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계역 입구에서 외할머니를 추억하다

[정동진 - 삼척여행 ②] 옥계에서 망상으로 가는 길

등록 2011.05.22 16:14수정 2011.06.0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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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카페가 밥집이 되어 버렸어요."

거의 1년 만에 다시 찾은 빨간 식당 '솔누리 쉼터' 쥔장의 말이었다. 금진항에서 옥계 솔숲으로 가는 길에 자리 잡고 있는 '솔누리 쉼터'는 빨간색 외장 덕분에 멀리서도 눈에 금방 띄었다. 지난해, 이 길을 걸을 때 쥔장이 지나가는 나를 굳이 불러들여 커피를 대접해 주었다. 당시 쥔장은 카페 문을 연 지 6개월쯤 되었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언젠가 다시 들르겠다는 인사치레를 남겼더랬다. 세월 참 빨리도 간다, 그게 1년 전이야기라니.


쥔장은 여전했다. 하지만 빨간 식당은 많이 달라졌단다. 쥔장은 카페를 지향하는데, 주변에 건물을 새로 짓는 공사현장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변했다. 공사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밥을 먹으러 오기 시작했던 것이다. 쥔장 인심에 밥 달라는 사람에게 밥을 안 줄 리가 없으니 말이다.

빨간 식당에서 밥을 해준다니까 주변에서 다른 공사 일을 하던 사람들도 이곳으로 발걸음을 하게 되었단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카페가 '함바집'이 되었다는 거다. 어떤 때는 80여 명이 밥을 먹겠다고 줄을 서기도 했고, 점심때는 30여 명이 북적이면서 자리를 죄다 차지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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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손님이 늘어서 좋겠다고 말을 건네자 쥔장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밥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유자적 카페를 운영하고 싶었는데, 그렇지 못해 힘들고 정신이 없단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식사를 준비해야 하고. 쥔장은 헤이즐넛 향이 감도는 커피 한 잔을 내려주었다.

정동진부터 걷기 시작해, 심곡항부터 시작되는 헌화로를 걸어 금진항에 이르렀고, 거기서 다시 옥계 솔숲을 향해 걷던 참이었다. 어차피 한 번은 쉬어갈 길, 빨간 식당의 쥔장이 여전히 잘 있는지 궁금해 들렀다. 처음 만날 때는 낯선 사람이지만, 낯을 익힌 두 번째 만남부터는 잘 아는 사이가 되는 게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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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 솔숲.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많고, 솔향이 진하다. ⓒ 유혜준


쥔장은 이곳에 자리 잡은 지 벌써 1년 6개월이라고 했다. 1년이 그렇게 훌쩍 바람처럼 가 버린 게 신기했다. 그런데 쥔장은 내년 가을에 이곳을 떠날 작정이라고 했다. 확정된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말을 덧붙였다. 임대계약기간이 만료되었다는 것이다. 쥔장은 가고 싶은 곳으로 경남 고성과 남해를 들었다. 그리고 울릉도도 후보지라고 했다.


빨간 텐트로 만든 식당이라 철거하기 쉬울 터. 짐을 트럭에 싣고 남쪽 지방으로 떠나는 것도 좋으리라. 나도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않고 이곳저곳 터전을 옮겨 다니면서 살고 싶은데, 쥔장은 그것을 실천하면서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기간이 많이 남아 있어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지 모르지만, 만일 떠나게 되면 어디로 가는지 사람들에게 알려주라고 할 터이니 꼭 찾아오라고 쥔장은 당부했다. 나 역시 그럴 참이었다. 쥔장을 보러 간다는 핑계를 대고 여행을 떠날 수 있으니까. 그렇다고 내가 댈 핑계가 없어 여행을 못 떠나는 건 아니지만.

커피를 마신 값을 치르고 길을 나서려는 내게 쥔장은 커피 값을 받지 않았다. 이번에도 그냥 '대접'만 받았다. 잊지 않고 찾아준 것만도 고맙다는 게 쥔장의 말이었다. 하지만 진짜로 고마워해야 할 사람은 나다. 빨간 식당 안으로 들어가 아는 체를 하니 쥔장이 나를 딱 알아봤던 것이다. "오마이 기자?", 하면서.

