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도 등급이 있는 대한민국

[주장] 임재해 교수의 특강 <장례놀이와 축제>를 듣고... 모든 죽음과 삶은 축제가 되어야

등록 2012.04.24 14:19수정 2012.04.24 1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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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여, 그대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죽음을 맞이하는구나. 죽는 법을 배우지도 못한 채...... 죽는 법을 배우라. 그러면 그대는 사는 법을 배우게 되리라. 죽음을 배우지 못한 자는 삶까지도 배울 수 없기 때문이다.  - 티베트 사자의 書 <죽음의 기술 중>

a  22개의 관을 앞에 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폭우속에 22개의 관을 앞에 두고 상복을 입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앉아 상주로 앉아 있다.

22개의 관을 앞에 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폭우속에 22개의 관을 앞에 두고 상복을 입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 앉아 상주로 앉아 있다. ⓒ 이명옥


"얼마나 살기가 힘들었으면......"


스스로 목숨을 버린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대한문 앞 분향소에서 22명의 얼굴 없는 영정을 지키며 23번째 죽음만은 막아보겠다고 안간힘을 쓰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이다. 3년 동안 22번이나 상복을 입어야 했던 사람들, 상복을 입는 것이 누구보다도 싫다면서도 고인의 영정사진마저 제대로 내걸지 못하고 대한문에서 분향객을 맞아야 했던 사람들. 그들의 동료가 맞이한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

a 임재해 교수 <장례놀이와 축제>라는 주제로 장례 의식을 통해 삶의 자세를 돌아 볼 수 있도록 했다.

임재해 교수 <장례놀이와 축제>라는 주제로 장례 의식을 통해 삶의 자세를 돌아 볼 수 있도록 했다. ⓒ 이명옥


각당복지회관 죽음을 준비하는 지도자 과정 수강생들을 위한 임재해 교수(안동대 민속학) 의 <장례놀이와 축제>라는 강의가 있었다. 성급하게 결론부터 말하자면 '죽음'을 보내는 의식은 생명의 '탄생'만큼이나 기쁘고 즐거워야 하고 공동체를 하나로 만들어야 하며 산자들의 삶의 자리를 되돌아보아 새롭게 삶의 자세를 다듬는 기회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강의를 시작한 임재해 교수는 "추락한 비행기의 추락원인을 알려면 블랙박스 안의 정보가 필요하다"며 "인간에게도 생사의 비밀이 담긴 블랙박스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최근 밝혀진 우뇌와 좌뇌의 기능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간 삶의 존재 양식이 응축된 정보를 간직한 우뇌의 정보만으로도 인간은 평화로운 삶을 살 수 있다. 인간이 좌뇌에 지배당할 필요는 없으며, 오히려 좌뇌의 영향력에서 한 발 비켜서면 더 평화롭고 영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다'는 미국 하버드 대학 뇌 과학자인 질 볼트 테일러(Jill Bolte Taylor)의 연구 결과를 인용하며 인간의 우뇌에는  인류 역사의 모든 생존 양식이 담겨있음을 설명했다.

임 교수가 예로 든 죽음은 천수를 다하고 자연사를 한 경우다. 인간의 생로병사의 비밀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지만 인간 몸 속 세포의 노쇠로 인한 세포의 죽음과 기능의 쇠퇴가 죽음의 원인이 되고 정신적인 스트레스로 인한 충격도 죽음의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알려져 있다.

인간의 죽음은 많은 부분에서 면죄부가 되기도 하고 안타까움이 되기도 하며 때론 산 자와 죽은 자의 고통을 동시에 덜어주는 일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인간의 공동체 삶에 방해가 되었던 사람들의 생명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사회에 살고 있다. 천부인권을 인정하기에 많은 나라에서 사형제가 폐지되었다.


그런데 대한민국은 범죄자도 아닌 노동자를 죽음의 벼랑으로 몰아세운 후 자본과 권력과 공권력이라는 이름으로 세차게 등을  밀어 떨어트리고 있다. 힘없는 노동자들은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해고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억울하게 죽어간다.

임 교수는 "전통적으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상을 당한 가족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하나로 만들고 평등하게 먹을거리를 나누고 슬픔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a 꽃 상여 쌍용자동차 22명의 죽음 앞에 꽃상여가 가고 있다.

꽃 상여 쌍용자동차 22명의 죽음 앞에 꽃상여가 가고 있다. ⓒ 이명옥


"전통적으로 죽음을 대하는 태도는 상을 당한 가족만이 아니라 마을 전체를 하나로 만들고 평등하게 먹을거리를 나누고 슬픔과 즐거움을 함께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죽음을 왕을 다른 나라로 보내는 것으로 여겨 혼례 때보다 더 화려한 꽃과 장식이 달린 상여에 태워 앞소리꾼이 소리를 메기며 풍악을 울리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보냈다고 한다.

그런데 금권이 권력이 되어 물신의 망령에 사로잡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죽음마저도 등급이 매겨지고 절차가 달라진다. 단순히 얼마짜리 장례를 치르느냐 얼마의 부조를 챙길 것인가의 문제 돈으로 죽음을 처리하는 절차의 문제가 돼버린 것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더 이상 권리를 주장할 수 없던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22명의 죽음,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아무도 그들을 기억하지도 않았던 '소외된 죽음'이 현장이 더욱 아프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가는 국민의 권리와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존속한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살해를 당할 위기에 처한 100만 정리해고자와 900만 비정규직은 대한민국의 보호받아야 할 국민이 아니냐"고 묻고 싶다.

이제라도 쌍용자동차 정리해고자로 살아가는 산자들에게 제 일자리를 돌려주어 그들의 죽음의 호소가 눈물이 아니라 풍악을 잡히고 덩실덩실 춤을 추며 보낼 수 있는 죽음이 되었으면 한다. 죽음을 대신할 새 생명을 이야기했던 삶의 연장이자 축제인 장례 의식이 되어 이 세상의 고통과 아픔, 가족에 대한 걱정과 근심도 내려놓고 편안히 잠들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간절하다.

덧붙이는 글 | 대한문 분향소와 부산역 분향소는 49제 일인 5월 18일까지 이어집니다.


덧붙이는 글 대한문 분향소와 부산역 분향소는 49제 일인 5월 18일까지 이어집니다.
#쌍용차 22번째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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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잘살면 무슨 재민교’ 비정규직 없고 차별없는 세상을 꿈꾸는 장애인 노동자입니다. <인생학교> 를 통해 전환기 인생에 희망을. 꽃피우고 싶습니다. 옮긴 책<오프의 마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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