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 12만 원 탓에 성질 다 버렸네

[빚 없는 세상에 살고 싶다 ②] 이웃과 전기료 다투는 처지가 처량합니다

등록 2011.05.21 11:14수정 2011.05.21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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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 문제가 어제오늘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대부분 통계 숫자로만 심각성을 말할 뿐 빚으로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는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이에 <오마이뉴스>는 빚 때문에 고통을 겪은 이들의 경험담과 함께 '대출 권하는 금융회사'의 문제를 지적하는 기사를 4편에 나눠 싣습니다. <편집자 말>
요 며칠 마음이 하수상하다. 평소보다 부쩍 더 살림살이가 피폐해졌기 때문이다. 4월도 가고 5월이 왔다. 5월은 '가정의 달'이라지만 기실 따지고 보면 '지출 산적의 달'이기도 하다.

다른 날은 모른 체 한다 쳐도 5월 8일 '어버이 날'엔 최소한 숙부님과 숙모님께 기십만 원의 용돈이라도 봉투에 담아 드려야만 한다. 또 내 나이가 지천명을 넘고 보니 여기저기 관혼상제를 쫓아다니노라면 돈이 보통 많이 드는 게 아니다.

한데 문제는 벌이는 날로 하락, 아니 추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지금 내 호주머니는 여전히 시베리아에서 부는 한풍으로 가득하다. 즉, 봄은 왔으되 이 봄을 느낄 수 없는 '춘래불사춘'의 형국이다.

a  독촉장에 연체가산금까지... 아직도 납부를 못 한 각종 청구서는 나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독촉장에 연체가산금까지... 아직도 납부를 못 한 각종 청구서는 나를 더욱 우울하게 한다. ⓒ 홍경석


전기요금 12만 원, 이건 웬 '폭탄'이냐

설상가상으로 아랫집에 이사 온 이가 속을 긁는다. 평소 전기료는 매달 6만 원을 넘지 않았다. 그러던 것이 지난달 아랫집에 가족 셋인 식구가 이사를 온 이후 나흘 전에 받은 전기료 청구서에 자그마치 12만250원이라는 가공할(!) 고액이 찍혔다.

처음엔 '내가 지난달 전기료를 못 내서 미납금까지 붙은 건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돋보기로 구석구석 살펴보니 아랫집 식구의 증가에 따라 누진세가 붙은 것이었다. 누진세는 과세대상의 수량이나 값이 증가함에 따라 점점 높은 세율을 적용하는 세금을 일컫는데 이번 일의 경우 아랫집이 전기를 쓰면서 전기 사용량이 늘어나 누진세가 붙은 것이었다. 이럴 때에는 주택에 2가구 이상이 거주한다고 신고해야 요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 

여하튼 그처럼 고액의 전기료를 나 혼자 부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뭐 집 주인도 아니고 그들과 마찬가지로 세입자인 터에 뭔 죄를 지었다고 공연히 그 많은 요금을 납부하겠는가!


전기료 청구서를 손에 들고 아랫집 방문을 두드렸다.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동사무소에서 전입신고할 때 별도로 '1주택 수가구 전기요금 적용신청서'와 '상수도 요금 세대분할 적용신청서'를 내지 않았나요?"라고 물었더니 그 남자는 되레 발끈했다.

"그걸 귀찮게 왜 내가 합니까?"


그 말에 나도 모르게 발끈했다.

"그럼 댁이나 나나 똑같이 세들어 사는 사람인데 날더러 하란 거요?"

그러자 그 남자는 기가 죽으면서 차액 5만 원을 꺼내 마지못해 주는 것이었다.

"내일이라도 당장 동사무소에 가서 신고하세요! 안 하시면 다음 달에도 이렇게 많은 전기료를 또 내야 할 겁니다."

"가뜩이나 먹고살기도 버거운데 별 걸 다 시키네."

구시렁거리는 그 남자의 입에선
지독한 술 냄새가 진동했다.

a  4년 전에 안 낸, 아니 못 낸 건강보험료. 툭하면 '압류예고장'이 온다.

