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두 늙은이, 시청바닥에 드러누울란다"
칠순 부모 분노케 한 MB 정부의 '보금자리'

5차 보금자리주택 예정지에 친정집이... 서민정책 맞습니까

등록 2011.06.08 14:50수정 2011.06.08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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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23년 전의 친정집. 넓은 마당은 손자들의 놀이터였다.

23년 전의 친정집. 넓은 마당은 손자들의 놀이터였다. ⓒ 김혜원


"큰일났다. 이제 우리 두 늙은이 집에서 쫓겨나게 생겼다. 늙은이 사는 집을 달떡, 별떡 잘라먹더니 이제 목 넘어 꿀떡 한단다. 도대체 우리가 뭐 잘 못했다고 늙은이들 사는 집을 이러는지, 내가 치매 걸린 니 아부지 데리고 시청 바닥에라도 가서 드러누워 버릴란다."

수화기에서 흘러나오는 친정엄마의 목소리는 당장이라도 아버지를 모시고 서울시청으로 달려 갈 것처럼 다급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무슨 말인지 천천히 설명을 해보시라고 했지만 앞뒤 설명 없이 무조건 정부가 당신이 사는 집을 빼앗아 갈 거라는 말씀만 반복하신다.

무슨 이야기인지 알아보고 다시 전화 드릴 테니 잠시 기다려 보시라며 전화를 끊은 뒤,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서울시 강동구 고덕동에 관련된 보도가 있는지 찾아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지난 5월 17일 국토해양부가 발표한 5차 보금자리주택 후보지 4곳(서울 고덕, 강일3, 4지구, 과천 지식정보타운) 중에 부모님 집도 포함되어 있었다.

다시 전화를 걸어 자세한 내용을 말씀드렸다. 부모님 집은 정부에서 5차 보금자리주택 후보지로 발표했으며, 그 집은 물론 그 일대가 전부 개발돼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라고.

친정엄마는 노발대발했다. 그도 그럴 것이, 4년 전에도 서울시에서 집 앞 2차선 도로를 4차선으로 확장한다며 앞마당을 잘라간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모자라 지난해는 살고 있는 집의 거실까지 도로에 편입되게 되었다는 통보가 왔다. 강일지역 임대 아파트 단지 건설로 인해 교통량이 늘 것으로 예상, 기존 4차선에서 6차선으로 도로 확장이 불가피하게 됐다는 이유였다. 해당 업체 관련자는 집 전체를 내놓던지 반이 잘라진 채로 살든지 좋은 쪽을 선택하란다.

친정엄마는 집이 반절만 남더라도 사시던 보금자리를 떠날 수 없다고 했다. 오래 살아 정든 집이고,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치매에 걸린 아버지를 모시고 다른 곳에 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 두렵기만 한 것이다.

"아파트에 살고 싶었으면 벌써 이사 갔지"


부모님이 지금 살고 있는 집으로 이사 오신 것은 23년 전이다. 건강이 좋지 않은 친정엄마를 위해 고덕동 공기 좋은 야트막한 산 아래 허름한 농가주택을 구입, 이층집으로 아담하게 신축했다. 그 집에서 자식들을 키워 출가시키고, 이제는 두 분만 남아 자식들이 떠나 비게 된 아래층에 세를 놓아 생활비를 충당하며 사신다. 

두 분 모두 일흔 중반을 넘긴 연세이신데다, 아버지는 치매를 앓고 계신지라 살고 계신 집을 옮기는 것이 쉽지 않다. 더구나 지금까지 적은 금액이지만 살고 계신 집의 일부를 세놓아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마음 편히 생활해 오셨다. 그런데 이제 와서 정부가 서민을 위한 아파트를 지어야 한다며, 노인들의 주거공간이며 수입원이기도 한 집을 내놓으라니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런 엄마에게 위로랍시고, 새로 지은 좋은 아파트에 들어가 사실 수도 있다고 말씀드리니 더 펄쩍 뛰신다.

"내가 아파트 살고 싶었으면 벌써 이사 갔지 여기 살았겠냐? 니 아부지랑 나는 땅 집에서만 살아서 아파트 같은데는 답답해서 못 살아. 낡았든 불편하든 지저분하든 두 늙은이 집 앞에 텃밭이나 일구면서 죽는 날 까지 마음 편히 살라고 했더니,  왜 그것도 못하게 하는 거야. 아파트 들어가면 정부가 우리 두 늙은이 꼬박꼬박 생활비 대준다냐? 아파트만 뒤집어쓰고 있으면 누가 밥을 주냐 돈을 주냐?"

a  5차 보금자리주택 예정지에 있는 친정집. 부모님이 걱정이 태산이다.

