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화초등학교 독서 논술부 아이들, 서로 영재 유경 재희. 기사에 소개된 이야기는 지난 여름 방학 때 독서논술에 참여한 유빈, 성민, 성원, 준혁, 혜랑이와 함께 만들었습니다.
송성영
그래도 선생이랍시고 추레한 몰골에 옷차림까지 말끔하게 가다듬고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 공부를 시작한 지 벌써 2학기 째로 접어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아이들과 함께 글쓰기 공부를 하면서 가르치기 보다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자리를 통해 배우는 것이 더 많았습니다.
아이들에게 두려움 없이 생각나는 대로 쓰라 해놓고서는 정작 제 자신의 글 쓰는 일이 두려워 지기도 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진실 되고 정직하게 꾸밈없이 글을 써야 한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동안 과연 사람들을 현혹 시키지 않는 눈속임 없는 글을 써왔는가? 끊임없는 자책 속에서 '글 쓰는 농부'라는 꼬리표가 무색할 정도로 2개월 넘게 글 한 줄조차 쓰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나와는 달랐습니다. 거침이 없습니다. 두려움이 없습니다. 나처럼 온갖 잡생각에 휘둘리거나 잔머리를 굴리지 않습니다. 띄어쓰기나 낱말, 그럴싸한 문장 따위와는 상관없이 생각나는 대로 있는 그대로 거침없이 글을 써나갑니다. 낙서와 다름없는, 아무렇게나 별 생각 없이 쓴 글 속에도 번뜩이는 지혜가 숨겨져 있기도 합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정해진 한두 시간 만에 A4 용지 한 장 분량의 글쓰기는 아이들에게 분명 고되고 지루한 작업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럴 때마다 공동창작을 제안합니다. 선생인 나는 물론이고 아이들 모두가 이야기꾼이 되어 공동으로 짧은 동화 한 편을 만들어 내곤 합니다.
지난여름 방학 글쓰기 교실에서도 역시 고흥군 도화면에 자리한 도화초등학교 독서 논술부 아이들과 머리를 맞대고 이야기 한편을 만들어 냈습니다. 이번 공동창작에서도 역시 아이들, 자신들이 의도하지 않은 지혜를 엿 볼 수 있었습니다.
늘 그래왔듯이 공동으로 이야기를 만들어 나가기 전에 이번에도 내가 먼저 운을 뗐습니다.
고기잡이와 농사를 지어가며 이웃들과 사이좋게 살아가고 있는 한 섬 마을에 천 년이 넘은 큰 나무 몇 그루가 있었다. 여름이면 섬사람들의 그늘이 되어 주고 가을이면 달콤한 열매를 선사했다. 태풍이 불면 바람을 막아 주기도 했다. 그런데 물질문명이 넘쳐나는 육지에 다녀온 섬마을의 몇몇 사람들이 그 나무를 베어 큰 배를 만들자고 했다. 하지만 나이 많은 노인들은 나무를 베는 것을 반대했다."조상 대대로 섬을 지켜주고 있는 나무를 벤다고? 도대체 그 배를 만들어서 뭘 할 건데...""큰 배를 만들어 육지로 나가면 수없이 많은 진귀한 것들을 누릴 수 있다구요.""그 진귀한 것들이 뭐시여?""육지에 나가면 우리 섬에서는 맛 볼 수 없는 온갖 맛난 음식들은 물론이고 세상이 얼마나 넓은지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텔레비전, 컴퓨터, 자동차, 냉장고... 온갖 전자제품을 누리면서 지금보다 훨씬 더 풍족하게 살 수 있어요."
대부분의 섬 마을 사람들은 육지에 다녀온 사람들의 '지금보다 더 풍족하게 살 수 있다'는 말에 현혹되어 노인들의 말을 무시하고 큰 나무들을 몽땅 베어 큰 배를 만들었다.내가 이야기의 첫머리를 설정해 주자 아이들은 저마다 상상력을 발휘해 한 편의 동화로 엮어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나무로 만든 배를 바다에 띄웠다.""그런데 배가 작아서 섬 마을 사람들이 다 탈 수 없었다." "섬 마을 사람들 중에 힘이 센 사람들만 배를 탔다.""힘이 약한 사람들은 불공평해 했다.""그러자 힘이 센 사람들은 다른 섬에 가서 섬 마을 사람들이 다 탈 수 있는 나무배를 크게 만들어 끌고 온다고 했다.""힘 센 사람들은 배를 타고 나무가 많은 섬을 찾아 바다로 나섰다."막상 바다로 나서자 아이들은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야 할지 막막해 했습니다. 내가 한마디 거들었습니다.
