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깊은나무>의 조선이 한없이 부럽다

등록 2011.12.23 15:51수정 2011.12.23 15:51
0
원고료로 응원
a

'똥장군' 진 세종 이도, 나에게는 <뿌나>장면은 가장 잊을 수 없는 장면이다 ⓒ SBS


조선조 27분의 왕중 '대왕'이란 칭호를 받는 거의 유일한 왕, 세종대왕은 쉽게 번잡하지 못할 존엄한 대상이었습니다. 하지만 지난 10월 5일 SBS수목드라마 <뿌리깊은나무>(이하 뿌나)에 등장한 세종 '이도'는 "지랄하고 자빠졌네", "우라질"으로 하루아침에 '대왕세종'이 아닌 '욕쟁이' 이도로 친근하게 다가왔습니다. 특히 '똥장군'을 진 이도가 "'전하'라고 하는 게 나냐?", "아, 내가 우스우냐? 내가 전하다."는 대사는 똥장군을 지고 힘들게 지고 언덕을 오르셨던 아버지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친근감이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 한 마트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수목돌풍'이란 세일을 합니다. 다른 날보다 20~30%를 싸게 살 수 있어 먹을거리를 대부분 이틀 중 하루를 잡아 삽니다. 수목돌풍처럼 <뿌나>는 자연스럽게 우리집에 '뿌나돌풍'이 불었습니다. 아이들도 함께 보며 '뿌나돌풍'에 빨려들어가면서 <뿌나>의 조선, 곧 세종이 다스렸던 조선이 한없이 부러웠습니다.

<뿌나> 조선은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부러운 이유란 <뿌나>는 논쟁과 토론이 있었습니다. 지난 12월 9일 19회에서 세종 이도와 밀본본원 정기준이 글자 창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하는 장면은 시청자들 뇌리에 각인됐습니다.

"글이 반포되면 성리학의 질서가 무너지고, 사대부 역시 흔들리게 될 것이다. 사대부는 신분의 이름이 아니라, 자질과 수양과 능력의 이름이다. 우둔하고 변덕스런 백성이 글자를 알게되면 모든 질서와 균형이 무너질 것이다."(정기준)

"사대부 역시 언젠가는 부패하게 될 것이다. 그들의 능력만큼 욕망을 갖고싶을 것이고, 또한 기득권을 갖게될 것이다. 그리고 그 기득권을 세습하려고 할 것이다. 왜? 사람이니까. 그들은 언젠가는 썩어 고약한 냄새를 풍길 것이다. 백성으로 하여금 그 역할을 하게하려한다. 권력을 나누게 되는 새로운 균형, 질서,조화다. 해서 나의 글자가 그런 세상에 작은 시작이 될 것이다"(세종)

"그러면 백성의 욕망은 어찌할 것이냐. 권력의 정점에 서게되면 백성의 욕망을 만나게 된다. 그 욕망을 알게되면 공포에 질리게 된다. 그 욕망들은 결코 모두 이뤄질 수 업으니까. 너는 백성에게 권력을 나눠주려는 것이 아니라, 백성이 귀찮아진 것일 뿐이다. 너는 결코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정기준)


a

세종 이도와 밀본본원 정기준 글자창제를 두고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두 사람 논쟁은 조선조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증명했다. ⓒ SBS


<뿌나>에서 이도와 정기준의 치열한 논쟁이 '가공의 역사'라고 할지라도 조선시대는 왕과 신하, 왕과 사대부, 사대부와 사대부 사이에 치열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조선조 후기로 접어들면서 권력을 둔 논쟁으로 변질되기는 했지만 조선조가 27대, 527년 동안 존재한 이유가 바로 이도와 정기준이 글자 창제를 두고 논쟁한 그 논쟁이 이어졌기 때문입니다. 조선의 힘이었습니다.

몇년 전 <퇴계와 고봉, 편지를 쓰다>(김영두 지음, 소나무 펴냄)을 읽었습니다. 성균관 대사성 퇴계 이황과 문과에 갓 급제한 고봉 기대승이 13년간 주고받는 편지를 정리한 책입니다. 두 사람 나이 차이는 스무여섯 살입니다. 이기이원론으로 유명한 퇴계와 이기일원론으로 퇴계의 이론을 논박한 고봉이 편지형식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에 마음을 구성하는 이-기, 그리고 성-정, 사단-칠정 따위 논쟁은 부럽습니다.


특히 오늘날로 치자면 국립대 총장격인 퇴계 선생이 스무여섯 살 연하 고봉이 오류를 지적하자 머리를 조아리며 "제 견해가 잘못되었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부분은 경이롭기까지 합니다. 13년간의 두 사상적 거두의 논쟁이 있었던 조선 그 때가 참 부럽습니다. 두 사람 편지 왕래가 1558년부터 1570년까지므로 한글창제가 1443년이니 조선은 100년 이상 논쟁이 멈추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뿌나>는 '사람'이 있었다

<뿌나>에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세종 이도가 밀본 정기준 저항을 무릅쓰고 한글 창제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해례' 소이와 나인들, 그리고 강채윤(똘복이)와 '조선제일금' 무휼, 정인지,성상문,박팽년 등과 밀본에 의해 죽임을 당한 윤필과 광평대군이 있었습니다. 기름과 물이 하나가 될 수 없듯이 이들은 신분과 가는 목적이 달랐기에 글자창제를 위해 한 마음을 모을 수가 없었습니다.

a

해례 소이는 글자 하나하나를 속옷을 찢어 적었다. 세종에게는 소이같은 사람이 있었다. ⓒ SBS


해례 소이는 독화살을 맞고 속치마를 찢어 제자해를 한자 한자 적어가며 사투를 벌였습니다. 머뭇거리는 똘복 오라버니에게 "이걸 반포중에 가져가. 제자해야. 정기준이 반포식에서 전하를 암살하려고 해. 가서 알리고 전하를 지켜"라는 말을 남기고 스러져갑니다.

