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감옥, 나는 나비다"

수인 번호 6022의 '희망' 시인 송경동을 만나다

등록 2011.12.26 09:35수정 2011.12.2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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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송경동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실천문학사, 2011년) 희망과 사랑을 꿈꾸는 시인을 감옥에 가두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송경동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간다>(실천문학사, 2011년) 희망과 사랑을 꿈꾸는 시인을 감옥에 가두는 나라에 우리는 살고 있다 ⓒ 윤지형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 아침 나는 부산 구치소로 가기 위해 지하철 2호선을 탔다. 시인 송경동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구치소든 교도소든 나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나 자신이 갇힌 몸이 된 적도, 가까운 이의 면회를 간 적도 없다.

열흘 전 쯤 내가 사는 부산의 구치소에 그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 나는 무턱대고 그를 면회 가기로 마음먹었을 뿐이다. 그를 만난 적도 편지를 나눈 적도 없었지만 나는 그를 알고 있었다. 아니 그는 언제부턴가 내 가까이에, 내 마음 속 깊숙이에 존재했다. 

이젠 온 세상이 다 아는 일이 되었지만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의 김진숙'을 살리기 위해 '희망버스'의 물결이 부산으로 밀려왔을 때 그 맨 앞자리에, 그 맨 중앙에, 그 맨 말미에 시인 송경동은 있었다. 6월에 시작된 희망버스의 기적을 우리는 그를 빼놓고선 말할 수 없다.

희망버스가 승리였다면 그것은 그의 승리, 그의 시의 승리이기도 하다. 그런데 시인은 감옥에 갇혔다. 김진숙이 살아서(!) 내려오고, 그를 걱정해 모였던 사람들이 평화로이 해산하고, 한진중 노사가 합의문에 '희망버스 관계자들에 대한 민형사상 고소고발을 취하한다'가 부속 내용으로 담겨 있었음에도 권력은 기어코 시인을 잡아 가뒀다.

첫 시집 <사소한 질문들에 답함>과
첫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 간다> 속에서 먼저 만난 송경동


그를 만나러 가는 길, 넣어줄 몇 권의 책을 준비하면서 그의 첫 시집 <사소한 질문들에 답함>(창비, 2009년)을 다시 샀고, 최근 나온 산문집 <꿈꾸는 자 잡혀 간다>(실천문학사, 2011년)도 샀다. 접견 시간이 얼마나 될 진 몰라도 그에게 그의 시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를 읽어주고 싶었다. 그의 시로 그를 조금이나마 위로하고 싶었다.

대전역 내리니 연계된 기차가 없었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고 생각하니
막막해졌다 우선 짐을 맡기러 물품 보관소에 가니
11시 52분, 오늘까지는 1200원인데
내일이 되면 가산요금이 더 붙는다고 한다
교각 아래 텅 빈 플랫폼을 보며 8분을 기다린다


오늘은 여기서 자고 가야겠다고
마음을 내려놓았지만 너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지친 몸을 뉘어야 하는데
너는 오늘은 안된다고 했다
나는 갈 곳 잃은 새처럼 거리를 헤매거나
초라한 마차에서 혼잣술에 입부리를 적셔야 했다.

(중략)
어디라도 가서 몸을 뉘어야 하는데
내일 다시 가야할 새로운 정거장들만이
저 하늘에 하나둘 그리운 별빛으로 떠올라 있다
깃들일 곳 하나 없이
뜬눈으로 새우다 가더라도
나는 오늘밤 이 별에서 자고 가야 한다.

꿈꾸는 자 잡혀가는 나라... 그는 지금 '감옥에 갇힌 나비'다

지하철 안에서는 그의 산문집을 펼쳤다. <꿈꾸는 자 잡혀 간다>. 꿈꾸는 자를 잡아가는 나라! 거기 '작가의 말을 대신'한 말의 제목은 이랬다.

