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집 경쟁? 그저 옛집이 좋더이다

추억을 부르는 통닭집

등록 2011.06.08 18:57수정 2011.06.08 1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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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직장인이 무척 많던 그 시절, 퇴근하는 가장(家長)들이 자전거 핸들을 쥔 손에 달랑달랑 들린 것이 하나 있었으니, 그건 기름이 묵직하니 묻어나는 누런 봉투였다. 서둘러 페달을 밟고 집으로 간 가장은 미소가 가득한 얼굴로 아내에게 종이 가방을 건넨다. 그러면 종이 가방은 그대로 뜯어펼쳐지고 온 가족이 그리로 모여든다. 통닭이 올려진 상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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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닭 . ⓒ 조을영


양념통닭이란 게 아직 나오기 전, 오직 후라이드 통닭 한가지가 유일한 메뉴였던 70년대의 월급날 풍경이다. 시시때때로 먹는 통닭도 아니고 특별한 날에 사와서 먹는 음식, 배달이란 건 있지도 않았으니 '퇴근 길에 통닭 좀 사와요' 하는 아내의 부탁은 '오늘은 특별한 날인거 알죠?' 이런 뜻이나 같았다.

통째로 기름에 넣었다 뺀 다음 기름종이로 두어번 곱게 싼 통닭은 월말 월급날이면 그렇게 많은 가정으로 팔려나갔다. 닭 한마리가 접시 위에 올려진 채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유치한 일러스트의 누런 종이 봉투에 담겨진 채로.

손으로 쭈욱 뜯어서 어른께는 다리 쪽을 드리고, 속이 통통한 부분은 어린 아이들이 먹기 좋게 넘겨주고, 닭껍질은 미끈거려 싫다는 아이에게 그 아까운 걸 왜 안먹냐고 엄마들은 호통친다. 지금같은 무 초절임은 있지도 않았기에 그냥 심플한 통닭 한마리면 끝이었다.

지금처럼 치킨이라고 불러선 어쩐지 느낌이 살지 않고, 그저 통닭이라 불러야 이미지가 확 당겨오는 그런 음식. 한달 간 뼈저리게 일한 가장은 어린 자녀들이 오물오물 맛있게 그 통닭을 먹는 모습을 보며, '농부는 제 논에 물 들어가는 소리가 제일 기쁘고, 아비는 제 자식 입에 밥 넘어가는 소리가 제일 기쁘다'는 말을 읊조리며 흐뭇해 하던 추억의 음식, 통닭.

대구 반월당에 꼭 그런 통닭집이 있다. '염매시장' 이라고 하는, 떡집이 많은 시장 입구에 세월에 찌들고 낡아서 너저분한 통닭 가게 하나가 70년대 후라이드 맛을 아직도 고수하고 있다. 떡골목으로 유명한 이 전통시장의 가게마다 화려하게 떡모형을 장식해 놓는 골목에생뚱맞게 끼어있는 작은 통닭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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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닭집 . ⓒ 조을영


이른 폭염에 문을 활짝 연 채 두툽하고 체격좋은 아주머니가 밀가루를 묻히고 고기를 튀겨내는 뒷모습만 보일 뿐, 불도 켜지 않은 실내엔 낡고 찌든 벽지, 내부 장식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냉장고가 옆에 있으니 주방인가 싶을 뿐 홀과 주방의 경계도 없다.

손님이 오건 말건 아줌마나 아저씨는 반가운 인사 같은 건 하지도 않는다. 늦은 오후의 곤한 낮잠을 깬 아저씨가 무안한 얼굴로 좌식 탁자 틈에서 몸을 일으키는 그저 그런 낡은 가게다.


술 한잔과 저녁을 겸하고 싶은 직장인들이 많이 찾는 메뉴는 찜닭이란다. 전분을 풀어 넣은 이 집 찜닭은 바쁜 어머니가 자녀를 위해 온 동네에 고기냄새 풀풀 날리며 부엌 모퉁이에서 조려 낸 느낌이다. 간장 양념과 붉은 양념은 시대 조류에 따라 추가했지만 여전히 잘나가는 건 '그 시절의 후라이드' 인 듯.

옛날과 다른 게 있다면 통째로 튀기는 게 아니라 오밀조밀 조그맣게 잘라서 튀긴다는 것 뿐이다. 영세 브랜드 업체에서 8,9천 원에 파는 치킨과 비슷한 양이지만 그보다 두배 가격이니 싸다곤 할 수 없다. 하지만 맛은 분명 다르다. 소스양념을 뽐내는 것도 아니고 닭살을 강조하려고 튀김가루에 공들이지도 않았다.

"더워서 얼굴이 빨갛게 익었네" 하며 그제서야 입을 여는 주인은 수줍게 통닭 상자를 내민다. 보다 맛있는 것을 찾고 자극적인 맛을 원하는 지금의 식문화. 그 가운데 더 많은 개량과 경쟁만이 살길이라고 외치는 맛집들. 모두 다 자신의 가게가 맛집이라 외치지만 역사나 추억을 품은 곳은 드문 지금, 그 옛날 기억의 한 자락을 간지럽히는 가게들이 오히려 존경과 경탄의 탄성을 자아내는 시점이다.
#통닭 #맛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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