"하지만 나무가 많은 섬을 찾기가 쉽지 않았다. 모두가 섬에 있는 나무를 베어 육지로 떠났기 때문이다."아이들은 다시 이야기를 이끌어 나갔습니다.
"나무가 있는 섬을 찾아 먼 바다로 나갔는데 비바람이 심해서 배가 뒤집힐 지경이었다.""뒤집힌 배를 다시 뒤집어 겨우 한 섬에 도착했다.""하지만 그 섬에도 역시 나무가 한 그루도 없었다.""그래서 섬마을 사람들은 실망하여 슬퍼했다."절망감에 휩싸여 있는 섬마을 사람들 앞에서 아이들은 어떻게 이야기보따리를 꺼내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나 역시 어떻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야 할지 막막했습니다. 그 때 한 아이가 엉뚱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모래를 싣고 가요. 섬 마을 사람들이 배에 가득 모래를 싣고 섬에 가요." "모래를 왜? 뭐 하려고?""그냥 모래를 싣고 가요.""나무가 없으니 모래라도 싣고 가는 거냐?""예."이야기는 다시 이어졌습니다.
"모래를 싣고 섬에 도착하자 사람들이 화를 냈다.""그러자 배를 끌고 나갔던 힘센 사람들이 그 모래로 배를 만든다고 했다.""마을사람들은 그 힘센 사람들에게 말했다. 다들 미쳐서 돌아 왔구나, 어떻게 모래로 배를 만들 수 있어?" "섬마을 노인들은 그 힘센 사람들이 미친 것은 섬마을을 지켜주던 큰 나무들을 베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이야기를 받아 나가야 할 한 아이의 이야기보따리가 막히자 내가 다시 나섰습니다.
"큰 나무들이 사라진 섬마을은 여름에 그늘이 없어 더위에 시달렸고, 더 이상 달콤한 열매를 먹을 수 없었다. 큰 나무 숲에 살던 동물들도 어디론가 사라졌다. 또 바람막이를 해주었던 큰 나무들이 사라지자 태풍이 불어 닥쳐 집들의 지붕이 날아갔다." 아이들이 다시 이야기를 받아 나갔습니다.
"그러자 섬 마을 사람들은 다시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그 나무들에서 꽃이 피고 열매가 맺었다.""그리고 동물들이 나타났다.""마을사람들은 나무들이 우거진 숲에서 그 동물들과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하지만 욕심 많은 힘센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모래 배를 만들었다." 내가 옆에서 이야기를 거들긴 했지만 아이들이 만든 섬 마을 이야기는 어른들에게 들려주는 한편의 동화였습니다. 성인(聖人)들은 어른들에게 '어린 아이처럼 되라' 이릅니다. 아이들이 무심코 던진 이야기 속에는 물질문명의 홍수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의 가르침을 주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아이들과 함께 만든 동화를 머릿속에서 꺼내 옮겨 적다가 <오마이뉴스>에 올라온 '제주도 덮을 죽은 모래... 여기서 왔습니다'라는 제목의 기사를 접했습니다. 박채은 기자가 쓴 그 기사의 마지막 구절에는 이런 얘기가 적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낙동강의 그 모래들이 바다를 건넜다. 해군기지 건설이 예정된 제주도 강정마을. 아름다운 구럼비 바위를 뒤덮어버릴 시멘트 콘크리트가 되기 위해 낙동강 그 모래들이 제주도에 있다. 이 개발과 폭력의 시대의 슬픈 윤회다.'아이들이 만든 이야기처럼 좀 더 많이 누리겠다고 큰 나무들을 베어 배를 만들었다가 섬마을이 황폐화 되었듯이 '개발과 폭력'은 자업자득으로 돌아오기 마련입니다. 4대강 개발을 비롯한 이명박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온갖 정책들이 아이들의 이야기 속에 나오는 모래로 배를 만드는 정신 나간 짓거리와 뭐가 다르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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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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