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이 아이들을 '손만 대도 불결해진다' 했나

[생명누리 공동체 인디고여행학교 학생들의 인도여행기 5] 인도 여성의 80% 이상이 중매 결혼

등록 2012.02.29 18:51수정 2012.02.29 1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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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의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동네 사람들 ⓒ 오문수


인도는 유럽 전체를 합친 것만큼 넓다. 따라서 한겨울이라지만 남부에서는 추위를 못 느낀다. 남부에서는 해수욕을 하고 모기에 시달리는데, TV 뉴스를 보면 히말라야에 가까운 북쪽에서는 폭설이 내려 차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소식을 전한다.

인도 남부 티피파캄의 불가촉천민 마을에서 민박을 한 생명누리 학생과 교사 일행은 후텁지근한 날씨와 모기 때문에 밤새 잠을 못 이뤘다. 도시 인근에 사는 불가촉천민들은 집도 없어 길바닥에서 모포 같은 천을 덮고 자는 불쌍한 신세지만 농사를 짓고 사는 이 마을 사람들은 그래도 괜찮은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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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전통 가옥 모습이다. 야자수로 덮인 지붕이 우리나라의 초가집 모습이다 ⓒ 오문수


1960~1970년대 시골 초가집 같은 움막도 있지만 내가 민박한 집은 6평쯤 되는 시멘트 블럭집이다. 방이라야 두 평쯤 되는 방 두 개에 1미터쯤 되는 통로 바닥에서 천을 깔고 잠을 잔다. 후덥지근한 날씨지만 한국에서 손님이 왔다고 안방을 내준 이들은 천장에 달린 대형 선풍기를 틀어준다. 선풍기는 온도조절뿐만 아니라 모기퇴치의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한다.

옆자리의 성현이와 나는 감기에 걸리지 않기 위해 침낭 속에 들어가 잠을 잤다. 침낭은 보온과 모기 퇴치의 두 가지 기능을 동시에 수행한 셈이다. 모기는 모기장 치면 되지 않느냐고? 주먹이 숭숭 들어갈 정도의 틈이 보이는 창살에는 엉성한 천으로 대충 대놓기만 해놨다. 우리나라에서 몇 천 원 정도면 살 수 있는 모기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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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를 찾아 방과후 수업을 마친 민경훈 군과 같이 노는 아이들. ⓒ 오문수


선풍기가 계속 돌기만 하면 그래도 괜찮은데 매일 밤 계속되는 정전에 모기까지 극성을 부리면 잠은 다 잤다고 봐야 한다. 잠 못 이룬 이튿날 새벽 마을 구경이나 할까 하고 방문을 여니 문 틈에 모기가 한 움큼 붙어 있었다.

날이 새고 어두컴컴한 새벽. 화장실이 없는 집 사람들은 집에서 500여 미터 떨어진 밭에서 용변을 보고 돌아온다. 젖을 짜기 위해 소를 키우는 집에서는 소똥을 모아 말린다. 소똥은 말려서 연료가 된다. 널빤지나 도구를 이용하는 사람도 있지만 손으로 긁어모으는 사람도 있었다.

잠에서 깨어나 집 밖으로 나가니 홈스테이하는 집 딸 '사란냐'가 맷돌에 마늘, 양파, 토마토, 향신료, 생강, 마샬라를 넣고 돌끝을 잡고 한 방향으로 돌리자 묽은 죽 같은 식재료가 탄생했다. 멀리 한국에서 귀한 손님이 왔다고 소고기까지 넣어 전통 음식인 '쿠루마'를 정성껏 만들어줬다.


"왜 한국 학생들은 검정 옷을 입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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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일찍 일어나 집앞 꽃밭에서 꽃을 따는 여학생들. 뒷머리를 장식하기 위해서다 ⓒ 오문수


옆집 아가씨가 새벽 안개 자욱한 꽃밭에서 꽃을 딴다. 학교 갈 때 뒷머리에 장식하기 위해서다. 여학생 뒷머리에 꽂은 생화 장식은 정말 아름답다. 조화나 플라스틱 재료가 아니기 때문에 더더욱 아름답다. 맨발로 길거리에 널린 똥 사이를 피해가며 학교에 가지만 때 묻지 않은 아이들의 꽃 장식이 더욱 빛난다. 잡초 속에서 피어난 사람 꽃과 자연의 꽃이 하늘거리며 길을 간다. 누가 이들을 손만 대도 불결해진다는 불가촉천민이라 이름 지었는가.

생명누리 인디고 여행학교 학생들은 흰색과 검정의 반팔티를 단체로 맞춰 입고 있었다. 불가촉천민 마을로 가던 중 생필품을 사기 위해 차를 세웠다. 때마침 조수석에 앉아 있던 인도인이 질문을 했다.


