곽노현, 바보이거나 '선의'의 인간이거나

[주장] 험담을 홀로 견딜 그에게 응원을 보낸다

등록 2011.08.31 20:32수정 2011.08.3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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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대가'가 있겠지... 그런데 이상하다 

 

무릇 헌법과 공공 정책은, 오로지 자신의 '사적 이익'에 의해 움직이는 '악당들'을 상정해서 설계되어야 한다 - 데이비드 흄

 

교육개혁의 상징이 곤경에 처했다. 이른바 진보개혁진영 대부분과 민주당 대표까지 나서서 사퇴하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2억을 '선의'로 건넸다는 곽 교육감의 진술을 들었을 때 내 일감도 그랬다. 돌이켜 보면 그 '일감'을 지배한 것은 "다 된 밥에 코 빠뜨린다"는 생각이었다. 오세훈의 초절정 승부수가 실패로 판명난 시점에서 터진 사건이었기에 누구나 그렇게 생각할 법하다. 모름지기 문제가 되는 사안은 재빨리 수습해야 한다. 두 번째는 돈의 액수가 너무 컸다. 200만 원이라도 '선의'를 의심할 만한데 2억이라니, 이건 보통 사람의 생각 범위를 넘어섰다.

 

2억? 이런 돈을 건넸으면 분명히 뭔가 '대가'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건 당연하다. 또 다시 당연히 우리의 머릿속에는 '후보 단일화'가 떠오른다. 촛불이 일렁이는 가운데에서도 낙선했던 2008년 서울교육감 선거의 경험 때문에 우리는 후보 단일화에 목을 맸다. 그러므로 돈을 써서라도 단일화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있었으리라 짐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우리는 위에서 인용한 흄의 경구대로 "모든 인간은 이기적(악당들)"이라는 가정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다. 사회과학 중 가장 '과학적'인 것처럼 보이는 경제학의 인간관, 호모 에코노미쿠스라면 위의 추정은 지극히 합리적이다. 이런 합리적 생각에 대한 반론은 두가지로 나올 수 있다. "과연 인간은 (언제나 대가를 바라는) 이기적 동물일까?" 그리고 "곽노현은 그런 인간들 중 하나인가?"

 

나는 자신있게 첫 번째 질문에 대해 NO라고 대답할 수 있다. 인간은 이기적이기도 하지만, 때론 협동할 줄 알고, 그 무엇보다도 언제나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동물이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행동경제학의 결론이 그렇고 무엇보다도 우리 스스로를 잠깐만 돌아봐도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경제학의 가정이 터무니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다.

 

모든 인간은 이기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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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28일 오후 서울시 교육청에서 긴급회견을 열어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곽 교육감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의 돈을 지원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교육감 후보단일화 과정에서의 대가성은 부인했다. ⓒ 남소연

곽노현 서울시 교육감이 28일 오후 서울시 교육청에서 긴급회견을 열어 공식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곽 교육감은 박명기 서울교대 교수에게 2억 원의 돈을 지원한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지난 6.2 지방선거 당시 교육감 후보단일화 과정에서의 대가성은 부인했다. ⓒ 남소연

적어도 나 스스로는 절대로 이기적이지 않지만(상당히 도덕적이지만) 남들이 모두 이기적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나를 지키기 위해서(바보가 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행동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우리 스스로도 별로 달갑게 받아들이지 않는 행동규범을 자본주의 사회는 우리 스스로 받아들이도록 강요하는 데 성공했다. 경제학은 그것이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태도라고 가르치는 학문이다. 왜? 인간은 호모 에코노미쿠스니까. 그 정도는 아니라도 적어도 인류 최고의 철학자 중 하나인 흄처럼 사회를 유지하려면 그런 법과 규율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우리가 확실히 인정해야 하는 것은 흄의 세계가 문명사회의 '하한선'이라는 사실이다. 경제학은 이기적 인간이 시장을 통해서 조화로운 세상을 이룰 수 있다고, 그것이 유토피아라고 가르치지만 설령 그 모든 시장실패를 다 극복해서 "일반균형"이 달성됐다 하더라도 그 세상은 '하한선', 즉 최저 수준의 사회이다. 폴라니가 갈파했고(실은 동서고금 인류의 모든 지도자들이 그래야 한다고 가르쳤다. 다만 경제학자가 그렇게 얘기했기 때문에 폴라니가 도드라지는 것이다), 실험경제학이 수없이 증명했듯이 인간은 시장 교환 말고도 선물(giving)이라는 행위를 해왔고, 지금도 매일 무수히 하고 있다.

