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목에 박힌 말뚝, 정연주 KBS 사장

[정연주의 증언 55] KBS사장 거세 작전과 최시중

등록 2011.04.20 09:20수정 2011.04.20 10: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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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구언론에서 '노무현 식객 정연주 류의 퇴진'을 주장하고, 한나라당에서 '정연주 퇴진이 0 순위'라고 목소리를 높이던 2008년 3월 중순. 이에 화답이라도 하듯 KBS 노조는 3월 19일자 노보에 '정연주가 죽어야 KBS가 산다'는 글을 올렸다. 이 글은 "현명한 사람은 들고 날 때를 분명히 안다고 한다, 자신의 능력의 한계를 명확하게 안다면 더할 나위가 없겠다"라는 말로 끝을 맺었다.

최시중과 김금수 KBS 이사장 사이에 오간 말들

KBS노조가 2008년 2월 20일 발행한 특보 ⓒ PD저널

바로 이즈음, 이명박  대통령의 멘토인 최시중씨가 방송위원회와 정보통신부를 통합한 거대 조직으로 새로 태어난 방송통신위원회의 위원장으로 3월 26일 취임했다. 그는 방통위원장에 취임한 바로 그날 김금수 KBS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다음 날 만나기로 했다. '정연주 거세' 작업이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첫 임무였던 셈이었다.

대학을 함께 다닌 최시중 위원장과 김금수 이사장은 다음 날 서울 종로 2가 국세청 건물에 있는 한 식당에서 만났다. 이날 오간 이야기를 얼마 뒤 전해 들었다. 최시중 위원장은 나의 퇴진을 이야기했고, 김금수 이사장은 방송법에 KBS 사장의 임명과 관련한 조항은 있으나, 자리에서 물러나게 하는 면직 조항은 없다며, 그래서 KBS 이사회가 정연주 사장의 퇴진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 수구언론이 한 목소리로 '무능 경영'과 '편파 방송'의 주범이라 몰아세우는, 그러한 불명예스러운 상황에서 정연주 사장이 스스로 물러서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는 것이다.

최시중 방통위원장과 김금수 KBS 이사장 사이의 만남은 그 이후에도 두 번 더 있었다. 5월 3일, KBS 어느 이사의 자녀 결혼식장에서 두 사람은 만났고, 5월 12일 서울 종로 구세군 회관 부근 음식점에서 다시 만났다. 5월 12일 만난 자리에서 최시중 위원장은 강한 어조로 나의 퇴진을 이야기했던 모양이었다. 정연주 때문에, KBS 때문에 나라를 다스릴 수가 없으며, 이명박 정부는 정연주가 있어서 아무것도 못한다는 식의 말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날 두 사람이 만나기 1주일 전인 5월 2일부터 광우병 우려 미 쇠고기 수입 파문 관련 첫 촛불집회가 열리기 시작했고, 그 촛불집회가 들불처럼 번지기 시작하고 있었다.

당시 언론에는 최시중 위원장이 김금수 이사장에게 "이명박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는 이유가 KBS와 정연주 사장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그러나 실제 발언은 이 보다 더 강경한, '정연주 때문에, KBS 때문에 이명박 정부가 아무것도 못한다'는 내용이었다고 나중에 전해 들었다.

청와대도 나섰다. 류우익 대통령 비서실장이 당시 현역의원이었던 이재웅 의원을 김금수 이사장에게 특사로 보내 '정연주 퇴진'을 거듭 요청하기도 했다. 


"이명박 목에 박힌 말뚝 정연주 KBS 사장"

그즈음, 인터넷에는 어느 논객이 쓴 '이명박 목에 걸린 말뚝 정연주 KBS 사장'이라는 제목의 글이 관심거리가 되었다.


지금 조중동을 포함한 범여권은 사회 권력층 모든 분야에서 김대중·노무현 라인의 인맥을 제거하려 총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그 중 핵심은 KBS 정연주 사장입니다. 아마 다른 사람 모두를 제거해도 정연주를 제거하지 못하면 95% 실패라고 할 것이요, 다른 사람 아무도 제거하지 못해도, 정연주를 제거하면 성공이라 할 것입니다.

KBS 사장의 영향력은 국회의원 10~20명에 결코 뒤지지 않습니다. 

* 이명박의 '형님'이라는 방송통신위원장 최시중은 "최근의 이명박 지지율 하락은 정연주 탓"이라고 말하며 전방위 퇴진 압력에 나섰습니다. 이 말은 무엇인가요? KBS만 손에 넣으면 국민의 눈과 귀를 지금과는 다른 것을 보고 듣게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 대표적인 반 노무현 언론계 인사인 외대 언론정보학 교수 김우룡은 "정연주 퇴진 못시키면 MB정권 좌초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연주 사장의 법정 임기는 2009년 11월입니다. 내년 11월이면 이명박 임기의 5분의 2에 해당합니다. 예술계의 작은 단체장 하나라도 몰아내려고 아우성치는 것이 이명박 정권입니다. 막강 파워 KBS 사장을 노무현이 임명한 한겨레 신문사 출신 '정연주'로 간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정권의 5분의 2를 목에 말뚝이 박힌 채로 간다는 것과 똑같은 것 입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지금 사력에 사력을, 총력에 총력을 다해서 정 사장을 몰아내려 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정연주라는 인물이 법으로 정해진 임기 전에 물러나야 할 만큼 '하자'가 있는 사람인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아래 글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지금 엄청난 압력을 견디고 있는 정연주 사장의 거취는 '여론'에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이 꼭 필요 합니다. 요새 KBS가 편파적 친여권 쪽이라는 비판을 가끔 받는데 전체의 일부분이 잠식당한 것으로 저는 봅니다.

