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아빠 중 누가 좋냐는 말에 막둥이는...

"올해도 건강했으니 내년에도 건강해라'...사랑하는 아빠가

등록 2011.12.27 15:45수정 2011.12.27 15: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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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헌이는 아빠와 엄마 중 누가 좋노?"
"아빠요?"
"뭐라꼬 엄마를 좋아해야지 아빠를 더 좋하노"

"아니에요. 아빠가 더 좋아요. 아빠는 화를 내지 않잖아요."
"그래도 엄마가 좋은기라. 알겄나."
"할머니 나는 진짜 아빠가 좋아요."


지난 성탄절 할머니와 막둥이 사이에 오간 짧은 대화입니다. 아이들에게 하면 안 되는 질문 중 하나가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라고 하지만 가장 자주 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옛날에는 엄마가 더 좋다고 하는 아이들이 많았지만 요즘은 아빠가 더 좋다고 하는 아이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엄마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엄청나게 하지만 아빠들은 "그냥 놀아라"라는 말을 더 많이 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집 막둥이가 엄마보다 아빠를 더 좋아한다고 말한 이유도 별 다르지 않습니다. 엄마는 하루가 멀다하가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만 저는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거의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이 세상에서 가장 하기 싫은 것이 공부인 막둥이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는 엄마보다 잔소리를 하지 않는 아빠가 더 좋을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지난 주 금요일밤 일기를 두고 막둥이와 엄마는 한바탕 소동을 벌였습니다.

a  지난 주 금요일 아내와 막둥이는 한바탕했습니다.

지난 주 금요일 아내와 막둥이는 한바탕했습니다. ⓒ 김동수


"이것이 일기라고 썼니?"
"그럼 일기가 아니고 뭐예요."

"일가가 아니고 뭐라니. 일기는 오늘 있었던 중요한 일이나, 생각나는 것을 주제 삼아 쓰는 것인데 너는 '오늘 방학했다', '좋다'이러 말 밖에 없잖아?"
"방학식한 것이 썼잖아요."
"그래 방학식을 어떻게 했는지를 써야 할 것 아니니?"

"그냥 방학식했다고 쓰면 되지 무슨 말을 적어야해요."
"그냥 적는게 어디 있어"
"방학식하고, 두 시간은 놀고, 청소하고 이런 것 적어도 되죠.

"그리고 이게 글씨냐"
"그럼 글씨가 아니고 그림이에요."
"엄마가 보기에 거의 그림이다."

"나는 정성을 다해 글을 썼는데 어떻게 그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성을 다해 쓴 글씨가 이래?"
"엄마 나는 정말 또박또박 썼어요.
"체헌이 너 단 한마디도 지지 않구나. 다시 일기 쓴다, 알겠어. 방학식때 무엇을 했는지 정확하게 적어 알겠어."

"알았어요. 엄마는 정말 너무해요."

두 사람 대화는 거의 10분을 오갔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던 저와 큰 아이, 둘째 아이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모를 정도였습니다. 막둥이 얼굴은 눈물이 글썽글썽입니다. 아마 아빠에게 'SOS'를 보내는 눈치입니다. 아빠가 자기 편이 되어 엄마 잔소리에서 구출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눈물이었습니다.

a  엄마 꾸중을 들은 막둥이 눈물을 짜내 아빠에게 SOS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엄마 꾸중을 들은 막둥이 눈물을 짜내 아빠에게 SOS를 요청하고 있습니다. ⓒ 김동수


하지만 이럴 때 막둥이 편을 들었다간 아침 밥 먹기 힘들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그냥 있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빠를 애처롭게 바라보는 막둥이를 향해 위로의 말을 해야 할 것 같았습니다.


"막둥아 엄마가 너를 꾸중하는 것은 사랑하기 때문이야. 사랑하는 사람에게 꾸중하는 것이지 사랑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단다."
"그래도 엄마는 너를 자주 꾸중해요. 글씨 잘 못 쓴다고 꾸중하잖아요. 너는 정말 열심히 썼는데."
"아빠가 보기에도 네 글씨는 조금 그림 같아."
"아빠 정말 그래요. 그림같은 생각이 들어요."

"응 글씨는 그림이 아니잖아. 조금 더 노력해라. 알겠어?"
"알았어요."

a  결국 막둥이는 엄마의 타박에 굴복(?)하고 일기를 다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결국 막둥이는 엄마의 타박에 굴복(?)하고 일기를 다시 쓸 수밖에 없었습니다. ⓒ 김동수


아빠의 말을 들은 막둥이는 눈물을 거두고, 다시 자리에 앉아 일기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막둥이를 볼 때마다 마음이 참 아픕니다. 또래 아이들도보다 조금은 늦게 가는 막둥이. 하지만 늦다고 생각했지만 다 할 줄 아는 막둥이입니다.


막둥아 엄마가 너를 정말 사랑하니까. 잔소리를 하는 것 알지. 올해도 건강했으니 내년에도 건강해라. 아빠는 공부를 조금 못해도, 항상 웃고 웃는 네가 참 좋다. 몸도 건강 마음도 건강 생각도 건강한 사람이 되거라. 그리고 친구를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거라. 하나님이 항상 함께 하시기를 기도한다. 너를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하는 아빠.
#막둥이 #방학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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