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경원 후보님.
연일 강행인 선거 운동에 건강은 어떤지 걱정되네요. 공인으로 살아간다는 게 참으로 어려운 일인 것 같습니다. 지난 8일에는 선거 준비 때문에 대학 수시 모집 시험에 응시하는 따님을 수험장까지도 데려다 주지 못했다는 기사를 보고 마음이 아팠습니다.
더욱이 그 따님이 다운증후군의 장애를 가지고 있어서 다른 수험생 엄마보다 더 마음이 짠했을 거라고 짐작합니다. 또 장애를 가진 딸 아이의 엄마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보다 더욱 장애인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이유였나요? 요즘 나경원 후보님이 장애인 문제와 관련돼 연일 매스컴에 오르내리고 있네요.
"시각장애인이 제일 우수"... 경악했습니다
▲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는 한나라당 나경원 후보가 7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세종로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빛예술단 정기연주회에 참석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나 후보는 이날 행사 축사에서 "시각장애인이 제일 우수"하다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고 있다. ⓒ 연합뉴스
지난 7일에는 시각장애인 문화예술 행사에 참석해 "이제는 장애인이 먹고 자고 입는 문제만 말할 것이 아니라 문화를 향유할 기회를 줘야 한다"고 말한 뒤 "시각장애인은 장애인 중에서도 제일 우수하며, 우리가 관심을 가질수록 더 역량을 발휘할 것"이라고 말했다죠? 저 역시 시각장애인으로서 그 말을 듣고 기쁜 마음이 들어야 하겠지만 왠지 씁쓸해지는 건 왜일까요?
후보님 말씀이 맞습니다. 이제 장애인이 먹고 사는 문제가 아닌 문화도 향유해야 합니다. 그런데 "기회를 줘야 한다"거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면 더욱 큰 역량을 발휘할 것" 이런 말에서 나 후보님의 인식이 읽혀 마음이 씁쓸합니다.
언제까지 장애인은 비장애인으로부터 끊임없이 관심을 '받고' 무언가 '줘야만' 하는 대상이어야 할까요? 기회 주지 않아도 됩니다. 다만 장애인이 이 사회에서 혼자의 힘으로 일어서려고 할 때 부딪히는 장벽만 사회가 책임지고 없애면 되지 않을까요?
사실 그것보다 더욱 경악한 것은 "시각장애인이 장애인 중에서 제일 우수하다"는 말이겠지요. 시각장애인이 제일 우수하면 두 번째는 어떤 장애일까요? 그리고 제일 열등한 장애인은 또 어떤 그룹일까요? 또 나 후보님 따님이 가지고 있는 다운증후군은 어느 수준에 속할까요?
시각장애인 문화예술 행사라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 발언은 아주 신중하지 못해 보입니다. 또 우수하다는 판단 근거는 무엇인가요? 장애인의 경쟁력을 가지고 서열 매기기를 하는 건 아닌가요?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인간 본연의 모습이나 인간이라는 자체의 고귀함보다 그저 경쟁에서 이길 수 있으면 우수한 존재가 된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겠지요? 어떤 목적을 위해서는 혹시 사람마저 수단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으신가요? 12살이나 된 남자 장애학생을 알몸 벗겨 조명시설에 반사경까지 설치하고 카메라를 들이댄 일은 그런 오해를 충분히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연 혹은 해프닝? 그건 아닌 것 같네요
어쩌면 두 사건 모두 우연히 벌어진 일이거나 하나의 해프닝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장애인에 대한 나 후보님의 의식 단면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에 대해서만이 아니죠.
나 후보님의 여성에 대한 의식을 잘 보여주는 일화가 있습니다. 지난 2009년 11월 진주에서 열린 '경남여성지도자협의회 정기총회' 강연이었던가요. 그때 나 후보님이 "1등 신붓감은 예쁜 여자 선생님, 2등 신붓감은 못생긴 여자 선생님, 3등 신붓감은 이혼한 여자 선생님, 4등 신붓감은 애 딸린 여자 선생님"이라고 하셨던 것 기억나시죠?
나 후보님은 인간에 대해 서열짓기를 좋아하시는 듯합니다. 아니, 나 후보님 마음 속에 그런 서열 매기기가 자신도 모르는 새 자리 잡고 있는지도 모르지요. 선거 유세를 하면서 만나는 서울 시민도 "이 사람은 몇 등, 저 사람은 몇 등"하며 서열 매기기를 하고 있지는 않은지 걱정되네요.
부잣집 딸로 태어나 사람들의 관심 한몸에 받고, 판사에 이제 집권당의 서울시장 후보까지 오르는 등 나 후보님의 인생에서 험난한 고갯길은 없었겠지요. 그래서 인생에서 지치고 힘든 사람을 보면 이해를 할 수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런 사람들을 보면 모두 못나고 무능력한 사람으로 보이나요? 그래서 장애인 등수 매기기 발언이 나온 것 아닐까요.
"장애인 딸 둔 엄마로서"... 관심 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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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의 '중증장애인 알몸 목욕' 논란에 대해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와 전국장애인부모연대 회원들은 지난 9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국가인권위원회앞에서 규탄 기자회견을 열고 진정서를 제출했다. ⓒ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제공
나 후보님은 많은 언론보도에서 '장애인의 자녀를 둔 엄마'로 그려집니다. "나도 장애인 딸을 가진 엄마로서…"라는 나 후보님의 말이 마치 이명박 대통령이 "내가 해봐서 아는데…"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요.
나 후보님. 간절히 그리고 엄중히 부탁드립니다. 장애인에 대해 관심 갖지 말아 주세요. 그릇된 의식과 판단을 가지고 대하는 관심은 오히려 상처가 됩니다. 장애인은 도구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또 마냥 보살피고 무언가 끊임없이 베풀어 줘야 할 상대도 아닙니다. 모든 사람과 똑같이 웃고 울고 사랑하고 싸우는 존재입니다. 다만 조금 불편할 뿐입니다.
이 사회가, 특히 나 후보님 같이 많이 가지고 높은 위치에 계신 분들이 그저 그 불편한 장벽을 허물고, 장애인이 자신의 힘으로 내딛는 발걸음 앞에 있는 걸림돌을 제거하는 데 동참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우리 같이 없고 못난 장애인들보다는 경쟁력 있고 힘센 분들이 힘을 합치면 훨씬 수월할 테니까요.
그렇게 서로를 인정하고 힘을 합치려는 마음이 드실 때 진정으로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져 주세요. 그럼 우리 장애인들도 나 후보님께 진정어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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