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작 720표 얻은 '박근혜의 남자', 또 나왔네

[동행 인터뷰] 광주에 출마한 이정현 새누리당 의원... "호남에 파란싹 틔워야"

등록 2012.03.14 13:34수정 2012.03.14 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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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유권자를 만나는 이정현 새누리당 광주 서구 을 후보. ⓒ 이정현


호남은 새누리당(구 한나라당)에게 좀체 표를 주지 않았다. 그럼에도 새누리당 소속으로 호남에서 출마하는 정치인은 어떤 사람일지 궁금했다.

각종 선거 때마다 민주당은 호남을 싹쓸이하다시피 했고, 새누리당 후보들은 아주 작은 지지율로 자신들의 존재감을 옹이처럼 드러냈다. 민정당-민자당-한나라당-새누리당으로 당명이 바뀌는 내내 그 당을 향한 호남의 불편한 마음은 절대적이었고, 그럴만한 역사적 배경과 이유가 있었다.

그럼에도, 긴 세월 '호남의 정치소수자' 대열에 서기를 포기하지 않으면서 지역구에 연거푸 출마하는 정치인이 있다. 그는 어떤 상황에도 자신의 깃발을 바꿔 들지 않았다. "지역을 위해 일할 수 있게 도와 달라"고 선거 때마다 외쳤다. 그때마다 그는 심한 냉대와 함께 참담한 득표율을 기록하는 낙선자로 남았다.

새누리당에 소속된 그는, 호남 사람에게 "호남을 차별하는 가해 세력과 함께 하는 사람"으로 여겨지기도 했다. 고향 사람들의 곱지 않은 시선에도 아랑곳없이 그는 소속당의 이익에 충실했고, 또 고향 챙기기에도 노력했다. 그는 '박근혜의 입' 혹은 '박근혜의 남자'로 불리는 이정현 의원이다. 새누리당 비례대표 현역 의원인 그는 이번 4·11총선에서 다시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다.

"이정현은 괜찮은데... 새누리당은 NO!"

지난 9일, 그는 지역구 내 한 아파트 담장 밑에 자전거를 세운 뒤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 후보는 기자에게 스스럼없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그는 호탕하고 시원했다.

그는 광주 서구을 지역구 관내에서 보름째 '자전거 골목투어' 중이었다. 그는 "새벽부터 밤까지 지역 주민을 만나기 위해 7만 원짜리 삼천리 자전거 페달을 밟고 있다"고 했다. 그의 광주 서구을 도전은 벌써 세 번째다. 하지만 유권자들은 한 번도 그를 선택하지 않았다. 사실 이번에도 전망이 밝지 않다. 그럼에도 그는 광주 서구을 지역구 의원이 되길 강력히 희망하고 있다.


"의원님은 요즘 한창 시끄러운 공천 스트레스나 후유증 없으니 좋으시겠어요?"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이다. 이 후보는 허허허 웃으며 "적진에 뛰어들었는데, 그만한 반대급부라도 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말했다. 사실 사지에 뛰어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당장 옆 마을(광주 서구갑) 정용화 후보자만 해도 천형 같던 새누리당을 탈당해 무소속 출마를 선언했다. 광주라는 지역을 고려하면 정 후보자의 선택이 사실 훨씬 현명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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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를 타고 출마 지역인 광주 서구를 누비는 이정현 후보. ⓒ 이정현

이정현 후보는 "시민과 격의 없이 소통하기에 자전거만큼 신속하고 편리한 교통수단이 없다"며 보름째 자전거로 지역을 도는 소감을 말했다.

"정말 이 자전거만한 수단이 없어요. 만나고 싶은 주민을 다 만나려면 자동차는 너무 번거롭고, 걷는 것은 기동력이 떨어지는데,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자전거입니다. 굉장히 주민 친화적인 교통수단인 거 같아요. 힘들지 않냐구요? 전혀 아닙니다. 오히려 근력이 붙고 체력은 훨씬 더 좋아졌어요."

