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ECD 주요 회원국 사회임금(사회복지서비스) 비중
고정미
우리가 흔히 말하는 사회복지란 무엇인가. 현재 사회복지에 대한 정의는 학자의 수만큼이나 다양하여 간단 명료하게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사회복지를 노인·장애인과 같이 평균적 생활수준 이하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사회적 지원 등의 좁은 의미로 정의할 수도 있고, 사회적 약자뿐만 아니라 사회의 모든 구성원에게 사회와 적절한 관계를 확보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는 사회서비스와 같이 넓은 의미로 정의할 수도 있다.
정리하면 복지개념에 대한 뚜렷한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이는 사회에 따라 복지는 달리 해석돼 왔기 때문이다. 또한 극심한 사회양극화 등 신자유주의 질서의 폐해가 심화됨에 따라 복지에 대한 개념은 점점 넓어지고 있다.
한국의 경우 1990년대까지는 국가가 시혜적으로 단순히 빈곤계층에게 소득을 보전해 주는 것으로 복지가 이해돼 왔지만, 사회양극화가 심화되고 국민들의 사회적 요구가 커짐에 따라 단순한 소득 보전을 넘어서 보편적인 사회서비스 제공과 같이 복지의 개념이 확대돼 왔다. 지난 6·2 지방선거 이후 보편적 복지와 선별적 복지에 대한 논의가 사회적 화두가 돼 왔고, 복지라는 것이 단순히 국가의 시혜가 아니라 국민들의 당연한 권리라는 인식이 확대됐다. 그만큼 복지에 대한 개념이 확장된 것이다.
복지라는 개념이 다양하게 해석돼 왔다면 복지국가가 처음 도입된 유럽에서는 어떤 기준으로 복지국가 모델을 분류하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복지국가 모델과 관련해 가장 통용되고 있는 기준은 에스핑 안데르센의 분류법이다. 에스핑 안데르센은 탈상품화와 계층화라는 두 가지 기준으로 복지국가 모델을 분류하고 있다.
복지제도가 평등을 실현... '사민주의 복지모델'첫 번째 기준인 '탈상품화'는 노동자가 일을 할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복지를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 즉 실직됐을 때, 국가가 실업수당 또는 연금 등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정도를 나타낸다. 두 번째 기준인 '계층화'는 복지혜택 정도가 계층별로 나뉘어지는(불평등이 얼마나 강화되는지) 정도를 따지는 것으로 사회보험이 주로 직종별·계층별로 구성돼 있는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예를 들면 공무원은 퇴직 이후에 공무원연금을 통해 국민연금보다 훨씬 많은 연금을 수령하게 돼 불평등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이다.
에스핑 안데르센은 이 두 가지 잣대를 기준으로 유럽국가들을 '사회민주주의 복지모델' '조합주의 복지모델' '자유주의 복지모델'로 분류했다.
첫 번째는 실직상태에 빠진 노동자에 대한 생계보장이 잘되고, 복지제도가 전 계층에게 평등하게 적용되는 '사회민주주의 복지모델'(welfare state of social democracy)로 스웨덴, 핀란드가 이를 택하고 있다. 보편주의적 원칙에 따라 복지 서비스와 급여가 계층별로 차등화돼 있지 않고, 복지의 재분배적 기능을 활용해 최저생활 이상의 평등을 추구한다. 국고를 통해 재원을 마련하는 보편적인 공공서비스 프로그램이 발달해 복지제도가 평등을 실현하는 중심 기능을 한다.
복지는 국가가 베풀어 주는 것이 아니다두 번째는 실직상태에 빠진 노동자에 대한 생계보장이 잘 되지만, 복지제도가 전 계층에게 평등하게 적용되지 않고 직종별 사회보험제도 등으로 차별화되는 '조합주의 복지국가'(welfare state of corporatism)다. 독일, 프랑스가 대표적이다. 직업별·계층별로 다른 종류의 복지 급여를 제공하는 사회보험 제도로 인해 사회적 지위에 있어서 차이(불평등)가 그대로 유지되는 행태를 보인다.
세 번째는 실직 상태에 빠진 노동자에 대한 생계 보장이 잘 안되고, 복지제도는 주로 자산조사를 통해서 빈곤층이라고 인정되는 사람들에게만 혜택이 주어지는(기초생활보장제도 등) '자유주의 복지국가'(welfare state of liberalism)다. 미국, 영국이 대표적이다. 선별적 복지 프로그램이 우세하다고 볼 수 있다.
에스핑 안데르센의 복지국가 모델을 나눈 기준은 복지 개념을 이해하는 데서 큰 도움이 되지만, 다분히 경제적 지원에 국한된 측면이 있다. 또한 복지는 국가가 베풀어주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으로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이기에, 국가의 역할과 국민들의 의사 반영이 복지 부분에서 어떻게 이뤄지는 지에 대한 평가 역시 필요한 부분이다. 이를 바탕으로 두 가지 지점에 대한 이야기를 더하려고 한다.
