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의 피의사실 공표, 이대로 두고 볼 것인가?

도를 넘는 검찰의 범죄행위, 피의사실 공표

등록 2011.09.14 14:30수정 2011.09.14 14:30
0
원고료로 응원
검찰의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한명숙 전 총리와 곽노현 교육감에 대한 수사과정들을 보면 수사내용이 그대로 또는 더 앞질러서 언론에 노출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처럼 수사한 내용이 언론에 보도가 되면 당사자들은 나중에 무죄판결을 받더라도 회복할 수 없는 피해를 입게 되는 것임은 물론 오히려 국가의 수사권 행사가 방해를 받는 경우도 발생할 여지가 있다.

이 때문에 우리 형법 제126조에서는 '피의사실공표죄'라는 것을 규정해서 "검찰, 경찰 기타 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행하는 자 또는 이를 감독하거나 보조하는 자가 그 직무를 행함에 당하여 지득한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에 공표한 때" 형사처벌을 하도록 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형사처벌 규정에도 불구하고 피의사실 공표의 문제는 사그라지지 않고 오히려 증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국가의 원활한 수사권 행사를 보호하고 피의자가 범죄혐의로 인하여 불이익을 입지 않도록 함으로써 그의 인권을 보호하는 한편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을 지켜내기 위해서 도입된 형법상의 처벌규정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것은 한편으로 상대방을 압박해서 기선을 제압하려는 수단으로, 다른 한편으로는 상대방의 반응을 떠보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또한 언론을 통하여 당사자를 파렴치범을 만들어 궁지에 몰아 넣은 다음 자백을 받아내는 수단으로 악용하려는 의도도 있어 보인다. 그렇다면 피의사실 공표가 어떠한 경우에 어느 범위에서 허용되는 것일까?

우선 피의사실공표죄는 수사를 담당하는 경찰, 검찰과 이를 감독하는 자(검사장, 검찰청장, 법무부장관, 지방경찰청장, 경찰청장 등), 그리고 수사를 보조하는 자에게만 적용되는 범죄이다. 영장을 발부한 법관의 경우에도 영장실질심사 과정에서 취득한 피의사실을 공표하는 경우 마찬가지로 적용대상이 된다. 물론 당해범죄수사에 관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취득한 비밀에 한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우연히 취득한 비밀의 경우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또한 피의사실이 진실한 것이냐의 여부는 묻지 않지만 내사단계에서 취득한 사실도 피의사실에 포함되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가 적용되기 위해서는 피의사실을 공판청구 전(공소를 제기하기 전)에 공표하여야 하므로 기소한 다음 사건내용을 발표하는 것은 여기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표는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알리는 것이지만 특정인이나 소수자에게 알리는 것도 전파가 가능한 경우에는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한다. 검찰의 중간수사발표나 신문기자에게 알리는 것이 그러하다. 검찰이 적극적으로 알리는 경우(작위) 뿐만아니라 피의사실이 공표되는 것을 막지 못하는 경우(부작위)에도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다른 유형의 범죄와 마찬가지로 피의사실 공표죄의 경우에도 정당행위나 긴급피난 등의 사유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가 있다. 수사절차상 보고를 하거나 범죄예방의 차원에서 광고를 하는 경우 등이 하나의 예이다. 또한 피의사실을 공표한 검찰이 정당성을 주장하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하기 위해 불가피한 경우 제한적인 범위에서 위법성이 조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하여 위법성이 조각되는 경우는 다른 사람의 인격권과 충돌되므로 엄격히 제한적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범죄의 소명이 충분하지도 않고 치열한 다툼이 예상되는 상태에서 단순히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킨다거나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명분에서 피의사실을 함부로 공표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 왔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러한 피의사실 공표는 검찰이 언론을 통하여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악용하는 경우가 빈번하였던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결코 허용될 수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흔히 검찰이 말하는 '국민의 알권리를 충족시키기 위한 피의사실 공표'는 어떠한 범위내에서 허용되는 것일까? 우선 피의사실의 공표는 국민의 알 권리와 피의자의 무죄추정의 원칙(또는 피의자의 인격권)이 충돌한다. 물론 수사기관의 원활한 수사권의 행사에 대한 침해도 문제되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기로 한다. 우리 헌법상 인간의 존엄과 가치(제10조)나 표현의 자유(제21조) 등에서 도출되는 '알 권리'는 국민이 정보를 수령·수집함에 있어서 국가권력의 방해를 받지 아니하고, 공공기관이나 언론보도를 통하여 제공되는 정보를 수령하여 이를 취사·선택하는 것은 물론 스스로 정보를 수집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까지도 그 내용으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알 권리도 국가의 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을 뿐만아니라(제37조) 그 내재적으로도 일정한 한계를 갖는다. 예를들면 일반국민의 내밀한 사생활의 영역에 속한 경우라든지 헌법상 보장되는 정신적 자유의 침해를 전제로 하는 알 권리의 보장은 허용되기 어렵다 할 것이다. 알 권리로 위법성이 조각되는 피의사실 공표의 경우에도 공적인물(公的 人物, public figure)의 경우에 한해서 어떠한 혐의로 수사를 하고 있다는 정도의 개괄적인 내용을 알려주는 것으로 충분하지 수사의 구체적인 내용을 알려주거나 더 나아가서 수사내용의 직접적인 내용이 아니라 방론적인 사실, 더욱이 그러한 사실 등이 개인의 인격침해적 요소가 있는 것을 알려주는 것은 알 권리의 내재적 한계를 벗어난 것으로 허용될 수 없는 것이다. 과거 노무현 대통령의 수사에서 보았듯이 범죄사실과 그다지 관련없는 내용들을 언론에 흘려 수치심을 자극하거나 심리적으로 압박을 가하는 모습들은 검찰권력의 도덕성, 신뢰성과 공정성에 심각한 타격을 가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피의사실이 공표된 경우 형법상 피의사실공표죄에 해당하여 형사처벌을 받도록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없어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고 해결책은 어떠한 것일까? 피의사실 공표죄로 형사고소를 하더라도 그 수사권의 주체가 검찰이어서 제대로 수사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음 물론 기소되는 경우마저도 거의 없었다. 스스로를 수사하라고 검찰에 권한을 부여한 것 자체가 잘못된 것었이다. 따라서 검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하여는 경찰에서 수사하여야 하고 종국적으로 기소를 하고, 경찰의 피의사실 공표에 대하여는 검찰이 수사와 기소를 하는 방식으로 당사자가 아닌 제3의 기관이 수사와 기소를 하도록 하여야 한다.

