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자살 사망... 서울중앙지법에선 무슨 일이?

식사도 못하는 열악한 노동환경... 인권위에 '인권침해' 진정 제기

등록 2011.06.03 16:25수정 2011.06.03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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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재판부'에 배정돼 과중한 재판업무 부담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로 최근 법원공무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과 관련, 법원공무원노동조합이 이진성 서울중앙지법원장에 대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데 이어 사퇴를 촉구하고 나섰다.

법원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던 걸까. 서울중앙지방법원 참여관(계장)으로 근무하던 K(48)씨는 지난 5월 23일 오전 7시50분께 서울법원종합청사 내 주차타워 3층 자신의 승용차 안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K씨는 유서에서 "일도 힘들고 모든 삶이 다 지친다"며 과중한 업무 부담을 호소했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자 법원공무원들은 분개했다. 법원공무원노조는 "고인은 생전에 법원공무원으로서 20여 년 동안 매우 성실하게 근무한 분으로서 주검으로 발견되기 전까지 본인의 업무를 다 해 놓을 정도로 책임감이 큰 분이어서 안타깝다"고 통탄했다.

그러면서 "고인의 유서와 주위 동료들의 증언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1월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과 발령 이후 과중한 업무와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된 원인으로 작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법원공무원노조 이상원 서울중앙지부장은 3일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고인의 사망에 대한 책임을 통감하고 이진성 서울중앙지법원장은 당장 사퇴해야 한다"며 "아울러 법원행정처장은 유족 및 법원직원들에게 공개 사과하고, 관리책임자들을 처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법원노조 8000명 조합원은 이번 사태에 대한 분노가 점점 높아지고 있어, 법원행정처가 더 이상 조삼모사식의 대책은 이 분노를 풀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며 "법원노조의 요구사항에 대해 고인에 대한 추모기간이 끝나는 오는 10일까지 법원행정처의 책임 있는 답변을 엄중히 요구한다"고 강조했다. 이 지부장은 "만약 책임 있는 조치가 없을 경우 투쟁을 벌여 나갈 것"이라고 압박했다.

식사도 제대로 못하고... 서울중앙지법 노동강도 논란


K씨는 형사단독 재판부 중에서도 법원이 집중심리를 위해 시범운영 중인 연일재판부에 배치돼 늦은 밤까지 계속되는 재판 진행과 그에 대한 준비로 제때 식사도 못하고, 심지어 용변을 보는 것조차 쉽지 않을 정도로 과도한 업무량에 힘들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실제로 이 사건 이후 법원공무원노조 서울중앙지부가 형사단독 재판부의 업무량과 관련해 재판에 참여하는 참여관(14명), 실무관(15명), 속기사(8명) 등 37명을 대상으로 긴급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K씨를 지켜본 주위 동료로서 사망사고 원인은 연일재판부로 인한 업무과중과 이로 인한 스트레스가 주요한 원인으로 작용했다"고 한 목소리로 답했다.


서울중앙지법의 다른 재판부와 비교했을 때에도 업무량은 33명이 '많은 편'이라고 과중한 업무 부담을 호소했다. '재판진행 도중 휴정 등을 통해 용변 등을 볼 시간을 보장해 주느냐'라는 질문에도 '전혀 또는 잘 보장해 주지 않는다'라는 부정적인 답변이 24명으로 '보장해 주고 있다'는 응답자 13명보다 많았다.

'재판부가 업무시간(오후6시) 이후까지 재판을 진행할 경우 저녁식사를 할 시간을 주면서 재판을 하느냐'라는 질문에도 법원직원 대부분은 '저녁식사는 재판이 끝난 뒤에 먹는다'고 답했다. 또 '저녁시간을 보장해주지 않으면서 업무시간 이후까지 재판을 진행하는 것이 인권침해에 해당한다'고 29명이나 답했다.

법원의 업무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이며, 12시부터 1시까지는 점심시간. 재판시간은 보통 오전 10시~12시까지 진행하는 오전 재판과 오후 2시~6시까지 진행하는 오후 재판이 있다.

그런데 법원 참여관이나 실무관 등은 재판 시작 전에 재판 준비를 거의 다 해 놓고 있으나, 재판기일에 임박해 접수된 재판 관련 문건이나 재판장으로부터 늦게 내려온 기록 등으로 인해 재판 시작 전에 상당시간 재판을 준비하는 데 어려움이 있고, 재판이 끝난 이후에도 기록정리 등으로 곧바로 퇴근할 수 없는 게 재판에 참여하는 법원공무원들의 현실이라고 입을 모았다.

법원공무원들은 오전 재판이 늦게 끝나 점심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점심을 먹는 데 애로를 겪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심지어 오후 1시 30분에 재판이 끝나 제대로 식사도 못하고 곧바로 오후 재판에 참여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업무시간(오후6시) 이후까지 재판이 진행됨에도 불구하고 저녁식사 시간을 보장받지 못하거나 늦은 시간에야 저녁을 먹는 경우가 자주 발생하고 있고, 심지어 오후 8시 이후까지도 식사를 하지 못한 채 재판에 참여하는 경우도 있다고 업무 부담을 호소했다. 속기사의 경우 주당 노동시간은 법정기준(40시간)을 훨씬 넘는 70시간 이상인 경우도 많았다.

차 한잔도 제대로 못마셔... 연일재판 폐지해야

이에 법원공무원들은 연일재판을 폐지하고 주 2회 이상 재판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사건과 관련된 업무를 정리하고 처리해야 할 일들이 산적한데 재판준비→재판, 재판준비→재판의 연속으로 업무가 과중하다는 것이다. 주 2회 하는 재판부도 헐떡이는데 심지어 주 3~4회 하는 연일재판부는 버겁다고 법원공무원들은 입을 모았다. 설령 구속 피고인이 있어 주 2회 재판이 필요하더라도 적어도 월 1회는 재판을 의무적으로 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여성공무원은 "일을 해야 하는 법원직원이기 이전에 한 가정의 아내이자 엄마인데, 직원을 기계부품으로 여기지 말아 달라"며 "법원에 출근하면 차 한 잔 제대로 마실 시간도 없이 쉴새 없이 일해야 하는 현실이 너무 숨이 막히고 갑갑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법원노조 서울중앙지부는 지난달 30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법원공무원의 노동조건과 관련해 인권침해를 주장하며 이진성 서울중앙지법원장과 형사단독과 법관 일부에 대해 진정을 제기했다. 법원직원들이 수장인 법원장에 대해 사퇴를 촉구하고, 게다가 인권침해를 이유로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서울중앙지부는 진정서에서 "최근 서울중앙지법 형사단독과 참여관이 과중한 업무와 스트레스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면서 "법원은 사건의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고 있는데, 이는 실체를 파악하기 위해 매우 필요한 제도임에 틀림없으나, 재판부 증설과 인원 충원 등 충분한 인프라 구축이 더딘 상황에서 공판중심주의를 강화하다 보니 법관이나 직원들의 고충이 심화되고, 이로 인해 인권침해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법률전문 인터넷신문 [로이슈](www.lawissue.co.kr)에도 실렸습니다.
#법원공무원 #법원노조 #이진성 #연일재판부 #법원행정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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