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 베드타운 재발견... <해품달>도 보인다

[고양 누리길③] 공릉천 따라 백로 날아오르는 '송강누리길' 걷다

등록 2012.03.24 14:50수정 2012.03.24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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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올레의 눈부신 성공 이후, 전국에 걷기 좋은 이런저런 길이 생긴 것이야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걷기에 관심이 있는 이들이라면 잘 알고 있다. 기차나, 고속버스를 타고 훌쩍 떠나는 것도 좋지만, 바쁜 일상에서 늘 그렇게 먼 길을 떠나는 건 쉽지 않다. 특히 도심에 삶의 뿌리를 내리고 사는 이들이라면 더더욱 그러하다. 그래서 서울에서 전철을 타고 찾아가 가볍게 돌아오기 좋은 길을 소개한다. 고양시의 '고양 누리길'이다. 현재 다섯 개의 코스 40km가 조성되어 있는데, 아직 완성단계는 아니다. '고양 누리길'이 고양시 둘레를 품어 안듯이 감싼 길이 되려면 길이 더 이어져야 하기 때문에 길을 조성하는 작업이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고양시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성 고양시장은 "고양 누리길이 제주올레 못지않게 아름다우면서 걷기 좋은 길"이라고 강조한다. 최 시장의 말은 맞다. 고양시장의 입장에서야 '고양 누리길'이 제주올레 뿐만 아니라 산티아고길보다 더 아름답고 좋은 길이라는 자신감을 갖는 건 당연하다. 그만큼 애정이 듬뿍 담긴 시선으로 보니 그럴 수밖에. 그 길을 여섯 번에 걸쳐 직접 걸은 뒤 소개한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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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을 따라 고양시 화훼단지가 들어서 있다. ⓒ 유혜준


길은 걸어야 온전한 내 것이 된다. 걸어본 길이 걷지 않은 길보다 애착이 가는 건 그 때문이다. 걸어서 눈에 담은 풍경은 고스란히 가슴에 남고, 시간이 흐르면 추억으로 남는다. 그런 경험, 해보셨는가? 걸어보면 안다.

지난 9일, 공릉천을 따라 길게 이어진 '송강누리길'을 걸었다. '고양 누리길' 다섯 개 코스 가운데 하나인 '송강 누리길'은 테마동물원 쥬쥬에서 출발해 필리핀 참전비에서 끝난다. 전체 길이는 6.6km, 예상 소요시간은 1시간 40분이다.


도보여행을 제대로 느끼기에 너무 짧은 코스라는 생각을 하시는 분이라면' 송강누리길'이 끝나는 지점인 필리핀참전비에서 시작돼 최영 장군 묘를 거쳐 안장고개에서 끝나는 '고양동 누리길'을 이어서 걸으면 된다. '고양동 누리길'의 길이는 7.1km, 소요 예상시간은 2시간 40분 남짓. '고양동 누리길'은 다음 회에 소개할 예정이다.

이날 도보여행에는 정동일 고양시 문화재 전문위원과 김종천 조경팀장을 포함한 고양시 관계자가 동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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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마동물원 쥬쥬 입구 ⓒ 유혜준


'송강 누리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자리 잡은 테마동물원 쥬쥬는 동물 체험 동물원으로 주말이면 많은 관람객들이 몰린다는 게 김종천 조경팀장의 귀띔이다. 공릉천으로 접어들기 전에 슬쩍 눈으로 살펴본 테마동물원 쥬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봄맞이를 위한 준비 작업인가 보다.

'송강 누리길'은 공릉천을 따라 이어진다. 그래서일까, 물을 볼 수 있고, 걷는 이의 기척에 놀라 일시에 날아오르는 새떼들도 볼 수 있어 색다른 느낌을 자아낸다. 흐린 잿빛 하늘은 오후가 되면서 조금씩 환해지고 있었다. 우리가 걷기 시작한 시간은 오후 1시 50분경. 꽃샘추위는 오후가 되면서부터 살짝 누그러졌고, 아침나절에 한기를 머금은 것처럼 느껴졌던 바람의 기세 또한 가라앉았다.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 무덤 '공릉'에서 유래한 공릉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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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 ⓒ 유혜준


공릉천은 경기도 양주시에서 시작되어 고양시를 지나 파주시에서 한강으로 흘러들어가는 하천으로 총 길이는 30km에 달한다. 공릉천은 조선시대 예종의 원비인 장순왕후의 무덤인 '공릉'에서 유래된 이름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 이름은 일제 강점기 때 구부러진 하천 모양 때문에 '곡릉천'으로 바뀌게 된다. 공릉천이 다시 제 이름을 찾은 건 지난 2009년.

