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터 칼 조각' 맞아봤어요? 정말 두렵습니다

[비정규직 분투기④] 초보 노동자가 겪은 '도배노동' 석 달

등록 2011.11.06 11:18수정 2011.11.06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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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도배를 시작한 지 3개월 되는 '초보' 도배 노동자다. 집에서 탱자탱자 놀고 있던 나에게 엄마 친구인 커튼집 아줌마가 도배를 해보라고 권하셨다. 배우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실내에서 일하기 때문에 위험하지도 않고, 잘만 하면 돈도 벌 수 있는 직업이라고 말씀해 주셨다. 뭐라도 해보고 싶다는 생각에서 우선 도배 학원을 찾았다. 커튼집 아줌마의 '예상'은 적중했다. 학원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도배 배워두면 좋죠~. 처음엔 조금 힘들 수도 있지만, 배우는 게 그렇게 어렵지도 않고 잘만 하면 돈도 벌 수 있거든요! 대한민국에서 도배 안 한 집 봤어요?"
"여기서 배우고 나면 바로 취업이 되나요?"
"아파트 건설 현장 쪽으로 가든가 지물(인테리어 가게) 쪽으로 가는데, 지물은 인맥이 있거나 영업을 해야 가능한 거고 시작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건설 현장으로 가죠. 영도씨도 그쪽으로 갈 거예요. 요즘, 소장들이 사람 없다고 난리예요~. 50대도 좋으니까 걸어다닐 수만 있으면 보내달라고 하거든요. 영도씨는 젊으니까 내다놓으면 바로 나갈 거예요."

내다놓으면 바로 나간다? 난 내가 얼마에 팔릴까 궁금했다.

"처음에 시작하면 일당으로 해서 5만 원씩 받을 거예요. 그리고 나중에 기공(기술자)이 되면 돈 버는 거죠. 뭐~."

나는 학원에 등록했다. 그리고 그곳에서 같이 배울 분들을 만났다. 대기업에서 명퇴당하신 50대 아저씨, 사업으로 잘나가다가 맛있게(?) 말아먹고 오신 40대 중반의 아저씨, 영어 강사를 하다가 오신 30대 후반의 형님, 이런저런 건설 노동을 하시다가 오신 40대 후반의 아저씨, 자기 말로는 "한국 영화계의 80퍼센트를 함께했다"는 조명감독 출신의 30대 중반 형님, 사교육비로 허리가 휜다며 오신 40대 아줌마, 9급 공무원 시험 준비에 시간만 허비하다가 오신 '나'…. 모두들 학원장이 웃으며 말한 것을 믿고 시작한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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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배 일을 하는 모습 ⓒ 강무성


공무원을 꿈꾸던 나, '도배 노동자'가 됐다

나는 학원을 졸업한 뒤, 서울 송파구 쪽에 있는 재건축 현장으로 취업이 됐다. 그곳은 대기업 S물산이 원청으로 되어 있었다. 소장이 나에게 J장식회사의 이름이 적혀 있는 안전모를 줬다. 나는 사장이 누군지도 모르는 하청업체의 일용직 '근로자'로 계약이 되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오전 6시 40분까지 현장에 도착한다. 체조를 하고 원청 관리자의 훈계까지 듣고 나면 7시 20분 정도 된다. 여유롭게 모닝 커피를 즐긴 다음에, 7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하면 된다. 낮 12시까지 신나게 도배를 하고 점심을 먹는다. 그리고 다시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도배를 하고 나면 하루 일과가 끝난다.

건설 현장에서 보면 도배는 마무리 단계에 적용되는 노동이다. 그렇기 때문에 중장비를 사용하는 노동에 비하면 덜 힘들고 덜 위험한 것이 사실이다. 또 실내에서 작업하는 것도 장점이다(그렇다고 여름에 에어컨 바람이 나오거나 겨울에 보일러를 돌리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도 도배 학원을 졸업하고 현장에 나온 사람들 중 열에 여덟은 중간에 그만둔다. 그 까닭 중 하나가 '나름' 일이 고되다는 것이다.

현장에서는 아파트 각 세대를 돌며 하루 종일 도배를 해야 한다. 우마(발판) 위에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면서 붙이고 떼고 자르는 것을 계속한다. 천장에 벽지를 붙일 때는 목과 허리를 뒤로 최대한 젖혀야 한다. 그래서 그런지, 얼마 전 원청에서 실시한 신체검사에서 우리 팀 모든 사람들의 요추 4번, 5번이 퇴행성이라고 나왔다. 모두들 직업병이라면서 쓴웃음을 지었던 것이 기억난다.