또는 피의사실 공표죄의 경우 그 고소가 이루어지고 객관적으로 소명이 있을 경우 검찰의 수사와 기소절차 없이 피의자가 직접 법원에 제소하는 형식이 마련되어야 한다. 물론 공소의 유지를 위해서는 피의자가 선임한 변호사에게 그 권한을 부여하는 형식을 취해야 할 것이다. 어떤 법률가는 피의사실 공표의 경우 증거능력을 부인하는 형식을 취하여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부인의 대상인 증거가 특정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동의하기 어려운 주장이다. 더 극단적으로 피의사실이 공표된 경우 당해 사실로는 기소를 하지 못하도록 하자는 방안도 언급되지만 검찰의 잘못으로 범죄피의자가 일방적으로 이익을 얻는 것도 바람직스럽지는 않는 것이다.

막대한 권력을 행사해 온 수사기관이 국민들로부터 수사의 신뢰성을 얻기 위해서는 스스로 법률적 절차를 철저히 준수하여야 하며 공정성과 도덕성을 확보하여야 한다. 법률에 위반되는 사람을 처벌하는 과정에서 스스로 법률을 위반한다면 어떻게 수사의 정당성을 인정받을 수 있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동안 수사기관, 특히 검찰은 수사과정에서 국민들, 특히 공적인 인물들의 인권보호나 구체적인 적법절차 에 대하여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흔히 그동안의 관행이나 국민을 위한 알 권리를 보장한다는 미명하에 또 다른 인권의 침해사례가 속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제는 검찰 등의 수사기관이 국민들의 우려석인 목소리에 귀기울여야 한다. 자신의 인격권을 지켜내기 위해 때로는 메아리 없는 외침으로 형사고소를 하였던 국민들, 민사소송이라는 지난한 싸움으로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했던 국민들을 더 이상 방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미 사문화된 '피의사실공표죄'를 대신하여 '피의사실중개죄'(피의사실이 공표된 것에 더 나아가서 피의사실이 중개되다시피 하고 있는 현실을 빗대어)를 신설하자는 일부 법률가들의 조롱섞인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김정범 변호사는 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대/로스쿨 겸임교수입니다.


덧붙이는 글 김정범 변호사는 법무법인 민우, 한양대 법대/로스쿨 겸임교수입니다.
#피의사실 #검찰수사 #곽노현 #한명숙 #노무현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AD

AD

AD

인기기사

  1. 1 샌디에이고에 부는 'K-아줌마' 돌풍, 심상치 않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경찰서에서 고3 아들에 보낸 우편물의 전말
  4. 4 '25만원 지원' 효과? 이 나라에서 이미 효과가 검증되었다
  5. 5 하이브-민희진 사태, 결국 '이게' 문제였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