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발식이 식상하다고? 이번이 진짜 마지막이야!

[취재후기] 눈물 뚝뚝 흘리던 삭발식 현장을 가다

등록 2012.03.18 14:56수정 2012.03.20 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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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마지막 삭발식 삭발식의 첫순서로 묵념을 하고 있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마지막 삭발식 삭발식의 첫순서로 묵념을 하고 있다 ⓒ 강혜란

▲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마지막 삭발식 삭발식의 첫순서로 묵념을 하고 있다 ⓒ 강혜란

"대학생활 4년 내내 목표였던 여신 머리를 포기합니다. 하루에도 12번씩 할까 말까 고민하며 이틀 내내 울었습니다. 그러나 학교 대표자 중 한 명으로서 이것도 못하면 부산대학교 학우들과 전국의 300만 대학생에게 부끄럽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제 제 소망이었던 여신 머리 대신 모든 대학생의 소망인 반값등록금을 바랍니다."

 

여신 머리, 전지현 그녀가 그랬듯 5:5 가르마에 긴 생머리를 찰랑거리며 걷는 모습은 여자는 물론 남자들에게도 '로망'일 것이다. 여신 머리의 고지를 목전에 두고 삭발을 한 부산대학교 부총학생회장 진자령씨는 "삭발 중엔 울지 않았는데, 지금 그림자로 비치는 내 머리를 보니 실감이 난다"며 울먹거렸다. 총 11명의 대학생이 삭발했고 그 중 여학생은 대부분 눈물을 흘렸다. 기자 또한 취재하며 눈시울이 붉어졌다.

 

또 삭발식이야?... 이제 정말 마지막이 될거야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이하 한대련)에서 주최하는 삭발식이 지난 17일 청계광장에서 열렸다.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한대련 마지막 삭발식'은 다시 한번 '반값등록금'을 세상에 외쳐보자는 취지로 이루어졌다. 11명의 삭발예정자가 모두 발언을 하고 삭발을 한 뒤, 결심발언을 하는 식으로 진행됐다. 처음은 묵념으로 시작했다. 비싼 등록금을 견디지 못해 세상을 등진 모든 이들을 위한 짧은 시간이었다.

 

'삭발식, 또... 이젠 좀 지겹지 않니?' 되새겨봤다. 사실 취재 전 이 삭발식이 기삿거리가 될까도 의문이었다. 나 또한 수많은 삭발식에 무뎌진 듯했다. 이런 속내를 다 안다는 듯 한대련 교육위원장 윤태은씨는 "사람들이 매년 되풀이되는 삭발에 면역돼서 '쟤네 또 쇼 하는 거 아니냐'고 하는데, 삭발 결심을 하는 우리는 참 가슴이 아려온다"고 말했다. 이어 윤씨는 "2012년 이번에 하는 삭발은 단순히 내년·내후년에도 하는 삭발이 아니라 올해 반드시 '반값등록금'을 실현해서 마지막으로 만들 것"이라며 투쟁의지를 밝혔다. "등록금이 대학을 가는 데 필요한 돈이 아닌, 대학생들의 자살도구가 되지 않았냐"는 말 또한 많은 이들의 공감을 사는 듯했다.

 

a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마지막 삭발식 삭발 직전 삭발예정대학생들의 모습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마지막 삭발식 삭발 직전 삭발예정대학생들의 모습 ⓒ 강혜란

▲ 반값등록금 실현을 위한 마지막 삭발식 삭발 직전 삭발예정대학생들의 모습 ⓒ 강혜란

삭발대학생 중 한 명인 동아대학교 총학생회장 권오민씨는 "지난 몇 년간 정부와 대학은 철저하게 책임 떠넘기기 하면서 등록금을 꾸준히 인상해 왔다"며 "지난해 반값등록금을 외치는 대학생들을 ▲등록금 소폭인하▲불공평한 조건에서 이뤄진 '등록금심의위원회'같은 학교측 꼼수▲반값등록금 무마용 국가장학금 등을 내놓음으로써 기만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권씨는 "삶의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대학생들의 열의는 아직 꺾이지 않았다"며 "반값등록금이 실현되는 힘은 본인의 힘"이라고 말했다.

