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기억에 남을 대원사 다층석탑

보물 제1112호 산청 대원사에서 새로운 탑을 만나다

등록 2011.08.17 11:25수정 2011.08.17 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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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다층석탑 산청 지리산 대원사 경내에 소재하고 있는 보물 제1112호 대원사 다층석탑

다층석탑 산청 지리산 대원사 경내에 소재하고 있는 보물 제1112호 대원사 다층석탑 ⓒ 하주성

▲ 다층석탑 산청 지리산 대원사 경내에 소재하고 있는 보물 제1112호 대원사 다층석탑 ⓒ 하주성

 

우리나라의 석탑 중에서 가장 특별한 석탑을 꼽으라고 한다면, 당연히 지리산 대원사에 소재한 보물 제1112호인 '대원사 다층석탑'일 것이다. 경남 산청군 삼장면 유평리에 소재한 지리산 대원사는, 손꼽히는 참선도량 중 하나로 지리산의 절경과 잘 어우러진 사찰이다. 경내 사리전 앞에 서 있는 이 다층석탑은, 2단의 기단 위에 8층의 탑신을 세운 모습으로 꼭대기의 머리장식은 일부만 남아있다.

 

이 탑이 왜 특별한지는 한눈에 알아볼 수가 있다. 기단부 모서리 기둥 모양을 본 떠 만든 문인상이 네 귀퉁이에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웃기단부 사면에는 사천왕상을 새겨 놓았으며, 탑은 붉은 기운이 감돈다. 석재나 형태 모두가 일반적인 석탑과는 다르다.

 

a 상륜부 상륜부에는 적당한 비율로 찰주가 솟아있다

상륜부 상륜부에는 적당한 비율로 찰주가 솟아있다 ⓒ 하주성

▲ 상륜부 상륜부에는 적당한 비율로 찰주가 솟아있다 ⓒ 하주성

a 몸돌 다층석탑은 2단의 옥개받침을 놓고, 지붕은 경사가 없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몸돌 다층석탑은 2단의 옥개받침을 놓고, 지붕은 경사가 없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 하주성

▲ 몸돌 다층석탑은 2단의 옥개받침을 놓고, 지붕은 경사가 없이 완만한 곡선을 그리고 있다 ⓒ 하주성

 

어렵게 들어가 본 다층석탑

 

대원사 다층석탑이 서 있는 곳에는 일반인들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는 곳이다. 그동안 두어 번 대원사를 찾았지만, 밖에서 탑의 윗부분 밖에 볼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큰 맘 먹고 찾아갔던 터라 종무실 허락을 받고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이 탑은 646년 신라의 자장율사가 부처님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운 높이 6.6m의 탑이다. 석탑 앞에 있는 배례석에는 조선조 정조 8년인 1784년에, 다시 세웠다고 새겨져 있다. 그 후 1989년 해체복원 때에 58과의 부처님 사리와, 사리를 넣는 사리장엄구편이 발견이 되었다.

 

a 몸돌 몸돌에는 양 우주를 새겨 넣었다. 지붕돌의 모습이 소박하다

몸돌 몸돌에는 양 우주를 새겨 넣었다. 지붕돌의 모습이 소박하다 ⓒ 하주성

▲ 몸돌 몸돌에는 양 우주를 새겨 넣었다. 지붕돌의 모습이 소박하다 ⓒ 하주성

a 기단부 기단부에는 사면에 사천왕상을 새기고, 모서리에는 문인상이 탑을 받치고 있다

기단부 기단부에는 사면에 사천왕상을 새기고, 모서리에는 문인상이 탑을 받치고 있다 ⓒ 하주성

▲ 기단부 기단부에는 사면에 사천왕상을 새기고, 모서리에는 문인상이 탑을 받치고 있다 ⓒ 하주성

 

상상을 초월하는 다층석탑

 

그저 밖에서 바라다볼 때는 붉은 색이 감도는 탑으로만 여겼다. 그러나 안으로 들어가 보니, 전체적인 모습에서 다른 석탑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한 마디로 상상을 초월한 모습이다. 2단의 기단부에 8층의 탑신을 올렸는데, 기단 맨 위 갑석을 일층으로 삼아 전체를 9층으로 삼은 것으로 보인다.

