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가입자는 '휴대폰'이 아닙니다

등록 2011.11.09 18:34수정 2011.11.09 1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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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 2000만 시대에도 불구하고 필자는 스마트폰을 갖고 있지 않다. 그 이유를 대라면 곧바로 열 가지 쯤은 줄줄이 나오겠지만 굳이 밝힐 이유는 없겠다. 스마트폰의 효용이나 효율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번 서울시장 선거에서 투표율을 올린 공신 중의 하나가 스마트폰이라는 것에 토를 달 생각도 없고, 스마트폰이 성장을 주도하고 삶을 바꾼다는 이야기에 감히 문제를 제기하지도 않는다. 어쨌든 개인적으로 스마트폰을 원하지 않을 뿐이다.

 

그런데 어제 오전에 전화가 왔다. 공짜 이벤트가 있으니 이번에 '구닥다리 휴대폰'을 바꾸라는 것이다. 필자는 기본적으로 콜센터나 서비스 센터의 전화를 잘 끊지 못한다. 2분에 1콜을 받거나, 콜 수와 성사 건수에 따라 급여가 매겨지는 고된 노동을 하는, 그것도 젊은 목소리를 매몰차게 자르기 어렵기 때문이다. 요즘 청년 노동이 얼마나 심각한가 말이다.

 

하지만 이번 전화는 정말 이상했다. "원하지 않습니다"라고 몇 번이나 응답을 했는데도 전화를 끊지 않고 다시 걸어 바꾸라고 권유한다. 연말로 2G 서비스가 끝나 기존의 핸드폰을 사용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사실 그 이야기에는 조금 놀랐고 그래서 안내를 받아보라는 것에 응했다. 바뀐 담당자가 설명을 하는 와중에 다시 물어보았다.

 

"제 핸드폰에 대한 서비스가 끝나나요?"

 

그것은 아니란다. 그럼 원하지 않는다고 답했더니 그래도 설명을 이어간다. 조금 강하게 말하고 나서야 전화를 끊을 수 있었는데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정신없이 일을 하는 와중에 같은 사람으로부터 세 번이나 더 전화가 왔다. "고객님, 도대체 왜 그러시나요?"에서부터 "사용료 부담이 저렴해요"에 이르기까지. 구구절절 전화를 계속 걸어댄다. 결국 담당자의 마지막 말은 이랬다.

 

"고객님, 그 전화 계~속 쓰세요".

 

이번에는 정말 놀랐다. 소비자 보호원에 고발하라는 동료의 이야기에 응할 수는 없었지만 정말 궁금해졌다. 정말 왜 이러는가? 월화수목금금금으로 일을 해야 하는 연말에, 자판기 수준으로 폭풍글쓰기를 해야 하는 연말에, 결국 억지로 시간을 내서 인터넷에 올라온 온갖 기사를 검색하고 나서야 영문을 알 수 있었다.

 

KT가 이달 말 2G 서비스 종료를 재천명하였고, 최시중 방통위원장이 최근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에서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로 "KT 전체 가입자 1600만 명 중에서 2G 가입자가 1% 수준이 됐을 때 서비스 종료를 허가해 주는 것이 좋을 듯하다"며 "현재 KT는 이 같은 기준에 상당히 근접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필자 같은 가입자를 없애야 하는 것이고 그 때문에 유사한 시달림을 겪는 사람이 꽤 있다고 한다. 

 

조금 다른 이야기인데 지난 10월 10일 <매일노동뉴스>에 다음과 같은 기사가 실렸다.

 

6일 KT대전 NSC논산운용팀에서 일하는 전씨(50세)가 숨진 채 발견되었다. "8명이 하던 일을 2명이 하려니 힘에 부친다", "팀끼리 경쟁을 붙여 성과급을 지급하는 바람에 너무 힘들다"는 말을 했다고 한다. 또한 5일 경기남부NSC 윤씨(50세)가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7월에는 NSC에서 고객컨설팅 업무로 전환 배치된 강씨(50세)가 옥상에서 투신자살했다. 민주당 홍영표 의원에 의하면 "KT 재직자 중 숨진 노동자가 올해만 14명이고, 2009년 12월 KT의 특별 명예퇴직 이후 사망자가 폭증했다"고 한다. 2G 가입자를 없애기 위해 이 정도로 집중하는데 그 내부에 있는 노동자에게는 어떤 대우를 할까? 게다가 경영상의 문제를 왜 노동자와 소비자가 감당해야 하는가 말이다. 노동자에게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경우에도 해고할 수 있는 정리해고는 경영상의 문제이기 때문에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서 이윤하락은 왜 경영상의 문제가 아니라 2G 가입자나 소비자의 책임인가?

 

KT 민영화가 시작된 것은 1990년대부터이다. 93년부터 96년까지 정부 지분 28.9%를 시장에 팔았고 2002년 드디어 정부 지분 0%의 민영KT로의 전환을 마무리했다. 2008년 외국인 지분이 47.5%, 자사주 25.6%, 국내주주 18.3%이며 국민연금 투자분도 2.3%이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제외하면 의결권이 있는 주식 중 외국인 소유 지분이 50%가 넘어 주주들은 더 높은 배당을 받을 수 있으며 외국인 주주가 매년 가져가는 이익 만 해도 천문학적 숫자이다.

 

노동은 정반대이다. 1998년부터 1999년까지 구조조정으로 8,968명이 회사를 떠나야 했고 2003년에는 노사합의에 의해 약 5,500명이 다시 회사를 나가 고용 규모는 끊임없이 줄었다. 남아 있는 사람의 노동 강도 강화는 불을 보듯 뻔 하여 이것이 연이은 자살의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2006년 평균임금도 타 통신업체 대비 약 10% 수준 적고 1999년 임시직과 사내하도급 노동자 수가 7,419명 늘어난 이래로 현재까지 끊임없이 증가하고 있다. 2001년에 500여일 동안 비정규직 투쟁이 있었지만 소용이 없었다.

 

아마 필자를 괴롭힌 사람은 회사의 의뢰를 받은 협력사 혹은 하청회사의 직원일 것이다. 비정규직일 가능성이 높고 기필코 성사 건수를 높여야 하기 때문에 매일 매일의 전쟁을 치르는 사람일 것이다. 일선에 선 노동자와 소비자 간에 전쟁 치르듯 전화로 목소리를 높이지만  이익은 전혀 딴 주머니로 들어가는 것이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가 가져간다는 속담이 가슴 아프게 떠오른다.

 

2G 서비스 중단 압력만큼이나, 삶을 바꾼다는 스마트폰 광고비만큼이나 노동자를, 그리고  노동자이기도 한 소비자를 생각해주었으면 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노동자는 상품이 아니고 사람이며 휴대폰 가입자는 없애야 할 휴대폰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제발 사람을 상품으로 처리하지 말라는 이야기이다. 1944년 "노동자가 상품이 아니다"고 선언한 필라델피아 정신이 너무 그립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은수미 씨는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2011.11.09 18:34ⓒ 2011 OhmyNews
덧붙이는 글 이 기사를 쓴 은수미 씨는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으로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KT #2 G 서비스 #KT 민영화 #노동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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