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주간의 주가 폭락, 새 폭풍의 초기 국면?

세계 경제 5대 사건으로 재구성한 경제위기

등록 2011.08.16 19:16수정 2011.08.16 1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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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새롭고 또 다른 폭풍의 초기 국면에 놓여 있으며 이는 2008년 금융위기와는 같지 않다"

 

지금의 위기를 2008년과 비교하며 당시에 비하면 금융회사 부채도 적고 갑작스런 충격 요인도 없지만 해결책을 마련할 여지가 적다면서 세계은행 로버트 졸릭 총재가 던진 말이다.

 

8월 2일부터 12일 동안 세계 주식시장의 대혼란과 패닉이 있었다. 7월 31일 미국 정부와 의회가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협상을 어렵게 타결했다는 것만으로, 그리고 EU의 중심국가에 속한다고 할 이탈리아와 스페인 재정관리에 대한 불신이 높아지고 있다는 정도만으로 보름 동안 폭풍처럼 몰아졌던 세계 금융 충격을 예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만큼 예상을 뛰어넘는 상황급변의 연속이었다. 그리고 대혼란에서 태풍의 눈이 된 것이 8월 5일 S&P가 전격 발표한 미국 신용등급 강등이었다.

 

달러 기축 통화국가이자 여전히 세계 GDP의 1/4 가량을 생산하는 미국에게 S&P가 신용등급을 강등하고 연이어 미국 공기업들에게 이를 적용하면서 사람들은 걱정했던 더블 딥이 우려를 넘어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심지어 미국에 이어 영국과 프랑스도 국가 신용등급이 강등될 수 있다는 소문이 확산되면서 이제 위기는 유럽과 미국이 경쟁적으로 부추기는 양상이 됐다.

 

연속해서 이어지는 주요 정책 결정자들의 발언은 경기 침체 가능성에 점점 무게를 더하고 있다. 우선 8월 9일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공개시장위원회에서 "올 들어 지금까지 경제성장세가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상당히 느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각종 지표는 전반적인 노동시장 상황이 최근 몇 개월간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실업률도 높아졌다. 가계의 소비지출은 둔화되고 있으며, 비(非)주거용 건축물에 대한 투자도 여전히 취약하고 주택시장도 계속 침체돼 있다"고 하여 경기의 급격한 하락을 솔직하게 인정했다.

 

연방준비제도(Fed)의 중심이라고 할 뉴욕연방은행의 총재인 더들리도 지난 13일,  "올 들어 지금까지 경제성장은 우리가 연초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더디"고  "최근 몇 개월 간 노동시장은 재차 악화되는 모습이고 실업률은 9%대로 고공행진하고" 있으며 "그런 탓에 소비지출은 살아날 조짐이 없고 주택경기도 억눌려 있다"고 미국경기 침체현실을 평가했다.

 

실물경제라는 것이 금융시장과 달리 불과 한두 달 만에 상황이 급변할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요 정책 기관들과 결정자들의 실물경제 전망 발언은 확실히 이번 금융 충격 전과 후가 선명하게 대비될 만큼 달라졌다. 그러나 달라진 전망만큼 수습 대책이 달라진 것은 없다.

 

'세계 경제 5대 핵심 사건'으로 재구성해 본 5년

 

그렇다면 현재 미국과 유럽, 아시아를 포함해서 전 세계를 보름동안 흔들고 있는 주가폭락과 패닉은 일시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새로운 위기국면으로의 진입을 알리는 것인가. 당장 8월 세 번째 주부터는 금융시장이 안정될 것인가, 오히려 혼란의 강도가 심해질 것인가. 도대체 금융위기 역사에 2011년 8월은 어떤 위치에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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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2007~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5대 사건(by guardian) ⓒ 새사연

▲ 그림1 2007~2011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5대 사건(by guardian) ⓒ 새사연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는 8월 위기의 성격과 향방에 대해서, 혼란의 한복판이었던 지난 8월 7일자 가디언에 실린 글 "Global financial crisis: five key stages 2007-2011"(by Larry Elliott)은 하나의 의미 있는 시사를 던져주고 있다. 2007년 미국 서브프라임 사태가 터진 이후 지금까지 5년 동안 해마다 금융위기 전개의 가장 중요한 전환점이 된 5가지 사건을 짚어내고 지금의 8월 위기를 그 반열에 올려  놓았다는 것이다.(그림 1 참조)  엄밀한 기준에 의해 금융위기 단계를 나눈 것은 아니지만 역사적인 흐름과 국면 전환의 시점을 추적해 보기 위해 편의상 가디언 글의 5가지 사건을 중심으로 현재의 위기 국면까지 요약을 해보자.

