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곡고, 나의 모교를 욕되게 하지 말라"

화곡고등학교 17회 졸업생의 한 마디 "부끄럽다"

등록 2011.10.20 14:52수정 2011.10.21 1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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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끄럽구요."

이 정도면 <나는 꼼수다> 주진우 기자의 목소리가 필요할 듯 싶다. 정말 부끄러운 요즘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언론에서 나의 모교를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화곡고등학교. 나경원 서울 시장 후보가 이사로 있으며, 그녀의 아버지 나채성씨가 이사장으로 있는 바로 그 학교. 난 화곡고등학교 17회 졸업생이다.

이번 사태가 벌어지기까지 화곡고등학교를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됐을까? 화곡고는 1990년대 초만 하더라도 나름 지역의 명문으로서(어디까지나 SKY 입학 기준으로, 그렇게 엄마들 사이에서는 회자됐었다), 화곡고등학교에 자식을 보내기 위해 주소를 옮기는 부모까지 존재했지만, 근처 명덕외고의 등장과 함께 평범한 학교로 전락한 전력을 지니고 있다. 그러니 아는 사람만 알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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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곡고등학교 홈페이지 요즘 최고의 이슈가 되고 있는 모교 ⓒ 이희동


물론 졸업생들끼리는 가끔 모여서 자위하곤 한다. 그래도 화곡고등학교를 졸업한 선배들 중 꽤 유명한 사람들도 있다고. 가수 김건모가 6회 졸업생이고, 배우 박해일이 16회 졸업생이다. 그밖에 MBC <종합병원>의 독사 역을 했던 오욱철이 고등학교 선배라는데, 그것은 확인이 안되고.

그런데 이런 졸업생들의 서러움을 알았는지 이번에는 아예 이사장, 아니 정확하게 말하자면 이사장의 딸이자, 홍신학원의 이사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나서서 화곡고를 대놓고 홍보 중이다. 감사가 두려워 회계장부를 무단소각하고, 선생님들의 돈을 걷어 정치자금으로 쓰는 학교로서 화곡고를 동네방네 떠들고 있는 것이다. 이제 10월 26일 서울 시장 선거가 끝나고 나면 사람들은 화곡고를 어떤 곳으로 기억하게 될까?

벽돌은 얼마든지 나를 수 있다... 누구도 학교를 욕보일 순 없다

최근 나경원 후보와 관련해 화곡고의 '벽돌 부역' 이야기가 나올 때만 하더라도 그러려니 했다. 지금이야 호들갑을 떨며 무슨 큰 범죄를 저지른 듯 이야기 하지만, 그때만 하더라도 우리 교육 현장에 그런 일들은 비일비재 했기 때문이다.


당장 나의 경우를 보자. 난 1991년도 중학교 입학 당시 1회 졸업생으로서 체육 시간에 온갖 막노동을 다했다. 당시 학교는 운동장을 완공하지 못한 채 개교를 했었는데, 우리들은 체육시간에 운동장을 완공하기 위해 자갈을 깔고 모래를 뿌리며 리어카를 몰았다. 어차피 어설픈 체육 수업을 듣느니 차라리 막노동이 낫다는 의견들도 있었고, 또 현실적으로 학생들이 선생님의 지시를 거부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때 그것은 그냥 당연하고 으레 그런 일일 뿐이었다.

이런 현실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다고 달라질까? 물론 천만의 말씀이다. 분위기는 더욱 살벌했다. 몇몇 선생님들은 칠판에서부터 교실 끝까지 학생들의 따귀를 때리며 몰아붙였고, 창문밖으로 보면 '미친개'가 학생들에게 이단옆차기를 선사하고 있었다. 1학년 담임은 첫 수업 시간에 우리 학교의 역사에 대해 이야기 했는데 가장 강조했던 말인즉 우리 학교 이사장이 공군 파일럿 출신이라는 사실이었다. '하면 된다'라는 군인정신의 나채성 이사장. 

그래서일까? 화곡고의 경우 특히 교련 시간이 매우 엄격한 편이었는데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학교는 교련시간을 통해 학생들에게 진짜 할 말을 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군대식의 얼차려와 정신교육이 횡행하던 그때의 교련시간. 아마도 학교는 그 수업을 통해 '닥치고 공부하라'라는 의사표시를 했던 것일 테다. 그러니 내가 '벽돌 부역' 같은 일을 웃어넘길 수밖에. 당시 대한민국의 모든 학교는 거의 비슷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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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즐거웠던 고1 수학여행 제발 화곡인의 명예를 더럽히지 마시라 ⓒ 이희동


하지만 '벽돌 부역'에는 무심했던 내가 정봉주 전 의원의 화곡고 관련 비리 폭로에는 흥분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장 어처구니 없었던 사실은 나의 모교가 감사가 두려워 회계장부를 무단 소각했다는 내용이었다. 학생들에게는 교칙을 따지며 두발자유화도 허락하지 않던 학교가 백주대낮에 불법을 저지르는 현실. 도대체 나의 선생님들은 이같은 사실을 알면서 꿀 먹은 벙어리마냥 침묵했으며, 모두 무언의 공범자가 되었단 말인가. 교실에서는 침을 튀겨 가며 윤리를 가르쳤던 그 호기는 모두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

게다가 <나는 꼼수다>에서 정봉주 전 의원이 국회 속기록을 인용하며 열거한 화곡고 비리를 듣고 있자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교사 수를 거짓 보고해 돈울 떼어 먹고, 육성회비 인건비를 떼어 먹고, 심지어는 청소용비, 청소용품비마저 떼어먹었다는 사실. 정녕 나의 모교가 이렇게 쪼잔하고 치졸한 곳이었던가. 대체 학교는 이 비용들을 가지고 무엇을 했단 말인가.

결국 난 오랜만에 모교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갔고,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계신 선생님들을 보며 안쓰러움과 함께 분노를 느껴야 했다. 마지막으로 나경원 후보 및 나채성 이사장한테 이야기 하고자 한다. 나의 모교는 결코 당신들의 소유물이 아니다. 학교는 일부 개인의 자산이 아니라 졸업생, 그리고 현재 학교를 다니고 있는 학생들의 것이며, 따라서 당신들은 우리의 모교를 욕보일 자격이 없다. 하루 빨리 사학법 등을 제정하여 학교운영이 정상화되길 바라며, 요즘 계속되는 언론 보도에 힘들어 할 후배들이여, 힘내시라!
#나경원 #화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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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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