그는 기자와 대화를 하면서도 꾸준히 페달을 밟아 인근 아파트 상가와 도로를 돌았다. 대화 도중에도 자주 자전거를 멈추고 지나가는 주민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는 주민도, 그가 다가가 악수를 청하는 사람도 모두 "열심히 하라"고 덕담을 했다. 퍽 우호적인 분위기였다. 새누리당 후보자 한 명이 광주에서 의외로 선전하고 있다는 소문이 풍문이 아닌 듯했다.

"지역 정치판도 달라져야 한다는 주민의 욕구가 큰 것 같습니다. 2004년과는 정말 분위기가 많이 달라요."

2004년 17대 총선에서 이 후보는 11만 유권자에게 고작 720표라는 참담한 성적표를 받았다. 그사이 유권자는 12만 명으로 늘었고, 예전처럼 그를 대놓고 냉대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택시 한 대가 급정거를 하더니 비상등을 켜고 멈췄다. 

"이정현 의원님, 이쪽 지나다가 띠 두른 사람이 보이기에 의원님인 줄 알고 쫓아왔습니다. 저 엊그제 전화 드렸던 택시기사입니다. 저 이 의원님 팬이라고 말씀드렸죠? 근처 지나가다 의원님 뵈려고 일부러 왔다니까요. 이번엔 꼭 승리하셔야 합니다! 내가 아쉽게도 이쪽 주민이 아니지만 적어도 열 명은 보장합니다. 열심히 의원님 홍보하고 있습니다." 

택시 운전사 김흥곤씨. 그는 "이 의원 팬"이라고 했다. 김씨처럼 이 의원을 대하는 시민들의 반응은 호의적이었다.

"이정현 개인은 지지하지만, 새누리당은 절대 'NO!' 입니다."

하지만 다시 택시를 몰아 자리를 떠나면서 김씨는 이 말을 남겼다. 개인 '이정현'의 진심을 믿고 응원하지만, 그의 소속 정당 새누리당에는 거부감이 있다는 지역 정서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말이다. 그는 전남 곡성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를 다녔다. 중학교는 순천에서 다녔고, 고교는 광주에서 마쳤다. 이쯤되면, '호남의 아들'이다. 그럼에도 그에게 호남은 높은 벽이었다.

"내 선거인데 왜 자꾸 그분 이야기를..."

2004년 총선 당시엔, 그의 명함을 받자마자 그 자리에서 찢어버린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그때와 비교하면 민심의 변화가 고무적이다. 이 후보는 지난 8년 동안 득표율 0.65%, 득표수 720표라는 '전설적인 성적표'를 쓸개즙처럼 핥으며 살아온 듯했다.

- 720표면, 의원님 친인척들도 안 찍었다는 결론인데요."
"친인척은 고사하고, 그때 제가 너무 외로워서 위로 좀 받아볼까 하고 종친회를 찾아가지 않았겠습니까? 그런데 거기서조차 저를 반기지 않습디다. 친구들도 거의 외면을 했고요. 오죽하면 제 아버님께서 3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시면서 저에게 '주변 괴롭게 하지 말고 제발 멀리 좀 가서 해라'라고 하셨겠습니까. 그랬던 것이 지금은 음... 180도는 아니지만 한 120도 정도 달라졌어요. 주민들 분위기가 그만큼 우호적이라는 거죠. 승패는 유권자들 선택에 달렸지만 전 개인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 자신감과 희망이 넘칩니다."

- 사실 '박근혜의 남자' 이정현의 광주 출마는 가진 자의 여유 아닙니까? 솔직히 다른 지역 전략공천 유혹을 뿌리치기 쉽지 않았을 텐데요.
"호남의 '미운 오리새끼' 이정현이가 비례대표 의원이라는 힘을 한꺼풀 더 갖춰 입고 지역구로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꾸준히 호남 예산 챙기기에 주력했던 만큼 저 자신도 떳떳합니다. 광주 서구 을은 투표권역상 지역구일 뿐, 전 호남 전체가 제 지역구라는 사명감으로 일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집권당 소속의 유일한 호남 의원인데 저 아니면 누가 호남을 챙깁니까? 그렇게 살신성인했던 제 경력을 수도권 출마로 희석시킬 순 없지요. 호남 이외의 지역구는 제게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역대 정권의 호남 차별도 인정합니다. 엄연히 존재하는 지역차별 현실을 부인하지는 않아요. 그래서 앞으로 전 인사탕평에 치중할 생각입니다."

