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호령한 문화 칭기즈칸, 백남준

백남준 탄생 80주년, 그의 추모6주기를 맞아 그에게 바치는 기사

등록 2012.01.29 13:59수정 2012.01.29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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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의 조카인 켄 백 하쿠타(백남준 스튜디오 디렉터)의 진행으로 장례식이 시작되고 생전에 연출했던 퍼포먼스에 헌정하는 형식으로 넥타이 자르기를 재현 오노 요코가 켄 하쿠다의 넥타이를 자르자 300여명의 조문객도 가위로 옆에 있는 사람의 넥타이를 잘라내 백남준의 시신 위에 놓아 그에 대한 존경을 표하다. 당시 뉴욕에 머물고 있었던 권연정 전시기획자(베이징거주)가 찍은 사진을 보내줌 ⓒ 권연정


오늘은 세계적인 작가이면서 세기적인 작가였던 고(故) 백남준 추모 6주년이다. 올해는 또한 백남준 탄생 80주년이기도 하다. 그래서 그의 대한 존경과 추모의 정을 담아 그가 남긴 정신과 유업이 뭔지를 생각하면서 그의 예술세계를 재조명해 보고자 한다.

단군 이래 백남준만큼 지적이고 경이롭고 위대하고 세계적인 인물은 없었다. 일본어, 영어, 프랑스어, 독어, 중국어 등에 능통했고 경기보통중학교, 홍콩 로이든스쿨 졸업 후 동경대, 뮌헨대 등 유수학교에서 공부했다. 백남준의 소꿉친구 수필가 이경희 여사는 어려서 같은 유치원 다닐 때 캐딜락을 같이 타고 다닐 정도로 그의 집안은 당대 최고 부자였다.


백남준은 비디오아트 창시자로, 세계문명을 성찰한 철학자로, 무조(無調)음악가로, 종이문명의 종말을 고하며 인터넷과 SNS를 내다본 예언자였다. 칭기즈칸의 후예를 자처한 그는 지구촌 문화제국의 황제였다. 그래서 그는 니체의 초인이 되었고 맑스도 능가했다.

백남준, 천년을 우려먹을 문화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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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2월 3일 백남준의 장례식이 열린 뉴욕 프랭크 캠벨에는 당시 많은 조문객과 취재진이 북적였다 ⓒ 권연정


이영철 미술평론가는 백남준은 우리가 천년을 써 먹을 수 있는 문화자본이라고 한 적이 있다. 이 말을 앞으로 천년 동안 문화재로 외국에 수출할 수 있는 재화라는 뜻인데 하긴 이탈리아는 2천년 간 조상들 덕분에 지금도 관광대국으로 어마어마한 혜택을 누리고 있다.

백남준 작품은 세계미술시장에서 제대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중국과 비교가 안 된다. 2012년 1월 <아트프라이스>에 의하면 피카소와 비슷한 세대인 중국의 '장다첸'나 '치바이스'는 2011년 경매 낙찰총액이 각각 약 5700억과 약 5110억 원이다. 하지만 백남준 작품에 대한 시장평가는 아직 낮다. 우리에게 주어진 과제다.

뒤샹보다 한수 위인 백남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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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I '슈톡하우젠의 괴짜[오리기날레]에게 바치는 비디오(Video still from Nam June Paik's contribution to Karl Stockhausen's Originale performances)' 영상제작: Wolfgang Ramsbott 1961. Courtesy Kunsthalle Bremen ⓒ The Estate of Nam June Paik ⓒ Nam June Paik


백남준은 "현대예술은 예술을 하지 않는 것이 예술"이라고 주장한다. 무(위)예술이라고 할까. 하여간 피카소의 한계를 뒤샹이 뚫었다면 뒤샹의 한계는 백남준이 뚫었다. 다시 말해 서구현대미술의 아버지 뒤샹의 반예술보다 한 단계위인 무(위)예술을 창출한 셈이다.

그래서 그가 취하는 방식은 '랜덤액세스(random access 비순차적 접근, 임의접속)'다. 순차 없이 어지럽게 뒤죽박죽으로 만드는 무작위기법이다. 무질서해 보이나 그 속에 보이지 않은 체계가 있다. 주동자 없는 '2008년 서울광장의 촛불시위'나 이념이 없는 '2011년 뉴욕 월스트리트 점령시위'가 바로 이런 방식이다.


이런 방식이 독일에서 통한 건 그들이 나치즘의 악몽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합리적이고 논리적이고 질서정연한 질서체계가 얼마나 무기력한지를 그들은 깨닫고 있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플럭서스(fluxus)'라는 전위운동이 서구에서 일어났고 백남준은 존 케이지, 요셉 보이스 등과 함께 거기에 참여하여 주도적 역할을 한다.