'여기는 감옥, 나는 나비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뻔 했다. 나비가 있어야 할 곳은 감옥이 아니라 꽃밭이나 청무밭이나 푸른 하늘이 아닌가? 나는 '작가의 말'을 읽어나갔다.

a 두 '벗'의 접견실 앞에서의 밝은 미소 포즈 그가 갇힌 곳을 통하는 접견실은 멀고도 가까이 있었다. 얼굴은 웃지만 가슴은 울었다.

두 '벗'의 접견실 앞에서의 밝은 미소 포즈 그가 갇힌 곳을 통하는 접견실은 멀고도 가까이 있었다. 얼굴은 웃지만 가슴은 울었다. ⓒ 윤지형


유치장 생활도 벌써 6일째. 내내 잠만 잤다. 이틀 전 들어온 세관법 위반 관련 사내도내내 잠만 잔다. 아직 인사도 못했다. 어제 마지막 쫑파티를 하러 부산에 왔던 희망버스 '폐인'들은 모두 잘 돌아가셨는지 궁금하다. 구속영장도 떨어졌으니 나도 이제 새로운 생활에 적응해가야 한다. (중략) 나 한 개인의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서도 아직 그 법적 논거를 다투지 않은 상태에서 희망버스 전체를 무슨 범죄단체라도 되는 양 함부로 얘기하는 것은, 그리고 그 참여 여부가 걱정되기에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는 것은 최소한의 인권과 법리조차 망각한 반헌법적 행위인 것이다.

아무튼 이래저래 다시 얼마동안은 국민 세금을 축내며 부산의 구치소 신세를 져야하나 보다. 생각해보니 지난 몇 년 동안 집이 따로 없었다. 병원이거나 요양이거나 농성자이거나 수배처이거나……. 이젠 더는 갈 곳이 없이 빵이 거처가 되는가 보다. 뭐 별 특별한 일도 없다.

"대공 분실 세 번 가고, 징역 두 번 살고, 수배 5년을 지내다 보니 머리 희끗한 쉰셋이 되어 있더라"는 저 '김진숙'도 있지 않은가. 새도 둥지를 틀지 않는 35미터 철 구조물 위에서 309일을 살다 내려와야 하는 새로운 인류도 있지 않는가. (중략) 답답하긴 하지만 갇혀 사는 것도 다르게 생각해보려 한다. 도대체 나는 지금 어디에 갇혀 있고, 어디에서 자유로운가. 따져 보면 눈앞의 현상과는 전혀 다른 진단이 나온다. 내가 아직도 답답한 건 지금 눈앞에 있는 이 무지한 철장 몇 가닥 때문이 아니다. 돌이켜 보면 이곳은 오히려 내 해방터이고, 과분한 휴양처이고, 잠깐의 휴식처이다.

감옥이 '과분한 휴양처'?... 당신이 있을 곳은 거기가 아니다

과분한 휴양처……! 그러기도 할 터이다. 그는 내내 바람 부는 들판에서, 거리에서, 외치고, 싸우고, 생각하고, 선잠을 자고 했지 않았던가. 하지만 감옥이라는 휴식처를 누가 좋아할 것인가. 일체유심조. 몸은 갇혀 있으되 마음만은 자유이고자 할 따름이다. 그는 정녕 '시대의 시인'이고자 할 따름인 것이다. 지하철 주례역에서 내려 택시를 타고 5분인가를 가니 부산구치소가 나왔다. 찬바람이 불었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는 '동지' 둘을 접견 대합실에서 만났다. 전교조 조합원이자 '교육공동체 벗'의 조합원이기도 한 두 후배 선생님들. 그들은 나의 면회 계획에 기다리기나 한 것처럼 함께 하겠다고 했었다. 처음 해보는 접견 절차 밟는 거야 어린애도 할 구 있는 것. 우리는 이윽고 접견실로 안내되었다. 수인 번호 6022번 송경동. 그는 좁은 접견실 두껍고 희미한 유리창 너머에 서 있었다. 조금 부은 듯한 얼굴, 그러나 미소 띤 얼굴. 나는 우리 셋을 소개한 다음 넣어 줄 책에 대해, 전교조 부산지부 50대 모임 교사들이 전해 달라 하여 가져온 영치금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했고, 동지 처녀 여선생님은 건강은 어떠시냐고, 다친 다리와 허리는 어떠시냐고 물었다. 접견 시간 10분은 길고도 짧았다. 두서없이 얘기를 주고받고 접견실을 나와서야 나는 그의 말이 우리를 뒤따라 나오는 것을 느꼈다. 