벽에 벽지를 붙일 때는 벽지의 3분의 2 정도를 기공이 우마에 올라가서 붙이고 내려온다. 그럼 나머지 3분의 1은 나 같은 초보들이 마무리한다. 기공이 먼저 붙이면서 치고 나가면 초보는 그 속도에 맞춰서 나머지 벽지를 붙여가야 한다. 그때 계속 쪼그리고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해야 하기 때문에 허리나 무릎에 무리가 온다.

거기다가 작업 중간에 휴식 시간이나 새참 먹는 시간은 없다. 쉬고 싶을 때는 소장이나 반장 눈을 피해가면서 알아서 쉬면 된다. 물론 느긋하게 하면 편하겠지만 소장이나 반장은 시간과 속도가 곧 돈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유를 부릴 수 없게 한다. 장식회사와 계약한 물량을 빨리 처리하고 남는 시간에 다른 현장으로 가야 한다. 그렇게 해야지만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이상한 놈, 하기 싫으면 나가면 될 거 아냐"

누구나 그렇겠지만, 이 일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인간답게' 밥 먹고 살기 위해서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도배 기술을 습득해야 한다. 예전처럼 특정한 기술 없이 '막도배'를 하는 것이 아니다. 더 잘 붙이고 더 오래 붙어 있게 할 수 있도록 나름 섬세한 기술과 이론들이 필요해졌다. 그런데 몇 년 전만 해도 도배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 현장이나 지물에 직접 찾아갔다고 한다. 돈 안 받고 일해줄 테니 도배 기술을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소장도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너 학원에다가 얼마나 갖다 바쳤어? 학원에 왜 가냐? 바로 현장으로 오면 기술 가르쳐줘~ 돈도 줘~ 얼마나 좋아? 학원은 그냥 직업소개소야."

그만큼 체계적으로 기술을 습득하고 숙달할 기회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어디나 마찬가지겠지만, 그것은 곧, 기술을 쥐고 있는 소장이나 반장의 힘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그래서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아도 참아야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상황 때문에 중간에 그만두는 사람이 열에 여덟 중 또 일부를 차지한다. 나와 함께 일을 했던 조명감독 출신 형님도 한 달 만에 그만뒀다. 매번 소장과 부딪히는 형님을 보고 소장이 혼자 중얼거렸다.

"이상한 놈이네. 하기 싫으면 나가면 될 거 아냐. 저 말고도 여기 올 놈들은 많다고…."

하지만 불가피하게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 안전사고 때문이다. 도배는 실내에서 작업하고 위험한 중장비들을 사용하지도 않는다. 기껏해야 도배지를 자를 때 사용하는 커터칼 정도가 전부다. 그러나 커터칼을 부주의하게 사용하면 사고가 난다. 옆에서 작업하는 동료의 얼굴을 그을 수도 있고 커터칼날 조각이 눈에 들어가서 실명할 수도 있다.

나도 기공이 벽에다 부러뜨린 커터칼날 조각 때문에 눈을 다칠 뻔했다. 칼날 조각이 내 얼굴 왼쪽으로 스쳐지나간 것이다. 칼날 조각이 조금만 더 오른쪽으로 날라왔거나 내 얼굴이 왼쪽으로 조금 더 가 있었으면 왼쪽 눈을 다쳤을 수도 있다.

또 도배지를 붙일 때, 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본드, 바인더, 아크졸 같은 접착제들도 사용한다. 시간에 쫓겨서 아파트 40세대의 벽을 본드로 급하게 칠한 적이 있는데, 그때 왼쪽 눈가에 본드가 많이 튄 적이 있다. 다행히도 현재 내 왼쪽 눈은 멀쩡하게 잘 붙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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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장에 벽지를 바르는 모습 ⓒ 변창기


사고 나면 그냥 합의하라고? "개새끼들..."

