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국의 작은 새>겉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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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되서 경찰서를 들락거린다면, 그 자녀들은 상당한 충격을 받을 것이다. 자녀들의 나이가 어릴수록 그 충격이 만들어내는 상처도 그만큼 커진다.
영화나 드라마에 나오는 것처럼 모범적이고 가정적인 아버지는 아니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나름대로 자식을 사랑하고 가족을 지키려고 했던 아버지. 그 아버지가 살인사건의 용의자라니.
모든 사람들이 서로 알고 지내는 작은 동네라면 소문은 순식간에 퍼진다. "쟤네 아빠가 사람을 죽였대", "경찰이 잡아가는 걸 봤어" 이런 이야기가 돌기 시작하면 그 가족들은 고개를 들고 다니기가 힘들다.
한술 더 떠서 기자들까지 집으로 몰려오는 상황이라면 대책이 서지 않는다. 나중에 혐의가 없다고 밝혀지거나 또는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나더라도 사정은 크게 좋아지지 않는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예전처럼 친구들과 어울리기 힘들 테고 어쩌면 왕따를 당할 수도 있다.
그동안 살아온 고향마을이 전혀 낯선 곳처럼 느껴지고, 다정했던 이웃들은 자신을 이방인 취급한다. 살해당한 사람에게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용의자처럼 취급받는 사람과 그 가족들도 불쌍하기는 마찬가지다. 이들은 어떻게 남은 삶을 살아갈까.
작은 도시에서 일어난 살인사건조이스 캐럴 오츠의 장편 <천국의 작은 새>의 주인공인 크리스타 딜도 어린 시절에 이런 일을 겪는다. 그녀가 11살일 때, 일종의 매춘부였던 조이 크럴러가 목이 졸려 살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경찰은 용의자를 두 명으로 압축한다. 조이 크럴러의 남편인 델레이 크럴러와 크리스타 딜의 아버지인 에디 딜이 그들이다.
남녀를 불문하고, 결혼한 사람이 살해당하면 배우자가 용의자 후보 0순위에 오른다. 델레이가 의심받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일이다. 반면에 에디는 오랫동안 조이의 연인으로 지내왔기 때문에 경찰이 주목하고 있다.
델레이에게는 알리바이가 있다. 델레이의 아들인 애런이 사건이 있던 날 아버지와 밤새도록 함께 있었다고 증언한 것이다. 반면에 에디에게는 이렇다할 알리바이가 없다. 에디의 부인은 에디가 매춘부 살해사건의 용의자라는 사실에 충격과 동시에 배신감을 느낀다. 배신감은 곧 분노와 증오로 변한다.
이제 에디의 집안은 콩가루처럼 변해버렸다. 에디는 집에서 쫓겨나고 자식들도 마음대로 만나지 못한다. 딸인 크리스타는 아빠가 살인자가 아니라고 믿고 여전히 아빠를 사랑하지만 엄마의 강요 때문에 아빠와 함께 저녁식사도 하지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이것 말고도 힘든 일이 있다. 피해자인 조이의 아들 애런과 크리스타는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다. 애런도 크리스타가 용의자의 딸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애런은 크리스타의 아빠가 자신의 엄마를 죽였다고 믿고 있다. 크리스타는 애런의 아빠가 진짜 범인이라고 생각한다. 원수는 외나무 다리에서 만나는 법. 이 두 아이는 운명처럼 학교와 동네에서 계속해서 마주치게 된다.
죽음과 삶 사이에서 방황하는 아이들마치 범죄소설같은 설정이지만, 작품의 전개는 전혀 그렇지가 않다. 누가 살인사건의 범인인지 범행의 동기는 무엇인지 등을 추적하고 추리하는 과정은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형사들이 나오는 장면도 몇 안 된다.
대신에 작가는 나이 어린 소년소녀의 내면을 묘사하고 있다. 크리스타는 슬픔에 잠겼지만 그래도 딛고 일어서려고 노력한다. 원래 약간 삐딱한 기질을 가지고 있던 애런은 그 사건을 계기로 점점 문제아처럼 변해간다. 증오에 사로잡힌채 타인을 공격해서 자신을 지키려고 하는 것이다.
성격은 정반대지만 이들에게도 공통점이 있다. 그 사건 때문에 커다란 상처를 받고 깊은 상실감에 사로잡혀 있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들은 너무도 일찍 죽음을 보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것도 자신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그 죽음 속에서 이들은 삶의 비밀도 보았을 것이다. 가족을 잊고 엉망이 된 자신의 삶도 잊은 채로 매춘부의 길을 걸어갔던 한 여인을 통해서 죽음은 쉽다는 것을, 죽음은 삶보다 훨씬 더 쉽다는 그 비밀을 보았을 것이다. 작품을 읽다 보면 잔인한 살인사건의 진상보다는 이 아이들이 어떻게 성장할까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된다. 어떤 죽음은 주변 사람들의 삶을 영원히 바꾸어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