칭기즈칸의 후예라는 정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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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I '칭기즈칸의 복원' 1993 작품 뒤로 '황색 재앙은 바로 나다(Yellow peril, c'est moi)'라는 글씨가 살짝 보인다 ⓒ 김형순


백남준은 디지털 유목시대에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세계시민으로 그의 정체성을 한반도에 국한시키지 않고 몽골로까지 넓혔다. 그래서 그는 65년 독일아헨대학 퍼포먼스에서 바지를 내려 몽골반점을 보여주며 자신이 칭기즈칸의 후예임을 과시한다.

백남준은 그러면서 "황색 재앙은 바로 나다(Yellow peril, c'est moi)"라고 유명한 말을 남겼다. '황색재앙'은 13세기 초 몽골군이 유럽을 침공해 쑥대밭을 만들고 몽골이 러시아를 200년간 지배한 것을 뜻하는데 백남준은 정말 위성아트를 통해서 칭기즈칸보다 더 넓은 영토를 차지했고 문화 칭기즈칸이 되어 전 세계를 호령했다.

이를 구현한 것이 바로 1984년 1월 1일에 벌어진 위성아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다. 그는 이날이 21세기가 시작한 날이라고 선언하며 인터넷시대를 예고한다.

TV에 생명 넣어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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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I '하늘을 나는 물고기(Fish Flies on Sky)' 1983-85 3 Kanal Videoinstallation Maße variabel ⓒ Estate of Nam June Paik(Museum Kunst Palast, Dusseldorf) ⓒ Nam June Paik


백남준은 TV로 유희하는 천진난만한 천재였다. 서양인은 엄두도 못내는 서양의 최고발명품 TV를 가지고 장난감처럼 가지고 신나게 놀았다. 물질인 TV에 정신을 불어넣어 사람처럼 소통할 수 있는 생각하는 존재로 만들었다. TV가 부처와 대화하는 작품도 유명하다.

TV는 '멀리(tele) 보다(vision)'라는 뜻이 담겨 있다. 백남준은 말 그대로 미래를 멀리 내다보는(visionary) 사람이었다. 게다가 부처처럼 인자하여 TV부처라고 별명도 붙었다. 서양과학과 동양정신을 하나로 녹인다. 기술의 오작동과 과부하를 예술로 극복했고 첨단기술인 TV를 비디오아트로 승화시켰다.

축제의 회복 위한 범지구적 한판 전자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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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I '그로벌 그루브(Global Groove)' 1973. Courtesy Electronic Arts Intermix (EAI) New York ⓒ Estate of Nam June Paik. 무어만의 TV첼로연주 ⓒ Nam June Paik


약소국에서 온 동양인인 백남준은 어떻게 서양인을 설득시켰나갔는지 궁금하다. 그것은 바로 서양인을 즐겁게 하는 방법이다. 엄청난 친화력이 있었던 백남준은 동네 개구쟁이들 같은 장난기와 기상천외한 상상력과 익살맞은 유머와 언변으로 서양인을 감동시킨다.

그러면서 그는 서구인들이 불행한 것은 돈 때문에 축제를 상실한 데서 기인한다고 봤다. 유럽인들은 사실 1차 대전과 2차 대전을 치르면서 삶이 완전히 망가졌다. 백남준은 물신에 복종하다보니 조물주가 내린 축복인 축제를 즐길 수 없게 됐다며 이를 극복하려 한다.

그렇게 나온 작품이 1971년 '글로벌 그루브(Global Groove)'이다. 거기에서 한국의 사물놀이, 일본의 펩시콜라 광고, 무어만의 TV첼로, 워터게이트로 뒤틀린 닉슨의 얼굴, 피아노가 불타는 장면 등 시공간을 초월하여 범지구적으로 신명나는 한판 놀이 등을 보여준다.

백남준은 어떻게 독일에서 신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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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뒤셀도르프 시내전차에 그려진 백남준의 얼굴. 그는 독일에서 거의 신적인 존재다. 백남준의 유명한 말 "너무 완벽하면 신이 화를 낸다"는 문구가 전차에 적혀있다. ⓒ Estate of Nam June Paik(Museum Kunst Palast, Dusseldorf) ⓒ Nam June Paik


그런데 백남준은 어떻게 독일에서 신적인 존재가 되었나. 우리가 학연, 지연, 혈연의 편견을 깨지 못하듯 독일인은 자신들이 우월하다는 합리주의, 이성주의, 과학주의의 고정관념을 깨지 못했다. 그러나 백남준은 시대의 우상을 시원하게 깨줌으로 나치즘의 악몽 속에서 괴로워하는 독일인을 해방시켰다.

백남준은 1963년 첫 부퍼탈 전시부터 부르주아의 상징이자 숭배대상인 피아노를 때려 부수는 퍼포먼스를 했고 그 이후에도 이런 해프닝은 계속되었다. 그런 결과로 백남준은 독일에서 스타가 되었고 뒤셀도르프대학 교수가 되었고 전차에도 그의 얼굴이 나붙게 된다.