 

1) 세계적 금융공황 개시 알린, 4년 전 프랑스에서 생긴 일

 

가디언이 첫 번째 사건으로 지목한 날은 2007년 8월 9일이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2008년 리먼 파산으로 시작되었다고 알고 있지만 사실은 미국에서 주택가격이 하락세로 급반전하던 2006년 말부터 시작되었고, 주택가격 폭락이 연체와 차압으로 이어지면서 2007년 4월, 업계 2위 모기지 회사 뉴 센트리 파이낸셜(New Century Financial)의 파산으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리고 이런 분위를 다소 늦게 감지한 신용평가 회사들이 곧이어 움직인다. 주택시장이 계속 가파른 하락세를 보이던 2007년 6월 S&P는 100개가 넘는 서브프라임 관련 파생상품에 대해 신용등급을 강등해버렸고 그 여파로 베어스턴스(Bear Stearns)가 투자한 헤지펀드 2개가 결국 파산하면서 다음해인 2008년 3월 베어스턴스 파산을 예고한다.

 

그리고  "2007년 8월 9일 오전 8시 30분, 프랑스의 거대 은행 BNP 파리바가 깜짝 놀랄 만한 발표를 했다. 미국의 서브 프라임 모기지에 투자했던 세 개 펀드에 대한 자산 가치평가 및 환매를 중단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 채권 시장의 몇몇 구역에서 유동성 증발 현상이 완벽하게 발생'했기 때문에 세 개의 펀드 자산에 대해 도저히 가치 평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데이비드 웨슬(2010), "In Fed We Trust",158쪽)

 

이 발표로 유럽 금융시장 전체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유럽 중앙은행의 948억 유로 자금 투입으로 진정되기는 했으나 증시 대폭락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가디언의 표현대로 "이전에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적은 가치밖에 없는 믿을 수 없는 파생상품들이 수집조 달러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던 순간"이기도 했다. 금융공황의 세계적 개시를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 4년 전 8월에 일어났다.

 

2) 2008년 9월 15일, 딱 하루만의 '자유시장의 날'

 

2007년 이후 두 번째 사건이자 2008년 단 하나의 사건을 꼽자면 이견이 없을 사건이 9월 15일 리먼의 파산이다. BNP 파리바 사건으로부터 무려 1년이 지난 후이다. 물론 이 두 사건 사이에는 엄청난 사건들이 줄을 이어 발생했다. 2007년 겨울 씨티그룹을 포함해 주요 은행들이 부실 때문에 아시아 국부펀드의 힘을 빌려 자본을 보강한다. 처음으로 미국 실업률이 5%를 넘어서고 미국은 기술적인 경기침체기로 돌입한다. 해가 바뀌면서도 리먼의 확실한 예고편이라고 할 베어스턴스 파산이 2008년 3월 14일 발생한다. 물론 정부의 적극적 개입으로 JP 모건 체이스가 인수하여 공식 파산을 피한다.

 

이후에도 9월까지 정부보증 최대 모기지 업체인 패니메이와 프레디맥이 부실에 빠지고 정부는 2000억 달러 이상을 퍼부어서 구제해내기도 한다. 리먼 사건 딱 1주일 전의 일이다. 이 시점까지 미국 정부가 한 일은 2007년 여름부터 여섯 차례 이상 금리를 떨어뜨려 2%수준까지 낮춘 것뿐이다. 또한 파산위험이 발생하면 그 때 그 때 인수자를 찾아서 실제로 파산의 진행을 막은 것 정도의 임기응변 대책뿐이었다.

 

리먼 파산 위험이 코앞에 닥쳤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마지막까지 영국 바클레이즈 은행과 인수협상을 벌여 파산을 막고자 했지만 결국은 파산을 용인했다. (한국 산업은행까지 이 국면에 들어와 있었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이를 두고 유럽 중앙은행 관계자들은 "우리는 은행이 파산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심지어 세탁업자가 파산하려 할 때도 그냥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미국인이 리먼을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리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습니다"고 놀라워했다.

 

당시 하원 금융서비스위원회 위원장은 리먼 파산을 내버려 두었던 것을 보고 2008년 9월 15일을 '자유시장의 날(Free Market Day)'이라고 선언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 AIG 파산은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를 두고 그는 "자유 시장에 대한 국가적인 의지는 단 하루 동안만 지속되었다. 그 날은 월요일이었다"고 비꼬았다.

 

리먼 파산 후 1개월도 안 되는 동안 글로벌 금융 시스템 전체에 걸친 도미노 파산을 걱정한 선진국 정부들은 은행 붕괴를 막기 위해 무제한에 가까운 구제 금융을 풀게 된다. 그러나 가디언의 표현대로 "은행들은 아슬아슬한 시점에서 구제되었지만 세계경제가 자유낙하 하는 것을 막지는 못했다" 위기가 월스트리트에서 메인스트리트로 이미 전이되어 버린 것이다.

 

3) 국제공조의 힘? 2009년 4월 2일 런던 G20정상회의

 

2007년 파리바은행의 환매중지로 개시된 금융위기는 2008년 9월 리먼 파산으로 정점에 오르고 실물경제 추락으로 급격히 번졌지만 각국 중앙은행과 정부가 '가능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여' 자금을 푼 덕택에 2009년 2분기 이후 자유낙하는 멈추게 된다. 이미 무력해진 G7을 대신하여 G20을 만들어 국제공조를 신속히 취한 것도 도움이 되었다.

