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표 한 번 내봤는데, 그대로 잘렸어요

[아는만큼 보이는 법 76] 요즘판결 14- '야동종결자 실형선고' '3살 여아에게 뽀뽀 유죄' 등

등록 2011.05.03 21:29수정 2011.05.0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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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판결 14번째 이야기

1. 사표, 수리될 줄 모르고 냈다면 무효? (수원지법 4. 29.)
2. '야동종결자', 실형 선고된 까닭 (서울남부지법 4. 22.)
3. 3살 여자아이 뽀뽀한 남성, 유죄일까 무죄일까 (서울중앙지법 4. 29.)

사표는 '절대' 함부로 내는 게 아니다

 사표
사표박혜경

[사례 1] '본인은 일신상의 이유로 사직합니다.' 회사의 경영관리국장을 맡고 있는 A씨는 사장에게 사직서를 냈다. 그는 회사의 신축사옥 부지 계약에 관여했다가 그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자 실무자로서 도의적 책임을 지고 일단 사표를 낸 것이다. 그런데 회사가 덜컥 사표를 수리해 버렸다. 당황한 A씨는 부당해고라며 펄쩍 뛰었다.

부당해고일까, 정당한 사표 수리일까. 우선 당사자들의 말을 더 들어보자. A씨의 주장은 이랬다.

"계약 과정에서 전 실무자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사장님이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는 뜻으로 사직서를 내라, 그러면 절대로 수리되지 않게 해주겠다'고 제안하여 제 뜻과는 상관없이 사표를 썼습니다. 이 사실을 잘 아는 회사가 사표를 수리했으니 해고나 다름없어요."

회사는 A씨의 주장을 반박했다.

"A씨는 이사회 결의나 회장 동의도 받지 않은 채 회사에 불리한 계약을 체결했어요. 회사는 책임을 묻고자 A씨에게 사직서 제출을 요구했어요. 그랬더니 자기가 잘못을 인정하고 사직서를 제출했고 회사는 사표를 수리했어요. 그런데 뭐가 문제란 말이죠? "

법은 이렇게 사람의 속마음을 근거로 판단해야 할 경우도 있다. 민법에는 이른바 진의(眞意) 아닌 의사표시가 무효가 된다는 조항이 있다.


민법 제107조(진의 아닌 의사표시)
① 의사표시는 표의자가 진의아님을 알고한 것이라도 그 효력이 있다. 그러나 상대방이 표의자의 진의아님을 알았거나 이를 알 수 있었을 경우에는 무효로 한다.

법원은 지금까지 사직의 뜻이 없는 노동자가 어쩔 수 없이 사표를 내고 이를 회사가 수리하는 방식은 진의 아닌 의사표시에 해당하여 무효라는 입장을 보여왔다. 즉 "사용자의 일방적 의사에 의하여 근로계약관계를 종료시키는 것인 때에는 해고에 해당한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에서 A씨는 구제받을 수 있었을까. 아니다. 법원은 사표수리가 정당하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여기서 진의란 "특정한 내용의 의사표시를 하고자 하는 표의자의 생각을 말하는 것이지 표의자가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바라는 사항을 뜻하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법원은 ▲ A씨가 사직서를 제출한 후 출근하지 않은 사실 ▲ 회사 서류를 몰래 가지고 나간 점 ▲ 당시 회장의 질책에 책임을 질 방법이 사직서 제출이라고 믿고 있었던 점을 감안하면 회사가 진의아님을 알았다고 인정하기도 부족하다며 이렇게 결론을 내렸다.

"A씨가 비록 진정으로 마음속에서 사직할 것을 바라지 않았다 하더라도 당시 그것이 유일한 해결책이거나 최선의 방법이라고 판단하여 사직의 의사를 표시한 것으로 보이므로 무효가 아니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회사에 제출한 사표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사직의 의사표시를 담고 있는 것으로 본다. 사표는 함부로 내는 게 아니다.  

야동종결자 '서본좌', 실형 선고받은 사연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키>에서 하나의 캐릭터로 나온 '야동 순재'
시트콤 <지붕뚫고 하이키>에서 하나의 캐릭터로 나온 '야동 순재'mbc

[사례 2] B씨는 사이버상에서 '본좌'로 통했다. 어떤 이들은 그를 '야동종결자'라고 불렀다. 그는 '야동' 1만 8000여 개가 저장된 데이터 서버 4대를 구입하고 추가로 인터넷을 통해 1만 5000개의 야동을 다운받았다. 사업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전국 200여 개의 성인 피시방, 전화방에 자료를 공급하였고, 1년 남짓한 기간 동안 1억 5000만~2억 원 가량의 수익을 올렸다.