5차 보금자리주택 예정지에 있는 친정집. 부모님이 걱정이 태산이다. ⓒ 김혜원


이건 비단 친정엄마의 심정만은 아니다. 사는 집에서 식당을 경영하며 가족의 생계를 이어가는 뒷집이나 아래층을 사무실로 사용하는 옆집도 마찬가지다. 사는 집을 보상받아야 겨우 아파트 한 채 정도가 전부일 것이다. 또 가지고 있는 집의 크기가 작아 보상액이 적은 다른 집의 경우는 오히려 큰 돈을 보태야 아파트라도 하나 가질 수 있게 된다니, 요즘 같이 아파트 가격이 자꾸 떨어지는 시기에 누가, 무엇을 위해 그런 손해 보는 장사를 할까 싶다.

요즘 친정엄마의 전화가 잦다. 하루아침에 23년을 살았던 보금자리에서 내쫓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걱장이 태산같이 쌓여 잠도 이루지 못하시고 입맛조차 잃으셨다.

"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이건 어디다가 말해야 하냐. 우리 두 늙은이 청와대로 이명박 대통령 찾아갈까? 서울시청에 찾아가서 시청바닥에 드러누우면 어떨까? 매일 치매 걸린 니 아부지 모시고 시청에 가서 시장이 만나줄 때까지 쭈그려 앉아 있어 볼까."

불안해하시는 친정엄마에게 발표가 났다고 금방 개발에 들어가는 것은 아니니, 집으로 관련 공문이 날아오기 전까지는 마음을 편히 가지시라 말씀드렸지만 조금도 위로가 되지 않으시는 듯하다.

국토해양부, 강동구청장의 지정철회 요구 받아들여야

a  도로를 넓히기 위해 아이들이 놀던 집마당을 깎는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도로를 넓히기 위해 아이들이 놀던 집마당을 깎는 도로공사가 한창이다 ⓒ 김혜원


최근 보도를 보니 이해식 강동구청장이 국토해양부와 관련 기관에 5차 보금자리주택 후보지에서 강동구를 빼달라며 지청철회를 요청했다고 한다. 그 요청은 이번 보금자리 주택 지정으로 서울시 전체 임대주택 중 7.5%를 강동구가 보유하게 되는 것이며, 서울에 얼마 남지 않은 그린벨트 지역까지 개발하는 것은 지역 잠재력을 크게 위축시킬 것이라는 분석에서 나왔다고 한다. 

연로하신 친정엄마는 살고 계신 지역의 개발 잠재력이나 서민주택 정책에는 큰 관심이 없다. 그것이 어떤 이유에서든, 당신이 23년 동안 정 붙이고 살아온 당신의 보금자리에서 내 쫓기게 될 것이 두렵고 억울하며 화가 날 뿐이다.

더구나 이번 5차 보금자리 주택의 평당 분양가는 지역에 따라 평당 1400~1800만 원을 호가할 예정이라고 한다. 분양가부터가 서민과는 거리가 멀어, 서민을 위한 주택정책이라는 말이 무색하다.

그러다면 무엇을 위해 5차 보금자리주택을 강행해야 하는 걸까. 5차 보금자리주택은 서민주택정책을 미화한 마구잡이 개발이라는 비판이 적지 않다. 남의 보금자리를 빼앗으면서까지 지어야하는 보금자리 주택이라면 좀 더 신중하게 결정되었어야 하지 않을까.

죽기 전에는 살던 보금자리를 비울 수 없으시다는 친정엄마는 끌려나가는 한이 있어도 내집에서 나가지 않으시겠단다. 주변 이웃들과 합세해서 시청이든 청와대든 몰려가 항의를 하시겠다고도 하신다. 이러다 연로한 부모님 건강을 해칠까 가장 걱정스럽다.

걱정하시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해당지역 주민들을 위해서라도 이해식 강동구청장이 요청한 지정철회가 받아들여지길 기대해 본다.
#5차보금자리주택 #보금자리주택 #고덕지구 #국토해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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