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은 어떻게 강한 복지국가를 만들었을까

[홍기빈의 신자유주의와 한국정치경제를 말한다 ③] 진보 세력의 한계와 '잠정적 유토피아'

등록 2012.02.17 17:30수정 2012.02.17 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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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소장의 신년강좌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를 말한다' ⓒ 권우성


"비그포르스의 경제 사상은 '나라 살림(planhus-hallning)'이라는 단어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나라 전체의 살림을 조절한다는 뜻이죠. 나라를 경영할 때는 어떤 부분은 대기업을 적극적으로 장려하고 밀어줘야 하는 부분이 있고 어떤 부분은 민간에서의 사회경제가 조직되도록 해야 하는 부분도 있는 것입니다. 그 각각이 사회적으로 얼마만큼 효율적이고, 그 나라의 국민들에게 최상의 경제생활을 제공해주도록 하는가가 비그포르스의 관심사였습니다."

2012년, 국회의원 총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는 한국에서는 과거 어느 때보다 복지국가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한국이 나아가야 할 복지국가 모델 중 단골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균형있는 성장과 분배가 함께 이뤄지고 있는 스웨덴 모델이다. 그리고 이 스웨덴 모델의 골격을 설계한 사람이 바로 에른스트 비그포르스다.

홍기빈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장은 지난 14일 서울시 마포구 상암동 <오마이뉴스>에서 열린 '신자유주의 그리고 한국의 정치경제를 말한다' 세 번째 수업에서 비그포르스의 생애와 그가 복지국가를 설계했던 사고방식이 어떤 것이었는지에 대해 강의했다. 홍 소장은 "자본주의가 흔들리고 있지만 대안적인 정치경제체제를 한 번에 만들 수는 없다"며 "더 나은 사회의 상을 제시하면서도 현실 구현이 가능한 부분부터 바꿔나갔던 비그포르스의 방식은 지금 우리에게 의미가 깊다"고 말했다.

20세기 초 마르크스주의.. "혁명이 안 일어나서 망해"

홍 소장은 비그포르스에 대한 내용을 강의하기에 앞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 위기 담론을 맞았던 유럽의 사회주의(마르크스주의) 추이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마르크스주의는 혁명이 안 일어나서 망했다"는 다소 도발적인 문장으로 강의를 시작했다.

"마르크스주의에 위기가 왔다고 분석한 최초의 논문은 1890년에 나왔습니다. 그리고 1900년쯤 되면 사회 운동계에서 이런 인식이 팽배해지게 되지요. 가장 강력한 반론을 제기할 수 있었던 진영은 러시아의 볼셰비키 진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 1920, 30년대에 도덕적 실천적으로 완전히 파산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렇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반드시 일어나게 되어있는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홍 소장은 "마르크스주의에 따르면 자본주의는 역사발전의 법칙에 의해 필연적으로 공황이 벌어지고 멸망하는 한편,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들은 계속 성장하게 되어 있다"며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만나는 순간에 혁명이 일어나고 사적소유가 철폐되고 사회주의로 넘어가게 된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이 아무리 기다려도 당연히 일어나야 하는 혁명이, 마르크스가 주장했던 '각본'이 현실에서는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다.


혁명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1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유럽의 귀족정, 왕정이 줄줄이 무너지면서 오스트리아와 독일, 스웨덴 세 나라에서 사회민주당이 정권을 잡는다. 그러나 이들은 기존의 정치세력과 차별화되는 정책을 보여주지 못한다. 홍 소장은 "혁명을 하라고 만든 정당이 어느새 여당이 되는 황당한 사태가 벌어진 것"이라고 설명했다.

"한 번 생각해보세요. 자본주의를 타도하자고 모인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는데 그들이 매일매일 맞닥뜨리는 것은 도시 오물처리 같은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정치 문제거든요. 당시 사회주의 정당들이 가지고 있는 이론이라든가 이념 같은 것하고 여당이 된 다음에 매일 매일 처리해야 되는 구체적인 정책하고는 하늘과 땅만큼의 차이가 있는 겁니다. 근데 이걸 잘해야 다음 선거에 또 정권을 잡을 수 있어요. <자본론> 10번 읽으면 도시 하수구 처리 잘 하게 되는 거 아니잖아요. 그래서 사회민주당이 부르주아 정당들이 하는 정책들과 결국 똑같은 정책들을 펴게 됩니다."


비그포르스, 17년간 점진적으로 '복지국가 스웨덴' 만들어

홍 소장은 이런 일이 발생했던 이유는 두 가지로 설명했다. 하나는 곧 자본주의가 쇠퇴하고 혁명이 일어날 것이라는 마르크스주의자들의 근거 없는 믿음, 다른 하나는 좌파, 우파를 가리지 않는 시장주의에 대한 맹신이다.