 

석탑의 경우 짝수로 몸돌을 올리지를 않기 때문이다. 상륜부에는 탑의 높이와 비례가 되는 찰주가 솟아있다. 그 밑으로는 보주와 복발이 남아있다. 전체적인 상륜부는 보존되지 못했다고 해도, 남은 것만으로도 탑의 모습을 한결 신비롭게 만든다.

 

a 문인상 임진왜란 때 부서진 것을 정조 때 다시 세우면서 문인상을 끼워 넣은 것으로 추정한다

문인상 임진왜란 때 부서진 것을 정조 때 다시 세우면서 문인상을 끼워 넣은 것으로 추정한다 ⓒ 하주성

▲ 문인상 임진왜란 때 부서진 것을 정조 때 다시 세우면서 문인상을 끼워 넣은 것으로 추정한다 ⓒ 하주성

 

2단의 주름이 있는 지붕돌은 약간 투박한 듯하며, 각 지붕돌의 처마는 두껍고 네 귀퉁이에서 약간 들려있다. 맨위 8층 지붕돌에는 금방이라도 맑은 소리를 내며 경내를 잠 깨울 풍탁을 달아놓았다. 현재 달려있는 풍탁은 아마도 후에 달은 것으로 보인다.

 

기단석 사방 모서리를 받친 문인석, 그 이전에는 무엇이?

 

임진왜란 때에 탑이 파괴가 되자, 정조 8년인 1784년에 다시 세웠다는 대원사 대층석탑. 8층이나 되는 탑은 높지만 전체적으로 체감비율이 뛰어나다. 조각은 웃기단부 사면에 새겨 놓은 사천왕상뿐이다. 이 탑은 나라에 경사가 있을 때는 탑에서 서광이 비치고, 향기가 경내에 가득했다고 한다. 또한 마음이 맑은 사람은 근처 연못에 비친 탑의 그림자로 탑 안의 사리를 볼 수 있었다고도 전한다.

 

a 기단부 이단으로 조성된 기단으로 인해 특별한 형태의 탑이 되었다

기단부 이단으로 조성된 기단으로 인해 특별한 형태의 탑이 되었다 ⓒ 하주성

▲ 기단부 이단으로 조성된 기단으로 인해 특별한 형태의 탑이 되었다 ⓒ 하주성

a 관람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에 서 있는 다층석탑을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관람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에 서 있는 다층석탑을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하주성

▲ 관람 일반인의 출입이 제한된 곳에 서 있는 다층석탑을 외국인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 ⓒ 하주성

 

이 탑의 기단부 모서리에 세운 문인상은 왜 세운 것일까? 이 문인상이 조선 정조 때에 탑을 새로 고쳐 세울 때, 사방 모서리에 기둥을 대신하여 세웠다고 추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전에 다층석탑의 사방 모서리에는 무엇이 있었던 것일까? 웃기단부 돌이 일층 몸돌보다 작은 것을 보면, 처음부터 사방에 무엇인가가 몸돌을 받치고 있었다는 뜻이다.

 

문인상을 사방에 세운 이유도, 그리고 그 이전에 있었던 모서리의 모습도 다 궁금하다. 외국인들까지도 이 탑의 아름다움에 반해, 출입금지 구역인데도 들어와 열심히 촬영을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석탑 중에서도 독특한 형태를 갖고 있는 대원사 다층석탑. 처음으로 전체를 다 볼 수 있었던 다층석탑은, 오랜 시간 눈앞에 아른거릴 것만 같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2011.08.17 11:25ⓒ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티스토리 '바람이 머무는 곳'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다층석탑 #보물 제1112호 #산청 #대원사 #문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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