4년 전에 안 낸, 아니 못 낸 건강보험료. 툭하면 '압류예고장'이 온다. ⓒ 홍경석


생활에 쪼달리다보니 '고왔던' 성질까지 바뀌었네!

아랫집 남자와 헤어져 집에 들어와 생각해 보니 전기료 때문에 이웃과 언성을 높여야 하는 내 처지가 참 처량하다. 허름할망정 내 집 한 칸조차 없이 살아온 세월이 어언 50년도 넘었다. 매달 피 같은 월세를 30만 원씩이나 내다가 가까스로 전세로 바꾼 게 불과 2년도 채 안 된다. 전세로 바뀌었다지만 갈수록 생활고는 더 심해지고 피폐해지는 내 경제 상황 탓에 당초 '고왔던' 성질까지 바뀌어 버렸다.

누군가는 지갑이 배불뚝이처럼 터지도록 현금과 카드 등을 가득 담고 다닌다는데 내 지갑에는 지독한 한파(寒波)만 분다. 더욱이 매달 '전월 미납분'이니 '독촉 고지서'니 '연체 가산금'이니 '압류 예고장'이니 하는 각종 청구서가 날라온다.

어디 청구서 뿐인가?

회사에 여전히 지고 있는 빚(가불금) 역시 어깨를 짓누르는 부담덩어리다. 기본급도 없이 오로지 내가 판매한 출판물의 일정 수당만을 받다 보니 지금까지 300만 원을 회사에서 미리 받아 썼다. 목에 풀칠은 해야만 살 수 있기에 매달 생활비 조달 목적으로 야금야금 받은 가불금이 어느덧 그렇게 쌓인 것이다.

청구서니 가불금이니, 대저 빚쟁이는 밤에도 맘을 편히 누이어 잠을 자기 어렵다.

며칠 전 TV 뉴스를 보니 "국내 4년제 대학 가운데 올해 연간 평균 등록금이 800만 원이 넘는 곳이 지난해보다 16곳 늘어난 50곳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뉴스를 보다 보니 작년에 모두 대학을 졸업한 아들과 딸이 떠올랐다. 그나마 졸업시켰으니 다행이지 지금 만약에 아이들이 모두 대학생이었더라면 나는 필경 쉬는 휴일인 오늘도 공사장에 나가 질통(자갈과 모래 따위를 지고 나를 때 쓰는 통)을 등에 져야만 했을 것이다. 팍팍한 생활에 괴롭다가도 아이들 생각하면 그나마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다.

그제는 6개월여 가까이 추위를 달래주던 거실의 연탄난로를 떼 경유를 사다가 걸레로 닦아 광에 넣었다. 연탄난로를 닦노라니 언제쯤에야 이 생활고에서 벗어날까 하고 한숨이 절로 나온다.

수중에 돈이 없어 자장면 하나 맘 놓고 못 사 먹는 내게 작은 소망이 하나 있다면 여유 있는 생활은 둘째치고 청구서니 가불금이니 하는 빚이라도 없었으면 하는 것이다. 그런데, 빚 없는 날이 과연 오기나 할까?

a  경유를 1천 원어치 사다가 철거한 연탄난로를 닦았다. 이래야 올 겨울에 또 사용할 수 있다.

경유를 1천 원어치 사다가 철거한 연탄난로를 닦았다. 이래야 올 겨울에 또 사용할 수 있다. ⓒ 홍경석


a  경유로 잘 닦여 빛까지 나는 연탄난로. 내 앞날엔 언제쯤 '빛'이 들까?

경유로 잘 닦여 빛까지 나는 연탄난로. 내 앞날엔 언제쯤 '빛'이 들까? ⓒ 홍경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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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서: [초경서반]&[사자성어는 인생 플랫폼]&[사자성어를 알면 성공이 보인다]&[경비원 홍키호테] 저자 / ▣ 대전자원봉사센터 기자단 단장 ▣ 月刊 [청풍] 편집위원 ▣ 대전시청 명예기자 ▣ [중도일보] 칼럼니스트 ▣ 한국해외문화협회 감사 / ▣ 한남대학교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CEO) 수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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