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님, 저 양반 혼자만 할라 그래요!"

등록 2011.08.22 10:17수정 2011.08.22 10:17
0
원고료로 응원
【오마이뉴스는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생활글도 뉴스로 채택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을 통해 뉴스를 좀더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할머니들과의 생활은 재미 그 자체입니다. 목회의 즐거움을 이분들에게서 맛본다면 저의 욕심만 채우는 것이 될까요? 오늘(8월 21일) 주일 낮 예배 끝나고 공동식사를 잘 하였습니다. 주 고객(?)은 할머니들과 학생들입니다. 오늘은 홍합을 넣은 칼국수가 준비되었습니다. 맛있게, 즐겁게 그리고 풍요롭게 먹을 수 있었던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릅니다.


식사 후 잠시 쉬는 시간에 문제가 한 가지 발생했습니다. 제가 잠시 공동 식사 장소로 애용하고 있는 사택 거실을 비운 사이, 할머니들 사이에 가벼운 다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아이들과 같은 마음을 가진 할머니들이라 사소한 것으로 기뻐하고 또 서운해 합니다. 이번에는 마사지하는 문제로 승강이를 하였습니다. 이럴 땐 제가 좀 난처한 입장이 됩니다. 누구 편을 들어주기가 어려우니까요.

벌써 작년 이맘때인 것 같습니다. 부산의 한 교회에서 농어촌목회자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위로회 겸 농촌 목회에 유익한 정보를 교환하는 자리였습니다. 많은 것을 배우고 돌아왔습니다. 그때 선물로 받은 것 중에 안마기(Multi massager)가 하나 있었습니다.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이 기뻤습니다. 저는 별로 쓸 일이 없을 것이지만 저희 교회 노년부 할머니들에게 필요한 기구가 될 것입니다.

가끔 고속도로를 타고 장거리 출타를 할 때, 휴게소에 광고용으로 설치되어 있는 안마기에 10여 분 몸을 맡기고 나면 기분인지 모르겠지만 몸이 가벼워 진 것 같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안마기가 교회에 하나 있다면 노년부 할머니들이 좋아들 하시겠다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 선물로 들어온 거예요. 저는 내심 무척 기뻤습니다. 하지만 저도 또 교회 식구들도 한동안 안마기를 무덤덤하게 대했습니다.

얼마 전부터 아내가 잠자기 전 안마기로 근육 마찰을 하고 잠을 자고 나더니 몸이 개운하다며 자주 사용했습니다. 할머니들에게도 안마기의 효용성을 설명하고 안마 받기를 권하는 것 같았습니다. 7월 말쯤부터 금년 90세 되시는 백태연 집사님이 허리가 아프다며 자주 이용했습니다. 주일 공동식사 후 그리고 수요 노년부 예배 뒤, 그 안마기를 혼자 독차지하다시피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다른 할머니들도 관심들을 갖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할머니들은 안마를 받고 싶어도 먼저 차지한 백태연 할머니의 눈치만 보며 감히 넘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단이 발생한 것입니다. 금년 85세 되신 김두순 할머니가 역시 허리가 아프다며 안마기를 이용하려고 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백태연 집사님이 기득권을 주장하며 안마기를 뺏어 갔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기분이 상한 김두순 할머니가 제게 한 하소연이 이 말입니다.


"목사님, 저 양반 혼자만 할라 그래요!"

백태연 집사님이 혼자 안마기를 독차지하고 있으니 목사님이 좀 타일러서 번갈아 사용할 수 있게 해 달라는 하소연이었습니다. 백태연 할머니는 20분 동안 강약 장단을 섞어가며 돌아가는 안마기의 1회 작동이 부족해 20분이 더한 2회를 받고 댁으로 돌아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아마 안마기의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는 모양입니다. 그럴 땐 따로 모셔다 드리지 못한다는 말에도 걸어서 가면 된다며 안마기에 집착을 보입니다.


저는 백태연 집사님도 함께 들으시라는 생각에 김두순 할머니에게 큰 소리로 말했습니다.

"주일 예배 끝나고는 백태연 집사님과 박옥남 집사님이 안마기 사용하시고, 수요 노년부 예배 뒤에는 김두순 할머니와 김종말 집사님이 사용하는 것으로 하세요."

그 외 또 다른 할머니들은 하지 않아도 된다며 손사래를 쳤습니다. 네 분이 사이좋게 안마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제가 교통 정리를 한 것입니다. 백태연 집사님이 독차지 하시다가 번갈아 사용해야 하니까 좀 서운해 하시는 것 같아서 저는 위로의 말을 했습니다.

"할머니들에게 하나로 정말 부족하다면 하나님께서 또 보내주실 거예요. 우리 함께 기도하도록 합시다."

처음엔 별 관심 없이 대했던 안마기가 이렇게 유용하게 사용될 줄은 몰랐습니다. 짧은 시간 할머니들의 친구가 되어 줄 안마기가 고맙기까지 했습니다. 지난주 안마기를 선물한 그 교회 집사님 몇 분이 지나가는 길에 저희 교회에 들렀습니다. 마침 할머니가 안마기로 근육운동을 하시는 것을 보고, 미리 알았더라면 모 집사님께 부탁해서 하나 선물로 가지고 올 것을 그랬다며 얘기했습니다. 정말 안마기가 하나 더 선물로 들어왔으면 좋겠습니다. 할머니들이 서로 하겠다고 다투지 않아도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할머니들은 순수합니다. 꾸밀 줄을 모릅니다. 아이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작은 것에 기뻐하고, 더 작은 일로 서운해 하십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을 스스로 해결하지 못할 땐 저에게 이르기조차 합니다. 아이가 아빠에게 일러바치듯이 말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기쁨을 느낍니다. 재미를 맛봅니다. 주님께서도 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그런 말씀에 비춰볼 때, 저희 교회엔 천국행에 우선권이 있는 분들이 많습니다. 노년부 할머니들과 교회학교 아이들이 그 주인공들입니다. 저는 이들로 인해 요즘 목회의 기쁨을 만끽합니다. 부럽지들 않으세요?
#안마기 #할머니 #공동식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포도 향기 그윽한 김천 외곽 봉산면에서 농촌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세상과 분리된 교회가 아닌 아웃과 아픔 기쁨을 함께 하는 목회를 하려고 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얼굴 창백한 계산원을 보고 손님이 한 행동
  2. 2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유럽인들의 인증샷 "한국의 '금지된 라면' 우리가 먹어봤다"
  3. 3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일타 강사처럼 학교 수업 했더니... 뜻밖의 결과
  4. 4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꼭 이렇게 주차해야겠어요?
  5. 5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알고도 대책 없는 윤 정부... 한국에 유례 없는 위기 온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