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수입 69만원...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

[인터뷰] '뮤지션 유니온' 추진하는 인디밴드 '더문' 보컬 정문식씨

등록 2012.02.22 15:11수정 2012.02.22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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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유데이페스티벌 2011년 12월 홍대에서 열린 유데이페스티벌 공연모습

유데이페스티벌 2011년 12월 홍대에서 열린 유데이페스티벌 공연모습 ⓒ 유데이페스티벌 조직위원회


"환기 장치가 부족한 구식 잠수함에서는 쉽게 산소가 부족해진다. 이를 가장 먼저 감지하는 것은 토끼다. 토끼의 죽음으로 승조원들은 잠수함 내의 산소 부족을 인식한다."

<88만원 세대> 공동저자 박권일씨는 지난 해 영양 실조와 병마에 시달리다 사망한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씨를 잠수함 속 토끼에 비유했다. 최고은씨에 앞서 '달빛요정역전만루홈런'으로 잘 알려진 음악인 이진원씨 역시 생활고와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박씨의 말처럼 두 예술인의 죽음은 우리들에게 예술인들의 열악한 창작 현실을 환기시켰다. 두 사람의 죽음으로 예술인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반짝'했지만 1년이 지난 지금 예술인들의 현실은 열정만으로 버티기엔 여전히 고달프다. 

이런 가운데 홍대 인디밴드를 중심으로 구성된 '유데이 페스티벌 조직위원회'는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과 함께 지난 2월 10일 마포구청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청년뮤지션 생활환경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지난 해 12월 열린 제2회 유데이페스티벌에 참가한 뮤지션 221명들의 목소리를 담은 것이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음악인들의 '권리 찾기'를 위한 뮤지션 노동조합인 '뮤지션 유니온' 설립을 제안한 홍대 밴드 '더문' 보컬리스트 정문식(40)씨를 지난 16일 망원동 한 카페에서 만났다. 홍대 밴드 활동 8년차인 정씨는 '유데이 페스티벌' 조직위원장을 겸임하고 있었다.

'부비부비' 뜬 홍대 앞 음악 환경은 열악해져

"'유데이 페스티벌'은 '음악 산업의 페어플레이'를 모토로 지난해 6월과 12월에 2차례에 걸쳐 진행된 음악 공연입니다. 지난해 5월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이라는 행사에서 주최 측이 공모한 밴드들에게 10만 원을 개런티로 지급하겠다고 한 일이 있었습니다. 공연장소인 양주에서 서울까지 차비도 안 되는 금액을 제시한 주최 측의 횡포에 참가 밴드들이 행사를 보이콧 했죠. 뮤지션을 상업 공연의 동원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음악 현실을 비판하며 대안으로 홍대 뮤지션 120여 팀이 함께 만들었던 행사가 '유데이 페스티벌'입니다."


정씨는 '유데이 페스티벌'을 계기로 음악 산업의 잘못된 관행에 대해 뮤지션들 스스로 문제 의식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했다.

방송 음악·예능 프로그램을 통해 '십센치'와 '장재인' 그리고 홍대 밴드들이 많은 대중들에게 알려졌다는 평가에 대해 정씨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 친구들 몇몇만 좋아진 거죠. 그로 인해 홍대 음악시장이 확대된 건 아니거든요. 시장상황을 한번 보세요. 아이돌만 가득하고 언론은 'K팝'이라는 이름으로 이를 다시 띄우죠. 때로는 인디뮤지션들을 소개하지만 불쌍하니까 소개하는 것 같아요. 음악적 평가를 통해 제대로 소개하는 경우는 드물죠."

a 뮤지션유니온의 정문식씨 음악인들의 권리찾기를 위해 뮤지션유니온을 제안한 홍대 밴드 '더문'의 보컬리스트 정문식씨

뮤지션유니온의 정문식씨 음악인들의 권리찾기를 위해 뮤지션유니온을 제안한 홍대 밴드 '더문'의 보컬리스트 정문식씨 ⓒ 이동철


정씨는 "몇몇 스타밴드 활약만으로 홍대 뮤지션들의 음악 환경을 바꾸기에는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홍대 인근의 무분별한 상업화가 인디밴드의 음악 환경을 열악하게 만드는 점도 날카롭게 지적했다.

