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도 복잡헐 턴디 선물은 무슨 선물..."

생일날 비싼 떡갈비 먹고 후회... 그 맛좋던 떡갈비, 아~ 옛날이여!

등록 2011.06.02 20:07수정 2011.06.02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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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시 나포면 십자들녘 보리밭. 5월이 시작되면 풋보리 익는 냄새로 초여름을 노래합니다. ⓒ 조종안

군산시 나포면 십자들녘 보리밭. 5월이 시작되면 풋보리 익는 냄새로 초여름을 노래합니다. ⓒ 조종안

 

아내와 부산 장모님을 뵙고 오던 지난달 24일(화). 오후 5시쯤 군산에 도착해서 '우렁이 쌈밥'을 먹고, 보리가 누렇게 익어가는 '십자들녘'을 지나는데 운전하던 아내가 느닷없는 화두를 던졌다.

 

"요즘 꼭 갖고 싶다고 생각되는 거 뭐 없어요? 있으면 말해요. 내가 사줄 게."

"갑자기 갖고 싶은 거라니? 먹고 싶은 거 먹어감서 건강허게 사는 것만도 어딘디. 더 갖고 싶은 거 있다믄, 그건 욕심이지···."

 

뭔가 사주겠다는 제의는 골백번을 들어도 고맙고 기쁘다. 그러나 '욕심'이라며 한마디로 거절했다. 결재는 아내가 하겠지만, 그 돈이 그 돈이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얘기했던 적이 있는데, 나는 매월 받는 생활비로 밥을 해먹으면서 집 청소도 하고, 틈틈이 글도 쓰고, 그 글을 쓰기 위해 사람을 만나면서 늙어가는 지금 생활에 더없이 만족한다.

 

"그게 아니고, 말일(5월31일)이 자기 생일이잖아요. 그런데 내가 3일 연속 '데이(낮 근무)'라서 그날 집에 못 오거든요. 아침에 미역국도 못 끓여줄 것 같아, 미안해서 선물 하나 하려고요. 대신 10만 원 아래로···."

 

"자기도 복잡헐 턴디 선물은 무슨 선물여. 받은 거나 다름없으니까 그냥 두라고. 그리고 올해가 진갑(進甲)이라고 허지만, 아무도 초대하지 말고 조용히 넘어가자고. 작년하고 올해에 지출이 너무 많았응게···."

 

아내와 나는 동갑내기로 작년(2010년)에 나란히 환갑을 맞았다. 그래서 결혼 후 처음으로 외국여행(만주 항일유적지)을 다녀왔다. 당연히 목돈이 들어갔고, 2011년 들어서도 다른 해에 비해 지출이 두 배 이상 많았다. 더구나 물가까지 치솟아 긴축 외에는 방도가 없었다. 그래도 아내는 아쉬운지 말을 이었다. 

 

"31일은 내가 낮 근무라서 손님을 집으로 초대 못 하니까, 식구들하고 기훈이 아빠(동생) 식당에서 삼겹살이라도 함께 먹어야지 너무 서운하잖아요. 선물도 내 성의니까 필요한 거 있으면 얘기해 봐요."

 

"그래도 올해는 조용히 넘어가자고. 형님도 누님도 내 형편을 아니까 서운하다고 안 헐 꺼여. 그리고 선물은 돈으로 주지, 5만 원만. 유명한 화백이 그린 인물화를 선물 받았다고 생각허고 오래오래 보관할 테니까."

 

아내는 생일에 형제들과 함께 식사도 하고, 2개월 전 삼겹살집을 개업한 동생 식당 매상도 올려주면 서로가 좋지 않으냐고 했다. 맞는 말이었다. 그러나 하늘 높은 줄 모르고 뛰는 물가에 주눅이 들어서 그런지 아무리 생각해도 부담이 되었다. 

 

한 달 생활비는 25만 원. 그 속에 용돈이 포함되어 있으니 빠듯하다. 좀 옹색하지만, 쓰기로 하면 250만 원도 부족한 게 돈 아닌가. 그런 맘으로 생활하다 보니 매월 2-3만 원씩은 비상금 주머니로 들어간다. 비상금 불리기 재미에 빠져 현금으로 달라고 했던 것인데, 아내는 그렇게는 못 한다고 했다. 차에서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었다.

 

올해도 동생에게 생일상 받아

 

지난달 29일(일) 아침, 전화가 걸려왔다. 동생이 내 생일 하루 전날(30일) 저녁에 식사 자리를 마련할 것이니 꼭 참석해달라는 전화였다. 작년에도 생일을 챙겨주더니 또 기억해주어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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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밝히고,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를 합창하는 조카, 동생, 그리고 셋째 누님. ⓒ 조종안

촛불을 밝히고, ‘해피 버스데이 투 유’(Happy Birthday to You)를 합창하는 조카, 동생, 그리고 셋째 누님. ⓒ 조종안

 

약속시각에 맞춰 아내와 함께 동생 식당에 갔더니 형님이랑, 셋째 누님이랑, 조카 부부가 삼겹살을 굽다가 환영해주었다. 생일 선물이라며 기름기가 자르르 흐르는 찰밥을 큰 밥통에 가득 담아온 셋째 누님에게 "이 웬수(은혜)를 어떻게 값는댜!"라고 해서 웃음바다가 되기도 했다. 

