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이 막지 않고, 가는 이 잡지 않는 이곳은?

[마을 책방을 가다②] 35년 만에 다시 찾아간 그곳, 충북 충주 '문학사'

등록 2011.11.10 19:40수정 2011.11.10 19: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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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프랜차이즈 서점과 인터넷 서점에 밀려 설 자리를 잃어버린 동네 서점. 하지만 아직도 당당히 마을의 '문화적 샘터'로 남아 있는 동네 서점들이 있습니다. '마을 책방을 가다'는 마을 사람들에게 추억의 공간, 배움의 공간으로 여전히 사랑받고 있는 '마을 책방'을 찾아가, 문화와 공존에 대해 생각해보는 기획시리즈입니다. [편집자말]
a  37년 전 중학생들은 하얀 명찰이 달린 명찰이 달린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37년 전 중학생들은 하얀 명찰이 달린 명찰이 달린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쓰고 다녔습니다. ⓒ 임윤수



35년 전, 하얀 명찰이 달린 교복을 입고, 책가방을 들고, 빡빡머리에 모자를 쓰고 다니던 중학생 시절. '완전정복', '필승', 그리고 '스터디북'이라는 수식어가 참고서의 대명사였던 그 시절, 또래 친구들과 참고서나 필요한 책들을 사기 위해 들락거렸던 그 책방에 35년 만에 다시 찾아가봤습니다.


은행나무 가로수 아래마다 노란 은행잎이 두툼하게 깔려 있습니다. 콘크리트 건물에 휩싸인 도심지 길을 걸을지라도 가을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떨어지는 은행잎을 그때그때 쓸어내지 않았습니다. 수북하게 쌓인 은행잎이 가을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습니다.

11월 5일, 가을날 하늘은 회색빛입니다. 얼굴에 와닿는 느낌이 촉촉하게 느껴질 만큼 공기는 습기를 잔뜩 머금고 있습니다. 공기에 머금은 습기는 은행잎에도 스며들어 은행잎을 한층 더 노란 색감으로 채색해줍니다.

a  어스름한 허공에 문학사 간판이 불빛으로 또렷합니다. 1978년에 시에서 지원해 준 간판이라고 하였으니 이 간판도 33년이 되었습니다.

어스름한 허공에 문학사 간판이 불빛으로 또렷합니다. 1978년에 시에서 지원해 준 간판이라고 하였으니 이 간판도 33년이 되었습니다. ⓒ 임윤수


35년 전 중학생 시절, 참고서를 사러 다니던 그 책방

주차를 하고 200여 미터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길 역시 35년 만에 다시 걷는 길입니다. 지금은 대전에 살면서 충주에 가끔 다녀가긴 했지만 비교적 복잡한 이곳을 피해 다니다 보니 기억에 없을 만큼 오랜만에 이 길을 걷게 됩니다. 

이 길도 엄청 변해 있을 거라고 예상했습니다. 실제로 와보니, 언뜻 보기에는 많이 변한 듯했지만 천천히 걸으며 찬찬히 둘러보니 골격만큼은 그대로 있습니다. 페인트 색깔이 바뀌어 있고, 매달려 있는 간판들은 달라져 있지만 이 길의 골격을 이루고 있던 커다란 건물들은 대부분이 그대로입니다.


그 시절 충주에서 가장 번화가였던 '제1로타리'에 있는 중앙시장 건물을 끼고 빙 돌아가니 길 건너에 그 책방 '문학사'가 보입니다. 왕복 4차로 길을 사이에 두고 길 건너에서 서서 문학사를 한동안 지켜봤습니다.

동창회에서 모처럼 만난 친구의 얼굴이 처음엔 낯설지만 얼마의 시간이 지나면 옛 모습이 점차 보이듯이, 35년 전의 모습이 조금씩 되살아납니다. 뭔가 조금은 달라진 것도 같지만 중학교 때 들락거리던 그 자리에 있던 '그때 그 문학사'가 분명합니다.


그 자리에서 10여 분을 지켜봐도 문학사를 드나드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길을 건너기 위해 횡단보도가 있는 교차로 쪽으로 걸어갑니다. 1976년 가을까지는 시시때때로 들락거렸을 문학사…. 그 이후로도 그 자리에 쭉 있었을 문학사를 목적지로 하여 로타리 길을 걷는 것, 35년 만의 발걸음입니다. 

a  찾는 사람이 뜸해 텅빈 시간이 더 많은 문학사 내부

찾는 사람이 뜸해 텅빈 시간이 더 많은 문학사 내부 ⓒ 임윤수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편안한 곳

문을 열고 들어서니 카운터에 앉아 계시는 50대로 보이는 남자분이 '마음 편하게 둘러보세요' 하고 말하듯이 지긋한 눈인사만을 건넬 뿐 조용하기만 합니다. 오는 사람 막지 않고 가는 사람 잡지 않는 곳이 서점입니다.