정기준과 글자 창제를 두고 논쟁할 때 "너는 결코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반박에 움찔했지만, 마지막회 죽어가는 정기준 앞에서 가슴을 치며 "여기가 이렇게 아픈 것이 백성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반박하는 이도의 그 마음과 뜻을 받들어 그들은 하나가 됩니다. 글자창제와 반포를 성공해 가슴이 찢어질 것같고 터질 것같은 심장을 움켜지는 세종 이도의 마음을 알기에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갚는 것이 삶의 목적이었던 똘복이는 강채윤으로 거듭나 정기준의 마지막 명을 수행하기 위한 달려오는 '개파이' 칼에서 이도를 구하고 소이가 간 그 길을 따라갑니다.

주군 이도가 똥장군을 쥔 것도 모르고 "전하가 어디계시냐"고 물었던 '조선제일검' 무휼, 생긴 모습은 전혀 살기를 느낄 수 없을 정도로 욕쟁이 세종를 마지막까지 지켜려다가 개파이에게 마지막 일격을 당해 죽습니다. 죽어가면서 그가 던지 말 "멈추지 마라. 전하께서는 왕이다. 무사 무휼에게는 제 길이 있고 전하께는 전하의 길이 있다. 자리로 돌아가라"며 "전하, 이 내금위장 말 좀 들어라"며 주군을 위해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농담을 던지는 모습은 조선제일검이 아니라 '조선제일웃음꾼'처럼 보였습니다.

그리고 연두라는 아이가 있습니다. 연두가 없었다면 정기준이 한글반포를 막았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소이가 연두에게 말한 "글자를 아는 사람 세 명에게 가르쳐주지 않으면 부스럼이 난다"는 말을 민들레 씨앗처럼 흩뿌렸습니다. 정기준은 결국 포기합니다.

<뿌나>의 조선이 부러운 이유입니다. 세종에게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글자창제는 '일'이었지만 백성을 위한 글자를 만들겠다는 세종의 애민을 보고 함께했습니다. 사람을 먼저 생각한 세종 이도였기에 사람이 있었고, 한글창제와 반포는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을 얻은 이도를 보고 갑자기 두 사람이 생각납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일을 '맡긴 게' 아니라 바로 사람에게 '걸었다."

안희정 충남지사가 지난 1월 19일 오후 7시 충남도청에서 노무현재단 주최한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참 누구와 대비됩니다.

"올해 정말 숨가쁘게 많은 일들을 했기 때문에 우리가 위기를 잘 극복할 수 있었다. 세계 정상중 나만 일해..참 불공정한 사회"(이명박 대통령 지난해 12월 30일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정부부처 장차관 종합토론 모두 발언)

"난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선거가 없는 내년이 가장 일하기 좋은 한 해다. 난 서울시장 때도 임기 마지막 날 퇴근시간까지 일한 뒤 퇴임식을 했다"(이 대통령 2일 신년연설문 독회)

일만 잘하면 다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 그가 대한민국 최고지도자로 있던 지난 4년은 온갖것들이 최악이었습니다. 일 잘 한다고 뽑았는데 북한 최고지도자 사망 정보가 '52시간공백'이 단적인 예입니다.

2011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보다 1443년 <뿌나>의 조선이 부럽다

2011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보다 1443년 세종이 다스렸던 조선과 <뿌리깊은나무>가 우리에게 보여줬던 논쟁과 사람을 얻는 그 모습이 한없이 부럽습니다. 과연 500년 후 우리 후손들이 2011년 대한민국 이명박 정권을 드라마로 만들면 대통령과 장관들이 한치도 양보없는 논쟁을 벌이고, 일 잘하는 사람을 뽑는 지도자가 아닌 사람을 얻는 지도자로 그릴 수 있을까요.

저의 답은 '2011년 민주공화국 대한민국보다 1443년 <뿌나>의 조선이 부럽다'로 대신하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뿌리깊은나무 #세종이도 #정기준 #조선 #대한민국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당신이 태어날 때 당신은 울었고, 세상은 기뻐했다. 당신이 죽을 때 세상은 울고 당신은 기쁘게 눈감을 수 있기를.


AD

AD

AD

인기기사

  1. 1 낙동강 해평습지서 '표범장지뱀' 본 전문가 "놀랍다"
  2. 2 "도시가스 없애고 다 인덕션 쓸텐데... '산유국 꿈' 경쟁력 없다"
  3. 3 윤석열 정부 따라가려는 민주당... 왜 이러나
  4. 4 공영주차장 캠핑 금지... 캠핑족, "단순 차박금지는 지나쳐" 반발
  5. 5 껌 씹다 딱 걸린 피고인과 김건희의 결정적 차이, 부띠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