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정부와 MB정부, 다르지만 결과적으로 같아"

천주교인들, 제주 강정마을 해안에서 평화미사 열어

등록 2011.06.17 09:49수정 2011.06.17 0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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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미사에 참여한 사제들 16일 오전, 천주교 제주교구에 속한 사제 및 신자들이 강정마을 해안에 모여 평화의 미사를 드렸다. 이날 미사는 복자성당 한재호 주임신부가 인도했고, 제주교구 사무처장 교병수 신부, 수원교구 소속 최재철 신부, 재야 평화운동가로 명성을 얻은 원로사제 문정현 신부 등이 함께 참여했다. ⓒ 장태욱


16일 오전 천주교 서귀포 복자성당 신자들을 비롯하여 제주교구에 속한 사제 및 신자들과 강정마을 주민들이 강정마을 해안가에 모여 평화미사를 드렸다. 이날 미사는 복자성당 한재호 주임신부가 인도했고, 수원교구 소속 최재철 신부와 재야 평화운동가로 명성을 얻은 원로사제 문정현 신부가 멀리서 방문해 미사에 참여했다.

장마철에 접어든 제주도는 15일부터 비가 내리는 궂은 날씨가 지속되었다. 아침부터 천주교 복자성당 신자들은 천막을 치고, 사제들은 성찬식에 필요한 그릇들을 준비하는 등 미사를 올리기 위해 모두 분주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미사 예정시간인 11시가 다가오자 강정마을 주민들도 하나 둘씩 미사가 예정된 중덕 해안으로 모여들었다.

비와 더불어 바람이 심하게 불었다. 천막 안에 서 있기는 했지만, 교인들이 들고 있던 성경과 매일미사 교본이 빗물에 젖어드는 것을 어렵잖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비와 바람이 평화를 향한 이들의 염원을 꺾을 수는 없었던 모양이다. 미사는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차분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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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미사 비와 함께 바람이 강하게 불었지만 미사는 흔들림도 없이 차분하고 엄숙하게 진행되었다. ⓒ 장태욱


강론을 맡은 복자성당 한재호 신부는 "미사를 올리기 위해 이 마을까지 오신 복자성당 신도님들께 감사"하고 "타지에서 이 마을을 지키기 위해 오신 분들은 환영"한다고 인사했다.  한 신부는 "강정마을이 복자성당 관할구역"이라고 밝힌 뒤, "이 마을에 올 때마다 누가복음(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예수님의 비유가 생각난다"고 심경을 밝혔다.

한 신부는 "거지 나사로는 부자가 먹다 남은 음식찌꺼기라도 먹고 싶었지만 결국은 굶어 죽었는데, 나사로는 죽어서 예수님 품으로 갔고, 부자는 죽어서 지옥불로 들어가게 되었다"고 성경을 인용했다. 한 신부는 "부자는 도덕적으로 크게 비난받을 짓을 하지 않았고, 나사로를 직접적으로 구박한 것도 아니지만 그가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 것은 오직 '무관심'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한 신부는 "강정마을 주민들이 현재 겪고 있는 고통이 나사로의 것이라면, 지금 강정마을 주민들을 바라보는 우리의 태도가 나사로에게 무관심하던 부자의 모습은 아닌지 되돌아보고", "강정마을의 이웃들, 이곳의 모든 피조물들이 나의 무관심으로 신음하고 있지는 않은지 스스로 되돌아보자"고 권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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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들 천막 안에도 빗물이 떨어져 성경이 젖기 일쑤였지만, 미사에 참여한 모든 이들의 표정이 진지했다. 지난 4년 동안 천주교 제주교구는 해군기지 싸움을 이어가는 강정마을 주민들과 늘 함께해왔다. ⓒ 장태욱


미사가 끝나자 원로사제인 문정현 신부가 주민과 신자들에게 인사의 말을 전했다. 문 신부는 "(해군기지 싸움이) 화순, 위미, 강정으로 이어지는 동안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지만, 섬이라 와보기 힘들었다"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하지만 문 신부는 "그래도 내가 강정마을을 위해 갈치장사를 했다. 갈치를 팔아서 이익금을 1500만원 남겨서 강정마을에 전해줬다"며 멀리서나마 주민들과 뜻을 함께해왔음을 밝혔다.


문 신부는 "그간 일이 여러 군데서 많이도 일어나는 바람에 강정마을에는 와보지 못해 서운해 하던 터에, 주변에서 그리 마음이 아프면 한번 다녀오라고 권하기도 해서 와봤다"며 늦게나마 오게 된 사연을 전했다. 그러면서 "우리가 싸워서 이겨본 적이 몇 없지만, 이렇게 함께 미사라도 드리게 돼서,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고 감격의 뜻을 전했다. 인사를 마무리할 때 문 신부의 목이 잠기고 눈에는 이슬이 맺혀 있었다.

문 신부와 따로 만나 짧게 말씀을 나눴다. 지난 11일, 문 신부가 희망버스를 타고 한진중공업을 방문해, 백기완 선생 등과 담장을 넘은 일을 거론하자 문 신부는 "말도 마, 이틀 동안 한 숨도 못 잤어"라며, 당시 긴장이 팽팽하던 상황을 떠올렸다.


몸이 불편하신 곳은 없는지 여쭸더니, "난 혼자 있으면 오만 데가 다 아픈데, 이렇게 모여 싸우고 있으면, 아픈 곳이 사라져"라며, 여전히 투사적 기질을 과시했다.

해군기지가 참여정부 때 시작한 사업임을 상기시키며, 참여정부와 MB정부가 많이 다르냐고 물었더니, "다르지만 같어. 두 정부 모두 재벌 마피아의 손아귀에서 놀아난 점은 비슷한데, 참여정부는 그 손아귀를 벗어나려고 조금 발버둥 쳤다면, MB정부는 아예 축이 잘 맞는 거여"라고 답했다. 그래서 "(아쉽지만) 결과적으로 같아진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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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로사제 문정현 신부 미사에 참여한 이들에게 "함께 미사라도 드리게 돼서, 정말 감개가 무량하다"고 했다. 인사를 마무리할 때 문신부의 눈에 눈물이 고여있었다. ⓒ 장태욱


문 신부는 "다가오는 총선과 대선이 매우 중요해"라고 했다. "총선과 대선을 통해 마피아와 싸움을 할 정도의 여건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희망이 없지"라고 지적했다.

천주교 제주교구 소속 사제와 신도들은 매주 목요일 오전에 강정마을 중덕해안에서 평화의 미사를 드린다. 천주교 제주교구 사무처장인 고병수 신부는 "제주교구 남부지구 신부님들이 모여서 강정 해안에서 평화의 미사를 드리겠다는 뜻을 모아 교구장님(강우일 주교)께 건의했더니, 교구장님께서 흔쾌히 허락하셨다"고 했다.

고 신부는 "교구장님은 부당한 공권력과 싸우는 것은 쉽지 않지만 신앙인은 기도와 인내로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한다고 말씀하셨다"고 했다. 고 신부는 "이번 주에 복자성당에서 미사를 주관했으니, 다음 주에는 남원성당이 미사를 주관할 차례"라고 했다.
#강정마을 #해군기지 #평화미사 #문정현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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