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조적 성격의 부부가 운영하는 전통찻집 '자명'

등록 2011.04.14 10:23수정 2011.04.14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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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사 가기 전에 왼쪽으로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가 하나 있다. 그 길은 바람재를 넘어 구성면으로 가는 산길에 해당된다. 가끔 지례나 대덕 아니면 도(道)를 달리하여 거창을 갈 때도 나는 이 길을 애용한다. 산길은 한적할 뿐만 아니라 주위 풍경을 즐기며 자연에 젖게 하는 재미도 있다. 포장된 산길이 구절양장(九折羊腸)까지는 아니더라도 그 굴곡진 외길을 곡예하듯 달리는 재미도 아무데서나 맛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 산길을 이야기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은 그 길 초입에 자리잡고 있는 아담한 전원 찻집에 대해서 소개하려고 한다. 찻집의 이름은 '자명(紫明)'이라고 되어 있다. '자명'은 자줏빛이 밝게 비취는 것을 뜻하는 것일 터인데, 나는 두 한자어에서 이태백의 문학 혼을 그려본다. '자명'은 자연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배려를 읽을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작은 표지판에 보일 듯 말듯 그렇게 쓰여 있다. 2층의 단아한 찻집은 예술미가 가미되어 있어 누군가 건축에 대해 아는 사람이 설계하고 지은 것 같다. '언덕 위에 하얀 집'을 연상시키는 이 찻집은 놓인 돌에서부터 심긴 나무 하나에 이르기까지 자연과 친구하자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잔디며 그 위에 조성한 작은 연못, 그리고 그것과 조화를 이루고 있는 나무 그네까지 어떻게 그렇게 앙증맞은지 저절로 귀엽다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집 주위 뜸뜸이 세워진 새집은 또 어떤가? 나무로 새집을 만들어 하얀 칠을 한 것이 지나가는 새를 쉬어가게 하는 의미보다 집 잃은 새가 와서 살기를 원하는 용도로 세워진 것 같다. 주인장의 말에 의하면 지난 해 새가 그 집에 둥지를 틀고 새끼까지 낳아 길렀다고 하니 만든 사람의 은덕을 갚았다고나 할까? 새집이 좀 작은 것 같아 금년에는 큼직한 집을 지어 줄 준비를 하고 있다고 한다. 주인장의 넉넉한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처음 이곳에서 차를 마신 것은 어느 해 겨울이었던 것 같다. 겨울은 자연을 얼어붙게 만들고 집뿐만 아니라 사람까지 추위로 움직임을 둔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나무를 때는 난로만 벌겋게 과열되고 있을 뿐 손님들이 뜸한 가운데 차를 마셨다. 대추차가 얼큰하고 좋다하여 그것을 시켰는데, 따라 나오는 차가 더 많았다. 오미자차, 메밀차, 뽕잎차, 국화차에 이르기까지 무한 리필이 되는 찻집이었다. 마치 붕어가 물을 뿜어내듯 우리는 연거푸 돌아가면서 차를 마셔댔다. 그런 중 은근히 걱정이 되는 것은 이렇게 해도 찻집이 운영될까하는 것이었다. 이것도 이문을 생각해야 하는 장사에 속하는 것이라면 먼저 손님이 많아야 하고, 뿐만 아니라 손님의 교체가 잦아야 할 텐데 내가 보기에는 그것이 아니었다. 한 두 사람이 다인용 테이블을 차지해 몇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없잖아 있는 것 같았다.

내가 이 찻집을 찾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전통 찻집 '자명'은 예술의 향기가 피어나서 좋다. 집의 건축 양식에서부터 걸려 있는 미술과 서화 작품에 이어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들도 문학과 예술에 관한 책 일색이다. 시 소설 수필 평론뿐만 아리라 예술의 역사, 문인의 고희 기념문집까지 친근하지 않은 책들이 없다. 그 중 우리 김천 출신의 시조작가 백수(白水) 정완영 선생의 책들은 거의 빠짐없이 갖추어져 있다. 많지 않은 책들 속에 그분의 책을 이렇게 완비해 놓은 것은 백수 선생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겠지만 향토 사랑의 한 모습이 아닐까 한다. 직지사를 구경하고 난 뒤 직지문화공원 내에 있는 세계도자기박물관을 둘러 백수문학관까지 관람한 사람들이 마지막으로 이 '자명'에 와서 전통 차로 목을 측이면 한 날의 문화기행으로는 금상첨화가 될이다.