도배하면서 가장 위험한 것은 우마(발판)와 관련된 안전사고다. 대부분은 천장이 낮아서 우마를 길게 빼지 않아도 되지만, 높은 천장을 작업할 때면 우마를 길게 빼야 한다. 그러면 높이가 1미터 가까이 나온다. 모든 신경을 천장에 집중하면서 작업하다가 흔들리는 우마 위를 부주의하게 옮겨다니게 되면 발을 헛디뎌서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다. 가볍게는 발목이나 허리 또는 무릎을 다치기도 하고 심하면 하반신 마비 같은 심각한 장애를 얻을 수도 있다.

나와 같이 길게 뺀 우마 위에서 작업하던 50대 초보 아저씨도 우마 위에서 떨어진 적이 있다. 그분은 다음 날 바로 그만두셨다. 그리고 우리 팀에 지원을 나오신 아주머니는 2층 높이의 천장을 도배하기 위해서 'BT비계'라는 사다리를 사용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위에다가 길게 뺀 우마를 올려놓은 상태에서 작업하셨는데, '만세' 자세에서 목과 허리를 뒤로 최대한 젖힌 채 작업을 하시다가 그만 밑으로 떨어지셨다고 한다. 운 좋게도(?) 옆에 있는 계단으로 떨어져서 몇 달간 병원 신세만 졌다고 하셨다.

도배도 이렇게 크고 작은 사고가 종종 일어나기 때문에 원청은 틈틈이 안전교육을 한다. 그런데 안전교육을 하던 원청 대리가 이런 말을 했다.

"만약에 사고가 나면 합의를 보세요. 산재보험 신청해 봐야 세금 떼고 뭐 하면 남는 거 없어요. 그렇다고 노무사 사서 싸우려고 해도 그 돈만 300, 400만 원 정도가 깨진다구요. 이긴다는 보장도 없는데 만약에 지면 어쩌실 거예요? 일당 얼마씩이나 받으세요? 그러니까 그냥 합의 보세요."

나는 듣는 내내 계속 중얼거렸다.

"개새끼들…."

도배 일은 위험하지도 않고 돈도 벌 수 있다더니

이런저런 이유로 도배를 중간에 그만두지만 사실, 돈 문제가 결정적인 이유다. 우리는 현장에서 일당직으로 일한다. 현장에서 초보는 5만 원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5000원씩 올려 받는다. 기공은 8만 원에서 10만 원을 받는다. 일당으로 계산해서 다음 달 10일에 전달 임금을 월급 형식으로 몰아서 받는다. 당연히 일을 못한 날에는 그만큼 돈을 제한다. 나와 함께 일하는 형님도 몸이 아파서 한 달 동안 7일 정도만 일했는데 정확히 그 만큼의 돈만 받았다.

문제는 그런 돈마저도 못 받는 경우다(다행히 난 아직까지 그런 일을 당하지는 않았다). 소장이나 반장이 장식회사에서 돈이 안 나온다는 이유로 입금을 계속 미루는 것이다. 심지어는 잠적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장식회사는 자신들과는 무관한 일이라고 잡아떼지만 말이다. 하는 일에 비해서 보수가 적은 데다가 그런 돈마저 떼이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특히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할 사람들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못 받은 돈에 대해서 일부는 소송을 해서라도 끝까지 받아내지만 대부분은 그것마저 포기한 채 다른 현장으로 가든가, 일을 그만둔다. 생활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렇듯 학원장이 말한 것이 도배 일의 전부가 아니었다. 학원에서 만난 두 분이 기억난다. 대기업을 다니다가 명퇴당한 50대 아저씨는 이런 말을 하셨다.

"더 늙기 전에 기술이라도 배워서 먹고살아야죠. 이건 정년이 없잖아요."

건설 노동을 하시다 오신 40대 후반의 아저씨는 항상 각반을 차고 오셨다. 그리고는 아무런 말씀도 없이 하루 종일 땀을 비 오듯이 흘려가면서 도배를 연습하곤 하셨다. 정말 쓰러질 듯, 혼신을 다해서 연습하셨다! 그분에게 도배는 마지막 직업이라도 되는 듯했다.

직업이라는 게 누구에게나 그렇겠지만, 이 일을 선택한 분들에게도 도배는 중요한 직업이다. 하지만 이런저런 이유로 중간에 그만두는 것을 보면 안타깝다. 커튼집 아줌마의 예상이 도배를 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현실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이 일을 선택한 열이면 열, 모든 사람들이 즐겁게 도배 일을 했으면 좋겠다.
#비정규직 #도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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