 

등록금뿐만이 아니라 한미FTA 발효 등 MB정부에 대한 성토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역시 삭발대학생 중 한 명인 전남대학교 총학생회장 권민영씨는 "2008년 무수히도 많았던 촛불을 무시한 채 한미FTA를 발효시키고, 2011년 무수히도 바랐던 촛불을 무시한 채 반값등록금을 실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서 그는 "도대체 왜 국민의 생명을 팔아먹고 식량 주권을 앗아가는 한미FTA는 날치기까지 하면서 통과시키더니 반값등록금 공약·학생들의 구구절절한 호소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마지막으로 "총선에서 반값등록금을 지지하는 후보들을 뽑아 이 삭발식이 정말 마지막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동생이 밀어주는 머리, "미안하다 동생아" ... 눈물이 뚝뚝

 

a 삭발하고 결심발언을 하고 있는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인애씨 3월 17일 한대련 주최로 열린 삭발식에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인애씨가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자르고 있다

삭발하고 결심발언을 하고 있는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인애씨 3월 17일 한대련 주최로 열린 삭발식에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인애씨가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자르고 있다 ⓒ 강혜란

▲ 삭발하고 결심발언을 하고 있는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인애씨 3월 17일 한대련 주최로 열린 삭발식에서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인애씨가 눈물을 흘리며 머리를 자르고 있다 ⓒ 강혜란

"제 머리는 친동생이 밀어주었습니다. 제 동생은 올해 국립대학교에 입학한 새내기입니다. 저는 빨리 '반값등록금'이 실현돼서 동생이 가고 싶은 대학에 갈 수 있었으면 했습니다. 그러나 (반값등록금은 실현되지 못했고) 제 동생은 대학 원서를 쓸 때 가·나·다군 모두 국립대학교를 써야만 했습니다."

 

부산대학교 총학생회장 김인애 또한 눈물을 흘렸다. 속 쌍꺼풀에 칠했던 마스카라가 번져서 검은 눈물이 흘렀다. 김씨는 "서울로 올라오는 차 안에서 지인들이 '뒤에서 응원한다'는 문자와 전화를 많이 받았다"며 "나를 위해, 내 동생을 위해, 모든 학우를 위해서, 뒤에서 응원하지 말고 앞에서, 우리와 같이 반값등록금을 이야기해 달라"고 부탁했다.

 

a 삭발식을 응원하는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하고 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삭발식을 지켜보고 있다

삭발식을 응원하는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하고 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삭발식을 지켜보고 있다 ⓒ 강혜란

▲ 삭발식을 응원하는 대학생과 일반 시민들 대학생들이 '반값등록금 실현하라'는 플래카드를 들고 응원하고 있다. 지나가던 시민들도 삭발식을 지켜보고 있다 ⓒ 강혜란

마이크를 잡고 이야기하는 삭발대학생들 뒤에서 눈물을 훔치는 한 대학생을 발견했다. "삭발하는 이들 중에 아는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니오"라고 답한다.

 

"그러면 왜 우세요?"

"너무 슬퍼서요 이 상황이. 이제 막 대학에 입학했는데 이런 행사를 처음 봤어요."

 

덕성여대에 재학 중이라는 안모(20)씨는 계속 눈물을 흘렸다. 새내기공연팀에서 알게 된 언니들이 등록금 문제를 설명해줬고 이 행사를 알려줬다. "아직은 뭐가 뭔지 아무것도 모르겠다"면서도 "투표는 꼭 해야겠다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동국대 재학 중인 이모(20)씨 또한 "보고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힘들다"고 말했다. "대표자들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말하는 한편 "생일이 늦어 투표권이 없는 것이 아쉽다"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상황이 심각할 줄 몰랐고 분위기가 숙연할 줄 몰랐다, 마음이 아프다"며 같이 하지 못하는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삭발식은 5~6명 교대로 진행됐고 머리카락이 눈물처럼 뚝뚝 떨어졌다. 떨어지기도 전에 바람에 흩날리는 머리카락이 나의 손을, 점퍼를 뒤덮었다. 울고 있는 삭발대학생과 자꾸 눈이 마주쳤다. '차라리 렌즈 속에 눈을 집어놓고 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었다. 머리카락이 입으로까지 들어가는 와중에도 미친 듯이 사진을 찍었다. 머리를 깎은 언니와 머리를 깎아준 동생, 그 상황을 보고 있는 어느 대학생 그리고 기자까지, 모두가 울었다.

덧붙이는 글 강혜란 기자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총선특별취재팀입니다
#반값등록금 #21C한국대학생연합 #4.11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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