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노 패거리' 때문에? 동의하기 어렵다

[주장] 4.11 총선 '친노프레임'에 감춰진 악의성

등록 2012.03.14 10:13수정 2012.03.14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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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지난 2월 13일 부산 사상 지역에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민주당사에서 열린 첫 공천심사위원회의에서 후보자 심사를 받고 있다.

지난 2월 13일 부산 사상 지역에 민주통합당 예비후보로 등록한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이 민주당사에서 열린 첫 공천심사위원회의에서 후보자 심사를 받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내가 '프레임 짓기'를 처음 접한 것은 아마도 초등학생 때였던 것 같다. 풍경화를 그리는 미술 시간이었다. 양손을 들어 엄지와 검지, 네 손가락으로 네모(틀)를 만들어 그 안에 자기가 그릴 대상을 집어넣었다.

네모를 크게 하거나 눈에 가깝게 가져오면 그 안에 산도 보이고, 들도 보이고, 마을도 보인다. 그 반대로 하면 산만 보이거나, 들만 보이거나, 마을만 보인다. 네모를 최대한 작게 하거나 멀리하면 틀 밖에 있는 주변 풍경은 사라지고, 바위·나무·집 한 채 등 그릴 대상만 남게 된다. 같은 풍경인데도 좌우로 각도를 달리하고 보면 마을을 품은 산이 되기도 하고 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정치권에서도 이런 '프레이밍'을 잘 써먹는다. 주로 말과 연관된 연상작용을 통해서다. 이를테면 아무 쓸모도 없는 운하를 만든답시고 수조 원을 들여 멀쩡한 강을 파헤치면서 '4대강 살리기'라고 이름짓는 식이다. 핵발전소를 지으면서 '녹색성장'을 내세우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런 것들이 비행과 흉계를 숨기려는 프레이밍이라면 '친노세력'이며 '친노부활'이란 프레이밍에는 야권을 분열시키고자 하는 공격적인 검은 의도가 숨겨져 있다. 그들이 조작한 프레임은 노 대통령을 죽음으로 내몬 이 정권의 잔인무도한 탄압에 분노했던 '진정한 친노세력' 5백만 시민의 존재는 사라지고 없다. 

수구 세력의 '친노프레임'에서 소외된 진정한 친노세력

기성 정치인으로서 노 대통령과 정치철학을 공유했거나 노 대통령을 가깝게 보좌하다가 이젠 직접 정치에 뛰어들어 노 대통령의 유지를 정치현장에서 잇고자 하는 정치신인 등을 좁은 의미의 친노세력으로 프레이밍할 수는 있다.

그렇다면 지금 이들 친노세력에게 절체절명의 숙제는 반칙과 특권이 없는 공정한 민주사회를 만들고 지역분열의 벽을 뛰어 넘어 정치발전·지역균형발전을 이루는 일이다. 이런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정권탈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정권탈환을 위해 부단히 제 정치세력과 연대를 모색하고 결합하려 한다.


이런 의미의 친노세력은 통합 전의 민주당에도 있었고, 혁신과 통합에도 있었고, 지금 통합진보당에도 있다. 원로 정치인 중에도 친노가 많고, 486이란 또 다른 정치세력 내에도 친노 정치인이 수두룩하다. 그런 힘이 구심력으로 작용해 정당통합을 이루고 야권연대를 이룬 것이다. 정치권에서의 '친노'란 규정은 그런 의미에서 무한 확장성을 염두에 둬야 한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의 새누리당이 수구언론과 합작해 유포시키고, 다른 언론들이 멋모르고 따라 읊조리는 '친노프레임'은 이렇게 친절하고 우호적인 것이 아니다. '부패하고 무능하면서도 정치적 야욕만 넘치는 세력'으로 규정짓고 이 같은 인식을 왜곡과 날조로 확대 강화하려 한다. 그럼으로써 친노세력을 파편화시키고 야권분열을 부추긴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대위 대표가 '폐족'의 정확한 뜻을 모를 만큼 무식하거나, '폐족'을 토로할 때 다산 정약용의 비통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할 만큼 뻔뻔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친노'와 '폐족'을 연결해 "친노세력 스스로 너무나 죄를 많이 지어 다시는 정치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처럼 몰아가기도 한다. 수첩 공주라고 불리는 인물치고는 제법 꾀를 낸 셈이다. 