겨울의 끝이라 그런가, 하천은 물이 그리 많지 않았다. 비가 많이 내리는 여름철이 되면 수량이 풍부해진다는 것이 정동일 전문위원의 설명이다. 바싹 말라 누런빛으로 바랜 갈대와 잡풀들이 봄날 오후의 햇볕 아래서 무심히 흔들리고 있었다. 천변을 따라 흙길이 이어진다. 가볍게 부는 바람이 수면을 건드리고 지나가니 잔잔한 무늬가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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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천변을 따라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천변을 향해 서면 저 멀리 북한산이 보인다. 고양시는 어딜 가든 북한산을 볼 수 있는 도시다. 서울의 명산으로 손꼽히는 북한산이 사실은 서울보다 고양시에 더 많은 산자락을 드리우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몇 되지 않는다. 최성 고양시장은 그 사실을 늘 강조하면서 자랑한다. 그 북한산이 '고양 누리길' 어딜 가든 잘 보이는 건 당연하다.

저기가 백운대, 인수봉 그리고 그 옆이 삼각산, 저쪽은 한때 매를 날려 사냥을 했다 해서 매봉이라 불리는 봉우리. 정동일 전문위원이 팔을 내밀어 북한산을 짚으며 설명한다. 맞다, 3호선 전철을 타고 구파발에서 지축을 거쳐 원당으로 오는 길에도 북한산은 자태를 뽐내며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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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릉천변의 백로 떼. ⓒ 유혜준


공릉천변에 백로와 청둥오리들이 앉아서 쉬다가 반대편의 천변을 따라 걷는 우리의 기척에 놀란 듯 호들갑스럽게 일시에 날아오른다. 낮은 새 울음소리가 귓전에 살짝 내려앉았다가 잔잔한 여운을 남기며 사라진다. 도심에서 쉬이 볼 수 없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머금어진다. 좋다, 정말 좋다. 걸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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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외선 철길 ⓒ 유혜준


걷는 우리 일행이 멀어지자, 날아올랐던 새들이 경계심을 풀고 다시 천변으로 내려앉는다. 교외선이 지나가는 철길을 지난다. 곧게 뻗은 철길을 보면 늘 어디론가 떠나야할 것 같은 생각에 시달리곤 했는데 이날도 마찬가지다. 언제 마지막으로 기차를 탔던가? 기억을 돌이켜본다. 강릉역에서 삼척으로 가는 바다열차를 기다리던 때가 떠오른다. 지난해 봄이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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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혜준


길은 원당교 못 미친 곳에서 월산대군 사당 방향으로 이어진다. 월산대군의 묘가 있는 곳이라 사당과 원찰이 있었지만 오랜 세월의 흔적으로 절은 사라지고, 사당은 남아 있다. 사당의 문은 굳게 닫혀 있고, 사당 앞의 나무는 메마른 가지를 하늘을 향해 한껏 치켜 들고 있었다. 이 나무, 회화나무라고 했다. 이 나무는 예로부터 사당이나 궁궐 앞에 많이 심었다고 한다.

두 그루의 회화나무 가운데 작은 나무가 구부러져 철 기둥으로 버팀목을 해놨다. 큰 나무는 엄마 나무요, 작은 나무는 애기 나무라고 김종천 팀장이 설명을 덧붙인다. 애기나무라고 하기에는 너무 늙었다.

월산대군은 성종의 친형이다.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다고 하나 화제가 됐던 드라마 <해를 품은 달>을 보니 왕가의 형제는 어째 '살벌한 관계'일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든다. 월산대군은 성종의 형이고, 후에 왕으로 추증된 덕종의 맏아들이다. 월산군이었으나, 아우인 성종이 왕이 된 뒤 대군으로 봉해졌다고 한다.

