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국민 믿고 용감하게 전진하시라"

새천년민주당 '정풍운동' 경험자가 한나라당 '쇄신운동'에 부쳐

등록 2011.05.24 16:18수정 2011.05.24 1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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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첫 회의가 정의화 비대위원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 남소연

지난 12일 여의도 당사에서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 첫 회의가 정의화 비대위원장 주재로 열리고 있다. ⓒ 남소연

그간 언론 지면을 통해 한나라당 내부의 '쇄신운동'을 지켜봤던 저의 심정은 이율배반의 딜레마로 무겁습니다. '한나라당은 결코 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냉소와 '한나라당도 이젠 변화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기대가 교차합니다.

 

한나라당의 이른바 '쇄신파' 분들께 조언의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밝혔을 때 주변의 만류가 더 많았던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당 대표까지 했던 민주당 정치인 신기남의 이야기가 당사자들에게 진정성 있게 다가갈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었습니다. 일리 있는 충고였고 많이 고심했습니다.

 

제 막내아들은 예술대학을 다니고 있습니다. 이 녀석이 바람을 잡아 <나는 가수다>라는 TV 프로그램을 알게 됐습니다. 며칠 전에는 경연을 보다 저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져 가족들에게 민망해진 적도 있습니다. 최고의 가수들이 혼신을 다한 경쟁을 통해 더 나은 무대를 보여주는 모습에 가슴이 뜨거워진 건 비단 저 한 사람만이 아닐 것입니다.

 

결국 이 글을 써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는 이런 문화적 경험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저는 한나라당의 변화가 필요하고 또 가능하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가장 본질적인 이유는 '한나라당의 변화'가 '민주당의 변화'를 더욱 재촉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쇄신의 경쟁'이 벌어질 때 비로소 대한민국의 미래가 바뀔 것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보수의 가치'... 실체가 무엇인가?

 

가장 먼저 드리고 싶은 말씀은 '쇄신'을 추진하는 각오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10년 전 재선 국회의원 시절, 새천년민주당의 혁신을 위한 '정풍운동'에 뛰어들었던 저와 많은 동지들은 그야말로 '분골쇄신'의 각오를 해야만 했습니다.

 

국회의원을 더 이상 안 해도 좋다는 사즉생의 투지가 아니면 당내에 켜켜이 쌓인 기득권의 벽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오직 국민의 눈과 귀를 두려워하고, 국민의 목소리만을 따른다는 불퇴전의 각오가 없다면 차라리 침묵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예의입니다. 쇄신을 가장한 기회주의는 한나라당을 더 깊은 늪에 빠뜨릴 것입니다.

 

두 번째는 '위기의 원인'을 바라보는 관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한나라당 내 일각에서는 '보수의 가치'를 되뇌며 국정쇄신을 요구하는 당내의 목소리를 '민주당 2중대' 노선이라 조롱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그들이 말하는 '보수의 가치'의 실체가 무엇인지 국민들은 의아합니다.

 

변화가 빛의 속도로 이루어진다는 지식정보화 시대에 강바닥을 파헤쳐 운하를 만들겠다는 발상이 한나라당이 추구하는 '보수의 가치'입니까? 대통령과 젊은 검사들이 '맞짱토론'을 벌이는 시대를 경험한 국민들에게 인터넷에서 대통령을 함부로 거론하면 인생 망친다는 공포감을 심어주는 것이 '보수의 가치'입니까? 북한을 대화와 상생의 파트너가 아니라 어떻게든 '붕괴'시켜야 할 원수로 대하자는 것이 그것입니까?  

 

한나라당이 말하는 '보수의 가치'가 국민들에게는 '권위주의의 가치, 기득권의 가치'로 인식되는 이 엄중한 현실을 외면한다면 한나라당의 미래는 없습니다. 그것은 민주당의 호재가 아니라 국민의 불행이기에 더 이상 방치돼서는 안 됩니다.