a 시인을 만날 책들 시인이 잘 안다는 순천의 시인 교사 안준철의 교육 에세이집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은 구치소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시인을 만날 책들 시인이 잘 안다는 순천의 시인 교사 안준철의 교육 에세이집 <넌 아름다워 누가 뭐라 말하든>은 구치소 컴퓨터의 오작동으로 들어가지 못했다. ⓒ 윤지형


"전 건강합니다. 희망버스 때 전교조 선생님들 많이들 오셨지요. 얼마 전엔 부산 동지들이 구치소 정문 앞에서 집회를 했다더군요. 귀를 기울여 그 함성을 들었지요. 나가면 감사 인사를 전할 데가 많습니다. 빨리 나가서 할 일도 많구요. 변호사가 보석 신청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재판 전에 일단은 나가게 될 지도 모르겠네요."

우리는 접견실을 나서면서 주먹을 쥐어 보였고 그도 환한 웃음으로 또한 주먹으로 화답했다.

나비는 하루 빨리 꽃밭으로, 청무밭으로

송경동 시인님, 사랑합니다.

우리 셋은 하나같이 이 말을 못했다. 사랑한다는 말은 가슴에 깊이 묻어 둬야 할 때도 있고 마음껏 해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이번에 나는 그 말을 가슴에 묻었다. 다음에 그를 만나면 나는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당신을 사랑합니다, 라고. 그러기 위해서는 나는, 우리는 그를 만나야 한다. 만나러 가야 한다. 갇혀 있는 나비가 하루라도 빨리 꽃밭으로, 청무밭과 푸른 하늘로, 노동자들의 투쟁 현장으로, 가족의 품으로 자유로이 날아다닐 수 있도록! 그래야만 그는 그의 전매특허(!)이기도 한 '가두의 시'로 뜨겁디뜨거운 그의 사랑과 연대의 손을 세상 곳곳에 내밀 수 있을 테니까!    

a 시인의 첫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 받고 있다고"

시인의 첫 시집 <사소한 물음들에 답함> "나는 저 들에 가입되어 있다고/ 저 바다물결에 밀리고 있고/ 저 꽃잎 앞에서 날마다 흔들리고 있으며/ 저 바람에 선동당하고 있다고 (....) 대답한다 수많은 파문을 자신 안에 새기고도/ 말없는 저 강물에게 지도 받고 있다고" ⓒ 윤지형


길거리 구둣방 손님 없는 틈에
무뎌진 손톱을 가죽 자르는 쪽가위로 자르고 있는
사내의 뭉툭한 손을 훔쳐본다
그의 손톱 밑에 검은 시(詩)가 있다

종로5가 봉제골목 헤매다
방 한 칸이 부업방이고 집이고 놀이터인
미상사 가족의 저녁식사를 넘겨본다
다락에서 내려온 아이가 베어 먹는 노란 단무지 조각에
짜디짠 눈물의 시가 있다

해질녘 영등포역 앞
무슨 판촉행사 줄인가 싶어 기웃거리 텐트 안
시루 속 콩나물처럼 선 채로
국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는 노숙인들 긴 행렬 속에
끝내 서 보지 못한 직립의 시가 있다

고등어 있어요 싼 고등어 있어요
저물녘 "떨이 떨이"를 외치는
재래시장 골목 간절한 외침 속에
내가 아직 길러보지 못한 절규의 시가 있다
그 길바닥의 시들이 사랑이다 

- 송경동, <가두의 시> 전문
#희망버스 #송경동 #교육공동체 벗 #전교조 #김진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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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서 문학과 철학을 공부했고 오랫동안 고교 교사로 일했다. <교사를 위한 변명-전교조 스무해의 비망록>, <윤지형의 교사탐구 시리즈>, <선생님과 함께 읽는 이상>, <인간의 교사로 살다> 등 몇 권의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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