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2차 효과 6%p인데...박근혜는 휘청"

한나라당 "보수 총집결했음에도 패배, 허탈"...내년 대선 먹구름

등록 2011.10.27 03:49수정 2011.10.27 03:49
0
원고료로 응원
선거는 구도다. 틀이 어떻게 만들어지느냐가 가장 중요하다. 후보는 그 다음이다. 후보와 그의 개인기가 미치는 영향은 2, 3%p정도다.

이렇게 보면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는 처음부터 한나라당이 이기기 어려운 선거였다. 야권이 'MB심판'을 밑바탕으로 단일후보를 내면서 한나라당과 1:1로 맞서는 구도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장 선거, 처음부터 한나라당 승리는 어려웠다

a

10.26 보궐선거가 치러진 26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개표 상황실에 나경원 후보가 고개를 숙인채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야권은 야권통합(야권단일정당) 흐름엔 지지부진했지만, 박원순 후보로의 단일화에는 뜻을 모았다. 야권 내에서 가장 거리가 먼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조승수 전 진보신당 대표가 (박원순 후보 방송 CF에서) 나란히 서서 노래를 부르고 하이파이브를 하는 장면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또 이번 선거가 무상급식 주민투표라는 오세훈 전 시장의 정치적 도박에 한나라당이 동조하면서 만들어진 무대라는 점에서, 한나라당으로서는 명함을 내밀기 쉽지 않은 선거였다. 결국 선거는 '한나라당 대 반한나라당' 구도로 시작됐다.

게다가 강남에 살지는 않지만 강남 이미지가 물씬 풍기는 나경원 후보는 전면무상급식 반대 공약부터 이미지까지 오 전 시장과 차별성을 찾기 어려운 인물이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다른 카드를 찾아내지 못했다.

한나라당의 한 의원은 "판 자체가 우리에게는 어려운 선거였고, 나경원 후보는 모두가 예상할 수 있는 카드였다"며 "우리에게 최선은 예상 가능한 카드인 나 후보를 누르고 본선에 나갈 수 있는 인물을 만들어내야 하는 것이었는데, 홍준표 대표나 박근혜 전 대표 모두 그런 정치적 상상력은 갖고 있지 못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 틈을 메우기 위해 한나라당은 택한 것은, 자신들에게는 관성적이고 대중들에게는 식상한 색깔론과 네거티브였다. 효과가 나타났다. 중도층이 흔들리면서 나 후보가 맹추격하자 박 후보 측은 당황했고, TV토론을 포기하기도 했다. 선거 구도 또한 한나라당 심판이 아니라 박원순이냐 아니냐는 식으로 흘러가는 듯했다. 그러나 거기까지였다.

진보언론의 검증이 본격화되고 민주당 '선수'들의 역공이 시작되자 오히려 나 후보가 휘청거리는 상황이 됐다. 부친의 사학재단 문제, 저축은행과의 유착 의혹, 나 후보 측이 가장 격하게 반응한 고가 '피부클리닉' 논란, 남편의 기소청탁 의혹 등. 한국의 보수가 진보에게 도덕성 공세를 감행한 것은 역시 무리수였다. "박원순이 서울시장이 되면 서울광장이 좌파의 체제 전복을 위한 투쟁기지가 될 것"이라는 한나라당의 색깔론 선동은, '아군'의 피는 끓게 만들었으나 대중적인 영향은 거의 없었다.

청와대도 한나라당에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들인 김두우 홍보수석과 신재민 전 차관 비리 스캔들에 이어 내곡동 대통령 사저 문제까지 터지면서 가뜩이나 무거운 나 후보의 발목을 잡았다. 그리고 한나라당은 결국 패배했다.

a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나경원 서울시장 후보가 18일 오전 범외식인 10인 결의대회가 열리는 잠실종합운동장을 방문해 참석자들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하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한나라당 조사, "'안철수 2차 효과'는 6%p"

이번 선거가 한나라당에 준 최대의 타격은 박근혜 전 대표의 수도권 중도층에서의 한계가 그대로 노출됐다는 점이다. 한나라당은 안철수 교수가 박원순 캠프를 방문한 24일, 당 자체조사 결과에서 전날까지 나경원이 2~3%p 우위였는데, 박원순 4%p 우위로 뒤집어졌다고 말했다. 나경원 캠프의 한 핵심관계자는 "안철수 (2차 등장) 효과가 여론조사 지수상으로는 6%p인 셈"이라고 허탈해했다.

이명박 정부 집권 이후 처음으로 3년 9개월 만에 선거무대에 등장한 박 전 대표는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된 13일부터 뛰어다녔지만, 막판에 잠깐 등장한 안철수 교수의 '로자 파크스 편지'를 넘어서지 못했다.

