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 속 수정궁에서 어머니 곽씨를 만난 심청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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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면 4] 처음에는 효녀 소설인 듯이 하면서 스토리를 전개하던 작가는 끝부분에 가서 드디어 자신의 속내를 털어놓았다. 다음은 <심청전>의 마지막 대목이다. "어화, 세상 사람들아, 예와 지금이 다를 소냐. 부귀영화 한다 하고 부디 사람 가볍게 보지 마소. '흥진비래 고진감래(興盡悲來 苦盡甘來)'는 사람마다 겪는 일이라. 심 황후의 어진 이름 길이길이 남아 전한다." 돈 있고 빽 있는 사람들아! 지금 당장의 모습만 보고 사람을 우습게보지 말라! 흥진비래 고진감래라 했다.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오고, 괴로움이 다하면 즐거움이 오는 법이니, 온종일 뛰고 뛰어다니며 죽도록 일해도 먹고 살기 힘든 팔자라고 해서 사람 함부로 깔보지 말라! 이것이 작가가 17~18세기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메시지다.
뛰고 뛰고 뛰는 몸이라 괴로웁지만/ 힘겨운 나의 인생/ 구름 걷히고/ 산뜻하게 맑은 날 돌아온단다/ 쨍하고 해 뜰 날 돌아온단다(송대관의 '해뜰날'). 작가는 '서민들도 얼마든지 성공하고 출세할 수 있으니 기죽지 말고 열심히 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체제외적·비정상적 방법으로 이루어진 신분이동건국 100년이 넘은 16세기부터 조선 사회는 체제의 안정기에 접어들었다. 이때부터 양반-상놈 신분구조가 고착화된 탓에, 평민들은 웬만해서는 출세를 꿈꿀 수 없었다. 그런데 임진왜란(1592)이 이런 사회구조에 일격을 가했다. 전쟁으로 인해 사회구조가 타격을 받은 데에다가 서민들이 의병활동에 대거 가담함에 따라, 전쟁 직후인 17세기부터 서민의 지위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런 상태에서 농업기술이 발달하고 상공업이 부흥함에 따라, 17~18세기에는 서민들 중에서 벼락출세를 이룩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가가 권장하는 출세 코스인 과거시험이나 군공을 거치지 않고 전통적으로 터부시 되던 상공업을 통해 출세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으니, 사회질서가 얼마나 동요했을지 짐작할 수 있다.
반면, 이 시대에는 아무리 양반가의 후손일지라도, 능력이 없으면 책을 덮고 남의 땅에서 품삯을 받고 일해야 했다. 이 때문에 17~18세기에는 신분이동이 매우 활발했다. 돈으로 양반 족보를 사고파는 것은 이 시기의 특징적인 현상이다.
<심청전> 등장인물들의 출세도 과거시험이나 군공 같은 정상적인 루트를 거친 게 아니었다. 옥황상제가 돕고 용왕님이 돕는 등, 체제외적(外的)이고 비정상적인 방법으로 신분이동이 발생했다. 왕조의 전통적 시스템이 감당할 수 없는 방식으로 신분이동이 이루어진 것이다. 17~18세기 서민들의 출세 역시, 옥황상제나 용왕의 도움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체제외적이고 비정상적 방법으로 이루어졌다.
사실, 17~18세기는 조선·청나라·일본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신분이동이 활발하던 시대였다. 유럽에서는 산업혁명과 시민혁명으로 평민과 귀족의 권력교체가 발생했다. 급격하고도 대대적인 신분이동은 조선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 차원의 트렌드였다.
<심청전>의 작가는 그같은 사회실정에 착안하여 심청이의 벼락같은 인생역전극을 구상했던 것이다. 그런 설정이 당시의 정서와 분위기에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에, <심청전>이 17~18세기 독자들의 환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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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ongsung.com.시사와역사 출판사(sisahistory.com)대표,제15회 임종국상.유튜브 시사와역사 채널.저서:친일파의 재산,대논쟁 한국사,반일종족주의 무엇이 문제인가,조선상고사,나는 세종이다,역사추리 조선사,당쟁의 한국사,왜 미국은 북한을 이기지못하나,발해고(4권본),한국 중국 일본 그들의 교과서가 가르치지 않는 역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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