친노는 연대·통합의 아이콘, '친노프레임'은 분열의 틀

 민주통합당 부산시당과 통합진보당 부산시당은 문재인, 문성근, 김정길, 민병렬, 고창권 후보 등이 참석한 가운데 12일 오전 부산광역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야권연대 성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민주통합당 부산시당과 통합진보당 부산시당은 문재인, 문성근, 김정길, 민병렬, 고창권 후보 등이 참석한 가운데 12일 오전 부산광역시의회 브리핑룸에서 '야권연대 성사'와 관련한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 윤성효


문제는 새누리당과 수구언론의 '친노부활'이란 선동에 맞춰 민주당 내에서조차 "친노 패거리가 호남 DJ 민주계 다 학살했다"는 등 괴이한 주장이 나온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당내 세력다툼에서 유효한 무기로 사용한다. 과연 친노가 민주계를 학살할 만큼 정치적 이해관계가 있는가. 힘이 있는가.

참여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하거나 장·차관을 지낸 이들 중 이번 총선에 민주당 공천을 신청한 사람은 행정관 출신까지 다 합해도 50명이 채 되지 않는다. 그중 노 대통령과의 깊은 인연이 유일한 경쟁력이랄 수 있는 부산 경남에 출마한 10여 명을 제외하면 40명도 채우지 못한다. 광주 전남·북은 고작 5~6명에 불과하다. 도대체 이런 '친노 패거리'가 어떤 힘으로 무슨 이득을 노리고 구 민주계를 학살했다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서울 경기에 출마한 참여정부 사람들 20여 명 중 단수공천을 받은 이는 총 5명 정도에 불과하다. 상당수가 경선에 나서지도 못한 채 떨어져 나갔고 나머지 10여 명 정도가 간신히 경선에 올랐다. 그 결과는 또 어떤가.

이 과정에서도 경선통과자는 극소수에 불과하고 대부분 고배를 마셨다. 서울 강북의 한 지역구에서는 장래가 촉망되는 참여정부 비서관출신의 한 정치신인이 패배의 쓴잔을 마셨다. 자타가 공인하는 대표적 '친노 인사'였다. 상대는 당내 특정세력의 지원을 받아 경선에 오른 후, 특정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다른 경선탈락 후보들의 연대지원을 받은 지역 정치인이었다.

경기의 한 지역구에 나선 수석 출신 한 후보는 역시 그 지역구에서 초·중등학교를 나온 지역 정치인에게 패했다. 장관급 한 인사는 지역자치단체장의 지원을 받은 경찰서장 출신의 경쟁자와 사투 끝에 간신히 경선을 통과했으나 또 다른 장관 출신 후보는 2명의 경쟁자와 힘겨운 경선을 앞두고 있다.

다른 정치세력을 학살하기는커녕 아무런 혜택도 받지 못한 채 소선거구 제도의 필연적 결과물인 동네 정치, '국민'이 빠진 국민참여경선이 조장한 동원정치의 벽에 막혀, 그동안 쌓은 소중한 국정경험을 국회에서 마음껏 펼쳐 보겠다는 꿈을 속절없이 빼앗기고 있는 것이다. 

불합리한 선거제도에 희생당한 참여정부 출신 정치신인들

사정이 이러한데도 수구 세력의 정치 공작적 '친노프레임'이 그대로 먹히는 것은 한명숙, 문재인, 이해찬, 문성근 등 민주통합당 지도부와 김두관, 안희정 등 몇몇 지자체장에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웠던 인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는 데 따른 착시 현상 때문일 터다. 이런 착시 현상을 바로 잡기는커녕 오히려 당내 세력투쟁에 악용하고 있는 것이 민주당의 암담한 현실이다.

문재인 이사장은 언젠가 '친노의 부활'은 대통령 서거 후 비통한 심정으로 조문대열에 섰던 5백만 시민의 가슴 속에서 이미 이루어졌으며, 그것이 재작년 6월 지방선거에서 확인된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런데도 이후 선거철마다 '친노부활'이며 '친노세력'을 운운하는 친노프레임이 반복적으로 작동되는 것은, 유권자들의 머리와 가슴 속에 살아 있는 노무현정신을 폄훼하고 야권을 분열시켜 정치적 이득을 얻으려는 수구 세력의 장난에 불과한 것이다. 그 핵심코드는, 한명숙 대표의 표현대로 '분열'이다.

어찌 됐든 총선을 위한 야권연대가 이루어졌고 공천작업은 마무리되어 간다. 총선이 끝나고 대선국면이 열리면 '친노프레임'이 더 강력하게 작동할 것이다. 그럼에도 민주진보진영 내에서 여전히 '친노' 타령을 따라 흥얼거리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몰라서가 아니라 의도적으로 그런 것이라면 야비한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사람사는 세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사람사는 세상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친노 #프레임 #총선 #공천 #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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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이제 다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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