"밤에 홍대를 돌아다니면 확연히 느끼죠. 댄스클럽 앞에 길게 늘어선 줄을 보세요. 홍대가 언젠가부터 '부비부비(남녀가 몸을 부딪히며 추는 춤을 뜻하는 은어...편집자 주)'로 인식되고 있어요. 주말에도 라이브 클럽에는 파리만 날려요. 뿐만 아니라 '장재인'이나 '십센치'등이 무명시절 공연했던 <살롱바다비>의 월세가 6년 사이 3배나 올랐어요. '홍대스럽고' 소박한 카페나 술집은 하나둘 사라져 가고 막대한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는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그 자리를 차지하는 거죠."

상업화된 홍대의 음악 현실에서 '유데이 페스티벌'은 뮤지션들과 팬들에게 음악적 소통과 다양성을 제공하는 출구가 되었다. 정씨는 "인디밴드들이 자본의 기획력을 넘어 어떤 새로움을 보여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대중들의 길들여진 가치가 주체적인가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뮤지션들이 그것을 의식하는 순간 메이저 음악자본이 던져주는 자극적이고 상업적인 틀에 갇히게 된다"고 말했다.

"유데이 페스티벌은 누구는 뽑고 누구는 떨어뜨리는 것이 아녜요. 누구에게나 오픈되어 있죠. 그러다 보니 음악적 완성도에 편차가 있고 진행에 있어서 미숙함도 있었어요. 그러나 대중들이 가장 환호한 부분은 아! 이런 밴드도 있구나, 하는 다양성이었어요."

뮤지션 한달 평균 수입 69만 원 "충격적"

'유데이 페스티벌' 성공으로 자신감을 얻은 정씨는 '청년유니온'의 제안으로 '청년뮤지션 생활환경 실태조사'를 실시했다. 내친김에 열악한 뮤지션들의 생활 실태를 파악하고 이를 근거로 음악인들의 권리 찾기를 시도해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이 조사에 따르면 뮤지션들 대다수는 한 달에 평균 69만 원 수입으로 버텨가며 음악활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조사결과를 보면 경제활동 부분에서 응답자 221명 중 ▲65%가 '음악이 주업'이며  ▲매달 고정 수입은 평균 69만 원이고 ▲ 응답자 77%가 음악 활동 외에 강습과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으며 ▲주 40시간 이상 근로한다는 응답자는 22%였다.

정씨는 이와 같은 결과에 대해 "충격적이었다"고 말했다.

"주변의 많은 뮤지션들이 음악을 하려고 다른 일을 해요. 음악 레슨을 하는 친구들은 그나마 운이 좋은 편이죠. 비정규직으로 아르바이트를 하는 친구들이 대부분이고 일하는 시간도 아침에 2시간, 저녁에 5시간으로 불규칙해요. 처음 음악을 시작하면서는 그럴 수 있다고 보는데 문제는 음악적으로 인정받고 경력이 쌓인다 하더라도 생활적 어려움은 변함이 없다는 거예요."

이처럼 열악한 예술인들의 창작 활동을 지원하려고 정치권은 지난 해 11월 '예술인복지법'을 통과시켰다. 예술인복지법은 예술인의 지위를 법적으로 규정하면서 산업재해보험 가입과 예술인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예술인복지기금 설치를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인복지법이 시행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남아 있다. 먼저 근로기간이 불규칙한 예술인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고용 보험의 실업 급여 혜택이 빠져 있다. 예술인의 창작지원을 위한 예술인복지재단과 기금의 설립도 불확실하다.  무엇보다 정씨와 같은 음악인들은 고용 관계가 불투명하기 때문에 혜택이 제한적이다.

"예술인복지법보다 창작 활동 직접 지원 필요"

"예술인복지법이 의미는 좋은데 우리 같은 뮤지션들에게는 혜택이 없어요. 고용관계도 애매할뿐더러 고용되더라도 증명할 길이 없거든요."

정씨는 예술인복지법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오히려 노무현 정부 시절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실시했던 '인디 레이블 지원 사업'이라는 제도를 예로 들며 뮤지션을 지원하는 '공적 기구'의 설립과 뮤지션의 창작 활동에 대한 직접 지원을 강조했다.

