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구식 "저는 전혀 모릅니다"10.26재보선 투표날 중앙선관위와 서울시장 박원순 야권단일후보 홈페이지에 대한 디도스(DDos) 공격이 한나라당 최구식 의원실 직원인 것으로 경찰 수사결과 밝혀진 가운데, 지난 2일 오후 최 의원이 국회 정론관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 최 의원은 "저는 사건 내용을 전혀 모릅니다. 마른 하늘에 날벼락 맞은 것처럼 황당한 심정"이라며 "만약 제가 사건에 연루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면 즉각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밝혔다.
권우성
2011년 10월 26일. 서울시장 외에 부산 동구 등 11곳의 기초단체장과 광역의원 11곳과 기초의원 19곳 등 전국 42개 지역에서 재보궐 선거가 있는 날이다. 그런데 이날 아침 중앙선관위 홈페이지와 박원순 서울시장 후보의 홈페이지인 '원순닷컴'을 디도스로 마비시킨 사건이 발생했다. 이로 인해 투표소를 찾으려던 많은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가장 관심을 끌었던 서울시장 선거에서 나경원-박원순 후보는 엎치락뒤치락 접전을 벌이며 부동층 끌어안기에 막판까지 진력했다. 이런 상황에서 발생한 디도스 공격은 투표를 방해할 의도가 다분한 중대 사건이다. 그런데 이 문제를 주류 언론이 아닌 비주류 공론장인 팟캐스트(Pod cast)에 의해 제기됐다. 선거가 끝난 사흘만인 10월 29일 <나는 꼼수다> 26회 방송에서 의혹을 제기했다.
아닌 게 아니라 최구식 한나라당 국회의원의 수행비서관이 200여 대의 좀비 PC를 동원해 초당 263MB 용량의 대량 트래픽을 유발하는 디도스 공격을 가함으로써 선거일 중앙선관위 홈페이지를 약 2시간 동안 마비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또 같은 시기에 박원순 후보의 홈페이지도 마비됐다.
기실 민주주의의 기본을 흔든 전대미문의 사건으로 기록될 만하다. 최구식 의원이 누구인가. 집권여당의 홍보기획본부장을 맡은 고위직 인사인데다 10·26 선거 당시 박원순 후보의 경쟁자인 나경원 후보 홍보본부장을 맡았다. 그러면서도 이 같은 사실이 드러나자 그는 "연루한 사실이 드러나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당당하게 대응했다.
이 사건으로 집권여당은 당을 쇄신하기로 하고 지도부가 사퇴하는 등 일대 내홍을 겪고 있지만 '그 밥에 그 나물'이란 소리가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있다. 특히 자신과 늘 얼굴을 마주하며 지내던 비서가 저지른 중대 사건임에도 그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국민 앞에 드러낸 위풍당당함이 얄미울 정도다. 사과는커녕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가 도대체 어디서,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지 의아하다.
그래서다. 2007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더 재미있는 상황을 만날 수 있다. BBK 사건과 관련해 김경준씨가 미국에서 한국 수사당국에 인계되어 입국, 전격 구속됐을 당시 이 사건을 담당한 검사가 최구식 의원과 무관치 않은 인물이다. 당시 이 사건을 맡은 서울지방검찰청 특수1부의 최재경 부장검사는 최 의원의 사촌동생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사실이 일부 언론에 알려져 수사의 중립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서울지검 특수1부(최재경 부장검사)는 "BBK 관련 이명박 대선후보의 혐의가 모두 무혐의"라고 발표했다. 일반 사건이 아닌, 대권이 걸린 중요사건을 수사하면서, 검찰은 한나라당 핵심 인사의 가까운 인척을 주임검사로 선정했으니 참으로 의아한 일이 아닐 수 없다. BBK 특검 구성의 한계가 바로 이 대목에서 감지된다. 차제에 수사결과의 신뢰도에 의구심을 갖지 않는다면 언론이라고 말할 수 없는 상황임에도 보수언론들은 이 문제에 관해서는 유독 소극적으로 다뤘다. 이유가 뭘까. 종편을 손에 쥐기 위해서였을까.
BBK와 인연을 맺으면 쉽게 그 인연을 끊기 어려운 모양이다. 2011년 8월 22일. 법무부는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에 최재경 사법연수원 부원장을 임명했다. 대검 중수1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 대검 수사기획관, 서울중앙지검 3차장검사를 거친 '특수통'이라며 그를 치켜세웠다. 2007년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으로 재직할 때 'BBK 사건' 수사를 지휘한 내용은 한 줄 기사에 불과했다.
그로부터 불과 2개월여 만에 디도스 공격 사건이 발생했다. 제18대 대선의 풍향을 가늠할 중대 선거를 방해한 혐의가 최 의원 비서뿐만 아니라 박희태 국회의장 비서와 청와대 관계자까지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 파문이 커지고 있다. 19일 <한겨레21>(제891호)는 "10·26 서울시장 보궐선거 당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 디도스 공격에 대한 경찰의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가 외압을 행사해 사건의 중요 사실을 은폐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기사는 사정당국의 고위 관계자 발언을 인용해 "청와대는 특히 청와대 행정관 박아무개(38)씨가 선거 전날 저녁 디도스 공격 관련자들과 술자리를 함께 한 사실, 그리고 한나라당 관계자들과 해커들 사이에 대가성 돈거래가 있었던 사실을 공개하지 않도록 압력을 행사한 정황이 드러났다"고도 전했다.
그런데 청와대와 한나라당에선 사과는커녕 제대로 된 반성의 기류도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시점에서 '김정일 사망'소식이 언론의 영상과 지면을 죄다 커버했으니 호재로 여길 만도 하겠다. 하지만 호흡을 가다듬을 수 있는 시간은 잠시뿐이다. 의혹은 시간이 갈수록 눈덩이처럼 커지기 마련. 경찰이 중앙선관위 누리집에 대한 디도스 공격 수사결과를 발표하는 과정에서 청와대가 중요 사실을 숨기도록 압력을 행사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상 그 의혹이 어디로 사라질까.
어설픈 해명으로 은근슬쩍 뭉갤 사안이 아니다. 청와대 외압이 사실이라면 디도스 공격 이상으로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범죄' 행위다. MB정부 임기가 끝났다 하더라도 사후 청문회감으로 손색이 없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사실관계를 분명하게 공개하고 검찰 역시 성역 없는 수사로 진상을 철저하게 밝혀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내년 선거까지 의혹만 키워 호된 역풍을 만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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