여러 매체에서 누누이 밝혔던 이번 출마의 변을 그는 다시 한 번 강조했다. 그러나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도 잠시, 박근혜 위원장에 대한 기자의 질문이 나오자 그는 다소 목소리를 높였다. 표정에도 불편함이 역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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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과 이정현 의원. (자료사진) ⓒ 남소연


- 박 위원장은 수첩에 많이 의지한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측근으로 활동하면서 박 위원장의 수첩을 직접 본 적이 있을 것 같은데요. 뭐라고 적혀 있던가요?
"박 위원장은 사람 의견을 흘려 듣지 않기 위해 수첩에 기록하는 습관을 갖고 있습니다. 책임감 있는 사람의 모습이지요."

- 하지만 말을 할 때 보며, 너무 수첩에 의지하는 것 같아요. '즉문즉답'에 약한 것 같고.
"워낙 성격이 신중하고 차분한 분입니다. 정치인으로서 통계와 수치 등 정확하게 답변하려는 것이죠. 그런 게 도대체 왜 그게 나쁜 점인가요?"

- 박 위원장은 일반 시민으로서의 경험이 너무 부족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박 위원장은 정치인으로서 자기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그는 일반 시민처럼 지금까지 온갖 애환을 겪었습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누구보다 많은 걱정을 했어요."

"노랑 일색 호남에 파란 새싹 틔우고 싶다"

이 후보는 "내 선거인데, 왜 자꾸 그분 이야기를 하느냐"며 더 이상 언급하지 말 것을 요청했다. 대화는 다시 이번 선거로 돌아왔다. 그는 호남에서의 '일당독식 폐해'를 성토했다. "보름 동안 돌아본 지역 현실은 한마디로 한숨이 나오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일자리 창출이 최우선이더라고요. 일자리가 아예 없다니까요. 지역 경제가 처참하게 낙후돼 있어요. 그러니 더욱 제 마음이 무겁습니다. 누구의 책임을 묻기 전에 해결 방안 모색이 먼저예요."

그러면서 그는 이번에 호남 서른 개 선거구 중 하나쯤은 반드시 집권당 후보인 자신에게 돌아와야 호남을 살릴 숨통이 트인다고 강조했다. 그는 내내 진지했다. 하지만 그의 바람과 달리 아직 광주에서 새누리당 지역구 의원 배출은 어려운 게 현실 아닌가?

"보이지 않는 유권자들의 민심이 가장 큽니다. 그래서 더욱 조심스럽습니다. 열심히 해야죠. 저는 한 번 선택한 당과 사람, 신념에 대한 소신이 강한 사람입니다. 우직하게 열심히 해보렵니다."

헤어지는 인사를 나누고 갈 길 바쁜 후보자는 다시 자전거 페달을 밟았다. 자전거 골목투어와 노란색 바탕위에 수놓은 파란색 새싹 무늬 넥타이. 모두 후보자 본인이 고안했다고 한다. 그는 "노랑 일색 호남에 파란 싹 하나를 틔우기 위한 간절한 염원을 담았다"고 했다.

광주 서구 을에 출마한 새누리당 후보는 삼천리 자전거를 타고 유권자들을 찾아 골목 안으로 멀어져 갔다. 그 뒤에는 짐칸 달린 자전거를 탄 젊은 수행비서가 뒤따랐다. 후보자의 주황색 점퍼 등 뒤에는 '예산지킴이'라는 다섯 글자가 선명하게 코팅되어 있었다.

한편, 야권은 중앙당 차원에서 야권연대를 합의해 광주 서구을에 오병윤 통합진보당 후보를 단일후보로 내세우기로 했다. 이에 민주통합당에서 출마를 준비했던 이상갑·서대석 후보는 '3자 통합경선'을 요구하며 반발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정미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덧붙이는 글 정미경 기자는 <오마이뉴스> 2012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4.11총선 #이정현 #민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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