스승이자 유럽의 최고천재 맑스도 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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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I '설치작품-살불살조(殺佛殺組)' 1993 베니스비엔날레 출품작. 부처의 목이 잘린 몸뚱이가 바닥에 뒹글고 있다 ⓒ 김형순


이번에는 백남준의 스승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 알아보자. 백남준의 10대 때 이미 일본어판으로 맑스 책을 읽었고 무조음악의 창시자 쇤베르크에 열광했다. 이 두 사람이 그의 스승이다. 1996년 <객석> 1월호에서 황필호 박사와 한 인터뷰에서 "당신은 종교가 있느냐"라고 물으니 백남준은 "종교는 없어요. 나는 맑스주의자"라고 말했다.

백남준은 이렇게 태생적으로 어떤 형태의 권력이든 이를 부정하는 아나키스트였다. 독일의 철학자 바더는 "신이나 우상에게 재물을 바치지 않는 사람은 유사 이래 없었다"고 했지만 백남준은 이를 거부한다. 백남준은 오히려 선불교의 '살불살조(殺佛殺組 부처를 보면 부처를 죽이라)' 정신을 그의 예술로 구현한다.

백남준은 그의 스승인 맑스도 죽였다. 맑시즘의 핵심어인 '착취와 소외'를 백남준은 '참여와 소통'으로 극복한다. 다시 말해 시민의 참여로 독재를 막고 정보혁명을 통한 소통으로 전쟁을 막는다고 봤다. 맑스가 계급투쟁의 방식으로 세계를 해방하려고 했다면 백남준은 평화적 방식인 예술과 소통으로 세계를 구원하려 했다.

영원을 손에 쥐는 시간이 그의 평생화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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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남준 I '프랙탈 거북선(Turtle Ship)' 350×670×400cm 1995. 1995년 대전엑스포 때 출품된 작품으로 400여개의 TV모니터와 100여개의 오브제가 혼합. 이순신장군에 대한 백남준의 존경이 담겨 있다 ⓒ 김형순


백남준은 1962년 친구 예를리에게 보낸 편지에서 "내 작품은 그림도 조각도 아니고 단지 시간예술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적고 있다. 또한 백남준은 "한 번 테이프에 사진이 찍혀버리면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다 시간에 대한 고민이 담긴 말이다. '거북선'도 바로 공간예술에 비디오로 편집된 시간을 도입한 작품이다.

백남준은 이렇게 시간과 공간을 비빔밥을 만들 듯 하나로 통합한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유언처럼 "내일 세상은 아름다울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 백남준에 대한 해석과 연구는 오독이든 정독이든 앞으로 다방면으로 계속 조명될 것이다.

80회 생일을 맞는 올해 우리가 한번 생각해 볼 것은 아직도 그가 금의환향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백남준 아트센터가 용인시에 있지만 앞으론 백남준 이름이 붙은 거리, 연구소, 도서관, 박물관, 국립미술관, 국립대학, 공원 등 할 일이 많다. 그가 우리에게 천 년간 써먹을 문화재화를 남겼다면 그 이자를 어떻게 창출할 것인가는 우리 손에 달렸다.

덧붙이는 글 | [故백남준 추모 6주기 공연 및 기증식] : 장소: 백남준 아트센터 2층 메모라빌리아 홀 일시: 2012년 1월 29일(일) 오후4시 내용: 삼성SDI 삼성전자(베트남 법인) 브라운관 텔레비전 기증식 참석예정자: 경기문화재단 권영빈 대표이사, 황병기, 이경희, 김원, 송정숙, 김용원등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회원들. 삼성 SDI 및 삼성전자 관계자.

[추모행사] 백남준 NHK 방송(1984년) 퍼포먼스 동영상 상영 추모 연주 : 두들쟁이 타래 (경기도박물관 상주단체) I. 백남준 초기작곡 : '조가', '먼후일', '산국화', '향수'(1947-48), II. 전통국악곡 : '영산회상' III. 두들쟁이 타래 창작곡: '어느 맑은 날', '생각하는 유목민'


덧붙이는 글 [故백남준 추모 6주기 공연 및 기증식] : 장소: 백남준 아트센터 2층 메모라빌리아 홀 일시: 2012년 1월 29일(일) 오후4시 내용: 삼성SDI 삼성전자(베트남 법인) 브라운관 텔레비전 기증식 참석예정자: 경기문화재단 권영빈 대표이사, 황병기, 이경희, 김원, 송정숙, 김용원등 백남준을 기리는 사람들 회원들. 삼성 SDI 및 삼성전자 관계자.

[추모행사] 백남준 NHK 방송(1984년) 퍼포먼스 동영상 상영 추모 연주 : 두들쟁이 타래 (경기도박물관 상주단체) I. 백남준 초기작곡 : '조가', '먼후일', '산국화', '향수'(1947-48), II. 전통국악곡 : '영산회상' III. 두들쟁이 타래 창작곡: '어느 맑은 날', '생각하는 유목민'
#백남준 #랜덤액세스 #위성아트 #그로벌 그루브 #플럭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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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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