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에 계십니까?"... 시골 마을에서 얻은 깨달음

매주마다 집 앞까지 찾아가는 출장진료의 현장

등록 2011.08.12 17:34수정 2011.08.12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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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마당 일 나간 박점진 할머니 집 마당 한켠에 쌓인 양파와 마늘 ⓒ 최성규


금요일에는 일반 환자를 받지 않는다. 가야 할 곳이 있다. 아프다 아프다 해도 직접 걸어서 보건지소에 오시는 분들이 있는가 하면, 문 밖 출입조차 어려운 분들도 있기 때문이다. 금요일은 누워계신 분들을 직접 찾아가는 '출장진료' 날이다.


마을이 여러 군데 있기 때문에, 그 때마다 방문하는 곳이 다르다. 오늘은 상와마을을 찾아가는 날. 네 군데를 찍었다. 우리가 탄 자동차는 양의 창자 같이 구불구불한 골목길을 힘겹게 돌고 돌았다. 겨우 주차를 하고 방문한 첫 번째 집. 박점진 할머니 혼자 사신다. 대문으로 걸어가면서 간호사 선생님이 걱정을 한다.

"할머니 계실지 모르겠네."

동네 마실을 자주 다니시냐고 묻자, 그 정도면 걱정도 안한단다. 그 분은 파킨슨병 환자다. 파킨슨병의 특징으로는 안정떨림, 경직, 느린 운동, 자세 불안정성 이렇게 네 가지가 있다. 이 모두를 골고루 가진 할머니. 허리를 90도로 숙인채로 온몸을 사시나무 떨듯이 떤다. 당장 돌아가실 것 같아 처음 보는 사람은 질겁을 한단다. 예전에 보건관련 조사를 위해 나온 군청직원이 할머니 집을 방문했다. 대문을 열자마자 온 몸을 떠는 할머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깜짝 놀란 직원은 마을회관으로 달려가서 '이장님, 큰일 났어요. 사람이 죽어가요' 라고 외쳤다. '아, 예전부터 저러셔'라는 이장의 말에도 쉽게 굳은 표정이 풀리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몸 상태로 밭일을 나간다는 거다. 간호사 선생님의 예상대로 할머니는 일 나가셨는지, 주인 없이 휑한 집만 눈에 들어왔다.

"아니, 그 상태에서 일을 어떻게 해요?"
"내말이. 허리가 굽었잖아요. 밭에 나가면 바닥에 엎드린대요. 엎드려서 양파, 마늘 심고 풀 뽑고 그러는 거예요. 참."


깜짝 놀래키려고 생일케이크를 사 놓고 기다리는데, 정작 주인공이 그날 안 들어왔을 때의 느낌이랄까. 만나야 할 사람을 못 만나고 가는 건 언제나 찝찝하다. 마당 한켠에 양파와 마늘이 쌓여있다. 샀을 리는 없고 직접 캐내온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는 말이 서글프게 들리는 순간이다.

저렇게 수확한 걸 자식들이 와서 갖고 간다고 한다. 어머님이 아프든 말든 주니까 그저 가져가는 걸까? 아니면 자녀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면서 보람을 느끼려는 어머니의 마음을 헤아린 속 깊은 행동인 건지 나는 모르겠다.

이번에는 헛걸음치지 않길 바라며 두 번째 집으로 향한다. 송옥선 할머니와 김영만 할아버지가 함께 사는 곳이다. 마침 대문 밖에 나와 계신 두 분을 모시고 사브작 사브작 집 쪽으로 향한다. 할아버지는 다리를 옮기는 게 너무 힘들어 보인다. 걸어본 지 오래돼서 어떻게 발을 놀려야 할지 잊어버린 사람 같다. 다음 발을 어디에 디딜지 생각한 다음 발걸음을 옮기는 듯하다. 할아버지 등 뒤로 파리가 달라붙었다. 수십 마리가 달라붙었다. 손으로 쫓아내도 다시 달라붙는다. 날벌레는 천천히 움직이는 사람에게 관심이 많아 보였다. 겨우겨우 쫓아내고 평상에 눕혔다. 맥을 잡고, 문진을 하면서 속으로 침 처방을 구상한다. 침을 맞았다는 만족감에 약간이라도 개운하게 일주일을 지내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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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일심동체 송옥선 할머니와 김영만 할아버지 부부가 나란히 옆에서 침을 맞고 있다. ⓒ 최성규



세 번째 집에 사는 할머니는 마을에서 가장 장수하신 분으로 101살이다. 젊었을 때에도 고생을 해본 적이 없다는 할머니는 나이탓에 힘은 없을망정 피부가 뽀얗다. 깡 말라서 보는 사람이 연민의 정을 느끼는 것도 아니다. 잠시 후 대문에서 소리가 나더니 또 다른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들어온다. 아들과 며느리다.

시어머니와 남편 대신 온갖 궂은 일을 도맡아 한다는 신재순 할머니는 올해 80이신데, 시어머니보다 더 늙어보인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사람의 몸 상태를 결정짓는 건 나이보다는 그가 겪어온 인생의 굴곡이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한데 누워서 침을 맞고 있다. 고부 간이라기보다는 언니, 동생 같아 보이는 인상. 합쳐서 200에 가까운 두 분 나이의 무게에 분위기도 가라앉아 버렸다. 다음을 기약하며 집을 나섰다. 

네 번째 집은 허탕이다. 오늘의 타율은 5할. 돌아다니기 힘든 분들만을 찾아서 왔는데 절반이 없다. 거동이 불편한 분들을 집 밖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힘은 무엇일까? 예전 인도 여행을 할 때의 일이다. 인도 북부지방의 '바라나시'란 곳에 도착했다. 갠지스강이 흐르고 있었고 강가에는 수많은 삶의 모습이 존재했다. 여인들이 빨래를 하고 아이가 목욕을 한 곳에서 염소와 소가 물을 마신다. 그리고 옆에서 시체를 장작 위에 얹고 화장을 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바라나시. 많은 여행객들이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되는 곳.

꼭 외국에 가야 삶을 돌아보는 건 아니다. 자그마한 시골 마을에서 얻은 깨달음이다. 오늘 들렀던 네 집은 네가지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출장진료 #한의사 #공보의 #시골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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