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헬퍼아이가 사용하는 염산입니다. 29% 희석된 것이라지만 무섭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섬유유연제입니다.
조수영
가사도우미 아이가 화장실을 청소합니다. 청소를 다해갈 즈음 염산이 모자라서 마트에 다녀오겠다고 합니다. 마침 락스가 보였습니다. 청소는 물론 소독까지 말끔하게 해결할 수 있는 락스가 염산을 대신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그동안 왜 생각하지 못했을까요. 염산을 사러 가지 말고 대신 락스를 쓰라고 줬습니다.
"한국에선 욕실 청소할 때 락스를 쓰거든."맨손으로 염산을 만지는 용감한 이 아이. 역시나 락스도 희석하지 않고 욕실 바닥에 후루룩 들이부었습니다. 하지만 몇 번을 솔로 문지르더니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것처럼 흐느적거립니다. 순간 가사도우미 아이는….
"맘~!"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버렸습니다. 놀라서 뛰어 들어간 화장실에는 메케한 냄새가 코와 눈을 찔렀습니다. 얼른 가사도우미 아이를 화장실에서 끌어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곧바로 의식을 찾았지만, 온종일 축 쳐져서 일어나지 못합니다. 화장실의 메케한 냄새는 일주일 넘게 빠지지 않았습니다.
순식간에 눈앞에서 벌어진 이 엄청난 사고의 원인은 락스의 주성분인 '차아염소산나트륨'이 염산과 같은 산성과 반응하게 되면 순식간에 '염소 기체'를 발생시키기 때문이었습니다. 염소 기체는 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독가스로 사용한 전력이 있는 매우 치명적인 독가스입니다.
필리핀 청소의 필수품인 '염산'과 한국 청소의 필수품인 '락스'가 만나 독가스를 만든 겁니다. 꽃다운 스무 살 가사도우미 아이는 독극물 때문에 저세상으로 갈 뻔했습니다. 그날 이후 미안함과 고마움에 염산을 쓰는 것쯤은 봐주기로 했습니다.
이제 염산 따위는 두렵지 않습니다. 우리 집에서는 매일같이 가사도우미 아이의 염산 테러가 일어나니까요.

▲ 필리핀의 에메랄드 빛 바다색은 수심이 낮고 산호초에서 나온 석회질 성분이 물에 녹아 초록색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조수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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