 

조카가 작은 이벤트를 준비하는지 잠깐 나가더니 케이크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이제는 50대가 되어 배도 나오고 머리도 염색한 조카를 보며 내 나이를 실감했다. 생일 축송, 케이크 자르기, 생일 축하주, 덕담 등이 오가며 동생이 마련한 '진갑 전야제'는 한 시간 넘게 이어졌다. 

 

자리가 끝나고 식당을 나서는데 아내가 봉투 하나를 건네주었다. 형수 선물이라고 했다. 이렇게 감동적일 수가. 집에 도착해서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아내는 미역국을 끓여놓고 밤늦게 출근했다. 미역을 다듬는 아내 손을 보니 생일날 아침에 혼자 밥을 챙겨 먹어도 외롭지 않을 것 같았다.

 

"맛좋던 떡갈비, 아~ 옛날이여!" 

       

생일날(31일) 아침 7시쯤 눈을 떴다. 간밤에 숙면을 취해서 그런지 기분이 상쾌했다. 샤워하고 아침을 준비하는데 항암주사를 맞으며 투병 중인 막내 누님이 축하전화를 해왔다. 건강이 좋아졌으니까 한 번 다녀가겠다는 말이 더 반갑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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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끓여준 미역국. 시원하게 먹기는 쇠고기보다 멸치가 좋지요. ⓒ 조종안

아내가 끓여준 미역국. 시원하게 먹기는 쇠고기보다 멸치가 좋지요. ⓒ 조종안

시원한 미역국에서 아내를, 구수하고 쫀득쫀득한 찰밥에서 셋째 누님을 떠올리며 아침을 맛있게 먹었다. 혼자였지만, 쓸쓸하거나 외롭지 않았다. '백수 10년에 이 정도면 호강이다!' 소리가 나오면서 미소가 지어졌다.  

 

점심때쯤 아내에게 전화를 받았다.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는지, 근무 끝나고 올 터이니 저녁이나 먹자고 했다. 끝까지 챙겨주는 마음이 고마웠다. 다시 육십갑자가 펼쳐진다는 진갑,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부부가 조용히 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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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금강. 작은 어선들이 ‘히라시’(실뱀장어)를 잡고 있는데요. ‘앉은뱅이배’로도 불립니다. ⓒ 조종안

군산의 애환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금강. 작은 어선들이 ‘히라시’(실뱀장어)를 잡고 있는데요. ‘앉은뱅이배’로도 불립니다. ⓒ 조종안

아내와 만난 시각은 오후 5시. 저녁 먹기에는 이른 시간이어서 뜬다리(부잔교)로 유명한 내항으로 나갔다. 금강은 언제 봐도 흙탕물, 그래도 땀 냄새 짙게 배인 어머니 가슴처럼 훈훈하고 넉넉하다. 그래서 정겹다.

 

일제 강점기에는 쌀 냄새, 해방 후에는 미국의 잉여농산물 냄새가 풍기던 내항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깃배들이 정박해있어 비린내가 진동했다. 아내는 코를 막으면서도 그리 싫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한때는 충남-전북 가교 역할을 했던 추억의 나루터, 도선장을 둘러보고 식당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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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떡갈비. 연탄불에 굽던 그때 그 맛이 아니어서 아쉬웠습니다. ⓒ 조종안

보기만 해도 침이 꼴깍 넘어가는 떡갈비. 연탄불에 굽던 그때 그 맛이 아니어서 아쉬웠습니다. ⓒ 조종안

일주일 동안 방향을 잡지 못하고 헤매던 아내의 선물은 해변을 거닐면서 1인분에 2만 원 하는 떡갈비로 매듭지어졌다. 메밀국수, 아귀탕 등이 후보로 올랐는데 특별한 날이니 오랜만에 비싼 떡갈비 맛이나 보자는 데 의견을 모았기 때문이었다.

 

식당에 도착해서 큰 맘 먹고 3인분을 주문했다. 그러나 옛날 그 떡갈비 맛이 아니었다. 수입 갈비처럼 뼈가 두텁고, 살코기도 퍽퍽해서 갈비의 깊은 맛을 느낄 수 없었다. 그래도 군말 없이 배불리 먹었다. 선물 대신 사주는 음식인데 이것저것 따지면 분위기가 흐려질 것 같아서였다.

 

떡갈비 얘기를 괜히 꺼냈다는 생각과 함께 후회가 되었다. 아내도 전보다 고소한 맛이 덜하다고 푸념하는 걸 보니 서운한 모양이었다. 식대를 치르고 집으로 돌아오는 데 옛날 갈비맛을 그리워하는 한마디가 탄식하듯 흘러나왔다.

 

"그전에는 갈비를 양념에 하룻밤 재워서 연탄불에 구워내오면 고소한 살코기를 먼저 떼어먹고, 재벌구이를 해서 뼈에 붙은 얇은 각질을 이빨로 뜯어먹으믄 졸깃한 맛이 그만이었는디, 지금은 구경도 못하겠더라고. 그렇게 맛 좋던 떡갈비가 '아~ 옛날이여!'가 되어버렸어···."

2011.06.02 20:07 ⓒ 2011 OhmyNews
#선물 #진갑 #떡갈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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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8월부터 '후광김대중 마을'(다움카페)을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정치와 언론, 예술에 관심이 많으며 올리는 글이 따뜻한 사회가 조성되는 데 미력이나마 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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