옥계역으로 들어가는 길 어느 집 벽에 그려진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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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이날(5월 13일), 바람이 심술을 부리면서 불었다. 깊게 눌러쓴 모자를 벗겨 데굴데굴 구르게 했고, 걸음이 더뎌지게도 했다. 하늘은 맑았지만 햇볕은 따가웠다. 여름이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는 증거였다. 길 위에는 마른 먼지가 바람을 따라 한꺼번에 날아올랐다가 내려앉곤 했다. 마스크를 썼지만 목구멍이 따가웠다. 그래도 해안도로 옆으로 펼쳐지는 바다는 싱싱하고 시원하고 아름다웠다. 물빛은 깊어 푸르게 보였다.

옥계역으로 가는 길은 7번 국도에서 갈라진다. 오후 다섯 시 반이 넘었다. 옥계역에 들러 구경을 하고 가나 마나, 걸으면서 망설였다. 망상해수욕장까지 가서 그곳에서 하룻밤을 잘 예정이었는데 걸어서 그곳까지 얼마나 걸릴지 알 수가 있나. 시간이 늦어지면 해가 꼴깍 진 뒤에도 걷고 있게 되는 거나 아닌지 불안해졌다.

그런데도 굳이 옥계역으로 발길을 돌린 것은 옥계역으로 들어가는 길 입구 어느 집 벽에 그려진 그림 때문이었다. 그 그림, 분위기가 어찌나 따뜻해 뵈던지 저절로 발길을 멈추게 했다. 그 그림은 그린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색채가 선명하고 흰색 페인트가 칠해진 벽이 티 하나 없이 깔끔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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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돋보기를 쓴 채 바느질을 하는 할머니 앞에 모여 앉은 세 아이. 그들 앞에 고양이 한 마리가 졸고 있고, 호롱불이 방을 밝히고 있다. 횃대에는 옷이 여러 벌 걸쳐져 있고. 할머니와 아이들의 표정으로 보아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필시 아이들은 할머니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졸랐을 것이고, 할머니는 짐짓 빼다가 묵혀 두었던 이야기 꾸러미를 끌러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했으리라.

그림을 보고 있노라니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외할머니가 떠올랐다. 초가로 이은 지붕이 인상적이던 외갓집도 더불어 기억 속에서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 외할머니는 말주변이 별로 없으셨다. 그래서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면 말씀하셨다.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면 나중에 가난하게 산다고. 그게 대체 무슨 이야기인지 이해하지 못하니, 옛날 이야기를 해달라고 다시 조르고 또 조를 수밖에. 그러면 할머니는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늘 같은 이야기였다.

옛날에 어느 집 규수가 시집을 가게 되었더란다. 이 규수가 말이 많고 진중하지 않아 걱정이 된 친정어머니는 돌멩이 하나를 규수에게 주면서 신신당부를 했더란다. 이 돌멩이가 말을 하거든 말을 하라고. 그 전에는 절대로 말을 하면 안 된다고. 그 말은 시집가서 말을 함부로 하지 말고 조심하면서 말을 아끼라는 당부였건만, 규수는 어머니의 말을 곧이곧대로 알아듣고 실천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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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새로 시집온 색시가 입도 벙긋하지 않으니, 시댁에서는 난리가 났더란다. 새색시가 벙어리라고 말이다. 새신랑이, 시어머니가, 시아버지가 아무리 말을 걸어도 색시는 말을 하지 않고 날마다 돌멩이만 들여다봤더란다. 새색시는 돌멩이가 말을 하기를 기다렸지만 해가 바뀌어도 돌멩이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돌멩이가 말을 하는 날이 오면 그게 경천동지할 일이지, 안 그런가.

보다 못한 시어머니는 새색시를 친정으로 돌려보내기로 했더란다. 새신랑은 새색시가 좋았지만 어머니 말을 거역하지 못하고, 새색시를 달구지에 태워 길을 떠났다. 친정으로 쫓겨 가게 된 새색시는 돌멩이를 가슴에 품은 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달구지에 올랐다지.

새신랑은 말없이 달구지를 몰았고, 새색시 역시 말없이 앉아 있었단다. 그런데 어느 만큼 갔을까, 갑자기 들판에서 하늘로 꿩 한 마리가 푸드득 날아오르더란다. 그걸 본 새색시 갑자기 입을 열었다지.

"날아오르는 저 꿩일랑 잡아서 날개는 시어머니 드리고, 다리 하나는 시아버지 드리고, 다리 하나는 우리 신랑 주고... 가슴살은 가슴이 썩어문드러지는 내나 먹어야겠다."

