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송미술관에서 신윤복의 그림에 취하다

조선시대 다양한 계층의 풍속화 영상으로 보는 듯한 감격 선사

등록 2011.10.25 20:14수정 2011.10.25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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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단오풍정' 초여름 더위가 시작되는 단오날 여인들이 윗도리를 벗고 머리를 감는 모습을 마치 숨어서 엿보고 그린 것처럼 재미있게 묘사했다. ⓒ 간송미술관


10월 18일 오전 9시 45분께 간송미술관에 도착했다. 서울 성북동 성북초등학교 정문과 각을 이루며 울창한 숲으로 우거진 넓은 정원을 가진 집의 대문이 활짝 열려져 있었다. 1년에 두 번 문을 열기로 유명한 민간미술관으로 2011년 가을전시회 '풍속인물화대전'을 맞아 15일간 개방되고 있었다.

이번 전시회는 지난 16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다. 내가 찾은 날은 셋째 날로, 안으로 들어가니 왼쪽으로 꺾인 길이 있고, 흰 직사각형의 3층 건물이 보였다. 그 건물 왼편으로 벌써 도착한 사람들로 줄이 형성돼 있었지만 다행히 길지는 않았다. 내가 찾은 날은 화요일이었고, 이른 시간이었기 때문에 곧 오전 10시가 되자 바로 입장할 수 있었다.


미술관 안으로 들어가 조선시대의 화가들이 직접 그린 그림을 보면서 벌어지는 입을 다물 수 없었다. 조선 500년 동안 변천해온 풍속화를 보면서 당시 우리 조상들의 모습을 살아 움직이는 다큐멘터리 영상으로 보는 듯한 감격을 느낄 수 있었다.

물감을 비롯해 그림 그리는 도구가 발전하지 못했던 시대에 어쩌면 그렇게 세밀하고 섬세하게 스케치를 해서 색깔까지 입혔는지 궁금하고 신기했다. 세월이 수백 년 흐르면서 다소 색깔이 바랬지만 비교적 잘 보존된 상태였다.

신윤복의 '미인도'에서 단아하고 아름다운 조선의 여인상을 발견할 수 있었고, 장승업의 그림은 도교적이었으며, 김명국의 그림은 남성적인 필치가 강한 인상을 풍겼다. 김홍도는 말등에 거꾸로 앉아 타고 호기를 부리는 노인을 그린 그림이 인상적이었는데, 대부분의 화가들이 당시의 시대상을 엿볼 수 있도록 서정적이면서도 낭만적인 모습의 양반이나 선비들은 물론이고 일반 서민들의 모습까지 진솔하게 담아냈다.

2층의 전시실에는 화폭이 그리 크지 않은 그림들만 전시돼 있었다. 보통 초·중학생들이 미술시간에 사용하는 스케치북 크기 정도의 화폭이거나 그보다 작은 화선지에 그린 그림들이었는데, 남녀간 연애하는 모습이나 여인들끼리 야외에서 단오를 즐기거나 목욕하는 등 마치 숨어서 엿보고 그린 듯한 장면들이 많아 눈길을 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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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송 전형필 흉상 간송 전형필 선생의 흉상이 간송미술관 정원에 세워져 있다. 그가 사재를 털어 해외에 반출된 문화재를 찾아온 덕분에 우리는 조상들의 풍요로웠던 정신세계와 조신시대의 다양한 풍습을 볼 수 있게 됐다. ⓒ 허성수


특히 전시실 가운데 유리관 속에 전시된 신윤복의 풍속화가 압권이었다. 남녀가 달빛 아래서 연애하는 모습을 담은 '월하정인'과 '월하밀회', 야간통행금지를 무릅쓰고 남녀가 나다니는 '야금모행', 단오날 윗도리 벗고 젖가슴을 드러낸 채 창포물에 머리를 감으며 목욕하는 여인들의 모습을 그린 '단오풍정'….


그런데, 신윤복의 그림 하나를 집중적으로 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웃음소리와 함께 그 중 한 남성이 설명하는 이야기가 들렸다. 그림의 제목은 '이부탐춘', 이 말의 뜻은 '과부가 봄볕을 즐기다'라고 되어 있었다. 60대로 보이는 아저씨의 이야기가 이렇게 들려왔다.

"과부가 봄날 마당에서 개 두 마리가 교미하고 있는 장면을 보고 있어요. 그런데 그 옆에 몸종이 그 모습을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과부의 옆구리를 찌르며 민망해 하는 장면을 그린 것이죠."

기자가 그들이 비켜간 자리에 비집고 들어가 보니 정말 그의 해석이 정확하게 느껴졌다. 조그만 강아지 두 마리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서서 엉덩이를 마주 부비고 있었고, 단아하게 머리카락을 뭉쳐서 묶어 단장한 사대부 집안의 과부와 몸종이 그 놈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림을 자세히 보면 여종의 오른 손이 과부의 허리춤을 꼭 잡고 있는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다소 시무룩한 표정의 여종은 "아씨, 이러시면 안 돼요!"하면서 보지 말라고 만류하는 모습이 틀림없었다.

30분 정도 관람하고 밖으로 나오니 기다리고 있는 줄은 훨씬 더 길어져 있었다. 10월 30일(일)까지 전시하니까 가능하면 주말을 피해 평일날 아침 일찍 가면 많이 기다리지 않고 관람할 수 있다. 관람료는 무료다.

덧붙이는 글 | 동북일보에 보도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동북일보에 보도했습니다.
#간송미술관 #신윤복 #조선 #풍속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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