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재벌 김종인'... 박근혜호 전면쇄신?

의료보험 도입, 헌법 경제민주화조항 주역... 한나라당 쇄신 바람 부나

등록 2011.12.27 20:41수정 2011.12.27 21:52
0
원고료로 응원
a

한나라당이 4월 총선을 대비하기 위해 '박근혜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킨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비상대책위원으로 임명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 유성호


한나라당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 인사들 중 눈길을 끄는 핵심은 역시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71)이다. 그는 우리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친 굵직한 정책들을 도입하는 데 핵심적 역할을 했다.

우선 그는 1977년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 박정희 대통령을 설득해 노동자 대상 의료보험 제도를 도입케 한 산파였다. 이어 노태우 정부 시절 도시지역 의료보험 실시로 전국민 의료보험이 시작된 1989년에 보건사회부장관을 맡아 의료보험이 뿌리내리는 데도 기여했다. 우리의 의료보험과 복지문제에 대한 역사를 거론할 때 그가 빠지지 않는 이유다.

이어 1990년 노태우 정부 청와대 경제수석으로 단행했던 5.8조치 즉, 재벌의 비업무용부동산 매각을 이끌어내 부동산투기를 잠재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그는 5대 재벌 기조실장들을 청와대로 불러 비업무용 부동산 4800만 평을 매각하도록 압박했고, 재벌들은 그를 '빨갱이'라고 불렀다.

'빨갱이' 소리듣던 김종인 경제수석, '반 신자유주의' 성향

현재 재벌 규제의 근거가 되고 있는 '국가는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 민주화를 위해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는 헌법 119조 2항의 경제민주화 조항은 '김종인 조항'으로도 불린다. 민정당 의원 시절인 1987년 6월항쟁으로 만들어진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개헌특위) 경제분과위원장으로서 이 조항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조항은 헌법을 개정할 경우 재벌들이 폐지를 요구하고 나올 첫 번째 대상으로 꼽힌다.

그는 독일에서 공부를 했다. 이는 보수·권위주의 정권에서 그가 반재벌 경제민주화 정책과 헌법조항을 도입할 수 있었던 '힘'으로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대부분 미국으로 유학가던 1960년대 말 70년대 초, 그는  매우 드물게 유럽에서 공부했다. 그는 독일 뮌스터대에서 재정학과 분배론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사회정책에 대한 공부를 하려 했는데, 당시 이 분야는 미국보다 유럽이 훨씬 앞섰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대다수 경제학자가 미국 중심의 신자유주의 경제학에 경도돼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그가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부에서 일했음에도 진보개혁진영에서 많이 이들이 그를 멘토로 여기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런 이력으로 그는 역대 정부에서 계속 경제수장 후보로 꼽혔다. (열린우리당 분당 이후) 민주당 의원 시절이던 2007년 대선에서는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의 '정통경제 선언'을 다듬어 주고, 첫 선거유세에 배석하기도 했다.

2007년 11월 25일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대통령 후보의 서울 관악구 봉천 3동 현대아파트단지내 야외 기자회견에 김종인 민주당 의원이 배석해 눈길을 끌었다. ⓒ 황방열


김 전 수석은 이명박 정부에서도 국무총리나 기획재정부 장관으로 물망에 올랐다. 하지만 그는 이명박 정부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김종인이 공천심사위원장 맡으면 좋겠다"

'신자유주의 한나라당'에서 벗어나고, '신자유주의 박근혜'에서 중도보수 이미지로 바꿔 보려는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그는 매력적인 인물이었을 것이다. 

당장 경제민주화가 민주통합당의 핵심 구호인 상황에서 헌법의 경제민주화 조항을 만든 당사자를 데려왔으니 한나라당으로서는 적지 않은 이득일 수밖에 없다. (민주통합당 이전 민주당은 '헌법 119조2항 특별위원회'를 만들기도 했었다.)

그의 등장은 일단 호평을 받는 분위기다. 박 위원장에 대해 지속적으로 강한 비판을 해온 원희룡 의원도 "김종인 박사 참여는 최상의 카드"라며 "이번 비대위 인선은 한 마디로 `김종인 비대위'"라고 환영했다. "박 비대위원장이 김 전 수석과 `복식조'로 가겠다는 것"이라고도 했다.

김 전 수석의 등장이 주목받는 것은 그가 단순한(?) 경제전문가가 아니라 현실정치에도 밝은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론조사기관은 갤럽 정도에 불과했던 1987년부터 그는 2년간 민정당의 사회개발연구소장과 국책연구소장으로 있으면서 선거여론조사를 본격 도입했다. 현재 여론조사업계에 있는 노규형, 김덕영, 김행 등이 당시 멤버들이다.

