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 붉은 유혹의 화살에 찔리다

[포토에세이] 화살나무의 열매

등록 2012.01.29 17:04수정 2012.01.29 1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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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화살나무의 열매 도움 속에 숨어있는 빛을 어떻게 잡아내는가 사진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화살나무의 열매 도움 속에 숨어있는 빛을 어떻게 잡아내는가 사진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 김민수

▲ 화살나무의 열매 도움 속에 숨어있는 빛을 어떻게 잡아내는가 사진에서 상당히 중요한 문제다. ⓒ 김민수

 

화살나무의 붉은 열매를 보면서 프랑스 철학자 장 보르리야르의 유혹에 대한 정의를 떠올렸다. 이것은 왜 인간이 욕망하며, 또 소비하며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강하면서도 아름다운 유혹 때문입니다. 유혹은 생산보다 강하고 성욕보다 강합니다. 어둠은 유혹입니다. 스스로 부서질 것을 알면서 유혹합니다…….'

 

그러고 보니 '스스로 부서질 것을 알면서' 새들을 유혹하고 있는 것이다.

 

산야의 열매들 모두가 그렇게 스스로 부서지는 길을 선택하므로 또 새로운 삶의 영역을 넓히며 살아가고 있으니, 부서진다는 것은 곧 사라져 없어진다는 것과는 다른 것이다.

 

a 화살나무의 열매 겨울이 깊을 수록 붉은 빛은 더 붉어진다.

화살나무의 열매 겨울이 깊을 수록 붉은 빛은 더 붉어진다. ⓒ 김민수

▲ 화살나무의 열매 겨울이 깊을 수록 붉은 빛은 더 붉어진다. ⓒ 김민수

자신을 부수고, 깨뜨리지 않으면 새롭게 거듭날 수 없음의 비결을 여기서 본다면 너무 비약적인 것일까?

 

그렇다.

 

살아가면서 때론 부서질 수 있음을 알면서도 도저히 그 길을 가지 않으면 안 될 때가 있다. 이런저런 단어들로 치장되지 않고 원색적인 단어로 이야기한다면 '유혹'이다. 정의를 위한, 민주주의를 위한 갈망도 모두가 유혹이었다. 그 유혹의 열매를 따기 위해 정의의 이름으로 정의를 평화의 이름으로 평화를 민주주의라는 제도로 정의를 짓밟고, 전쟁을 일삼았으며, 독재정치를 자행했다.

 

a 화살나무의 열매 붉은 빛과 검은그림자의 대비

화살나무의 열매 붉은 빛과 검은그림자의 대비 ⓒ 김민수

▲ 화살나무의 열매 붉은 빛과 검은그림자의 대비 ⓒ 김민수

 

모두 유혹이다. 강력하나 유혹이다.

장 보르리야르의 인용된 이야기는 사진과 관련된 이야기다.

사진은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일부터 시작된다는 것, 어둠이 제 속에 빛을 감추어두고는 그 빛으로 유혹을 하고, 사진가는 어둠 속에서 빛을 찾아 담고, 그 순간 어둠은 살해를 당하는 것이다. 그 의미를 '부서진다'라고 표현한 것이다. 유혹하여 자신이 부서짐으로서 한 장의 사진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사진 이야기가 사진에 국한된 것만이 아닌 것은 우리의 삶에 연결된 모든 것들이 상호간에 영향을 미치고 있으며, 사진 한 장도 결국에는 사진가의 삶의 표현이며, 사진가는 사진이라는 매개체만으로 이 세상을 살지 않는다는 점에서 '유혹' 혹은 '부서짐'이라는 말들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a 화살나무의 열매 마치 잘 건조된 연시의 축소판을 보는듯하다.

화살나무의 열매 마치 잘 건조된 연시의 축소판을 보는듯하다. ⓒ 김민수

▲ 화살나무의 열매 마치 잘 건조된 연시의 축소판을 보는듯하다. ⓒ 김민수

 

화살나무의 꽃은 예쁘지 않다.

그럼에도 정원수로 사랑을 받는 이유는 바로 이 열매 때문이다.

붉은 빛 열매가 새들을 유혹하고 그리하여 정원엔 새소리가 들려오고, 꽃들과 새와 나무와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완벽한 정원이 된다. 물론, 완벽한 정원은 자연이지만 인간이 만든 정원이 자연에 더 가까우려면 화살나무와 같은 장치가 있어야 했을 것이다.

그런 장치가 되어 자신이 부서지는 것, 그것도 의미 있는 삶이 아닐까?

 

a 화살나무의 열매 그렇다, 어둠은 유혹이다.

화살나무의 열매 그렇다, 어둠은 유혹이다. ⓒ 김민수

▲ 화살나무의 열매 그렇다, 어둠은 유혹이다. ⓒ 김민수

 

오랜만에 겨울햇살이 따스하다.

작은 열매가 햇살에 노골적으로 자신의 빛을 드러낸다.

그 빛, 그 붉은 유혹의 화살을 향해 날아드는 새, 화살이 그들의 심장을 겨냥하기 전에 스스로 화살에 찔린다. 화살나무의 열매, 난 그를 붉은 유혹의 화살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화살나무 #장 보르리야르 #사진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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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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