윤희웅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조사분석실장은 "박 후보와 나 후보의 득표율 차이의 대부분은 사실상 안 교수 2차 등장의 효과로 봐도 무방할 것"이라고 말했다. 윤 실장은 "나 후보 측의 네거티브 공세가 펼쳐지면서 무당파·중도층이 이탈해 양 후보의 지지도 차이가 거의 없던 상태에서 안 교수가 박 후보 캠프를 방문했다"며 "48.6%라는 재보선 사상 유례 없는 높은 투표율은 젊은 층과 직장인들뿐 아니라 동요하던 무당파·중도층이 다시 결집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박 전 대표와 안 교수의 선거지원 효과를 직접 비교한 조사에서도 안 교수의 영향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 YTN 출구조사에 따르면 나경원 후보에게 투표하는데 박근혜 전 대표의 지원이 영향이 있었다고 밝힌 응답자가 19.4%였고, 박원순 후보에게 투표하는데 안철수 교수의 막판 지원의 영향이 있었다고 답한 응답자가 28.6%로 9.2%p높게 나타났다.

a

박원순 야권통합 서울시장 후보가 24일 지지방문한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있다. ⓒ 남소연


박근혜 보고 나경원 찍었다 19.4% - 안철수 보고 박원순 찍었다 28.6%

이에 대해 친박(박근혜계) 인사들은 "이번 선거는 '나경원 선거'였다는 점에서 서울시장 선거 결과만 갖고 박 전 대표의 영향력 수준을 판단할 수는 없다"고 반박하고 있지만, '박근혜 대세론'에 확실한 파열이 났음은 부인하기 어렵다.

안 교수가 처음 정치무대에 등장한 것은 9월초 '5박 6일'이었다. 박원순 후보의 손을 들어주고 무대 아래로 내려간 뒤 정치적이라고 할 만한 활동은 전혀 없었으나 그 바람은 여전히 태풍 수준이다. 그의 퇴장 이후 약 한달 보름 뒤인 이달 16, 17일 지상파 방송 3사의 차기 대권후보 조사에서도 안철수 교수는 44.2%를 얻어 36.4%에 그친 박 전 대표를 7.8%p 차이로 앞섰다.

한나라당에서는 서서히 '박근혜 대체재'를 거론하기 시작하겠지만, 대안은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박근혜 대체재가 아니라 보완재"(홍준표 대표), "박 전 대표와 난쟁이들 수준"(김문수 경기지사)이라는 말처럼 남은 1년 동안 새 카드가 나오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당장에는 김 지사, 정몽준 의원, 내년 총선에서 당선될 경우의 김태호 의원 등이 거론되겠지만, 무게감은 현저히 떨어진다.

한나라당의 총체적 역량의 한계도 드러났다. 자당 후보를 못낸 민주당이 전력투구를 하지 못한 상황에서도 민주당에 패배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8.24 (무상급식) 주민투표로 이미 워밍업이 돼 있는 상태에서 '총보수'는 이번에 총집결한 반면, 진보 쪽은 민주당 바닥까지는 움직이지 않았다는 점에서 총집결한 상황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a

10.26 보궐선거가 치러진 26일 저녁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 마련된 나경원 한나라당 서울시장 후보 선거개표 상황실에서 나경원 후보의 선대위원장을 맡은 이종구(가운데), 박진(오른쪽) 의원과 선대위대변인 안형환 의원 등 지지자들이 지상파 방송3사 출고조사 결과를 지켜보며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 유성호


"내년 총선 생각하면 섬뜩"..."홍준표·나경원도 위험"

한나라당 의원들 특히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의원들의 동요는 불가피하다. 박 전 대표까지 출동한 총력전을 펼쳤음에도 큰 차이로 패배했다는 점에서, 나경원 캠프 상황본부장인 권영진 의원(서울 노원을)은 "내년 총선에 나가야 할 입장에서 이런 상황이 어떻게 느껴지느냐"는 질문에 "섬뜩하다"고 답했다. 다른 의원도 "서초, 강남, 송파, 용산 외에 모든 지역, 즉  홍준표 대표(동대문을)나 나경원 후보(중구)도 위험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홍준표 대표는 선거결과에 대해 부산동구청장 등 기초단체장 선거 승리를 근거로 "이겼다고도 졌다고도 할 수 없다"고 말해, 책임론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박근혜 전 대표도 곧바로 어떤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점쳐진다. 그러나 당장 내년 총선에서 전멸 위기가 현실화된 서울과 수도권 의원들이 조용히 있을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한나라당의 한 중진의원은 "서울시장 선거 결과는 국민들과 서울시민들이 새 정치와 구 정치를 기준으로 판단하고 있으며, 민주당에 이어 한나라당이 그 대상이 됐음을 보여줬다"며 "박 전 대표는 대세론을, 홍 대표는 당권을, 의원들은 공천을 버릴 자세를 갖지 않으면 어떤 돌파구도 이뤄낼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상황"이라고 말했다.

이 모든 상황은 직접적으로는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정치적 도박으로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서울시장 보선 #안철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단독] 대통령 온다고 축구장 면적 절반 시멘트 포장, 1시간 쓰고 철거
  2. 2 플라스틱 24만개가 '둥둥'... 생수병의 위험성, 왜 이제 밝혀졌나
  3. 3 '교통혁명'이라던 GTX의 처참한 성적표, 그 이유는
  4. 4 20년만에 포옹한 부하 해병 "박정훈 대령, 부당한 지시 없던 상관"
  5. 5 남자의 3분의1이 이 바이러스에 감염돼 있다고?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