"왜, 한국 학생들이 검정 옷을 입어요? 무슨 이유라도 있나요?"
"아니요. 그냥 단체복이에요."
"아! 그래요? 인도에서는 검정 옷을 입은 사람은 천민으로 여깁니다."

그랬다. 그 사람은 한국 사람들이 검정 옷 입은 이유를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리도 천민으로 여기지는 않았을까?

대부분의 인도 처녀들은 부모가 권하는 남자와 결혼

홈스테이 했던 이웃집에는 티피파캄 대학 농생물학과에 다니는 페니날(Pennial)이 산다. 학교 다녀와 밤이면 밖으로 나와 마루에서 공부를 하는 그녀에게 인도 여성들의 결혼관을 들어봤다. 농사를 짓는 그녀 부모는 독실한 크리스천이다. 불가촉천민들 중에는 인도의 카스트 제도가 싫어 불교나 기독교로 개종하는 사례가 빈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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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성의 80% 이상은 부모가 정해준 대로 시집간다고 한다. 가운데 서서 웃는 이가 '페니날'이다 ⓒ 오문수


"저는 부모가 정해준 대로 결혼할 거예요. 소수의 여성들이 자신이 선택한 남자를 배우자로 택하지만 80% 이상의 인도 여성들은 부모의 선택에 따릅니다."

"맘에 안 들면 어떡할 거냐?"고 묻자 웃기만 하던 그녀를 보면서, 아버지에게 "사위는 어떤 남자를 원하는지" 묻자 "술 담배를 안 하고 착한 남자면 무슨 직업이든지 상관없어요"라고 말한다. 이때 갑자기 옆에서 듣고만 있던 어머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돈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좋은 습관을 가진 사람이 좋아요. 어쨌든 신이 선택해주실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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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학생들 머리에는 아침에 딴 생화가 가득하다. 곱게 엮어서 뒷 머리에 올린 모습이 예쁘다. 이마에는 가족이 믿는 신을 표시하는 힌두교의 점이 선명하다 ⓒ 오문수


비록 연애결혼이 증가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힌두교 결혼은 중매결혼이 주를 이룬다. 자신이 속한 공동체 내에서 배우자를 찾는 게 이들의 전통. 자신의 카스트보다 낮은 배우자를 고르게 되면 자신이 속했던 카스트에서 축출을 당해야 하기 때문에 사랑보다 앞서는 게 카스트제도라는 게 인도의 결혼관습이다. 

저녁 무렵이 되자 소 두 마리가 끄는 우마차가 하루의 일을 끝내고 돌아온다. 쩔렁쩔렁 소리를 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폼이 하루 일과가 힘들었음을 짐작케 한다. 낡은 사리를 입고 머리에는 저녁에 쓸 땔감을 이고 돌아오는 아낙네 뒤에는 소와 염소 떼가 시끄러운 소리를 내며 따라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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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물가에서 설거지하는 아낙네 ⓒ 오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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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종일 풀을 뜯은 소에서 젖을 짜는 동네 사람들. 주 수입원 중 하나이다 ⓒ 오문수


밥 짓는 연기로 자욱한 마을에는 이제부터 바빠지는 곳도 있다. 하루 종일 풀을 뜯고 새끼에게 줄 젖이 불은 소와 염소 고삐를 매고 젖을 짜는 농부들. 우유 통을 들고 와 중개상에게 얼마쯤 되는지 계산한 후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 마당 한 켠에 있는 화덕에서는 나무와 장작이 타고 위에서는 주식인 파루타, 이들리, 짜파티가 익는다. 낯선 음식이라 먹기 힘들 줄 알았는데 그런대로 괜찮다. 

언제 올지 모른다는 인도의 차량을 기다리다 지친 아이들이 배고플까봐 바나나 잎에 밥을 해가지고 교회로 찾아온 아주머니들의 친절함에 감동하는 한국 학생들. 하지만 3박 4일간의 홈스테이 후 정이든 아이들을 짜증나게 하는 것도 있다,

"깁트(gift), 깁트(gift)"라고 말하며 선물을 요구하는 동네 아이들. 행복은 물질에 있는 건 아니라지만 며칠간 묵고 가는 한국 아이들이 아주 부잣집 아이들로 여겨졌을까 걱정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평균 수입이 12만 원이라고 했으니 당연할 수밖에 없다. 하긴 우리도 한국전쟁이 끝난 후 외국인만 보면 "껌, 초콜릿"을 외쳤으니 어쩌랴. 

공해 없는 마을 인도 밤하늘에 별이 천지다. 티피파캄의 밤은 깊어가고 마을 사람들은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며 잠자리에 든다.

덧붙이는 글 | '여수네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덧붙이는 글 '여수네통'과 문화촌뉴스'에도 송고합니다
#불가촉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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