그는 "통화의 공급부터 시작해서 노동력의 공급, 모든 상품 시장에 이르기까지 경제행위의 조정은 시장 가격의 자기조절운동에 의해 조절되도록 내버려둔다는 것이 19세기 자본주의의 원칙"이라며 "수출이 늘어 금이 늘어나면 통화량은 늘어나게 되어 있고 수출이 줄어들면 금과 통화량은 줄어들게 되어 있으므로 정부는 금융정책도 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 당시의 지배적인 관념이었다"고 말했다.

"1930년대에 전 세계적으로 대공황이 시작됐습니다. 대공황 전까지 10%였던 실업률은 공황이 시작되자 30%를 넘었을 거라고 추정을 해요. 그러나 세계적으로 일자리 대책을 준비해놓은 세력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의 상식으로는 일자리는 시장에 맡겨야 하는 것이니까요. 가장 적극적이었던 게 독일의 나치당 정도입니다. '독일 민족의 노동자들이 굶고 있는데 국가는 당장 일자리를 줘라'하는 단순 무식한 입장이었지요. 그래서 '그런 식으로 나가면 재정위기 나고, 환율 떨어지고, 다른 나라에서 전쟁하자고 그럴 거고 외교문제 악화되고 그러면 어떡할 거냐'라는 반론이 나오면 나치당은 '어. 전쟁하면 되지'라는 식으로 되받는 식이었습니다."

홍 소장은 "일자리 계획이 준비되어 있었던 유일한 두 나라가 벨기에와 스웨덴이었다"며 "스웨덴의 일자리 계획을 짠 것이 당시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국회의원이었던 비그포르스"라고 설명했다. 비그포르스는 1930년에 의회에 일자리를 늘리기 위한 폭발적인 적자재정을 제안한다.

"비그포르스는 사회적으로 절실히 필요하지만 자본가들이 하지 않는 것과 관련한 일자리를 늘리는 계획을 짭니다. 병원이나 학교, 그 밖의 공공시설 같은 곳을 중심으로 일자리를 만들고 이들에게 시장 노동자들과 동일한 임금을 주는 내용의 제안서를 의회에 제출하지만 당시 의회 다수당이었던 보수당과 자유당은 이를 거부합니다. 스웨덴 국회의원 총선거가 1932년에 있었는데 비그포르스의 사회민주당이 이 제안을 공약으로 다수당이 되지요."

비그포르스는 1932년 선거에서 사회민주당이 승리한 후 17년 동안 스웨덴의 재무장관으로 일하며 복지국가를 향한 정책을 차근차근 진행시킨다. 홍 소장은 "1936년 정도가 되면 스웨덴에서 경제 위기는 완전히 사라지고 공황 전보다 경제가 좋아지는 모습을 보인다"며 "사회민주당은 1936년 선거에서 복지국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선거에서 승리하면서 본격적인 스웨덴 복지국가가 시작됐다"고 말했다.

"복지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의 정착지 아니라 하나의 정류장"

비그포르스는 1949년 은퇴하고 1950년부터 스웨덴에는 복지국가 시스템이 완전히 안착하게 된다. 홍 소장은 "1881년생인 비그포르스는 은퇴하자마자 스웨덴이 복지국가 다음 단계를 완성한 다음에 어느 단계로 나아가야 하느냐는 주제를 가지고 집필활동을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비그포르스가 생각하기에 복지국가는 사회주의 국가의 정착지는 전혀 아니었습니다. 스웨덴이라고 자본가 횡포가 없지 않지요. 여전히 자본주의의 불평들과 모순들이 존재합니다. 그는 복지국가가 일종의 정류장에 불과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가야 할 정류장, '잠정적 유토피아'가 무엇인지 제시하려고 무척 노력했지요."

홍 소장은 "흔히 자본주의 모델에 비판을 가하면 사람들은 '대안이 있냐'고 묻는다"며 "대안을 묻는 프레임에 빠지면 반대의견을 가진 쪽에서는 당장 능력이 없어도 대안을 만들어야 하는 강박관념에 빠지게 된다"고 지적했다. 자본주의 모델에 대한 대안이 없더라도 근거가 정당하다면 비판은 할 수 있는 것이며, 대안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청사진처럼 완벽하게 짜여져 있는 방대한 모델일 필요는 없다는 얘기다.

홍 소장은 "비그포르스가 제시했던 복지국가 모델도 청사진이 아니라 일종의 가이드라인에 불과한 것이었다"며 그가 만든 복지국가 모델이 우리에게 시사하는 것은 그 나라의 정치경제모델을 그 나라 사람들이 직접 점진적으로 만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라고 말로 강의를 마쳤다.
#비그포르스 #홍기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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