자아 실현의 기회를 제공하는가
▲지난 2월 8일 오후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승용차 생산라인에서 노동자들이 부품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권우성
첫째, 경제적 어려움과 빈곤 탈피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지.
예를 들면 어려운 상황에 처했을 때 기본생존권을 보장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근본적으로는 헌법에서 명시된 '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 '노동'은 단순한 경제적 돈벌이의 수단이 아니고, 자신이 이 사회의 구성원임을 확인하며 자아를 실현하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에스핑 안데르센의 '실직 대책(탈상품화)' 기준은 일시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해소해 주는 측면에 제한된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이러한 기준으로 앞의 세 모델을 평가하면, '자유주의 복지모델'은 노동시장 유연화를 통해 민간부문 고용을 증대시키고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로 임금이 낮아지면 고용주들은 일자리를 늘린다는 것이다. '조합주의 복지모델'은 소득평등 유지와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완전고용을 포기하고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취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복지모델 중 가장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사민주의 복지모델' 역시 노동시장 유연화로 고용증대를 도모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정리하면 세 모델 모두 노동을 통한 자아실현 측면에서 미흡하다.
복지 구현, 누가 무엇을 할 것인가둘째, 복지를 구현하는 데서 국가의 역할은 어떠하고, 국민들은 어떻게 이를 만들어 내는지.
서구 사회와 달리 한국에서 복지제도 구현이 더딘 이유는 '국민을 위한 국가'라는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 투쟁 이전 한국 사회 민주주의 수준이 어떠했는지는 더 이야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40여 년에 걸친 독재정부 아래 국민의 기본권이 철저히 유린된 상황에서 의무만 있을 뿐, 국민이 누릴 수 있는 권리는 거의 없었고 이런 상황에서 복지에 대한 논의 역시 제대로 이뤄질 수 없었다.
그렇기에 최근까지 한국에서 복지는 국가가 개인의 어려운 상황을 도와주는 것으로 인식돼 왔고, 아주 기본적인 것만 시행됐다. 예를 들어 '일도 안 하는 놈이 무슨 복지냐' 등의 인식은 복지라는 개념이 국민으로서의 권리보다는 일종의 국가적 시혜로 인식하는 경향이 존재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지금은 이러한 인식이 많이 개선되고 있지만 복지논의 과정에서 국민들의 권리와 국가의 역할이 분리돼 사고되고 있다. 그렇다면 위에서 제시된 새로운 기준을 바탕으로 복지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확장시켜 나갈 수 있을까.
사람이 주인 되는 복지 먼저 복지에 대한 정의가 '경제'라는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측면으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복지라는 개념이 단순히 절대적인 빈곤과 경제적인 문제에 대처한다는 측면을 넘어서, '사람이 살아가면서 그 사회의 주인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사회제도를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확대돼야 한다. 또한 최소한의 생활수준을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원하는 바를 실현할 수 있는 사회제도를 사회적으로 만들어 가는 것이 복지가 돼야 한다.
인간 중심의 복지개념 |
위와 같은 인간을 중심으로 한 복지개념은 1998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아마티야 센(Amartya Sen)의 가능성(capability)접근에서 살펴볼 수 있다. 여기서 가능성(capability)이란 가치 있는 행함이나 존재상태를 실현시킬 수 있는 개인의 능력으로, 센은 소득이나 재화의 크기로 복지를 평가하는 접근 방법을 뛰어넘어 인간이 가능성(capability)을 얼마나 실현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어 복지를 평가한다. 즉 인간이 스스로 자신이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실현할 수 있는 능력을 사회적으로 만들어 주는 것이 복지라는 것이다. |
예를 들어 우리가 보통 노숙인들의 복지문제를 이야기 할 때, 단순히 먹고 자는 문제에 도움을 주는 것이 아니라 사회의 구성원으로 다시 편입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말을 많이 한다.
하지만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 단순한 사회적 편입이 아니라 사회의 주인으로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 가는 것이 복지의 개념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는 경제적인 지원만이 포함되지는 않는다.
이는 인간을 강조한다고 해서 최근의 '생산적 복지'나 '인적자원' 등과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생산적 복지는 복지와 노동을 연관시키고, 복지가 국가의 생산성을 높이는 방향이 돼야 한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이는 인간, 사람을 중심에 놓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경제 발전에 복속시키는 것이다.
즉 노숙인에 대한 지원이 국가의 생산력을 높이기 위한 것이 목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인적자본 이라는 개념도 마찬가지다. 인적자본이 인간의 능력 개발 등을 강조하고 있기는 하지만 결국 생산성을 증대시키는 인간의 역할에 집중하는 것이다. 종합적인 인간의 능력과 요구가 고려되기 보다는 인간의 역할이 물적자본(자원, 기계 등)과 같은 것으로 고려되고 있다.
복지, 사회정치적 영역으로 확장시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