지난주 인터넷 인기검색어 순위 상위권에 '서본좌'라는 낯선 단어가 올랐다(사례2의 B씨 성이 서씨였다). 누리꾼들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B씨의 구속을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그는 엄청난 양의 성인음란물을 유포한 혐의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적용된 죄명은 정보통신망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위반(음란물 유포)과 아동·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위반(음란물 제작·배포 등) 등 5개.

법원은 이례적으로 징역 8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법은 "영리 목적으로 음란물을 배포한데다 수가 매우 많고 범죄수익도 다액이기 때문"이라고 중형 선고 배경을 밝혔다.  

이 판결이 나오자 누리꾼 사이에 우스갯소리가 유행했다. 

"서본좌께서 연행되시매 경찰차에 오르시며 '너희들 중에 하드에 야동 한 편 담지 않은 자 나에게 돌을 던지라' 하시니 경찰도, 형사도, 구경하던 동네주민들도 고개만 숙일 뿐 말이 없더라."

보통 '야동' 유포는 벌금형이나 집행유예에 그친다. 하지만 이 사건에서 보듯 헤비업로더(인터넷 상에서 상습으로 돈을 벌기 위해 음란물 등 자료를 유포하는 사람)에게는 징역형이 선고될 수도 있다는 사실, 유념하자.

참고로 야동도 엄연히 저작권의 보호를 받는 작품이다. 저작권자가 문제 삼으면 저작권법위반으로 형사처벌을 받는 것은 물론 별도로 돈을 물어줄 수도 있다.  

추행의 개념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막돼먹은 영애씨

[사례 3] C씨(50대, 남)는 며칠 전 법정에서 얼마나 식겁했는지 모른다. 그가 난생 처음 재판을 받게 된 건 찜질방에서 벌어진 일 때문이다. 그는 어느날 저녁 동네 찜찔방에 갔는데 어린이 놀이방에서 혼자 놀고 있는 D양(만 3세)이 귀여워보였다. 그는 껌을 주겠다며 D양을 데리고 야외 정원으로 나갔다. 그는 아이를 껴안고 얼굴과 입에 뽀뽀를 하였으며 아이에게도 뽀뽀를 하게 했다.

C씨는 자신의 도덕·성관념으로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법정에서도 아이를 추행할 의사가 없었고 단지 귀여워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법원은 "성에 대한 개념이 확립되지 못한 여자 아이를 인적이 드문 곳으로 데려가 뽀뽀한 것은 추행에 해당한다"고 판시했다.

법에서 말하는 강제추행이란 "일반인에게 성적수치심이나 혐오감을 일으키게 하고 선량한 성적 도덕관념에 반하는 행위로서 피해자의 성적 자유를 침해하는 것"을 말하는데 판단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법원은 과거와 달리 공동체의 생활양식이 1차 집단 위주에서 직장, 학교 같은 2차 집단 위주로 변경됨에 따라 타인에 대한 친밀도나 감정의 표현에 더 많은 절제와 주의가 요구된다고 했다.

법원은 "특히 어린 아이들에 대한 애정의 표현 역시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도록 시대적 상황이 변화되었다"며 "예전에는 가해자의 시각에 따라 관행적으로 추행이 아니라고 평가되던 행위에 대해서도 피해자가 느낄 수 있는 성적 수치심 또는 혐오감을 고려하여 판단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법원은 ▲ C씨가 D양과 모르는 사이였던 점 ▲ D양을 데리고 간 야외정원은 어둡고 사람도 많지 않았던 점 ▲ D양이 당시 싫고 무서웠다고 진술하는 점 등을 볼 때 D양이 성적 수치심이나 혐오감을 느꼈을 것이라며 유죄로 인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C씨가 형사처벌 전력이 없고, 나이가 비교적 많은데다, 성추행에 대한 사회적 가치기준이 변화하는 상황에서 우발적으로 범행을 저지른 점도 감안했다.

서울중앙지법은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위반을 적용, C씨에게 벌금 1500만 원의 형을 선고유예했다. 선고유예는 경미한 죄를 저지른 이에게 일정기간 형의 선고를 미루고 유예기간이 지나면 형이 없던 것으로 보는 제도이다. 엄연한 유죄판결이다.  

성적 침해에 대한 판단 기준이 갈수록 엄격해지고 있다. 어른 사이는 말할 것도 없고 어린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길거리에서 만난 아이가 아무리 귀엽더라도 몸을 함부로 만져서는 안될 듯 싶다. 아동추행범으로 몰려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으니까.  
#사표 #야동 #추행 #강제추행 #정본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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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으로 세상과 소통하려는 법원공무원(각종 강의, 출간, 기고) 책<생활법률상식사전> <판결 vs 판결> 등/ 강의(인권위, 도서관, 구청, 도청, 대학에서 생활법률 정보인권 강의) / 방송 (KBS 라디오 경제로통일로 고정출연 등) /2009년, 2011년 올해의 뉴스게릴라. jundorap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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