고개를 드니 북한산이 눈 속으로 들어와 박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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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산대군 사당 ⓒ 유혜준


월산대군 사당 석광사는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면 잠시 옷깃을 여미고 그의 명복을 빌었을 텐데 아쉽다. 문화재라 관리차원에서 문을 닫아걸었겠지만 이런 곳을 지날 때마다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못내 아쉬워지곤 한다. 그렇더라도 월산대군의 존재를 마음에 잠시라고 품어 기억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의미가 있으리라.

길은 월산대군 사당에서 송강마을로 이어진다. 송강 정철이야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될 만큼 유명한 이가 아니던가. 관동별곡, 사미인곡으로 유명한 가사문학의 대가. 그의 이름을 딴 마을이 고양시에 남아 있게 된 것은 그가 이곳에서 6년 동안 부모의 묘를 지키며 시묘살이를 했기 때문이다. 송강문학관 입구에 송강 선생의 가족묘 지도 표지판이 세워져 있다. 그 무덤들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건 송강 선생의 연인이었다는 의기 '강아'의 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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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강 정철 시비 ⓒ 유혜준


길은 송강 선생을 기리는 시비(詩碑) 앞을 지나 다시 공릉천으로 이어진다. 천변 길은 콘크리트로 포장이 되어 있다. 그 길을 따라 나무들이 식재되어 있다. 한여름에 그늘 한 점 없는 뙤약볕을 걸으면 발아래서 후끈거리는 열기가 올라오기 일쑤. 그 때문에 걷는 이들에게 나무 그늘을 제공하려고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을 심었다는 것이 김종천 조경팀장의 설명이다. 아직은 여린 나무 앞에 나무 의자 두 개가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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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세쿼이아 나무 길. 따사로운 봄날, 다시 걷고 싶은 길이다. ⓒ 유혜준


잠시 쉬려고 의자에 앉아 고개를 드니 이런, 북한산이 눈 속으로 들어와 박힌다. 일부러 전망이 좋은 자리를 골라 의자를 앉혔다는 것이다. '송강 누리길'을 걷는 이들을 위해 세세한 부분까지 신경을 썼구나, 하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 햇빛이 한없이 따사로운 봄날, 벗과 함께 메타세쿼이아 나무 그늘 아래를 걸으면 좋을 것 같다.

공릉천을 가로지르는 용연 징검다리 앞에서 걸음을 멈춘다. 길은 징검다리를 건너야 이어진다. 이 부근에 3월부터 8월까지 갈대와 부들 등이 우거진단다. 봄부터 여름에 공릉천의 정취가 새롭게 살아나는 모양이다. 용연징검다리는 비가 많이 오거나 수량이 늘어나는 시기에는 건널 때 조심해야 한다. 물살에 휩쓸려 내려갈 수도 있으니 말이다.

너른 강폭을 보니 한여름에 제법 많은 물이 흐르겠구나, 싶었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발걸음이 가볍다. 앞서 걷던 김종천 팀장이 걸음을 멈추고 몸을 숙여 물속에 손을 담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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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연 징검다리 ⓒ 유혜준


공릉천을 가로 질러 건너가면 길 건너편으로 '송강 누리길'의 도착지점인 필리핀 참전비가 보인다. 통일로를 질주하는 자동차들이 긴 소음을 내면서 지나간다. 그 자동차 도로를 건너야 참전비 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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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참전비 ⓒ 유혜준


'고양 누리길'은 수도권의 베드타운이라고만 여겼던 고양시를 재발견하는 길이었다. 행주 누리길, 서삼릉 누리길, 송강 누리길이 전부 그랬다.

송강누리길 : 테마동물원 쥬쥬 --> 월산대군 사당 --> 송강문학관 --> 메타세쿼이아 길 --> 필리핀 참전비(총 길이 6.6km, 소요 예상시간 1시간 40분, 난이도 하)

[고양누리길 ①] 행주누리길을 걷다
[고양누리길 ②] 서삼릉 누리길을 걷다
#고양누리길 #송강누리길 #월산대군 #송강 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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