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생 처음 잡은 돌돔. 횟감으로 그만이라는데 처음에는 돌돔인줄 모르고 매운탕을 끓였습니다.
송성영
팔뚝만한 숭어 세 마리에 감성돔, 제법 큰 농어 새끼 두 마리, 학꽁치, 거기다가 좀처럼 잡히지 않는 얼룩무늬 선명한 돌돔까지 낚았습니다. 그렇게 네 사람이 둘러 앉아 먹어도 충분한 횟감을 마련해 평소 신세를 졌던 주변 사람을 불러 들여 풍성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었습니다.
생면부지의 낯선 땅 전남 고흥, 바닷가 산간 오지로 이사 온 지 1년 7개월. 이제 제 자리를 잡은 느낌이 듭니다. 사람 좋은 이웃들과 푸짐한 회에 매운탕, 소주잔을 곁들이고 거기다가 후식으로 밭에서 금방 딴 참외까지. 맛난 저녁 식사를 마치면서 푼수처럼 흡족한 표정으로 아내에게 한마디 했습니다.
"
어뗘? 인저 확실한 반농반어라 할 수 있지 잉?"예전 같으면 "그게 돈이 돼?"라고 타박했을 아내 역시 흡족한 표정을 짓습니다. 아내와 방과 후 강사 일을 하여 두 사람의 수입을 합치면 한 달 평균 150만 원이 조금 넘습니다. 언제 이 수입조차 사라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걱정하지 않습니다. 먹거리를 땅과 바다에서 해결해 가며 최소한의 생계비로 생활해 왔기에 더 이상 나빠 질 것이 없습니다.
적어도 올해는 작년보다 논과 밭을 합쳐 2000평 넘는 농사를 지었기에 더 나은 생활을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올해는 전에 없었던 유기농 쌀을 판매할 것입니다. 또한 남녘 땅 고흥에서 가능한 노지작물, 늦은 가을은 물론 겨울에도 수확할 수 있는 상추, 시금치, 냉이 등도 팔아 볼까 합니다.
판매를 할 수 없으면 어떻게 할 거냐고요? 먼 길 마다 않고 남녘 끝까지 찾아오는 반가운 손님이며 이웃 사람들과 기분 좋게 나눠 먹으면 됩니다. 하지만 농민들의 현실이 그러하듯 내년을 기약할 수 없습니다.
못된 정부에서는 '천하지대본이라는 농민 죽이기'를 작정하고 나섰고 해가 거듭될수록 작물들은 이상기후로 휘둘리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 해도 반드시 민주주의는 진보하게 되어 있듯이 아무리 이상기후에 휘둘린다고 해도 가을은 찾아 오기 마련입니다.
그렇게 가을의 하늘과 땅, 그리고 바다는 여전히 내게 풍성한 식탁으로 이끌어 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기 힘듭니다.
오늘은 밭일을 마치고 소주 한 잔에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색 닮은 해질녘 가을 하늘을 올려다 봅니다. 가을 하늘이 이릅니다. 그 하늘 아래 온갖 생명들이 속삭입니다. 생활에 대한 두려움을 가져다주는 것은 썩어빠진 정치인 나부랭이나 착취하는 자본가 나부랭이도 그 무엇도 아닌 바로 내 자신의 마음자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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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살리고 사람을 살릴수 있을 것이라 믿고 있는 적게 벌어 적게 먹고 행복할 수 있는 길을 평생 화두로 삼고 있음. 수필집 '거봐,비우니까 채워지잖아' '촌놈, 쉼표를 찍다' '모두가 기적 같은 일' 인도여행기 '끈 풀린 개처럼 혼자서 가라' '여행자는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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