"당시 문화콘텐츠진흥원에서 1년에 20개 레이블을 선정해서 1000만 원 가량의 직접 지원을 했어요 그로 인해 만들어진 좋은 음반들이 많았거든요."

"이명박 정부 들어 사라진 창작 활동에 대한 '직접 지원'을 끌어내려고 한다"는 정씨는 "영화는 영화진흥위원회라는 공적단체가 있지만, 대중음악은 지원기관도 연구기관도 없다"며 정부의 열악한 음악 창작 지원 현실을 꼬집었다.

정씨는 '뮤지션유니온'을 통해 인근 홍대클럽들에 '표준계약서 작성'을 제안할 계획이다. 홍대 쪽에서는 큰 공연이나 레이블(음반기획사)과 계약할 때는 계약서를 쓰는 경우도 있지만 일상적 클럽공연에서는 이런 관행이 없다. 정씨는 "뮤지션 노동에 대한 급여 지급 내역이 명확하게 증빙이 되어야 데이터가 확실해 진다"며 "이를 통해 불합리한 관행과 뮤지션들의 음악 여건을 바꿔갈 수 있다"고 의욕을 보였다.

정씨에게 '뮤지션유니온' 활동에 대한 주변 음악인들의 반응을 물었다. 정씨는 "음악이나 똑바로 하라고 비판하는 이들도 있다"며 답답해하면서도 "뮤지션유니온에 대한 관심과 격려가 너무 커져버려 이젠 도망갈 수도 없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뮤지션들의 특성은 잘 알다시피 개인적이예요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랄까 그런 특성이 음악적 창조성을 발휘하는데 도움이 될지는 모르지만, 서로 100% 맞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죠. 서로 힘을 합쳐 무엇인가를 해결해 나가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지만 서로 만나서 이야기하다보면 간극이 메워지지 않을까요?"

"이대로 간다면 제2의 최고은이 나올 수밖에..."
-열악한 영화 시나리오 작가의 현실은?

그렇다면 영화진흥위원회가 있는 영화 산업 종사자들은 인디 밴드들보다 사정이 나을까? 지난 해 12월 영화 산업 종사자들의 열악한 현실을 개선하려고 영화진흥위원회가 제안한 한국형 '앵테르미탕'(Intermitt-ent·프랑스의 문화예술 분야 비정규직 실업부조금제) 제도 지원 예산이 국회를 통과했다.

영화 산업 종사자가 작품 제작에 참여하지 않는 기간에 전문 교육을 받으면서 실업급여 형태의 교육훈련 수당을 받는 제도다. 2004년부터 전국영화산업노조가 8년여의 노력 끝에 이루어낸 결실이다. 그러나 2012년 '한국판 앵테르미탕' 제도로 수혜를 입는 영화산업 종사자는 500여 명의 '영화 스태프'로 한정될 전망이다. 고 최고은씨와 같은 시나리오 작가들까지 보호해 줄 제도적 지원은 여전히 요원하다.

시나리오 작가 라주영(가명)씨는 "지금과 같은 예술인에 대한 지원 제도로는 제2의 최고은 작가와 같은 불행한 예술인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5년차 시나리오 작가인 라씨는 "제작사는 여전히 시나리오 작가에게 계약금 일부를 지급하고 잔금을 투자가 진행되는 시점에서 지급한다"며 "최고은 작가를 죽음으로 내몬 창작물에 대한 제작사의 불합리한 인식과 계약 관행이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시나리오 작가들이 처한 절박함에 비해 처우 개선을 요구하는 집단적 움직임은 미약한 것 같다"는 지적에 라씨는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서로 모이기도 어려운 상황이다"며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현실적 어려움을 토로했다.

시나리오 작가들의 창작환경 개선을 위해서 영화계에서는 "예술인복지법 상 예술인복지기금의 활용을 통한 시나리오 작가 직접 지원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동철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덧붙이는 글 이동철 기자는 오마이뉴스 15기 인턴기자입니다.
#최고은 #홍대앞 뮤지션 #뮤지션 유니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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