 

2009년 4월 2일 런던에서 열린 두 번째 G20회의에서 정상들은 세계적으로 5조 달러 규모에 이르는 재정확대를 공약하고 별도로 1조 달러 이상을 조성하여 국제 금융기구지원에 쓸 것을 약속한다. 동시에 각종 금융규제 대책들도 준비한다. 물론 가디언은 언급하지 않았지만, 같은 시점에서 미국의 주요 은행들에 대해 스트레스 테스트를 실시하고 그 결과에 따라 추가적인 자금 투입을 약속한 것도 경제추락 방어에 기여하게 된다.

 

2009년 2분기를 저점으로 은행 파산은 멈춘 듯 했고, 실물경기도 조금씩 회복되기 시작한다. 2009년 9월 미국에서의 세 번째 G20회의를 거치면서 국제공조도 탄탄한 것처럼 보였다. 드디어 2010년 6월 캐나다 G20회의와 11월 서울 G20회의에서는 경기회복 정도에 따라 중앙은행과 정부의 개입을 줄이는 '출구전략(Exit Strategy)'을 논의할 것이라는 기대까지 높아지게 되었다.

 

4) 2010년 5월, 그리스에서 시작된 새로운 유형의 위기

 

이미 2009년 10월부터 내부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그리스 국가재정 부실이 2010년 4월 표면화될 때까지만 해도 그것을 세계경제회복을 조기에 멈춰 세우고 새로운 위기가 시작되는 전조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다. 2010년 5월 9일 EU와 IMF는 1100억 유로를 그리스에 투입하는 조치를 취하면서 위기 수습에 나선다.

 

가디언은 이 날이 "문제의 초점이 민간부문에서 정부부문으로(from the private sector to the public sector)로 이전되었음을 보여주는" 분기점이라고 평가한다. 동시에 그리스를 필두로 한 남유럽의 재정적자 급증이 감세와 비재량 복지지출에 기인하기도 하지만, 이와 함께 2008년 겨울부터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쏟아 부었던 재정지출 정책 때문이기도 하다는 점을 적시하고 있다.

 

그리스 재정위기는 EU의 구제 금융에 의해 일시적으로 소강상태로 접어들어 갔지만 이후 아일랜드, 포르투갈의 구제 금융으로 이어지고 지난 7월에는 다시 그리스 위기가 재발되기도 했다. 그러더니 결국 유럽의 작은 국가들이 아닌 경제 규모 3, 4위의 이탈리아와 스페인의 재정우려로 까지 확산되면서 2011년 8월 위기를 예비하게 된다. 그리스 재정위기로 인해 2010년 그 해 6월 본격적인 출구전략을 논의하기로 했던 캐나다 G20정상회의는 순식간에 초점이 유럽 재정위기 수습회의로 이동했다.

 

나쁜 소식은 유럽 재정위기로 끝나지 않았다. 2010년 하반기부터 미국경제의 더블 딥(double-dip) 우려가 표면화된 것이다. 월가의 큰 손 골드만삭스는 미국이 1조 달러 규모의 2차 양적완화조치를 시행할 가능성이 높다고 예언했고, 이에 부응하여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는 2010년 8월 말 잭슨홀 컨퍼런스에서 2차 양적완화를 공식화한다.  그 여파로 2010년 11월 개최된 G20서울 정상회의 주제는 우리 정부가 준비해왔던 출구전략과 '금융위기 이후 세계 경제 질서'라는 희망적인 주제가 아니라 환율전쟁이라는 치열한 논쟁의 장으로 바뀐 바가 있다.

 

5) 2011년 8월 5일, 미국 신용등급 강등은 어떤 국면을 예고하는가

 

결국 1년 넘게 누적되어 온 유럽 국가들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실물경제 둔화 움직임이 집중되어 수면위로 폭발한 것이 지난 8월 2주일 동안의 세계적인 주가폭락 사태였다. 그리고 민간부채가 국가부채위기로 이동했음을 보여주는 완결판이, 월가가 주말 증시를 문 닫을 때까지 친절하게 기다려주었다가 발표한 S&P의 미국 국채 신용등급 강등 발표였다. 그렇다면 8월 위기는 어디로 번질 것인가. 2008년 9월 리먼 사태와 같이 또 다른 최악의 위기를 초래할 분기점이 될까. 아니면 졸릭 총채의 표현대로 '새롭고 또 다른 폭풍의 초기 국면'이 될까. 일단 조기에 쉽게 수습될 성질이 아님은 분명해 보인다.

덧붙이는 글 김병권씨는 새사연 부원장입니다. 새사연 홈페이지에 게시된 글입니다.
#금융위기 #재정적자 #경제위기 #양적완화 #신용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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