여느 상품들을 취급하는 매장에서 호객행위를 하듯 호들갑스럽게 맞이하거나 졸졸 따라다며 뭘 살 거냐는 식으로 압박도 가하지 않으니 편안하게 들어가고 편안하게 둘러 볼 수 있는 공간이 서점입니다. 조금은 무심한 듯 보이지만 서점은 이래서 좋습니다. 

1, 2층, 100여 평의 매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카운터로 가 이것저것을 물어보며 10여 분을 머무는 동안 모녀로 보이는 두 사람만이 들어와 어떤 책인가를 찾을 뿐 여전히 조용합니다. 어머니로 보이는 분께 얼마 동안 이 서점을 이용했고, 얼마나 자주 이용하느냐고 여쭸더니 10년쯤 되었으며 아주 가끔이라고 합니다. 누군가에게 뭐라도 더 묻고 싶지만 사람들이 들어오지 않으니 물어볼 수가 없었습니다.

a  사진 오른쪽 밤색 서가는 35년이 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진 오른쪽 밤색 서가는 35년이 넘었다고 하였습니다. ⓒ 임윤수


2대째 가업으로 운영되는 45년 전통의 책방 

카운터에 앉아 계시는 분께 문학사를 찾아온 이유를 말하니 김종환(50세) 대표가 일을 하고 있는 곳으로 안내합니다. 출입문 반대쪽으로 난 철문을 열고 나가니 입출고되는 책들을 정리하는 작업장이 있고, 작업장 안쪽으로 김종환 대표의 작은 사무실이 보입니다.

문학사는 2009년에 작고하신 김종환 대표의 선친께서 김종환 대표가 초등학교에도 입학하기 전인 45년 전쯤에 설립했다고 합니다. 김종환 대표가 가업으로 대물림 받아 2대째 운영하고 있는 것입니다.

35년 전에는 2층 건물이었지만 1978년, 전국소년체전이 충주에서 열릴 때 도심지 정비에 따른 시의 행정 지원이 있어 3층 건물로 증축했다고 합니다. 변한 것은 그것뿐, 35년 전이니 지금이나 문학사는 항상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1991년부터 문학사를 경영하고 있는 김종환 대표가 들려주는 서점계의 변화는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밖에 없을 정도였습니다. 동네 서점이 쇠락의 길로 내닫게 된 것은 하루 이틀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a  2009년에 작고하신 선친으로부터 가업으로 문학사를 물려 받아 2대, 45년 서점으로 운영하고 있는 김종환 대표

2009년에 작고하신 선친으로부터 가업으로 문학사를 물려 받아 2대, 45년 서점으로 운영하고 있는 김종환 대표 ⓒ 임윤수


초면이지만 비슷한 나이에 충주라는 지역을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어느 정도 이야길 나누다 보니 추억과 이름들이 교집합처럼 겹쳐집니다. 집무실 옆, 반 평도 안 되는 창고 선반에 나란히 꽂혀 있는 너덜너덜한 표지의 장부에서 문학사의 45년 세월이 진하게 느껴집니다. 

예전에야 취미가 '독서'라는 사람들이 꽤나 많았지만 지금도 취미를 독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일 수밖에 없지 않느냐는 반문에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학원을 경영하다 선친의 권고로 학원을 정리하고 전적으로 문학사 일을 보기 시작할 때인 20년 전에는 서점 일이 너무 바빠서 싫었다고 합니다. 바빴던 만큼 수입도 좋았지만 매일 잔업은 물론 토요일과 일요일도 없이 일을 해야 했으며, 명절 때도 쉬지 못할 만큼 판매량이 많아 싫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은 장사가 너무 안 돼서 싫다고 하니 김종환 대표가 서점을 싫어하는 이유야 말로 격세지감의 극치입니다.

a  김종환 대표 집무실 옆 작은 창고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서류철이 나란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김종환 대표 집무실 옆 작은 창고에는 세월이 느껴지는 서류철이 나란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 임윤수


예전에는 충주지역 서점연합회도 있었는데... 

서점업계에도 변화는 계속 있어 왔지만 그 변화 속도가 점차 빨라져 요즘은 단 몇 개월의 미래도 예측할 수 없다고 합니다. 김종환 대표는 세계적인 IT산업의 발달에 따른 역풍을 고스란히 맞고 있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서점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북카페 등으로 형태를 변경하고, 휴대폰과 같은 전자기기를 판매할 수 있도록 공간을 분할해가며 수익을 창출해보지만, 이 또한 서점이 몰락해가는 과정 같아서 안타까울 뿐이라고 하였습니다.

한때는 충주 지역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 모임인 '서점연합회'가 왕성하게 운영되던 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개의 서점들이 폐업을 하거나 업종을 바꿔서 현재 운영 중인 서점은 3개밖에 되지 않는답니다. 연합회를 구성하기에도 면구할 정도로 서점들이 몰락한 것이 충주 지역의 서점업계 실정이라고 하였습니다.

김종환 대표 역시 문학사를 본인이 창업하였거나, 경제적인 이유만을 생각했다면 진즉에 전업을 하거나 폐업을 하였을 거라고 합니다. 하지만 선친으로부터 가업으로 대물림 받았기에, 아버지께서 돌아가신 지 얼마 되지 않아 문을 닫는다는 게 싫어서 많이 부담스럽지만 어렵게 운영 중이라고 하였습니다.

