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인에게 경기 관람의 자유를 허하라

계단 난간 등 편의시설 확충 시급, 경기를 시청하기 보다 관람할 수 있기를

등록 2012.03.13 20:42수정 2012.03.13 2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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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중반 스포츠를 소재로 한 드라마 중 <마지막 승부>라는 드라마가 있었다. 당시 이 드라마는, 프로농구의 전신인 농구대잔치, 그 중에서도 대학 농구의 인기와 맞물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사람들을 농구장에 불러들이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마지막 승부>가 인기몰이를 하며 농구장에 관중을 불러모을 당시 중학생이었던 나 역시 농구장에 가서 마음껏 응원을 하며 여러 가지 스트레스를 날려버리고 싶었다. 딱 한 번만 경기장에 가서 목청껏 소리를 지르며 응원을 하고 나면, 좋아했던 팀의 승패와 관계없이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하지만 경기 관람의 소망이 현실로 이루어지기에는, 장애인인 내게 물리적인 장벽이 많았다. 관중석을 오가는 통로에는, 다른 사람의 도움을 받지 않고 다닐 수 있는 곳이 없었으며, 관중석 사이사이의 계단은 너무 높았다. 당시만 해도 지하철역의 엘리베이터는 물론이고, 은행이나 관공서에서 경사로가 만들어진 건물을 찾기 어려울 만큼, 몸이 불편한 이들에 대한 편의 시설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경기 중 화장실 출입도 걱정이 되었다. 만약 화장실을 가야 하는 일이 생기면 다시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 계단을 오르내려야 하는데, 그것은 동행인이 없는 경우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야구장은 어떨까 싶은 생각에, 야구장을 다니는 친구나 어른들을 통해 '야구장에 난간이 설치되어 있는지'를 물었으나 혼자 다니기에는 불가능하다는 애기만 들었다. 텔레비전으로 본 야구장의 모습도 어른들의 말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갈 수도 있었지만, 몸이 불편한 이들이 거리를 지나가면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바라본다거나, 아이 앞에서 "너 엄마 말 안 들으면 저 사람처럼 된다"라는 말을 하는 것을 쉽게 들을 수 있었기에, 가족들에게까지 동일한 스트레스를 받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가족들과 함께 집을 나섰다가 웃으며 돌아올 수 있을까? 경기를 관람한 후 돌아가는 사람들과 분주하게 움직이다 편안하게 근처 밴치에 앉아 음료수를 마시며 잠시 쉴 수 있을까?'라고 생각했지만, 가족의 평화를 위해서 내가 가만히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곧 마음을 접었다. 

장애인들도 편하게 경기장을 가는 날이 오기를


농구장이나 야구장에 가고 싶던 10대 소년은 이제 30대의 어른이 되었다. 10대를 지나고 대학 시절을 거쳐 30대가 되는 동안, 흐르는 시간만큼 몸이 불편한 이들에 대한 인식이나 편의시설도 많이 개선되었다. 처다보는 시선도 많이 줄었으며 편의시설 역시 과거보다 많이 확충되었다.

하지만 스포츠 종목을 떠나 경기장의 접근성은 마음 편하게 혼자 구경을 가기에는 부족함이 따른다. 관중석은 여전히 높은 계단이고 동행인이 없이는 경기 관람조차 쉽지 않다.

다음주 프로야구 시범경기를 시작으로, 야구의 계절이 온다. 박찬호, 김병현, 김태균 이승엽 등 해외파 선수들의 활약을 비롯, 여러 가지 볼거리가 많은 시즌이다. 승부조작 사건으로 된서리를 맞기는 했지만, 올해도 역시 적지 않은 이들이 야구장을 찾을 것이다. 하지만 난간이 없이 계단을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들은 올해도 경기장이 아닌 다른 곳에서 야구를 시청해야 한다.

야구의 인기에 힘입어 2014년 새로운 광주구장이 선보일 예정이고, 대구구장 역시 몇 년 후 새로운 모습으로 관중을 맞을 것이다. 그때에는 관중석에 난간 등이 제대로 만들어져 '경기장에서 야구를 관람하는' 날이 올까? 몸이 불편한 이들도 '나 야구장 다녀올게'라고 마음놓고 경기장을 찾을 수 있기를 소망한다. 다른 종목의 경기장 역시 장애인들의 이용에 불편함이 없는 곳이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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