'자명'의 주인장 부부도 예사롭지 않다. 마을에서 멀리 떨어진 산 속 외딴 집에서 차를 팔며 생활하는 모습도 모습이려니와 이들이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눈에 들어온다. 성도 이름도 모르는 이들이지만 갈 때마다 친근감의 정도가 더해진다. 부부는 서로 대조적 성격으로 만난다는 말을 듣는데, 이 부부에게서도 그런 점을 발견한다. 부인은 다소곳한 한국의 여인상을 그대로 품고 있다. 가지런한 생머리에 화장기 없는 얼굴, 그리고 늘 긴 치마에 모나지 않은 의상에서 한 여인의 기품을 읽을 수 있다. 그녀는 어쩌면 문학을 하는 사람인지도 모른다. 문향 풍기는 이런 전통 찻집은 차에 대한 기능만으로 운영하기 힘들 것이다. 예술을 사랑하고 찬미하며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도 겸비하고 있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부인이 이런 내용을 가진 사람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부군(夫君) 되는 사람은 부인과는 다르다. 겪어보니 좀 털털하고 생각이 개방적이며 경상도 특유의 화통함을 갖고 있었다. 묻는 말에 필요 이상 덧붙여 자세히 설명해 주는 것에서 이 사람이 갖고 있는 지식도 보통을 넘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닌게 아니라 어느 날 그러니까 일본이 지진해일로 큰 피해를 입었을 때, 우리나라가 거국적으로 도움의 운동을 펼치는 것을 보고 이의를 제기했다. 우리나라에도 도울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닌데, 경제 대국 일본에 성금을 모아 보내는 데 대해 반대의 생각을 갖고 있었다. 아울러 그가 갖고 있는 세상 흐름에 대한 인식이 전통적인 경상도 정서를 벗어나 있어서 관심이 갔다. 하지만 일본을 돕는 문제는 보는 시각에 따라 충분히 다양한 의견들이 개진될 수 있을 것이다.

서구화 바람은 중앙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세차게 몰아치고 있다. 중소도시에 속하는 김천도 예외가 아니어서 우리 전통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곳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커피가 전통 차를 제압한지 오래이며 서양 문화가 우리 생활 구석구석을 점령하고 있다. 한국이 없어지고 서양만 존재하는 착각이 일어날 정도이다. 이런 때에 우리 전통차를 제공하며 우리 예술의 향기를 맛보게 하는 '자명'과 같은 곳은 소중한 공간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김천 지역의 뜻있는 인사들이 이 찻집을 자주 찾는 것 같다. 김천 생활이 오래지 않지만 그래도 그곳에서 가끔 지인들을 만나게 된다. 이런 '자명'이니 만큼 더 많이 알려져 찾는 이들로 들끓게 되기를 바란다. 얼마 전 사람들이 밀려들어 자리를 비워주고 생각보다 일찍 찻집을 뜬 때가 있었다. 그럼에도 전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우리 것을 찾는 사람들이 더 많이 공유해야 할 전통찻집이라고 생각되었기 때문이다.

물질이 지배하는 세상, 숫자가 매머드를 치닫는 현실 속에서 우리 것을 음미하는 '자명'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것 중에서도 보다 정신의 가치를 지향하는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정신의 가치가 물질을 지배하며 예술의 향기가 진동하는 찻집이 되기를 바란다. 물질이 정신을 이끌고 가는 사회가 아니라 예술을 비롯한 정신이 물질을 이끄는 사회가 되기를 원한다. 정신이라는 상부 구조가 물질이라는 하부 구조를 제어해 나갈 때 그 사회의 건강성이 담지되는 것이다. '자명'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기대는 그 자체만으로도 나에게 특별한 행복이 되고 있다.
#전통찻집 #자명(紫明) #직지문화공원 #문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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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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