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한 자리에 오래 머무르면 타성에 젖어 느낌이 무뎌지는 것이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 이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는데 행복 또한 쉼 없이 움직이는 것이 아닐지.

삼십 분쯤 앉아서 해바라기를 했다. 주변은 온통 눈인데 햇볕은 어찌나 따사롭던지, 봄이 눈밭 사이를 헤치며 소리 없이 다가오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다.

사이클을 타고 구룡령 고개를 올라갔던 처자들이 다시 나타나 우리 곁을 스치고 지나간 뒤, 이번에는 사이클을 타는 남자들 한 무리가 바람을 가르면서 빠르게 고개를 달려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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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룡령 휴게소 ⓒ 유혜준


갈천 마을에 있는 구룡령 휴게소는 문을 닫았다. 화장실까지 폐쇄되어 있었다. 사람은 그림자도 비치지 않는다. 관광성수기가 아니니 사람들이 오지 않는다는 얘기겠지. 천천히 걸었더니 이곳까지 오는데 세 시간 반쯤 걸렸다. 시간을 확인하니 오후 2시 7분.

양양에서 갈천 마을까지 운행하는 버스가 마을로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 그 버스를 타고 양양 읍내로 나가 늦은 점심식사를 하고, 하조대로 가기로 했다. 버스 출발시간은 2시 반. 양양에서 갈천 마을까지 버스는 하루에 왕복으로 다섯 번 운행된다. 갈천에서 양양으로 나가는 막차는 5시 반에 있다. 양양에서 갈천 마을로 들어가는 막차는 6시 반.

양양의 상징은 무엇일까? 양양 군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어딜 가나 버섯 모양의 상징물과 남대천에서 갓 튀어나온 것처럼 펄떡이는 생선 모양의 상징물을 볼 수 있다. 버섯은 송이고, 생선은 연어다. 둘 다 가을이 제철이다. 제철 송이를 먹으려면 송이축제(매년 9월 말)를 할 때 양양으로 가면 되고, 연어 역시 10월에 산란을 하러 떼를 지어 남대천으로 돌아온다니 그 때 가면 된다. 연어 축제(10월 중순)도 이 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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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양의 상징인 송이버섯과 연어 ⓒ 유혜준


제철일 때 확실히 송이가 더 싸고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단다. 그렇다면 송이도 연어도 나지 않는 철에 양양에 가면 어쩐다? 하다못해 냉동송이라도 먹어야지, 양양에 다녀간 보람이 있지.

우리가 찾아간 송이전문음식점은 남대천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그곳으로 가려고 양양교를 건넜다. 양양에는 남대천을 가로 지른 다리가 3개 있다. 가장 동쪽에 있는 다리가 낙산대교, 그다음에 놓인 건 양양대교, 마지막에 있는 게 양양교다. 양양교를 걸어서 건너다 걸음을 멈추고 남대천을 내려다보니 물이 별로 많지 않은데 어찌나 맑은지, 속이 훤히 들여다보인다. 여름에 저기에 발을 담그면 끝내주게 시원하겠다, 싶어진다.

우리가 주문한 건 송이버섯전골. 상차림은 깔끔했다. 버섯탕수가 곁들여 나오는데, 맛이 괜찮다. 집에서도 버섯에 튀김옷을 입혀 튀겨 버섯탕수를 해먹어도 좋을 것 같다. 석이버섯을 고추장에 버무려서 내놨는데, 상큼한 것이 입맛을 자극한다. 배가 고파서 음식이 더 맛있게 느껴지는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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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이버섯전골 ⓒ 유혜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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볶음밥 ⓒ 유혜준


오전 10시경에 라면을 먹은 뒤, 간식으로 빵 반 조각을 먹고 오후 3시가 넘을 때까지 버티었으니, 뱃속이 텅 비어 허기가 져 허리가 고부라지던 참이었다. 마파람에 게눈 감친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다. 순식간에 밑반찬들이 동이 났다. 몇 번이나 다시 달라고 하니, 친절하게 채워준다.

송이버섯전골은 국물이 개운했다. 하지만 송이버섯은 몇 첨 되지 않았다. 값이 워낙 비싸 그렇단다. 게다가 제철도 아니라서 더더욱. 꼭 제철에 와서 송이 맛을 보시라, 고 음식점 직원이 당부를 한다. 전골에 국수사리를 넣어 끓여 먹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밥까지 볶아서 먹었더니, 허기가 지던 배가 이번에는 복어 배처럼 볼록 튀어나와 터질 지경이 되었다.
#도보여행 #강원도 #양양 #송이 #구룡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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