 

한나라당의 위기는 '보수의 위기'이기 전에 '특권의 위기'입니다. 이명박 대통령과 그 측근들이 밀어붙인 허위의식을 내려놓을 때입니다. 그래야 진보와 보수의 진정한 '대국민 오디션'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세 번째로 변화의 목표는 당의 '얼굴'이 아니라 당의 '심장'이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동안 한나라당을 좌지우지했던 이른바 '실세' 몇 분이 물러나고 박근혜 전 대표가 전면에 나서는 것을 한나라당의 위기를 해결해줄 도깨비 방망이인 양 주장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무절제한 음주로 병이 난 환자에게 술병은 빼앗지 않고 영양제를 줘보자는 식의 본말이 전도된 처방입니다.

 

당이 위기에 처한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한나라당 내부가 공감하고 합의를 이루는 것이 근본입니다. 박근혜 전 대표도 그 책임에서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정치인 박근혜는 한나라당의 위기가 '구시대의 위기'이자 '특권의 위기'라는 사실에 동의하고 있습니까? 2007년 대선 경선에서 주창한 이른바 '줄·푸·세' 공약과 요즘 말하고 있는 '한국형 복지국가' 사이에 넘을 수 없는 간극이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습니까?

 

행복도시 백지화보다 국민의 반대가 더 많은 '4대강 사업', '부자 감세'에 대해 그간 침묵의 동조를 해왔던 점을 인정합니까? 지역여론의 과실만 즐기고 정치적 부담은 회피하는 이른바 '숟가락 정치'에 대한 비판을 계속 외면만 할 생각입니까?

 

민주당이 지난 2002년 국민의 정부에서 참여정부로 민주개혁정부 2기를 이어갈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모래성 같은 '여론조사의 강자'가 아니라 노무현이라는 '시대정신의 강자'를 탄생시킨 역동성과 진정성 때문이었습니다. '보기만 좋은 얼굴'이 아니라 '뜨거운 심장'이 국민을 감동시킵니다.

 

적절한 해답 찾으려면 계산 아닌 용기 필요

 

마지막으로 민주당 또한 쇄신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한나라당의 패배와 위기는 민주당의 승리와 기회의 동의어가 아닙니다. 그것은 진보와 보수를 떠나 대의민주제 정치 자체의 위기가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7일 '새로운 한나라' 1차회의 발표문을 읽고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한나라당의 잘못'을 고백한 대목에서 저는 집권여당 시절 우리 모습을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고질적인 정부 우위의 당정관계, 불안정한 당내 민주주의와 비생산적인 계파갈등, 이로 인한 국민과의 소통 단절… 진보와 보수 간에 가치와 비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집권을 추구하는 현실 정치세력으로서 공통의 숙제가 있음을 확인합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함께 '동반성장'의 길을 추구했던 정치인으로서 '새로운 한나라'가 '사회경제적 불평등 구조와 양극화의 심화 속에서 위협받는 서민들의 삶의 질'을 한국사회의 핵심과제로 규정하고, "'공정한 분배'를 얘기하지 않으면서 시장과 경쟁, 성장과 법치만을 강조하는 것은 '강자의 논리'"라고 지적한 대목에 가슴 뭉클하게 공감합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정책적 선의에도 참여정부의 경제정책 또한 시장과 관료사회는 물론 당내의 기득권 세력으로부터도 끊임없이 도전받고 시련을 겪어야 했습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초대 비서실장이자 현 시카고 시장인 람 이매뉴얼은 2006년 미국 민주당의 집권 비전에 대한 구상을 밝힌 자신의 저서 <더 플랜>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의 목적은 그럴듯한 말을 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해답을 찾는 데 있다. 이를 위해서는 계산이 아니라 용기가 필요하다."

 

쇄신을 고민하는 한나라당의 정치인들께 "국민을 믿고 용감하게 전진하시라" 당부 드립니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는 신기남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공동이사장입니다.

2011.05.24 16:18 ⓒ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글쓴이는 신기남 더좋은민주주의연구소 공동이사장입니다.
#한나라당 쇄신 #줄푸세 #새로운 한나라 #참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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