이랬다던가. 이 대목에서 다른 사설이 이어졌지만, 세세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말없이 말을 몰고 가던 새신랑 눈이 화등잔만 해졌더란다. 말을 못하는 줄 알았던 색시가 말을 하고 있으니 얼마나 놀랐을꼬. 결국 새색시는 쫓겨나지 않고 다시 시댁으로 돌아갔다는 얘기였다.

그 이야기를 들려주던 외할머니는 오래전에 돌아가셨지만, 그 이야기를 들려주시던 할머니의 낮은 목소리는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다. 그리고 어둠침침하던 외갓집의 안방과 화로도. 그림 속의 할머니는 아이들에게 대체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것일까? 궁금했다.

시멘트를 수송하는 화물차만 쉬어가는 옥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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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계역 ⓒ 유혜준


그 집 앞을 지나 도착한 옥계역은 더 이상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이었다. 시멘트를 수송하는 화물차만 쉬어가고 있었다. 역 앞에 걸려있는 표지판에는 그런 내용을 설명하는 글귀가 새겨져 있었다.

옥계역은 1961년 5월 5일 북평~옥계간 개통으로 영업을 시작한 이래 2008년 1월 1일 여객취급을 중지하여 현재는 화물 수송만 전담, 연간 최고 120만 톤의 양회를 수송하고 있다. 옥계라는 지명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옥계는 옛 예국의 땅으로서 한사군 때 임둔땅이었고, 고구려 미천왕 때 현재의 묵호지역을 포함하여 하슬라주 우곡현에 속하다가 신라 내물왕 때 신라영토로 편입되었다. 고려 현종 때 강릉 대도호부 소속 우계현이 되었고 조선 정조 때 강릉현 우계면이라 칭한 후 줄곧 우계면이라 불려졌다. 1941년 옥천 우계의 의미로 강릉군 옥계면에 소재하여 옥계역으로 명명되었다. - 옥계역 표지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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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그 표지판을 보고 나는 내 멋대로 옥계역이 역무원이 없는 무인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역으로 통하는 문을 밀고 안으로 들어갔을 때, 한 남자가 역 대합실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놀랐다. 기차가 서지 않는 역인데, 누구지? 그렇다고 놀란 티를 내지는 않았다.

그 때 마침 화물차가 역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이끌려 역으로 나가 철로를 따라 역으로 들어오는 화물차를 구경했고, 사진을 몇 장 찍었다. 저물기 시작하는 해가 쏟아내는 햇살은 눈이 부셨다. 해를 등지고 사진을 찍은 뒤 다시 역 대합실로 돌아와 여전히 앉아 있는 남자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서 근무하세요?"
"네. 여기서 근무해요."

남자는 호기심이 서린 눈빛으로 나를 보면서 대답했다. 내 행색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건 잘 안다. 그 호기심이 이야기를 나누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더 깊어진 것 또한 안다. 걸어서 여행을 하는 중이라고 하면 말이다.

남자는 친절하게도 내게 커피라도 한 잔 하고 가라고 권했고 나는 흔쾌히 좋다고 대답했다. 쉬어가고 싶던 참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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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물차가 들어온 옥계역 ⓒ 유혜준


남자를 따라서 들어간 역 사무실에는 두 사람이 더 있었다. 세 사람이 근무를 하는 중이었는데, 교대근무를 하기 때문에 근무하는 직원은 더 있단다. 한 분은 역장님이었다. 그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나는 사무실 한쪽에 있는 소파에 배낭을 내려놓고 앉았다.

역사무실에서 남자가 타주는 커피를 마시면서 그 분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옥계역에서는 한라시멘트에서 생산하는 시멘트를 전담해서 수송한단다. 그래서 일이 많다고 했다. 하긴 역에서 근무하는 직원이 많은 것을 보니 충분히 짐작이 간다. 내가 옥계역에 들어갔을 때 도착했던 화물차가 천천히 출발하기 시작하는 것이 창밖으로 보인다.

내가 도보여행자인 것을 알고 역장님과 직원 두 분이 묵호항 주변의 정보를 알려주었다. 망상의 횟집이나 음식점보다 어달리의 횟집이 훨씬 음식 맛이 좋다는 이야기도 해주었다. 그 뿐이 아니다. 인터넷으로 직접 검색까지 해서 확인해 주었다. 그분들의 말대로 직접 먹어보니 어달리의 물회가 망상보다 훨씬 맛있었다.

(물회 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집니다.)

[정동진 - 삼척여행 ①] 삼척이 무지갯빛 도시가 된 까닭은?
#도보여행 #옥계 #옥계역 #어달리 #외할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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