 

그러므로 인간 본성에 대한 올바른 상식으로 생각한다면 곽노현의 2억은 선물(즉 선의)일 수 있다고 판단해야 한다. 이것이 기본 사고(디폴트)여야 한다. 불행하게도 우리는 그런 사람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왜? 우리가 남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기적으로 살고 있기 때문에 뭔가 고결한 사람이 나타나면 왠지 불편해지기 때문이다. 해서 그들도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비루하다는 사실이 증명되기를 기대한다. 이런 반사회적 태도 역시 실험경제학에서 끊임없이 발견된다.

 

그럼 곽노현의 행위가 선물이라는 증거가 있을까? 이건 인간이 이기적이라는 가정 하에서 벌어지는 하한선의 법정에서 밝혀질 일이지만(그러므로 경제학자들과 함께 법조인들 역시 인간 말종에 속할 가능성이 높다^^) 잠깐만 생각하면 얼마든지 그렇게 추측할 수 있다.

 

이해 못할 곽노현...왜 더 많이 줬다고 발표했을까?

 

왜 선거법 공소시효(6개월)가 훨씬 지난 시점에 돈을 건넸을까? 왜 법을 전공한 사람이, 마찬가지로 법을 전공한 사람을 통해 대가성 있는 돈을 주면서 그렇게 허술하게 처리했을까? 지금 사퇴하면 선거비용으로 보전받은 35억 원은 지킬 수 있는데 그토록 어마어마한 액수, 2억의 17배가 넘는 돈을 걸고서라도 지켜야 할 것(즉 그 대가)은 무엇일까? 불법이라면 당연히 액수를 줄여야 하는데 검찰이 발표한 액수(1억 3천만원)보다 더 많이 줬다고 발표한 이유는 도대체 뭘까?

 

이 모두 인간이 이기적이고 곽노현도 그렇다는 하한의 사고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즉 곽노현은 바보이거나 아니면 선의의 인간이라고 결론이 날 수 밖에 없다. 차라리 모든 인간은 악당이라는 전제를 의심해 보는 게 어떨까? 못 박아 두지만 보수 쪽의 혐의에 대해서도 사고는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더 나간다면 혹시 진정으로 깨끗하게 '교육개혁'을 하고 싶어서 구질구질한 일 하나를 정리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이런 상상을 해 보는게 더 합리적일지도 모른다.

 

이제 첫 번째 의문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과연 곽노현의 사퇴가 진보개혁진영의 진로에

도움이 될까? 한 사람을 희생시키면 문제가 해결될 거라는 일감이 옳았던 것일까?  "진보는 무능한 동시에 부패했다"는 프레임, 더구나 사람들이 그렇게 보고 싶어하는 심정에 동조하는 것이 올바른 길일까? 보수적인 법조계가 결국 그렇게 확정할 것이라고 예단할지라도 인생 전체를 걸고 자신의 그 무언가를 지키려는 사람을 좌절시키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될까?

 

내가 아는 경제학으로는 이렇게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곽노현은 바보 아니면 양심있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양심을 지키는 게 장기적으로 올바른 사회를 만들려는 움직임에도 도움이 된다. 앞으로 매일 쏟아질 수만 페이지와 수만 시간의 험담을 홀로 견뎌내야 하는 곽노현 교육감에게 응원을 보낸다. 죽음과 같은 시간이 1년 넘게 아주 천천히 흐를 것이기에.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http://saesayon.org)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글쓴이는 정태인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입니다.
#곽노현 #서울교육감선거 #새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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