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서 왕의 '원탁'은 깨진 돌탁자에 불과했다

[리뷰] 버나드 콘웰 <에너미 오브 갓>

등록 2011.06.27 08:40수정 2011.06.27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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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에너미 오브 갓> 겉표지

<에너미 오브 갓> 겉표지 ⓒ 랜덤하우스

▲ <에너미 오브 갓> 겉표지 ⓒ 랜덤하우스

'아서 왕' 하면 떠오르는 것 중 하나는 바로 '원탁'이다. 대마법사 멀린이 만들고 아서에게 전해진 원탁, 브리튼 최고의 전사들이 둘러앉아서 아서에게 서약했다는 원탁, 이후에 성배를 포함한 성유물을 찾아서 모험을 떠나는 '원탁의 기사'가 탄생한 그 원탁.

 

아서 왕 이야기가 역사가 아니라 전설이라면, 이 원탁은 그 전설 안에 존재하는 또다른 전설일 것이다. 버나드 콘웰의 아서 왕 연대기 2편 <에너미 오브 갓>의 작중화자이자 주인공인 데르벨 카다른은 이 원탁에 대해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 원탁은 전혀 중요한 물건이 아니라는 것이다. 원탁뿐 아니라 훗날 사람들에게 원탁의 기사라고 알려진 모임도 마찬가지다. 아서는 그 모임을 가리켜서 '브리튼 전우회'라고 부르고 싶어했단다. 마치 우리나라의 해병전우회가 연상되는 이름이다.

 

이 브리튼 전우회의 첫 모임은 궁전의 정원에서 열렸다. 모임을 위해 궁전의 대형 아치문 옆에 커다란 탁자가 하나 놓였는데 하필이면 그 탁자가 원형이었다. 그 외형에 특별한 의미는 없다. 그냥 정원에 들여놓기 좋은 모양에 불과했던 것이다.

 

신성한 물건도 아닌 그저 깨진 돌탁자였을 뿐이다. 하루가 끝날 때쯤엔 더 많이 깨졌고 오물로 범벅이 되었다. 술을 퍼마신 전사들이 거기에 엎드려서 구토를 해댔기 때문이다. <에너미 오브 갓>에 의하면 이 원탁에는 마법사의 마력이 깃들어 있는 것도 아니고 성스러운 기운이 서려있는 것도 아니다. 우연히 그 자리에 놓여진 평범한 물건일 뿐이다.

 

역사소설로 되살린 아서 왕 이야기

 

아무튼 이 원탁에서 당시 브리튼의 군벌들이 모여서 서약을 하기는 한다. <에너미 오브 갓>의 배경은 6세기, 브리튼 내부는 여러 개의 왕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왕국들 간의 갈등과 알력이 오랫동안 계속되어왔고, 거기에 더해서 바다를 건너온 색슨족들이 브리튼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또다른 문제도 있었다. 브리튼의 주민들이 기독교도와 이교도로 나뉘어졌다는 것이다. 기독교도들은 예수의 재림을 위해서 모든 이교도들을 추방하거나 죽여야한다고 주장하고, 이교도들은 청빈과 고행을 통해서 신을 섬기는 기독교도들을 이상하게 바라본다. 당시 브리튼은 내우외환이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을 만큼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다.

 

이런 상황이니만큼 아서가 군벌들을 소집해서 서약을 요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아서에게 그럴만한 권력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아서는 둠노니아 국왕의 수호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아서의 명성이 워낙 대단했기 때문에, 그리고 그를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워낙 많았기에 많은 군벌들이 이 모임에 참석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해서 원탁에 브리튼의 실세들이 모인다. 아서는 브리튼의 주적은 색슨족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리고, 색슨족을 몰아내기 위해서는 브리튼 내부의 왕국끼리 더이상 반목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동안 대립관계였던 사람들을 불러다가 화해의 악수와 포옹을 나누도록 요구한다.

 

아서의 주장에 정면으로 반박할 사람은 없다. 이 모임을 통해 그동안의 갈등이 모두 해소되고 브리튼은 단결해서 색슨족과 일전을 벌일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약속은 깨지기 위해서 존재하는 법. 어떤 국왕은 아서를 없애고 둠노니아 왕국을 차지하기 위해서 교활한 수단으로 아서를 궁지에 몰아넣는다. 아서는 어떻게 브리튼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

 

뛰어난 군인이자 몽상가였던 아서

 

작품의 제목을 번역하면 '하느님의 적'이 된다. 아서는 기독교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서 기독교도들을 탄압하지도 않았다. 같은 브리튼인들끼리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면 안된다는 것이 아서의 신념이었다.

 

이런 아서도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극도의 분노 속에서 일부 기독교인들을 학살하기도 한다. 그래서 기독교도들이 아서에게 붙여준 별명이 바로 '하느님의 적'이다. 아서는 평생동안 이 별명 때문에 곤혹스러워했다. 그러니 전해오는 원탁의 기사 이야기처럼 아서가 전사들을 이끌고 성배를 찾아서 떠나는 일은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대신에 아서는 브리튼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해서 노력한다. 평화를 만드는 힘은 성배 같은 전설 속의 물건이 아니다. 그보다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성과 동포애다. 아서는 그 힘을 믿었기에 원탁에서 대립하는 군벌들에게 서약을 요구했을 것이다.

 

물론 이성과 동포애만으로 움직이는 국왕은 흔하지 않다. 아서는 뛰어난 장군이자 전략가였지만 한편으로는 몽상가의 기질도 함께 가지고 있었다. 왕이 되지 못한 왕이자 모든 병사들의 우상, 하느님의 적이면서 색슨족의 공포였던 아서. 전설이건 아니건 아서의 이야기는 여전히 독자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덧붙이는 글 <에너미 오브 갓> 버나드 콘웰 지음 / 조영학 옮김 / 랜덤하우스 펴냄

에너미 오브 갓 - 판타스틱 픽션 블랙 BLACK 9-2

버나드 콘웰 지음, 조영학 옮김,
랜덤하우스코리아, 2011


#에너미 오브 갓 #아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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