골리앗 수구세력과 맞선 '싸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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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이 28일 오전 서울 종로구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열린 제2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 취임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그 당시뿐 아니라 평소에도 나는 김금수 이사장을 자주 만났다. 사장과 이사장이라는 직책으로도 만났지만, 민주화 운동의 큰 선배로서 만나 이런 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나의 거취 문제와 관련해서는 서로가 별로 할 이야기가 없었다. 방송법에 나의 면직에 대한 규정이 없기 때문에 내가 자진해서 물러나지 않는 한 나를 사장 자리에서 들어내는 방법은 없다고 보았고, 또한 '퇴진'과 관련한 나의 입장은 매우 단호하고 단순했기 때문이었다.

당시 나는 참으로 단순하게 생각했다. 시대마다 개인이나 조직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가치와 덕목이 있기 마련인데, 당시 정권이 바뀐 상황에서 공영방송 KBS에 가장 필요한 가치와 덕목을 나는 '정치적 독립'으로 보았고, 이를 지키기 위한 기본 조건을 '사장 임기 존중'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것은 아주 단순한 원칙의 문제였으며, 우리 사회가 엄청난 희생과 고난 속에 쟁취한 최소한의 절차적 민주주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랬기에 KBS 사장 임기를 지키는 일은 매우 보람되고, 가치 있는 일이라 생각했다. 더군다나 정권이 바뀌자마자 한나라당, 수구언론, 수구성향의 KBS 노조가 일제히 벌떼처럼 달려드는 상황에서 이 싸움이야말로 골리앗과 같은 거대 수구세력과 싸우는 '선한 싸움'으로 나는 받아들였다.

젊은 시절, 그러니까 1970년대 박정희의 유신 독재와 싸울 때, 그때 곧잘 들었던 이야기가 있었다. 유신 독재라는 거대한 바위에 계란 던지기 같은 이 싸움은 너무 무모하지 않는가. 그 때 내 스스로에게 한 말은 그랬다. 내가 선택한 이 길은 '선한 싸움'의 길이며, 그러기에 이기고 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선한 싸움' 그 자체로 역사에 씨앗이 되는 것이라고.

"유신 암흑시대에도 그렇게 싸웠는데…."

2008년 봄 이명박 정권과 싸울 때 나의 마음이었다. 그랬기에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 시절인 2007년 연말의 KBS 간부회의에서도 "바위처럼 내 자리를 지킬 것"이라고 공언을 했고(증언2 참조),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을 한 직후인 3월 4일 한국방송공사 창립기념식 때도 기념사를 통해서 "외부에서 오는 그 어떤 도전에도 당당하게 맞서겠다"고 결연한 의지를 밝혔던 것이다.

친 정권 쪽 인사로 포진된 KBS 이사회

한나라당, 수구언론, 수구성향의 KBS 노조 등이 총공세를 펴는 가운데, 이명박 정권의 정연주 거세 작전은 아주 다각적으로 진행되었다. 그 중 하나가 KBS 이사진 구성의 변화였다. KBS 이사진을 친 정권 쪽으로 바꾸어 놓으면, '정연주 해임 제청'이 가능하다고 여겼던 모양이었다.

방송법 50조 2항에는 "사장은 이사회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한다"라는 규정만 있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방송법에는 이처럼 사장의 임명 절차만 나오지 면직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그러나 이명박 정권 인사들은 대통령에게 임명권이 있다면 당연히 해임권도 있다는 일반론을 자주 이야기했다. 그래서 KBS 이사회에서 '해임 제청'을 할 수 있도록 KBS 이사회 구성을 친정권 쪽으로 바꾸는 일이 시급하게 되었다.

정권이 바뀔 당시 11명의 KBS 이사 가운데 친한나라당 이사는 3명뿐이었다. 이러한 이사회 구성으로는 KBS 이사회를 통한 '정연주 제거'는 불가능했다. 그런데 KBS 이사는 방송통신위원회에서 선임을 하는데, 방통위가 이미 한나라당 정권의 것이 된 터여서, KBS 이사를 교체하는 상황이 되면 친한나라당 인사가 오는 것은 100% 확실했다. 그런 일이 바로 일어났다.

조아무개 이사가 총선 출마를 위해 3월에 이사직을 사퇴하게 되었다. 그러자 후임으로 친 한나라당 인사가 왔다. 친 한나라당 이사의 숫자가 3명에서 4명으로 늘어났다. 이렇게 되고 보니, 이 제 두 명의 이사만 친정권 쪽의 인사가 되면 KBS 이사회는 정권 쪽으로 넘어가게 되었다.

그런 상황에서 전혀 뜻밖에 엉뚱한 곳에서 '전향'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너무나 황당했다.
#정연주 #김금수 #최시중 #이명박 목에 말뚝 #K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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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동아일보 기자, 한겨레 워싱턴 특파원, 논설주간, kbs 사장. 기록으로 역사에 증언하려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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