그는 또 여야를 넘나들면서 11·12·14·17대 국회의원을 지냈다. 비례대표 4선은 헌정사에 그가 유일하다. 여야, 보수-진보를 넘나드는 자신의 행보에 대해 그는 "중요한 건 보수니, 진보가 아니라 실제로 성과를 이뤄내고 일을 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안철수 서울대 교수는 이런 정책적 지향과 정치경력을 갖고 있는 그와 서울시장 출마 문제를 논의했었다.

a

한나라당이 4월 총선을 대비하기 위해 '박근혜 비대위 체제'를 출범시킨 가운데,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한나라당 당사에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을 비롯한 비상대책위원으로 임명된 황우영 원내대표, 이주영 정책위의장, 주광덕 의원, 김세연 의원, 김종인 전 청와대 경제수석, 조동성 서울대 경영대 교수, 이상돈 중앙대 법대 교수, 이양희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조현정 비트컴퓨터 대표, 이준석 클라세스튜디오 대표가 첫 비상대책위원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 유성호


한나라당 친박계(박근혜계)의 한 관계자는 그의 위상에 대해 "형식적으로는 위원 중 한분이지만 내용적으로는 큰 역할을 맡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당 주변에서는 그가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지 않겠느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오너 박근혜', 어떤 변화 일으킬지 긴장된다"

한 친박 의원은 "실제 공천심사위원장이 될지는 모르지만, 김 전 수석이 위원 자리 하나로 비대위에 들어왔을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한 소장쇄신파 의원은 "연세도 있고, 경험도 풍부하고, 지금의 한나라당과 별로 얽힌 것도 없기 때문에 그가 공천심사위원장을 맡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 전 수석과 가까운 민주통합당 쪽 인사들도 "김 전 수석은 정치를 바꾸는 지름길로 공천을 강조해 왔는데, 그게 가능한 공간을 찾아간 것 같다"고 분석했다.

박 위원장은 17대 총선 때 지역구 공천은 김문수 의원에게, 비례대표 공천은 박세일 교수에게 전권을 맡겨, 탄핵폭풍 속에서도 121석을 얻는 성과를 냈었다.

박근혜 위원장은 이번 비대위 인선으로 주목을 받으며 첫발을 내디뎠다. 민주당의 한 전직 의원은 "한나라당은 '오너 박근혜'가 등장한 반면 우리는 집단지도체제이고, 알맹이만 놓고 보면 여전히 확실한 대선후보도 없는 상황"이라며 "당을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박 위원장이 어떤 변화를 만들어낼지 긴장된다"고 말했다.

당대표 선거에 나선 이인영 전 최고위원도 "비대위 면면에서 한나라당의 쇄신 의지를 읽을 수 있다"며 "한나라당이 '전면적 쇄신' 무기를 들고 국민들에게 다가서려 하는데, 민주통합당은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고 밝혔다.

'박근혜 비대위'는 첫 회의에서 곧바로 '국회의원 불체포특권 포기'와 '디도스 사건관련 최구식 의원 자진 탈당 권유' 결정을 내렸다.

[인터뷰] 김종인 "한나라당 압박하는 요인, 신속히 바로 잡아야"
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회가 구성된 뒤 열린 첫 회의는 '위원들끼리 서로 인사 정도만 하는' 수준이 아니었다. 이날 회의에선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의 '불체포 특권 포기 선언'과 10·26 재보선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에 대한 대책이 나왔다.

공개로 진행된 첫 회의 모두발언에서 김종인 비대위원은 "창조적 파괴를 하지 않으면 한나라당은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창조적 파괴'의 첫걸음은, 현행범이 아닌 한 국회 회기중 국회의 동의 없이 체포 또는 구금되지 않는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겠다는 선언이었다.

또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 사건에 대한 국민적 의혹을 해소하기 위해 '검찰 수사 국민검증위원회'를 설치하고 나선 것도 신속한 행보로 평가된다.

김종인 비대위원은 이날 비대위 회의 직후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지금 한나라당에 압박을 주는 요인들이 여러가지 있는데, 이걸 신속하게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다음은 김 비대위원과의 일문일답이다.

- 비대위 첫 회의부터 '불체포 특권 포기' 등 과감한 조치를 내놨다.
"한나라당에 대해 일반 국민들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게 있다. 모두 깨야 한다."

- '불체포 특권 포기'는 직접 제안한 건가.
"그런 건 아니다."

- 한나라당 변화를 위해선 '한나라당=특권세력' 이라는 인식부터 깨야한다는 것인가.
"비대위를 괜히 만든 건 아니지 않는가. 새롭게 바뀌기 위해 만든 건데, 거기에 걸맞게 얘길해야 한다. 지금 한나라당에 압박을 주는 요인들이 여러가지 있는데, 이걸 신속히 바로 잡아야 한다."

- 오늘 회의 모두발언에서 '창조적 파괴'를 언급했는데, 가장 먼저 파괴할 것은?
"창조적 파괴 얘기한 건 잘못된 걸 모두 다 시정해야 한다는 얘기다. 파괴하고 새로운 모습을 만들어내야 한다.
#박근혜 #김종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AD

AD

AD

인기기사

  1. 1 캐나다서 본 한국어 마스크 봉투... "수치스럽다"
  2. 2 황석영 작가 "윤 대통령, 차라리 빨리 하야해야"
  3. 3 100만 해병전우회 "군 통수권" 언급하며 윤 대통령 압박
  4. 4 300만명이 매달 '월급 20만원'을 도둑맞고 있습니다
  5. 5 두 번의 기회 날린 윤 대통령, 독일 총리는 정반대로 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