문학사를 다음 세대(아들)에게 가업으로 대물림 할 생각은 없느냐고 물었더니 그럴 생각이 없다고 합니다. 아들이 어떤 철학을 갖고 먼저 나선다면 모를까, 그렇지 않다면 생업으로는 힘들다고 생각되어 물려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현실적인 대답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상황이 계속된다면 문학사 또한 언제까지 운영될 수 있을지, 현실적으로 고민하고 있다는 것도 감추지 않았습니다.

a  비어있는 서가는 보는 마음을 허전하게 했습니다.

비어있는 서가는 보는 마음을 허전하게 했습니다. ⓒ 임윤수


술집이 잘되는 사회 vs 서점이 잘되는 사회

사회 전반적으로 경제가 좋아져야 하지만 술집이 번성해서 술집 사장이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사회보다는 서점에 사람들이 들끓어 서점 사장이 고급 자동차를 타고 다닐 수 있는 사회가 훨씬 밝고 건강한 사회 아니냐고 김종환 대표가 반문합니다. 

김종환 대표는 서점이 잘되던 한때, 거창하게 '사회 환원'까지는 아닐지라도 시민들이 책을 읽으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문화공간을 마련해드리는 형태 등으로 서점에서 딴 열매를 시민들과 나누리라고 생각도 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요즘과 같은 상황이 계속된다면 한낱 꿈으로 접어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하면서는 한숨까지 내쉽니다.

서점이 한 개인의 사업공간이도 하지만 사회적으로 요구되는 공공의 공간이기도 합니다. 책을 사고 파는 공간이기도 하지만 작은 도서관 역할도 하고, 마음의 병원이 되기도 합니다. 정보를 공유하고, 추억을 되살리며 마음에 드리운 그늘에 햇살을 비춰주는 공간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인터넷에서는 취할 수 없는 종이책만의 가치를 보존하거나 파급시키는 순기능적 측면은 분명 사회적으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a  1시간 이상이 지났어도 역시 조용하기만 한 문학사 내부

1시간 이상이 지났어도 역시 조용하기만 한 문학사 내부 ⓒ 임윤수


10년, 20년 뒤에도 외손자 손 잡고 다시 오고 싶어

시대의 흐름에 따른 변화야 어쩔 수 없지만, 지역별로 서점이 최소한의 공적기능을 담당할 수 있도록 행정적·재정적인 지원이 제시되어야만 서점의 명맥이 유지될 수 있을 거라는 대안도 제시합니다.

흥(興)과 성(盛)을 위한 지원이 아니라 망(亡)과 쇠(衰)로 깡그리 없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지원입니다. 서점업계의 현실을 직시하여 대안을 하루라도 빨리 강구해야만 소형서점들이 지리멸렬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을 거라고, 조심스럽지만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문학사 45년의 세월 중, 뭉툭뭉툭하게나마 서로가 공유할 수 있는 35년의 시간을 배경으로 하여 문학사의 현주소를 이야기하다 보니 어느새 1시간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김종환 대표의 집무실을 나와 다시 매장으로 들어가 한참을 서성거려 보지만 매장은 여전히 침묵하는 수도의 영역처럼 조용할 뿐입니다.

a  1978년에 시에서 지원해 준 간판이라고 하였으니 이 간판도 33년이 되었습니다.

1978년에 시에서 지원해 준 간판이라고 하였으니 이 간판도 33년이 되었습니다. ⓒ 임윤수


매장 구석구석마다 45년의 세월이 주렁주렁 똬리를 틀고 매달려 있습니다. 30년이 훨씬 넘었다는 서가(書架)는 합판으로 만들어져 있고, 20년이 넘었다는 서가는 밤색을 띠는 목재로 되어 있습니다.

"10년이나 20년 후쯤, 외손자들의 손을 잡고 들어서며 이곳이 할아버지가 너희들만 할 때 책을 샀던 책방이라고 자랑하고 싶다"는 말을 김종환 대표에게 건네지만, 말끝이 흐려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김종환 대표가 들려준 이런저런 이야기는 모든 서점이 처해 있는 현주소이자, 아픔을 극복할 수 있는 작은 처방이었습니다.

문학사를 나오니 어스름한 허공에 간판의 불빛들이 또렷합니다. 비록 말꼬리를 흐리긴 했지만, 10년이나 20년 후쯤 외손자들의 손을 잡고 들어서며 "이곳이 할아버지가 너희들 만할 때 책을 샀던 책방이다"라고 자랑할 수 있도록 문학사가 현실을 잘 극복해가며 발전할 수 있기를 기원해봅니다.
#문학사 #충주 #김종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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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들이 좋아하는 거 다 좋아하는 두 딸 아빠. 살아 가는 날 만큼 살아 갈 날이 줄어든다는 것 정도는 자각하고 있는 사람. '生也一片浮雲起 死也一片浮雲滅 浮雲自體本無實 生死去來亦如是'란 말을 자주 중얼 거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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